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레지스트 쉴드-66화 (66/285)

66화

<4권>

우주의 집 안방.

우주와 료코는 전에 없이 침대 위에서 불꽃처럼 타올랐다.

료코는 자신의 몸안에서 피어오르는 열기를 느꼈다.

침대에 누워있는 그녀의 양다리는 완전히 벌어져 있었고, 우주가 그 사이로 올라가 단단하게 발기된 자신의 고추로 활짝 열린 꽃잎을 사정없이 찍어댔다. 그야말로 그는 신나게 절구통에 떡방아를 쪘다.

“됐나?”

소라는 우주의 집문 앞에서 손거울을 들여다봤다. 화장을 손보고 머리 모양도 확인했다. 옷매무새도 단정하게 바로 잡았다.

기침을 하며 목소리를 가다듬고 초인종을 눌렀다. 아니, 누르려고 했다.

살짝 열려있는 문.

“왜 열려있는 거지?”

그녀는 잠시 머뭇거리며 곰곰이 생각해봤다.

일이 끝나자마자 집으로 서둘러 달려온 신우주. 문단속도 못할 정도로 무슨 피치 못할 사정이 있는 것일까?

휴대폰조차 꺼놓을 정도로 수상했던 그의 행동이 그녀에게 호기심을 부추겼다.

안의 상황을 조용히 살펴볼 겸 살며시 문을 열었다.

딸깍.

현관에 환한 불이켜졌다. 소라는 아래로 시선을 향했다.

두 개의 슬리퍼와 두 개의 신발. 하나는 여자가 신을 법했고 다른 하나는 남자가 신을 만큼 컸다.

큰 신발을 집었다. 바닥에 묻은 흙. 아직 남아있는 깔창의 온기.

우주는 분명 집안에 있다는 확신이 들었다. 그녀는 조용히 신발을 내려놓고 자신의 구두를 벗었다. 민무늬 스타킹을 신은 발로 한발짝 한발짝씩.

사뿐히 거실로 들어섰다.

불이 절로 환하게 켜졌다.

정적에 휩싸인 넓은 거실.

‘왜 이리 조용한 거지?’

소라는 미간을 좁혔다.

조용한 것이 그 어떠한 소음보다도 신경에 거슬렸다.

평소 우주의 밝고 활달한 모습답지 않게 집안 분위기는 너무 을씨년스러웠다.

그런데 쭉 둘러보면, 제법 잘 꾸며놓고 사는 것 같았다. 여기저기 놓여있는 아담한 꽃병과 화이트풍의 거실. 엔틱한 가구가 한대 어우러져 러블리한 분위기를 자아냈다.

“흥, 꼴에.”

소라는 료코를 떠올리며 작게 코웃음 쳤다.

그 순간.

“하아앙...!”

뒤쪽 방에서, 어렴풋이 여성의 신음 소리가 파도처럼 밀려 들어왔다.

소라는 몸이 굳었다. 혹시 잘못들었나 싶어서 소리에 귀를 기울였다.

“하으응...!”

순간 심장이 떨렸다.

잘못들은게 아니었다.

분명히 여성의 신음 소리였다.

그렇다면 우주와 료코가 이 집에서 그짓을 한다고 밖에 생각이 들지않았다.

‘고작 이 따위 짓거리를 하기 위해서 인천에서의 인터뷰도 고사하고 한달음에 달려온거야?’

그와 정식으로 사귄 것도 아니었지만 까닭없이 속상하고 비참했다.

한순간 온몸에서 기운이 쭉 빠져나가는 기분이 들었다.

낙담했다.

‘그동안 예쁘다고 했던 말이며 아군이 되어주겠다는 말은 다 거짓이었어?’

“이 신우주가 영원히 당신 편이 되어주겠소이다. 무엇도 바라지 않는 믿음직한 아군으로 남아주겠소.”

“내가 힘들때도?”

“항상 곁에 있어주겠소.”

“내가 세상에 비난받아도?”

“함께 돌을 맞겠소.”

“내가 모든 것을 잃었을땐?”

“내 모든 것을 주겠소.”

“아무것도 요구하지 않아요?”

“그래야 진정한 친구요.”

밀려오는 배신감.

소라는 자신의 순수했던 마음이 기만당했다는 생각이 들자 치를 떨었다.

료코와 산다고 고집부렸을때도 설마설마하면서도 그를 믿었었다.

그랬는데 그 완고하고 강직한 우주가 원수지간인 료코를 상대로 계집질을 할줄은 꿈에도 몰랐다. 남자는 역시 똑같다.

하지만 그걸 알면서도 소라는 아등바등. 아직 이 현실을 받아들이고 싶지 않았다. 자신도 모르게 눈물 한방울이 뺨을 타고 흘러내렸고 그녀는 닫힌 방문 쪽으로 살금살금 쥐 죽은 듯이 다가갔다.

