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2화
우주는 힐끔 무표정한 얼굴로 수희를 내려다봤다. 곧바로 시선을 옮기더니 한 팔을 아래로 쭉 뻗으며 볼록 튀어나온 로브스터의 검정색 눈알을 향해 기관단총을 마구 갈기기 시작했다.
투다다다다다다다다다! 투다다다다다!
퓩! 퓨슉! 퓩퓩퓩!
눈알에 총알이 박히자 검고 짙은 액체가 줄줄이 흘러내렸다. 로브스터는 한순간 두 눈을 잃어버렸다.
머리가 지면에 향한 채 포물선을 그리며 거꾸로 허공을 날았던 신우주는 슈퍼바이크를 원래대로 뒤집으며 도로 위에 미끄러지면서 착지했다.
“어서 타시오!”
우주가 뒤돌아보며 소리쳤다. 흥분한 로브스터가 앞뒤 가리지 않고 마구 집게발을 휘둘렀다.
수희가 있던 자리에도 집게발이 날아들었다. 하지만 수희의 반응이 한 발 빨랐다. 그대로 우주에게 냅다 달려가서 그의 바이크 뒷좌석에 몸을 실었다.
우주는 멀리가지 않고 그녀를 부근에 내려줬다.
“구해줘서 고마워요.”
“늦지 않아서 다행이었소이다.”
“예. 하마터면 큰일 날 뻔했어요.”
수희가 슈트에 묻은 먼지를 털며 조그맣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녀는 배낭을 풀더니 바닥에 내려놓았다. 배낭 안에서 탄띠를 꺼내 어깨에 둘러멨다.
슈퍼바이크에 앉아서 잠자코 그녀를 내려다보던 우주가 다시 말을 꺼냈다.
“동료 있는 곳까지 태워다주오?”
“아니에요. 여기도 괜찮아요.”
“바이크 없이 괜찮겠소?”
“뛰는데 자신 있어서 상관없어요.”
“잘 뛰는데 아깐 왜 넘어진 거요?”
길바닥에 쪼그려 앉아서 배낭을 정리하던 수희가 순간 동작을 멈추고 그를 올려다봤다. 그녀는 미간을 찌푸리며 인상을 썼다.
“말을 꼭 그렇게 해야 돼요?”
“다치지 않도록 조심하시오.”
우주는 다정하게 그 말을 남기고는 슈퍼바이크의 시동을 걸었다.
부릉, 부릉.
사냥을 재개할 생각이었다.
수희가 제자리에서 일어났다.
“잠시만요.”
“왜 그러시오?”
수희는 곧바로 대답하지 않고 잠시 그를 바라만 보았다. 무언가 고민하는 두 눈. 그러다 무거운 입술을 지그시 열었다.
“이 근방에서는 사냥하지 않는 게 좋아요. 우리 팀원들이 주변에 쫙 깔렸어요.”
“여기 무슨 보물이라도 있소?”
“그런 게 어딨다고 그래요? 없어요.”
“그럼 왜 다 여기 몰려있소?”
“그거야 모르죠.”
수희가 쌀쌀맞게 대답하자 우주는 그냥 피식 웃어 보였다. 그녀의 퉁퉁거리는 모습이 왠지 재밌기도 했다. 평소 깨끗하고 지적인 이미지의 여배우는 여기 없었다.
“수희 씨도 여기서 사냥할 거요?”
“그러려고 했는데 마음이 바뀌었어요. 다른 곳으로 갈까 해요.”
수희는 나름 성의껏 대답해 줬는데 우주가 말 끝나기가 무섭게 되받아쳤다.
“잘됐소. 그럼 소생은 여기서 사냥하리다.”
“뭐라구요?”
“이 구역에 수희 낭자가 없으니 사냥이 잘 될 것 같소.”
“나 참.”
그녀는 기가 찬 듯 헛웃음을 터뜨리며 팔짱을 꼈다.
“아우, 진짜 혈압 올라.”
“폭발하기 전에 나 먼저 가리다.”
우주는 시치미를 뚝 떼더니 환한 표정으로 한 손을 흔들면서 슈퍼바이크를 몰고 슝 가버렸다.
홀로 남겨진 수희는 제자리에서 투덜거렸다.
‘왜 자꾸 날 괴롭히는 거야, 왜!’
답답한 마음에 그가 떠난 방향에 대고 소리쳤다.
“너 진짜 죽는다아아!”
◆
우주는 전처럼 몰이사냥을 하기가 어려웠다.
슈퍼바이크를 타고 돌연변이 생물을 몰다 보면 가는 길에 꼭 신라그룹 팀원을 마주쳤다.
