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레지스트 쉴드-64화 (64/285)

64화

우주는 도로를 질주하고 있었다. 그러나 지금의 인천은 낯선 이가 그리 쉽게 달릴 수 있을 만큼 만만한 도로가 아니었다.

평소 달리던 익숙한 길도 아니거니와, 도심 여기저기 널린 텅 빈 차와 지그재그로 바닥에 깔린 돌연변이 생물의 사체가 길을 막았다.

하지만 처음에 60% 이상 감속해야 했던 커브도, 감각이 익숙해지자 30%만 줄여도 충분했다.

귀찮았던 S자 형식의 커브 길을 벗어나자 아무것도 없는 텅 빈 직선 도로가 모습을 드러냈다.

우주는 더는 망설이지 않고 액셀을 있는 힘껏 잡아당겼다.

슈퍼바이크가 굉음을 내며 앞으로 튕겨져 나갔다. 시속 150km를 넘어 시원한 도로를 온몸으로 느껴가며 질주했다.

교차로에서 오른쪽으로 꺾어 돌아가자, 바이크 한 대가 앞서 달리고 있는 것이 보였다.

점점 거리가 좁혀졌다.

그 바이크는 바로 연진이 타고 있는 제로머신이었다.

‘또 너인가.’

그의 등장은 묘하게 우주의 승부욕을 자극했다. 오전에 있었던 1차전에 이어서 지금부터 2차전 돌입이었다.

“할로~!”

나란히 달리자, 연진이 옆을 돌아보며 신이 난 듯 방긋거렸다. 제로머신의 속도가 살짝 떨어졌다.

우주는 그 틈을 놓치지 않고 액셀을 잡아당겼다.

부아앙.

달아나려는 그를 보며 연진이 히죽대더니 이를 악물었다.

“인사도 안 하고 이러기야야야~!”

부아아앙.

제로머신도 속력을 내기 시작했다. 어느 쪽이 앞선다고 딱 잘라 말하기 어려운 팽팽한 접전이 한동안 이어졌다.

하지만 그 뒤에 이어진 도로는 다행히도 쓰레기처럼 여기저기 널브러진 사물로 인해 S자형 커브 길이나 마찬가지였다.

이것은 슈퍼바이크에 유리.

슈퍼바이크의 엔진이 우렁찬 포효를 내지르며 멀어져갔다.

“굉장하군.”

연진은 혀를 내둘렀다. 탄성이 저절로 나오는 주행이었다.

우주가 자신을 앞지른 것은 비단 혼잡한 도로 상황에서 슈퍼바이크의 성능이 뛰어나서가 아니다. 가속도의 법칙과 원심력을 이해한 운전자의 탁월한 센스가 어우러져서 만들어낸 테크닉 때문이었다.

우주가 보통이 아니라는 것은 알고 있었지만 바이크 마저 잘 탈 줄이야.

그처럼 커브 길에서 능숙하게 달리기란 어렵다. 노면이 울퉁불퉁하고 연달은 커브가 많은 도로는 정확한 감속과 재빠른 가속을 요구한다.

제아무리 수라라고 해도 바이크는 임무상 필수로 타는 것뿐이지 어느 대회에 나가서 상 받으려고 타는 게 아니다. 그러니 재주는 없다.

그런데 우주는 마치 바이크 선수처럼 타고 있었다.

“빌어먹을.”

연진은 초조한 마음으로 무리를 했다. 커브 길에서 과도하게 속력을 내기 시작하면서 안정적이던 차체가 흔들렸다.

얼마나 속도를 높였는지, 그가 지나간 도로 위에는 당장에라도 불길이 치솟을 것만 같았다.

“이겼다!”

확실히 앞섰다는 기분이 들자 우주는 속으로 기쁨을 감추지 못하였다.

무전기를 통해 소라를 비롯해 제네틱스 모든 직원과 팀원들이 환호하는 소리가 들리자 귀가 멍멍해질 정도였다.

