소설리스트

레지스트 쉴드-60화 (60/285)

60화

드롭존 안에서의 이해관계가 자본주의에 얽히다 보니 사냥에 비해서 인명 구조가 뒷전으로 밀리는 경향이 있기도 했다. 하지만 기업들이 가장 민감해하는 것이 인명 구조이기도 하다.

예전에 어떤 기업은 사냥에 몰두한 나머지 인명 구조를 뒷전으로 밀어둔 채 활동하다가 그것이 카메라에 잡히는 바람에 전국을 넘어 전 세계적으로 손가락질을 받은 적이 있었다.

해당 기업의 주가는 폭락했고, 망하는 것은 당연한 수순이었다.

그 이후, 각 기업들은 인명 구조 임무만큼은 자사에서 가장 믿음직스러운 수라에게 일임했다.

인상공업전문대학 정문에 도착하자 너비 30m의 돌연변이 범고래가 우주를 반겼다. 기형적으로 팔다리가 자라있었다. 그것은 악어가 육지를 달리듯 뒤뚱뒤뚱 그를 향해 아가리를 벌리고 뛰어왔다.

우주는 그 안에 수류탄을 던져 넣었다.

곧 수류탄이 돌연변이 범고래의 몸 안에서 콰앙 터졌다. 내장 기관이 크게 파열됐는지 녀석은 그대로 피를 토하며 쓰러져 죽어버렸다.

그럼에도 우주는 약 10초간 몸을 움직이지 못하였다. 범고래가 숨이 붙었을 때 콧구멍으로 초음파를 내보냈는데, 그것이 우주의 전신을 마비시킨 것이다.

수류탄을 던지는 시간이 조금이라도 느렸더라면 일생일대의 대위기가 닥칠 뻔한 상황이었다.

우주는 범고래의 몸뚱이에 마크를 부착한 뒤 캠퍼스 안으로 들어섰다. 슈퍼바이크는 정문에 두기로 했다.

“항공운항과라…….”

넓은 캠퍼스 안에서 어디로 방향을 잡아야 할지 몰라 갈팡질팡했다.

우주는 작전 지휘소와 무전으로 연락을 주고받았다. 지휘소 직원의 설명을 계속 들어가며 중간 중간 길을 가로막는 돌연변이 생물들을 무난히 잡고 길을 열었다.

학생들은 강의실에 숨어있었다.

“혼자 오신 거예요?”

“네.”

학생들은 젊은 아가씨들로, 스튜어디스 복장을 하고 있었다. 그것도 23명. 우주 혼자 구하러 왔다는 소리에 실망한 학생도 더러 있었지만, 우주의 실물을 처음 본 여대생들은 손뼉을 치며 어마어마한 비명을 질러댔다.

“꺄아, 신우주다!”

“어머, 어떡해! 신우주야, 신우주!”

“기럭지 살았는 거 봐!”

하지만 개중에는 우주에게 관심 없다는 투로 같은 회사 유명인을 찾는 여대생도 있었다.

“혹시 추길성은 안 왔어요? 전 추길성 아저씨 팬인데.”

우주는 무심히 고개를 끄덕였다. 다른 여대생이 다가오며 말했다.

“휴대폰 번호 뭐예요?”

그 옆에 서있던 여대생이 그녀의 어깨를 살며시 툭 쳤다.

“그런 걸 알려주겠니?”

소곤소곤, 속닥속닥.

우주는 수다스러운 몇몇 여대생 때문에 정신이 없었다. 한편으로는 두세 명도 아니고 23명이나 되는 여대생들을 한꺼번에 대피소로 옮길 수 있을지 의문도 들었다.

그는 여대생들의 틈바구니 속에서 잠시 빠져나와 다시 작전지휘소로 연락을 취했다.

“올빼미 5로부터 둥지에게. 학생들을 발견하고 전원 무사한 것을 확인했소. 이 근처에서 가장 가까운 대피소 위치를 알려주기 바라오.”

―수신 양호. 인상공업전문대학 정문을 나와서 오른쪽으로 3km 떨어진 지점에 대피소가 하나 있다. 학생들을 그곳으로 데려가도록. 이상.

