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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지스트 쉴드-67화 (67/285)

67화

우여곡절 끝에 저녁식사를 끝마쳤다.

고래싸움에 새우 등 터진다는 말처럼 우주는 불꽃 튀는 두 여자 사이에서 숨조차 쉬기 힘이 들었다.

소라가 얼른 돌아가길 바랐지만, 그 기대와 반대로 그녀는 오늘 자고 가겠다고 선언을 했다.

“지, 진짜로 자고 갈 생각이오?”

“왜요? 싫어요?”

“싫다기 보다도 예정에 없이 자고 간다니까 놀라서 그렇소.”

“친구 집인데 아무 때나 재워줄 수도 없나요? 그리고 전 제가 한다고 말했으면 꼭 해야됩니다. 더는 토달지 마세요.”

소라가 딱 잘라말했다. 그녀는 오늘밤 우주와 료코의 생활상을 계속 관찰할 생각이었다.

그녀는 이어 샤워를 하고 싶다고 했다. 우주가 목욕타월과 갈아입을 옷등을 챙겨주는 동안 료코는 주방에서 눈썹을 곤두 세우고 설거지를 했다. 그녀는 싫은 기색을 팍팍 드러냈다.

달그락! 달그락!

접시를 내던지듯 던져 놓는 것이 자칫하면 깨질 정도였다.

좌우간 우주는 거실에 있던 소라에게 핑크색 츄리링 상하의를 내밀었다.

“료코가 입는 옷인데 사이즈가 맞을진 모르겠소만.”

소라가 내밀어진 옷을 훑어보며 말했다.

“이것말고 다른건요?”

“이것 말고는... 흠. 잠시 기다려보시오. 내 다른것도 찾아보리다.”

우주가 돌아서며 다시 옷방으로 들어가려고 했다.

“그게 아니라 료코 씨 옷 말고는 없냐구요.”

소라의 말에 우주가 고개만 돌리며 다시 말했다.

“여자 옷이라면 료코것 뿐이외다.”

“그렇담, 우주 씨가 입는 옷을 주면 되겠네요. 이왕이면 하얀 와이셔츠가 좋아요.”

“소생의 옷을 말이오?”

“예.”

“아니되옵니다!”

주방에서 두 사람의 대화를 계속 귀기울이던 료코가 고무장갑을 낀 채 거실로 뛰어나왔다.

우주 앞에서 무릎을 꿇고 간곡하게 말했다.

“옛부터 계집이 사내 옷을 입었다가는 부정이 탄다는 속설이 있사옵니다. 하물며 한집에 사는 부인도 그러지 못하옵니다. 서방의 운세가 재수없어질까 두려웁기 때문이옵니다. 그런데 감히 외간 여자 따위가 하늘같은 주인님의 의복을 입겠다니, 소녀. 이대로 두고볼 수가 없사옵니다!”

소라는 재수없어진다는 말에 료코를 고깝게 내려다보며 코웃음 쳤다.

“바보 아냐? 요즘이 어느 시댄줄 알고 참나.”

료코는 소라를 향해 눈을 치켜떴다.

“시끄럽다 네 이년!”

“자, 잠깐! 멈추시오!”

속으로 한숨을 쉬며 우주가 나섰다. 그는 료코와 소라가 티격태격하는 이러한 상황이 계속되는 것이 너무나 힘이 들었지만 왠만하면 좋게좋게 갔으면 싶었다. 그래서 내색하지 않고 료코만 따로 데려가서 조용히 타일렀다.

그럼에도 료코가 끝끝내 자기 주장을 굽히지 않자 우주는 어쩔 수 없다는 표정으로 고민을 하더니 이내 옷방으로 가서 흰 와이셔츠와 흰 티를 가져왔다.

와이셔츠는 소라에게 건네주고 티는 료코에게 주었다.

“료코도 입어줘. 주인의 명령이야.”

그랬더니. 그녀도 처음부터 내심 이걸 바랬다는 눈치다. 얼굴에 화색이 돌며 크게 좋아라 했다.

나중에 샤워를 마치고 나온 소라는 팬티에 와이셔츠 한장만 걸치고 있었다. 맨다리에도 매끈하고 예쁜 각선미를 가진 그녀였다.

우주는 자연스레 눈이 돌아갔다. 향긋한 샴푸 냄새가 코끝을 멤돌았다.

소라는 그의 표정을 보고도 모르는척 새침하게 물었다.

“뭘 그렇게 봐요?”