이제 5분 정도면 옥토퍼스가 있는 E1컨테이너터미널에 당도한다. 자신에게 4점 앞서 있는 연진을 이길 수 있는 마지막 기회.

누구보다 먼저 달려가서 기필코 선점하리라!

해안가에 세워진 고층 건물 속, 굽이치는 도로에서 유연하게 감속을 한 후 다시 맹렬하게 속도를 내기 위해서 액셀을 당기려는 순간이었다.

콰과콰앙!

주변 건물이 연쇄적으로 거대한 폭발을 일으키며 차례대로 무너졌다. 바로 그 앞을 달리던 우주 역시 폭발을 비켜가지 못하고 격랑에 휘말렸다.

제네틱스 종합 대책 상황실.

갑작스러운 상황에 모든 직원들이 크게 당황했다. 직원들은 각자의 책상에 앉아 사태를 파악하려고 분주하게 움직이기 시작했다.

“5번 올빼미와 교신 두절!”

“슈트의 카메라도 작동 정지됐습니다!”

“생사 불명!”

소라는 도무지 믿기지 않는다는 표정으로 스크린을 보며 넋을 잃고 서있었다.

그러다 이내 정신을 차리고 머리를 굴리기 시작했다.

우주가 죽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크게 동요되었지만, 침착한 마음을 유지하려 애를 썼다. 진상을 파악하고 우주를 구조해 내기 위해 직원들에게 서둘러 지시를 내렸다.

소라는 대단히 화가 난 표정으로 이를 뿌득 갈았다.

“신라그룹 이 새끼들이……!”

인천 폭발 현장.

빠른 속도로 달려온 연진의 제로머신이 그대로 현장을 지나쳤다. 그러면서 뒤를 힐끔 쳐다보던 그의 눈빛은 상당히 기분이 상한 눈치였다.

“왜 이런 짓을.”

연진은 쌀쌀맞은 표정으로 신라그룹 상황실에 무전을 했다.

“당신이 한 거야?”

소민에게 따지듯이 물었다.

그는 아무리 지고 있었어도 정정당당한 승부를 치르고 싶었다. 제3자가 껴드는 건 연진의 자존심에 금이 가는 일이었다.

―설마요. 이런 일이 생길지 어찌 알고 저런 일을 했겠습니까.

“진짜야?”

―정말입니다.

“맹세코?”

―맹세코.

“만약 거짓말이면 이 순간 엄마빠 목 잘려서 죽어?”

무전기 너머에서 소민이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연진 씨, 그런 건 정말 유치하니까 이제 그만하세요. 맹세코 우리 쪽에서 한 짓이 아니니까 염려 말고 서둘러 옥토퍼스나 선점하세요.

“흠, 우리가 안 했다니 그나마 다행이군. 운이지 뭐.”

부아아앙.

연진은 그대로 옥토퍼스를 향해 달렸다.

사방에서 불길이 치솟았다. 슈퍼바이크는 온데간데없었다. 우주의 눈에는 파괴된 건물의 잔해만 보였다.

우주는 온몸을 찌르는 통증에 신음을 내지르며 몸을 서서히 일으켰다.

“으윽……!”

오른 팔뚝에서 피가 흘러내렸다. 왼손으로 오른 팔뚝을 감쌌다.

절뚝거리며 주변을 둘러보았다.

커다란 폭발에 휘말리면서 죽음을 눈앞에 두었던 자신이 어떻게 구원을 받아 살아남았는지, 정말 운이 좋았다.

“슈퍼바이크는 어딨지. 빨리 가야 해…….”

오로지 이기고 싶다는 생각이 간절했다.

무언가에 의해 방해를 받은 건 분명한데 이 순간 시시비비를 따질 겨를이 없었다. 오직 옥토퍼스를 향해 달려가서 자신과 자신이 속한 제네틱스가 이기길 바랐다.

하지만 그때였다.

