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3화
생방송 중인 MBO 방송국.
“역시 신인에게는 버거웠던 걸까요. 우연진과 신우주의 차이가 좀처럼 줄어들지 않고 있는데요. 조금 전 오후 4시 20분에 있었던 인천시의 공식 발표에 의하면 시민 사상자가 총 열 명. 그중에서 가벼운 부상자가 열 명이고 사망자가 0명, 드롭존 안의 돌연변이 생물은 대략 80% 처리가 완료된 상태라고 합니다. 이대로라면 신라그룹이 1위하는 것은 자명한 사실이겠죠? 김중권 교수님은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그건 끝날 때까지 모르는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이번 드롭존에서는 운 좋게도 호랑이급 돌연변이 생물이 출연하지 않았는데요. 예전에도 한 번 96% 처리 시점인 늦은 저녁 시간에 출현한 적이 있었죠.”
“하긴 그렇습니다. 호랑이급 같은 경우에는 1점씩 주던 포인트를 무려 20점이나 부여하죠.”
앵커가 카메라를 정면으로 쳐다봤다.
“혹시 레지스트 쉴드에 관심이 없으신 시청자분들을 위해서 제가 다시 한 번 말씀드리겠습니다. 레지스트 쉴드 안에 살고 있는 돌연변이 생물들에게는 제각기 등급이 있는데요. 토끼급, 호랑이급, 코끼리급 총 3등급으로 나누어지며 등급이 높을수록 잡기가 어렵고 물질적인 가치 또한 높습니다. 예를 들어 설명해 드리겠습니다.”
앵커가 책상 밑에서 그림을 들어서 보여주었다.
“여기 멧돼지를 닮은 돌연변이 생물이 보이십니까? 이 녀석은 토끼급이라고 합니다. 고액 연봉을 받는 수라 혼자서도 처리가 가능한 동물이죠. 그리고 여기, 이 폭스네이크와 빅 허니비 보이십니까? 이 녀석들은 호랑이급이라고 합니다. 혼자서 처리하긴 어렵고 100억대 이상의 고액 연봉자가 세 명은 낀 1개 팀에서 잡을 수 있습니다. 마지막으로 또 여기, 사탄이 보이십니까? 이 녀석은 코끼리급입니다. 이 녀석을 잡으려면 25명으로 이루어진 1개 팀이 총 세 팀이나 동원되어야 할 정도라고 합니다. 물론 이건 전문가들의 추측일 뿐입니다. 현재까지 사탄을 사냥한 기업은 아직 전 세계에 없습니다.”
일전에 한 시민 단체에서는 사람의 생명이 위협받는 중대한 상황을 마치 스포츠 중계처럼 보도한다고 해서 이를 비난하며 방송국 앞에서 시위를 한 적이 있었다.
하지만 최근 세 차례 발생한 드롭존에서 사망자 수 0명, 무너진 건물에 대한 피해액 전액 보상, 해안가 인접 도시 중에 드롭존이 한 번이라도 발생된 도시에 살고 있다면 60세 이후 매달 연금 200만 원씩 지급, 초등학교에서 대학교까지 자녀 학자금 전액 지원 및 1년간 유류비 500만 원 지원 등 파격적인 조건까지 내걸자 오히려 그 시민 단체가 국민들에게 욕먹는 상황이 벌어졌다.
게다가 이러한 혜택 때문에 해안가로 이사 오고 싶어서 안달난 사람도 늘어만 갔다.
무엇보다도 특히 사망자 수가 0명이란 사실에 주목해야 한다.
드롭존 초창기에는 수천 명에 달하는 사상자가 났다.
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도시 곳곳에 방공호가 생겼다. 또한 드롭존 대비 시스템 구축(공중파와 모바일 알림, 동대별 경보 알림과 피난 훈련 등), 그리고 레지스트 쉴드와 인접한 동해안과 서해안에 배치된 공?해군의 24시간 철통 경비가 이뤄졌다.
이들이 비상 대피 경보를 사전에 알려주기 때문에, 최근에는 드롭존 사망자 수 0명을 달성할 수 있었다.
현재 시각 드롭존 사냥 통계 수치는 다음과 같다.
1위 신라그룹 : 135 / 우연진 : 67, (중략) 김수희 : 332위 제네틱스 : 125 / 신우주 : 60, (나머지 이름 생략)우주가 점점 연진을 따라잡기 시작하자 방송사에서도 발 빠르게 속보로 전하고 있었다.
또한 예상치 못한 네 명의 사상자로 인해서 수적으로 불리한 신라그룹이 앞으로 제네틱스에게 뒤처지는 것은 시간문제라며 모두가 한결같이 신라그룹의 패배를 예감했다.
인천항과 가까운 구역.
우주가 정신없이 사냥을 마치고 마크를 부착하는데 문득 눈앞에 마이크가 들이밀어졌다.
우주는 깜짝 놀라서 당황했다. 웬 방송사 여기자와 카메라맨 두 사람이 보이는 것이 아닌가.
“여긴 대체 어떻게 들어왔소이까?”
“신우주 씨! 전국에 계시는 시청자 여러분께 소감 한마디 부탁드립니다! 신라그룹과 우연진을 이길 거라 보십니까?”
여기자의 얼굴은 땀에 흠뻑 젖어있고 옷 이곳저곳에는 흙이 잔뜩 묻어서 지친 기색이 역력했다. 카메라맨 역시 마찬가지였다.
그럼에도 그들은 투철한 직업 정신을 발휘하듯 우주에게 틈도 없이 질문을 쏟아냈다.
우주는 좌우로 손을 급히 저으며 자리를 피하려고 했다. 그러나 그들이 끝까지 뒤따라왔다.
“인터뷰는 나중에 해드리겠소.”