23명을 데리고 3km나 걸어가라니, 너무 먼 거리였다. 큰일이다 싶은 생각이 불쑥 들었다.

우주는 머릿속이 복잡했다. 무전기를 들고 다시 물었다.

“대피시켜야 할 인원이 23명으로 너무나 많소. 혼자 버거울 듯싶은데 혹시 지원 가능한 팀원이 있소?”

―곳곳마다 상황이 워낙 긴박하여 5번 올빼미는 현재 사고무친 고립무원인 상태다. 하나 그곳의 사정을 최우선으로 고려하여 지원 가능한 팀원을 물색해 보겠다. 정 안 되면 다른 새(기업)들에게 협조를 요청하겠다. 이상.

하얀 셔츠에 회색 스튜어디스복을 입고 단정한 쪽머리를 한 여대생들은 성숙한 외모처럼 말을 잘 들어서 다행이었다.

한 가지 골치 아픈 것이라곤 말이 많다는 점이었다. 어찌나 수군대는지 우주가 앞장서서 걷다 보면 휴대폰을 들고 사진 찍는 소리가 찰칵찰칵 나질 않나, 바로 뒤에서 뒤따라오던 한 여대생은 우주의 잘생긴 엉덩이를 슬쩍 만지고 살짝 꼬집기까지 했다.

우주는 난처했다. 하지만 곤란한 표정을 굳이 내색하지 않고 일단 입을 꾹 다물고 건물을 빠져나가기로 했다. 작전 지휘소에서 잠시 대기할 때 담당 직원이 몇 번이고 수차례 팀원들에게 강조했던 말이 떠올랐기 때문이다.

“인명 구조 시 화내거나 인상을 찡그리시면 절대로 안 됩니다. 요즘 그러면 방송이나 인터넷에 바로 떠요. 힘들더라도 무조건 상냥하고 친절하게 웃어 주셨으면 합니다. 꼭 부탁드릴게요. 여러분, 아시겠죠?”

그 말을 상기하며 앞을 보고 잠자코 걷고 있는데, 또다시 한 여대생이 신우주의 등을 살짝 두드렸다. 우주가 문득 뒤돌아보자 그 여대생이 호기심 가득 찬 눈빛으로 물었다.

“정말 궁금해서 그러는데 한소라랑 진짜로 사겨요?”

그 시각. 전국에 동시 생중계되는 TV 아랫부분 자막에는 드롭존 사냥의 통계 수치가 수시로 바뀌는 중이었다.

1위 신라그룹 : 51 / 우연진 : 25, (중략) 김수희 : 82위 제네틱스 : 33 / 차선희 : 11, 추길성: 10, (중략) 신우주 : 73위 오성그룹 : 20 / 강미라 : 12, (중략)4위 가람그룹 : 13 / (이름 생략)5위 한대그룹 : 10 / (이름 생략)6위 ……

7위 ……

…………

………

……

?

우주와 여대생들이 건물 밖으로 나오자, 바로 위에서 상공을 빙빙 돌던 돌연변이 새 한 마리가 덮쳐왔다.

“꺄아~!”

하늘을 쳐다보던 여대생들이 머리를 감싸고 몸을 움츠리고 비명을 내질렀다.

우주는 민첩하게 로프건을 꺼내서 녀석의 오른쪽 발목을 향해 쐈다.

휘리릭, 차락.

밧줄이 발목에 완벽히 감기자, 자신 쪽으로 힘껏 끌어당겼다. 크기 3m의 거대한 새가 저항도 못 하고 힘없이 끌려오더니 쿵 하고 바닥에 처박혔다.

“끼에엑, 끼에엑!”

녀석은 괴상한 소리로 울부짖으며 날개를 파닥거렸다. 그 바람이 어찌나 센지 여대생들은 몸을 휘청거리면서 펄럭이는 치마를 잡느라 애를 썼다.

우주는 로프건의 버튼을 눌러서 밧줄을 팽팽하게 끌어당겼다. 녀석은 푸드득거리며 날갯짓을 했으나 워낙 그의 힘이 센지라 날아갈 엄두도 못 냈다.

스르릉.

장도를 꺼내 들어 가까이 다가갔다.