문에 귀를 바짝 갖다댔다.

손이 부들부들 떨리며 침을 꼴깍 삼켰다.

그때였다.

문이 찰칵 하고 열리면서 옷차림이 멀쩡한 우주가 나왔다.

그는 거실에 있던 소라를 보고 살짝 놀라는 한편 의외로 담담한 목소리로 물었다.

“언제 왔소?”

“지, 지금.”

소라는 무슨 생선을 훔치다 걸린 고양이처럼 가슴이 철렁거리며 마음이 혼비백산 달아나기에 바빴다. 당황스러워하는 눈빛으로 제자리에서 몸이 굳어버렸다.

반면 우주는 영문을 모르겠다는 표정을 짓더니 금세 그녀의 얼굴에 손등을 갖다댔다. 뺨에 흐르는 눈물을 닦아주었다.

“눈에 먼지라도 들어간게요?”

“예...?”

그의 체온이 담긴 손길이 뺨에 닿으면서 소라는 정신이 퍼득 들었다.

“아, 아. 그래요. 들어갔어요.”

그녀는 급하게 떨어지며 소매로 눈물을 훔쳐냈다.

우주는 혹시나 그녀가 봤을까 싶어서 뻘쭘한 기분에 머리를 긁적였다. 료코와의 관계를 부정한다기 보다는 타인에게 은밀한 정사 장면을 들킨 것이 내심 부끄러웠다.

머릿속에서 겨우 할말을 찾았다.

“크음! 임무가 끝나고 난뒤 말도 안하고 집에와서 미안했소. 우웃!”

소라는 듣지도 않고 두 손으로 그를 밀쳐냈다.

재빨리 방문을 활짝 열어재끼며 안으로 뛰어들어갔다.

“다 알고 있어! 두 사람 여기서 무슨짓한거야!”

그런데 어라?

소리를 버럭 지른 소라는 방안에 있던 료코의 모습을 보며 순간 무안해졌다.

료코는 기모노를 말끔하게 차려 입고 방안을 청소중이었다.

무릎 꿇은 자세로 작은 빗자루를 든 채 방안을 쓸던 료코가 쌀쌀맞은 표정으로 그녀를 돌아봤다.

“(남의 집에서 예의없이 소리를 지르다니, 무례하군요.)”

그 후 우주는 거실에서 소라를 달래주었다.

애써 에둘러대며 그녀의 마음을 진정시켜준 뒤 화제를 돌릴겸 오늘 만났던 일본인에 관한 이야기를 꺼내어 놓았다.

“혹시 짐작가는 바 있소?”

“글쎄요. 회사 차원에서 조사를 진행해봐야 알듯 싶습니다.”

두 사람이 진지한 얼굴로 서로 대화를 주고받는 동안 료코는 차와 과자를 내준 다음 주방으로 와서 저녁 준비를 했다.

그러다 어느새 다가온 것인지 소라가 팔짱을 낀 채 여왕이 신하를 내려다 보는 눈빛으로 그녀를 쳐다보고 있었다.

조금 전 울음을 떠뜨렸던 모습은 봄 눈 녹아내리듯 사라진 상태였다.

“(료코 씨는 제가 싫죠?)”

료코는 냉담한 눈으로 대답했다.

“(네.)”

“(솔직해서 좋네요. 저도 료코 씨가 싫어요.)”

이어 소라는 싱크대 위에 올려진 식재료를 둘러보았다.

“(우주 씨에게 맨날 일본 음식만 먹이는거 아니예요?)”

“......”

틀린 말은 아니기에 료코는 잠자코 그녀를 노려보기만 했다.

소라는 그치지 않고 더욱 거들먹거리는 표정을 지어보였다.

“(한국 남자는 한국 음식을 먹어야 밖에 나가서 힘을 제대로 쓸텐데, 어쩐지 매일 우주 씨 볼때마다 비실비실대는 것 같더라니 다 이유가 있었나 보네요.)”

“(오늘 기무치와 수육 해드릴겁니다.)”

료코가 어색한 한국말로 차갑게 대꾸하자 소라가 피식 웃었다.

“(과연 맛이 어떨지 궁금하네요. 물론 제것도 있겠죠?)”

료코는 주기 싫었지만 주인님의 직장 상사라 참았다. 냉담한 눈으로 가만히 고개만 끄덕거렸다.

“(제대로 맛보고 평가해드리죠.)”

소라는 한껏 어깨를 펴고 으스대며 뒤돌아섰다. 교양있는 여인처럼 풍만한 엉덩이를 실룩거리며 그대로 거실에 있는 우주를 향해 걸어갔다.

같은 시각 아파트 주차장.

창성은 슈퍼에서 사온 빵과 음료수를 차안에서 먹고 있었다.