“지금 인터뷰 좀 해주세요! 부탁합니다! 저희 여기까지 오느라 진짜 힘들었어요. 제발 한마디라도 좋으니 인터뷰 좀 해주세요!”
어찌나 간곡하게 매달리는지, 우주는 끝내 여기자의 성화에 못 이겨 어쩔 수 없이 멈춰 섰다.
그런데 그 순간.
펑! 지지직.
어디선가 날아온 총알을 맞고 카메라가 고장이 났다.
“아……!”
“헐…….”
여기자와 카메라맨이 망연자실한 표정을 지었다. 온몸에 힘이 쭉 빠진 것 같았다.
그들 앞에서 우주가 주변을 빙 둘러봤다.
‘누구지? 이렇다 할 살기는 없고 날 도와준 것인가?’
그런 생각은 잠시, 총을 어깨에 둘러멘 우주는 담담하게 말했다.
“소생과 같이 방공호로 갑시다.”
한편, 그 상황을 소라가 상황실에서 지켜보고 있었다. 그녀는 인상을 팍 찡그렸다. 속으로는 짜증이 왈칵 솟구쳤다.
별것도 아닌 것들이 갑자기 나타나더니 우주의 일을 방해하더니, 이젠 그 뒤치다꺼리까지 해줘야 했다. 마음에 들지 않는 게 당연했다. 가슴이 답답해서 소라는 씩씩 댔다. 한 대씩 때려주고 싶을 정도로 화가 났다.
그러나 만약 민간인을 향해 어떤 불만스러운 제스처라도 취하면 기업은 그 시간부로 끝이다. 소라는 애가 타면서도 그저 가만히 바라볼 수밖에 없었다.
우주가 두 사람을 방공호에 데려다 주고 나자 작전 지휘소에서 무전이 왔다.
제네틱스가 마침내 1위로 올라섰으며 드롭존에 남은 돌연변이 생물이 이제 단 세 마리라는 소식이었다. 게다가 그 세 마리마저 현재 제네틱스가 모두 잡고 있는 중이라고 했다.
오늘 임무는 끝난 것이나 다름없었다.
돌연변이 생물로 가득했던 도시는 이제 유령이 나올 것처럼 휑하기만 했다.
우주는 지휘 구역으로 향하기 전, 슈퍼바이크에 올라탄 채로 GPS에 떠오른 순위표를 묵묵히 바라봤다.
1위 제네틱스 : 153 / 신우주: 69, (나머지 이름 생략)2위 신라그룹 : 145 / 우연진 : 73, (중략) 김수희 : 35최종적으로 우리 회사가 이겼다니 기분이야 좋긴 했지만, 개인적으로 연진에게 뒤처진 것이 조금은 아쉬웠다.
“경험의 차이인가.”
그래도 새로운 경험을 하고 최선을 다했다는 것으로 만족했다.
그의 심장이 단단해진 것은 이미 오래전. 겨우 이런 것에 시무룩한 표정 따위를 짓는 사나이가 아니었다.
“다음에 잘하자구, 신우주.”
스스로 위로하며 슈퍼바이크의 시동을 걸었다.
그때 무전기를 통해서 소라의 다급한 목소리가 울려왔다.
―우주 씨! 인천 남항 E1컨테이너터미널입니다! 서둘러 달려가세요!
우주가 고개를 갸웃했다.
“거기에 뭐라도 있소?”
―호랑이급입니다! 포인트 20점짜리 대형 옥토퍼스가 나타났습니다!
그녀가 한 말 중에서 포인트 20점이란 말이 가장 귀에 착 달라붙었다.
그 순간 우주는 단숨에 순위를 뒤엎을 수 있다는 생각에 눈이 크게 떠졌다.
그는 말했다.
“소라 씨.”
―네?
“내가 무슨 일이 있더라도 꼭 선점하겠소! 아까의 그 약속, 잊지 마시오!”
―물론이죠. 당연한거 아니에요?
“좋소! 그럼 바로 출발하리다!”
그로부터 5km 떨어진 도심의 거리.
연진은 제로머신에 올라탄 채 소민의 긴급 무전을 받던 중이었다.
―모든 팀원들을 황급히 그쪽으로 보내는 중입니다. 마지막 기회를 놓치지 마세요. 어떠한 일이 있더라도 우리가 먼저 선점권을 꼭 획득해야 합니다.
“후우~ 알았수다.”
연진의 얼굴에 피로가 가득했다.
최근 혜성처럼 등장한 애송이 하나 때문에 오늘 하루 묵묵히, 혼신의 힘을 다하여 간만에 불태웠다. 고작 하루의 반이지만 그에게는 길고 긴 시간.
그런데 아직 또 할일이 남아있다니, 내심 짜증이 났다. 슬슬 집에 가서 맥주 한 캔 들이켜며 애인 끌어안고 영화나 보고 싶었는데!
“이래서 챔피언은 힘들어.”
그는 갑자기 무전기에 대고 버럭 화를 내질렀다.
“아~ 빌어먹을~ 옥토퍼스는 왜 또 나타나고 지랄이래~ 지랄이~”
그 성격을 누구보다 잘 아는 소민이 무전기 너머에서 길게 한숨을 내쉬더니 점잖게 타일렀다.
“연봉 50억 플러스. 됐죠?”
순간 연진의 눈빛이 벼락을 맞은 것처럼 번쩍거렸다. 연봉에 눈이 멀어 탐욕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만약 손안에 계산기가 있었다면 그것을 바로 두드리면서 더하기 뺄셈에 골몰했을 터였다.
“내가 이래서 신라그룹을 못 떠난다니까.”
우연진이 히죽 웃었다. 피로가 한 번에 싹 가시는 기분이었다. 돈 앞에 그를 막을 자는 없었다.
부릉, 부릉, 부르으으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