사실 마주치는 거야 그다지 상관은 없는데, 갑자기 나타난 사람을 보고 잘 따라오던 돌연변이 생물들이 그쪽으로 달려가는 게 문제였다.
“한 마리씩 잡기에는 일일이 찾느라 시간이 많이 걸리는데…….”
그렇게 중얼거리며 우주는 하는 수 없이 사냥터를 옮겼다.
조금 전 장소에서 5km 떨어진 곳이었다. 슈퍼바이크를 타고 여러 빌딩을 지나치며 돌연변이 생물을 찾아 헤맸다. 그런데 잘 안 보였다.
겨우 하나 찾았다 싶으면 붉은 슈트를 입은 신라그룹 팀원이 먼저 선점해서 잡는 중이었다. 심지어 그런 상황을 여러 차례 목격했다.
“안 되겠군.”
무려 한 시간여를 별다른 소득도 없이 공친 기분이 들어 꿀꿀했다.
소라한테 큰소리쳤던 게 떠올랐다. 마음이 다시금 조급해졌지만 그냥 몰이사냥은 포기하고 한 마리씩 잡기로 했다.
같은 시각 제네틱스 종합 대책 상황실.
인천 지역 지도가 나온 커다란 스크린을 바라보면서 중년의 작전 본부장과 소라가 긴밀하게 대화를 주고받는 중이었다.
“5번 올빼미 주변에 다수의 신라그룹 팀원이 관측되고 있습니다.”
“오큐파잉(occupying) 인가요?”
“사냥에 방해가 될 정도로 주변 공간을 차지한 것을 보니 오큐파잉이 확실한 것 같습니다.”
작전 본부장의 대답에 소라가 스크린을 보며 같잖다는 듯이 콧방귀를 꼈다.
‘한소민, 니가 이렇게 나올 줄은 이미 예상했지.’
그녀는 작전 본부장에게 말했다.
“잠시 자리를 비우겠습니다. 상황실을 맡아주세요.”
“알겠습니다.”
그녀는 팔짱을 끼며 또각또각 문 쪽으로 걸어 나갔다.
문을 닫고 복도로 나온 소라는 손에 쥐고 있던 휴대폰을 쳐다봤다. 그러고는 번호를 눌렀다.
휴대폰을 귀에 대고 창밖을 바라봤다. 20층, 도심을 비추는 여름 햇살이 강렬했다.
인천의 한 은행 건물 옥상.
주황색 슈트를 입은 강미라가 난간 아래를 내려다보며 통화중이다.
그녀는 즐거운 듯 입꼬리를 올렸다.
“전화만 기다렸습니다. 기다리느라 지루했어요.”
전화를 끊었다. 휴대폰을 멜빵에 걸고 나서 그녀는 손뼉을 마주치며 비볐다.
“자, 우상님을 괴롭히는 놈들을 하나씩 족쳐 볼까나.”
모든 기업이 수라에게 제공하는 총기류와 폭발물류 그리고 화약류에는 제각각 정부에서 관리하는 식별코드가 부여돼 있다.
그리고 임무 시 어떤 기업의 누가, 어떤 무기와 탄환을 들고 나갔는지 국가통합전산망에 명확히 기록된다. 그래야 수수께끼 같은 인명 살상이 벌어져도 용의자를 쉽게 간추릴 수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통제를 벗어난 무기를 사용하는 것은 엄연한 불법이다.
하지만 미라는 현재 불법 경로로 들여온 저격총을 소지하고 있었다.
빌딩이 우후죽순 들어선 도심의 거리.
신라그룹의 붉은 슈트를 입은 젊은 남자. 돌연변이 생물과 홀로 고군분투 중이었다. 미라는 주변을 둘러봤다.
“저기가 딱 이네.”
그녀는 방긋 웃으며 한 빌딩 옥상으로 올라갔다. 그곳에 PSG-2 저격총을 설치하고 엎드렸다. 조준경에 눈을 댔다. 까마득히 멀게만 보이던 광경이 코앞에 있는 것처럼 생생히 보였다.
조금 전 봐두었던 신라그룹 팀의 남자를 찾아서 조준했다.
“우후후.”
미라는 웃음을 낮게 흘리며 살의를 드러냈다. 잠시 뒤, 방아쇠를 당겼다.
푸슉!
저음으로 날아간 탄환이 곧바로 남자의 허벅지를 관통했다.
“으아악!”
푸슉!
괴로워하는 남자의 다리에 한 발을 더 쏴서 맞췄다. 남자가 길가에 픽 쓰러지자 돌연변이 생물이 잡아먹을 듯이 그 위를 덮쳤다.