뜨거운 불길 속을 헤치며 누군가 여유롭게 걸어왔다. 그 그림자는 오른손에 일본도를 쥐고 있었다.

점점 가까워지면서 그 얼굴이 뚜렷하게 보였다.

혐오스러울 정도로 만족스러운 미소를 짓고 있는 그가 나지막이 말했다.

“(대일본 제국 만세.)”

그 말과 동시에 서슴없이 칼이 휘둘렀다.

우주는 재빨리 피했다. 말끔한 정장을 차려입은 그는 칼을 계속 휘두르고 파고들면서 우주를 향해 소리쳤다.

“(이시다 신타로다! 저승에 가서도 기억해라, 신진루이!)”

‘신진루이?!’

우주의 눈썹이 꿈틀거렸다. 잘못 들었는가 싶었다. 그간 잊고 지냈던 단어를 정말로 오랜만에 들었다.

“(네놈은 누구지?)”

“(이시다 신타로라고 했다!)”

“(왜 내게 칼을 휘두르는 것이냐고 묻는 거다!)”

“(저승에 가서 물어봐라!)”

사내는 일말의 거리낌도 없이 칼을 휘둘렀다. 우주에게 명백한 살의를 드러내고 있었다.

우주는 허리춤에 매달린 칼집에서 칼을 뽑아 들었다.

여러 차례 불꽃이 튀겼다.

상대가 칼 쓰는 실력은 제법 능숙하고 상당히 훌륭했지만 신우주에게 견줄 바는 못 되었다.

어느 순간 우주는 여유롭게 신타로의 칼을 막아내더니, 재빠르게 산탄총을 꺼내 들어 그의 머리통에 순식간에 가져다 댔다.

“(왜 날 죽이려 하느냐!)”

어이없을 정도로 무력하게 당해버린 신타로가 허탈한 웃음을 지어 보였다. 그는 당혹감을 내색하지 않고 똑바로 우주의 눈을 마주봤다.

“(료코.)”

“(뭐라고?)”

그 한마디에 우주의 눈동자가 흔들렸다. 그 틈을 놓치지 않고 신타로는 한쪽 발을 들어 우주의 가슴을 걷어찼다.

우주가 뒤로 몇 발자국 밀려나면서 순간 주춤거렸다.

“(료코 님께서는 일본으로 떠나셨다!)”

신타로가 그런 말을 내지르더니 이어서 두 손으로 칼을 쥐고 우주를 향해 내려쳤다.

하지만 우주는 허리를 가볍게 비튼 것만으로 그의 칼을 피했다. 료코를 들먹임으로써 상황을 유리하게 이끌려던 신타로의 계획이 무산되는 순간이었다.

100년 전, 수많은 전쟁터를 겪어오며 갖은 고초를 다 경험한 사람과 순탄하게 평온한 시대를 걸어온 사람과의 실력 차는 너무나 컸다.

재차 신타로의 머리에 총구가 겨누어졌다. 그가 들고 있던 칼은 우주가 발로 차서 저 멀리 떨궈버렸다.

우주는 코앞까지 얼굴을 들이밀고 신타로에게 엄중한 눈빛으로 물었다.

“(료코가 일본으로 떠났다니, 무슨 말이지?)”

“(글쎄?)”

신타로가 히죽거리며 비아냥대는 표정을 지었다.

우주는 그의 머리에 총구를 더욱 강하게 짓누르며 눈을 부릅뜨고 고성을 내질렀다.

“(어서 말해!)”

“(날 죽이면 말해 주지.)”

킥킥.

신타로는 이마에 식은땀을 흘리고 목구멍으로 침을 꼴깍 삼키면서도 우주를 향해 조소를 날렸다. 그러면서 계속 읊어댔다.

“(대일본 제국 만세, 대일본 제국 만세, 대일본 제국 만세, 대일본 제국 만세……!)”