손목에 찬 시계를 들여다 보니 벌써 10시다.

“늦으시네.”

하품을 했다.

무료한 기분에 카오디오를 켰다.

러브걸스 노래가 나왔다.

리듬을 타고 머리를 흔들며 빵을 먹었다.

다시 우주의 집.

셋이서 함께하는 저녁 식사시간.

둥그런 식탁.

우주 옆에 찰싹 달라붙어 앉은 료코가 젖가락으로 수육을 집고 김치를 싸서 그에게 건넸다.

“(주인님 아~앙.)”

평소 밥상 앞에서 까다롭게 예절을 지키던 그녀가 난데없이 애교를 보이니 그는 내심 놀랐다.

“료, 료코...?”

“아, 앙!”

료코가 살짝 미간을 좁히며 재촉했다.

우주는 영문을 모른 채 입을 벌렸다.

그대로 젓가락이 입안으로 쏙.

“(맛있다.)”

그때 소라가 료코를 흘끗 보면서 속으로 짜증을 냈다.

‘저 계집애가 일부러 보란 듯이...!’

이번엔 그녀 차례였다.

작정하고 정성껏 쌈을 쌌다.

“자 우주 씨 아~앙.”

“소, 소라 씨도...?”

“아~앙!”

워낙 기세가 무서워 우주는 잔말않고 덥썩 받아 먹었다.

그가 우적우적 잘씹어먹는 모습을 보며 소라가 방긋 웃으며 좋아했다.

“맛있어요?”

“마, 맛있다오.”

우주는 입안에 가득 담긴 음식때문에 볼이 볼록 튀어 나왔다.

그러면서도 일부러 웃어 보이며 우적우적 씹어먹었다.

그 표정을 본 료코는 속이 탔다.

질 수 없었다.

소라보다 더욱 많은 양을 정성껏 싸서 우주에게 다시 내밀었다.

“(주인님 아앙.)”

“또...?”

아직 미처 씹지도 못했는데 또 먹으란다.

“(난 알아서 먹을테니 료코도 얼른 먹...)”

우주는 난처한 표정으로 말을 잇다가 갑자기 입을 꾹 다물었다. 료코가 정색하고 그를 노려보았기 때문이다.

“(제가 싼건 맛없어 보이십니까?)”

“(아, 아니. 그게 아니라...)”

“(자, 우주 씨 또 아앙~)”

점입가경이었다.

소라가 또 나서서 그에게 음식을 건넸다.

당황한 우주가 말을 더듬었다.

“왜, 왜들 그러시오.”

두 여자가 나란히 우주를 향해 쌈을 내밀고 있었다.

료코와 소라는 웃으면서도 웃지 않는 표정. 어찌나 그 기세가 무섭던지 둘중 하나, 누구것을 받아 먹든 간에 한쪽한테 맞아 죽을 것만 같았다.

우주는 어찌해야할바를 몰라 머뭇거렸다.

그러자 료코가 섬뜩하게 웃으며 물었다.

“(주인님. 이 여자가 싸준건 맛없어 보이시지요? 소녀는 소녀가 싸준게 더 맛있어 보인다고 사료되옵니다만.)”

우주의 등골이 오싹할 정도로 협박하는 것을 보니 이미 평소의 료코가 아니었다. 호러 영화에서나 나올 법한 료코였다.

“우주 씨. 저랑 단둘이 밥먹으러 다닐땐 줄때마다 잘도 받아먹더니 지금은 다른 여자가 있어서 싫은가요? 그때 절 지켜준다던 제 아군은 대체 어디로 간거죠?”

소라도 마찬가지였다. 섬짓할 정도로 눈에 독기를 품었다. 그녀가 싸준 쌈을 안먹는다면 이 자리에서 당장 살인이 날 판국이었다.

“두, 두 사람 다 지, 진정들 하시오.”

우주의 등에서 식은 땀이 흘렀다. 양손바닥을 아래로 내리며 두 사람에게 진정해달라는 시늉을 해보였다.

“차라리 두 사람 걸 한번에 먹어줄...”

말을 미처 끝마치기도 전에 두 여자가 동시에 소리쳤다.

“시끄러워요!”

우주가 두 여자에게 쩔쩔매던 그 시각 아파트 주차장.

위이잉~!

찰싹!

창성이 눈을 번쩍 떴다.

모기가 뺨을 물었다.

간지러웠다.

살살 긁으며 주변을 둘러보니 한적하다.

아무도 없는 주차장은 너무나 어둡고 고요했다.

가볍게 두 팔을 올려 기지개를 쭉 피면서 하품을 하면서 손목에 찬 시계를 봤다.

“11시 40분인가...”

창성은 운전석 시트를 뒤로 눕힌 다음 팔짱을 낀 채 선잠을 청했다.

“오늘 퇴근 하긴 글렀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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