“알아서 잘 사세요오~”
그녀는 즐거운 듯이 방글방글 웃으며 저격총을 들고 다른 자리로 이동했다.
이리저리 시선을 돌리다 저 멀리 돌연변이 생물과 전투중인 남자를 발견해 냈다. 엎드려서 조준경에 눈을 가져갔다. 이어 총구를 골목 쪽으로 돌렸다.
“넌 어디를 맞춰줄까나?”
강미라는 또 환한 미소를 지으며 방아쇠를 당겼다.
푸슉! 푸슉!
연달아 두 발을 쏴서 가슴을 맞추자 멀리서 붉은 슈트를 입은 남자가 고꾸라지면서 고통 속에 몸부림쳤다.
오래 아파하지는 않았다. 전투를 벌이던 돌연변이 생물에게 꾸역꾸역 잡아먹혔다.
“저런~ 심심한 애도를.”
큭큭 대며 총구를 다시 도로 쪽으로 돌렸다.
검정 슈트를 입은 한 남자가 슈퍼바이크를 타고 빌딩숲을 가로지르며 달리는 중이었다. 조준경을 통해 남자의 얼굴을 자세히 들여다볼 수 있었다.
“어머, 우상님이네.”
미라는 헤벌쭉한 얼굴로 미소를 지었다.
그런데 왠지 우주가 문득 멀리서 지켜보는 미라의 존재를 눈치챈 것 같았다.
그가 이쪽을 쳐다보았다. 그녀는 얼른 머리를 숨겼다. 그대로 천천히 기어서 빌딩 옥상을 빠져나갔다.
10분 뒤.
장소를 옮긴 미라는 주변에 서성거리는 신라그룹 팀원들을 찾았다.
찾고 나면 어김없이 그들에게 방아쇠를 당겨서 신체 부위 중 한곳을 못 쓰게 만들었다.
사람을 쏜다는 것은 그녀에게 짜릿하면서도 색다른 재미를 안겨다 주었다. 내내 즐거웠다.
신라그룹 종합 상황 본부.
난리가 났다.
사람들이 급하게 어딘가 전화하며 바쁘게 왔다 갔다 했다. 한마디로 소란스럽고 정신이 없었다.
“6번 중상! 10번 중상! 15번 사망! 20번 중상! 사망자를 비롯해 세 명 모두 전투력 상실입니다!”
소민은 심각한 표정을 지었다.
“서둘러 구조반 투입시키고 근처에 제네틱스 수라가 없었는지 목격자를 찾아보세요!”
“18번 늑대로부터 보고가 들어왔습니다! 20분 전 사건현장 주변에서 오성그룹 강미라와 가람그룹 수라를 봤다고 합니다!”
“제네틱스 수라는요?”
“본 적이 없다고 합니다!”
소민은 팔짱을 끼면서 저도 모르게 손톱을 깨물었다. 대체 누구의 짓일까. 신우주? 신우주는 계속 감시했기에 절대 아니다. 그럼 누구?
그 순간 한소라의 얼굴이 불쑥 뇌리에 스쳤다. 그녀는 주저 없이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더니 문 쪽으로 향했다.
―서로 바쁜 시간에 갑자기 무슨 일이니?
“니가 우리 수라 건드렸어?”
―건드리다니 무슨 말? 오랜만에 연락해 놓고 이렇게 씩씩대기야?
소라는 태연하게 시치미를 떼면서 대꾸했다.
그 모습이 아니꼬운 나머지 소민이 눈을 번뜩이며 으름장을 놓았다.
“너희가 무슨 짓을 했는 줄 알아? 이번 일에 관한 진상이 밝혀지면 그땐 너나 너희 회사 모두 끝이니까 알아둬!”
확신에 찬 것처럼 소리치는 그녀의 말에 소라가 코웃음을 쳤다.
―도대체 뭐라고 하는 건지 난 도무지 모르겠네. 일단 진정이나 하길 바랄게. 바쁜 와중에 괜히 전화기 붙들었다가 뜬금없이 욕먹긴 시르네.
뚝.
전화가 끊겼다. 소민은 입을 꾹 악문 채 그렇게 1분 동안 꼼짝 않고 분을 삭였다.
다시 전화해서 고함을 지르고 싶었다. 제네틱스까지 찾아가서 한바탕 난리를 치고 싶었다. 하지만 아직 이렇다 할 증거가 없었다.
그 시각 사냥 통계 수치는 다음과 같다.
1위 신라그룹 : 120 / 우연진 : 60, (중략) 김수희 : 252위 제네틱스 : 95 / 신우주 : 38, (나머지 이름 생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