따귀를 한 대 때리고 싶을 정도로 짜증스러운 놈이었다. 웃음을 지으며 증오스러운 단어를 내뱉는 것이, 완전히 미친놈이었다.

우주는 이놈을 어찌해야 되나 순간 고심했다. 하지만 답은 이미 나와있었다.

“(100여 년 전 구시대 사고방식을 가진 나도 새로운 세상을 받아들이고 적응하려 애쓰는 중이다. 한데 너희는 아직도 허망한 꿈을 꾸는 중인 게냐? 정신 차려라. 한때 빗나간 야욕을 불태웠던 일본은 끝난 지 이미 오래다. 계속 그런 식으로 지내다가는 조만간 이 세상에서 고립되고 말 것이다.)”

우주는 총구를 거둬들이고 순순히 물러났다. 그대로 떠날 것처럼 신타로에게서 등을 돌렸다. 그 행동을 이해할 수 없다는 표정을 짓더니 신타로가 물었다.

“(왜 안 쏘지?)”

“(지금은 그때처럼 생명을 경시하는 세상이 아니다.)”

신타로가 우주를 비웃었다.

“(100여 년 전 우리 일본인에게 악귀라 불렸다던 그 신우주는 대체 어디 간 거지? 세상의 눈치를 살필 정도로 간이 콩알만 해졌나?)”

우주는 대꾸를 하지 않았다.

그가 말이 없자 신타로는 미간을 좁혔다.

“(숨통이 끊어질 때까지 계속 찾아갈 것이다.)”

“(언제든지 찾아오너라.)”

우주는 그리 대답하고 나서 마지막으로 뒤돌아봤다.

“(료코는 정말로 떠났나?)”

신타로는 애써 미소를 잃지 않은 채 가만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 뒤 찾아온 한순간의 정적.

우주는 잠자코 그를 노려봤다.

매섭게 노려보는 그 눈빛이 과연 어떠한 생각을 담고 있는지 신타로는 알기조차 힘들었다. 또한 똑바로 마주볼 수조차 없을 정도로 너무나 뜨거웠다.

등에 식은땀을 흘리면서 간신히 버텨낼 뿐이었다.

“(그녀는 떠나지 않았을 것이다.)”

이런 말을 남긴 채 우주는 발길을 돌렸다.

이제 가봐야 옥토퍼스는 신라그룹의 차지일 터. 우주는 드롭존 따위 집어치우고 서둘러 집으로 달려갈 생각이었다.

부디 료코가 자신을 떠나지 않았기를 바라면서.

우주가 떠나고 난 뒤, 신타로는 회의감이 파도처럼 밀려왔다.

“(난 일본에서 제일 강한 남자라고, 일본에서 제일 강한 남자…….)”

그런데 너무나 손쉽게 제압당해 버렸다. 씻을 수없는 굴욕이었다. 가슴이 불타오르며 다시금 우주를 찾아가 복수를 하고 싶었다.

그렇게 결심하며 몸을 일으켜 세우는 찰나, 문득 누군가 불길을 뚫고 그에게 다가왔다.

“우리가 왜 너희를 쪽바리라고 부르는 줄 알아?”

신타로는 목소리가 들려오는 방향으로 시선을 돌렸다.

뚜벅뚜벅.

가까이 다가오는 그 여성은 신타로가 알아들을 수 없는 한국어로 계속 말을 이었다.

“니들이 게다를 신고 다닐 때 그 모습이 마치 돼지 족발을 닮았다고 해서 쪽바리라고 부르는 거야, 이 쪽바리 새끼야.”

오렌지색으로 염색된 긴 머리.

주황색 슈트.

손에는 저격총을 들고 있었다.

그녀는 주저 없이 신타로의 머리를 향해 기다란 총구를 겨누었다.

퓩! 퓨뷱!

고속으로 날아간 총알이 신타로의 머리를 관통했다.

그는 비명 한번 지르지도 못하고 제자리에 털썩 쓰러졌다.

바닥은 곧바로 검붉은 피로 물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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