싹둑―

놈의 목은 길고 얇아서 단칼에 베기도 좋았다.

“진짜 대단하다…….”

여대생들 모두가 탄성을 자아냈다. 거대한 괴물을 가볍게 제압하는 그의 실력이 정말로 신기했다.

우주는 마크를 꺼내서 돌연변이 새의 몸에 붙였다.

이어서 그는 여대생들에게 몇 가지 주의 사항에 관해 이야기하려고 입을 열었다. 그녀들은 하나같이 그의 이야기에 빨려들어 가는 것처럼 높은 집중력을 보여줬다.

“이동 시 4열 종대로 이동하겠소.”

“4열 종대가 뭐예요?”

누군가 묻길래 우주가 한 여대생의 어깨 위에 살짝 손을 얹었다.

“이 낭자를 기준으로 한 줄당 네 명씩 서주시오.”

“낭자래!”

여대생들은 우주의 구시대 말투를 듣고 하나같이 꺄르르 웃음을 터뜨렸다.

우주는 무시하고 말을 이었다.

“여러분이 총 23명이니까 여섯 줄이 나올 겁니다.”

“이렇게 이동해요?”

“그렇소. 괴물을 만나도 절대 대형이 흐트러지면 안 되오. 중간에 만나는 괴물은 소생이 알아서 처리할 테니 딱 그 자리에만 멈춰있어 주시오.”

우주는 얼른 방공호까지 뛰어갔으면 싶어서 여대생들에게 구보를 시켰다. 그러자 얼마 안 가서 금세 숨을 헐떡이는 여대생들이 속출했다.

“주, 죽겠어요.”

“걸어가면 안 돼요?”

“저 운동은 젬병이에요.”

여대생들이 허리를 숙이고 일제히 가쁜 숨을 토해냈다. 심지어 어떤 여대생은 인상을 찡그리며 헛구역질까지 했다.

“쉬어갈 테니 잠시 숨 좀 고르시오.”

우주는 그렇게 말하고 근심 어린 표정으로 먼 곳을 쳐다봤다.

퍼펑, 콰광!

건물 사이 곳곳에서 폭발물 터지는 소리가 들려왔고, 그을린 연기가 푸른 하늘을 가득 적셨다. 다른 방향에서는 기관총을 연발하는 총소리가 끊이지 않았다.

우주는 열을 맞추고 앉아 쉬고 있던 여대생들을 돌아봤다.

“출발하겠소. 이제부터는 걸어갈 테니 잘 따라오시오.”

“잘 따라갈 테니 나중에 사인도 해주고 밥도 사주세요.”

어떤 여대생이 명랑하게 그런 말을 꺼냈다.

그 말에 여대생들이 일제히 우주를 바라봤다. 다들 기대하는 눈빛으로 그가 수락해 주길 바라는 눈치였다.

“젖 먹던 힘까지 낼게요~”

또 누군가가 응석을 부리듯이 말했다.

평소 여성들의 쪽머리 스타일을 좋아하던 우주는 쪽머리 여대생들이 단체로 응석을 부리자 결국 못 이겠다는 표정으로 웃으며 대답했다.

“좋소이다. 하여튼 어서 서두릅시다.”

가는 길에 정문에서 물고기형 괴물과 마주쳤다. 일반 물고기와는 다르게 네 다리가 달려서는 그들을 향해 쏜살같이 기어왔다.

여대생들이 비명을 지르며 몸을 웅크렸다. 모두 두려움에 떨었지만, 다행인 것은 대열을 이탈하는 사람이 한 사람도 없다는 점이었다.

우주는 재빨리 로프건을 쏴서 녀석의 다리를 묶고 자기 쪽으로 홱 끌어당겼다. 그리고 퍼엉! 녀석의 콧구멍에 산탄총을 쏴서 통쾌하게 마무리를 지었다.

우주는 여대생들을 이끌고 계속 앞으로 나아갔다.

그대로 정문을 나와서 오른쪽으로 방향을 꺾어 경사진 도로를 쭉 올라가는데, 돌연 다른 기업의 수라와 마주쳤다.

여성이었으며 주황색 슈트를 입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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