우주가 시선을 안절부절못하며 대답했다.

“여, 여자가 속옷만 입고 다니면 그러니 어여 바지라도 가져다 주겠소.”

“됐어요.”

그녀의 말에 서둘러 옷방으로 들어가려던 우주가 발걸음을 멈추고 돌아봤다.

소라는 당당하게 말했다.

“날도 더운데 거추장스러워요. 여긴 남자라곤 하나뿐이니 우주 씨만 이상한 생각 안하면되잖아요?”

“무, 물론! 절대 안하오! 어흠!”

도둑이 제 발 저리는 것 같다.

소라가 피식 웃었다.

“그리고 영광인줄 아세요. 상사가 부하 직원의 옷까지 입어주고 속옷 차림으로 서비스해주는거 봤어요?”

“모, 못봤소.”

“그리고 이 팬티.”

소라가 엉덩이 아래까지 내려온 헐렁한 와이셔츠를 들어올렸다. 검정색 레이스로 고급스러우면서도 섹시한 검정팬티가 드러났다.

“300만원짜리예요.”

“꽤, 꽤 비싼걸 입고다니는 구려.”

그것을 물끄러미 바라보며 우주의 시선이 떨어지질 못하였다. 그는 여성의 신체 앞에서 자신의 그릇이 한없이 작다는 것을 세심 깨달았다.

“주인님!”

그때 료코가 자기 방에서 나왔다.

우주가 돌아보면, 또다시 그의 눈이 커졌다. 한껏 몸매를 과시하는 소라에 질세라 료코 역시 티 한장과 팬티만 입고 나와있었다. 료코는 자기를 봐달라는 듯이 빙글 돌았다. 소라가 흘끗 쳐다보더니 코웃음 쳤다. 퉁명스럽게 말했다.

“언제까지 주인님이야. 오글거리네.”

“닥치거라!”

두 사람의 팽팽한 신경전이 금세 이어졌다.

소라가 우주를 쳐다봤다.

“그냥 ‘우주 씨’ 하고 이름으로 부르면 되지 왜 자꾸 주인님이라 시키는 거예요?”

“그거야 료코가 우리집에서 신세를 지고 있으니 그런것이외다.”

사실 가정부가 주인님을 주인님이라고 부르는 것이 잘못된 호칭은 아니다. 안주인님, 바깥주인님 등 요즘 시대에도 사용되는 호칭이기 때문이다.

소라는 단순히 료코가 ‘주인님’ 하고 우주를 부르는 것이 싫었다.

이유없이 왠지 싫었다.

“아무리 신세를 지고 있어도 그렇지, 혹시 다른 속셈이 있는건 아니구요?”

“다른 속셈...?”

료코가 끼어들었다.

“소녀는 주인님께 신세를 지는 몸. 하여 저를 돌봐주시고 보살펴 주시는 분께 주인님이란 호칭을 쓰는 것이 당연하옵니다! 저 요망한 것의 말은 듣지 말아주시옵소서!”

우주는 손짓으로 료코에게 진정하라는 제스처를 취한 뒤 소라를 바라봤다.

“다른 속셈이라면 뭐가 있소이까?”

“됐어요. 말을 말죠.”

소라는 료코를 흘깃 보고는 하려던 말을 목구멍 깊숙이 도로 집어 넣었다.

하지만 슬쩍 다시 꺼냈다.

“다른 사람들이 두 사람을 보고 연인 사이로 오해하지 않도록 관계를 확실히 해주세요.”

우주는 실소를 머금었다.

“그건 당연하오. 료코와 내가 정분을 나눈다는 건 결코 있을 수가 없는 일이외다.”

그는 별로 고민도 않고 고개를 끄덕였다.

신우주가 료코와 아기를 가지려는 이유는 그녀를 사랑해서가 아니었다. 오늘 낮에 일본인을 따라가지 않은 료코의 모습에 감동은 했으나 한편으로는 불안감을 완전히 없앨 생각이었다.

다시금 일본인이 찾아올때를 대비해 그에 대한 대비책으로 료코와의 사이에 아이를 두고 싶었고, 애가 있다면 그녀가 흔들리지 않을 것이란 확신이 들었다.

자칫 생명을 경시하는 듯한 우주의 이러한 생각은 조선시대를 떠올리면 한층 더 이해하기 쉬웠다. 본처에 첩까지 두고 자식을 많이 낳아서 가문을 번창시키려 했던 조선시대 양반들의 사고 방식이 우주에게도 남아있는 것이다. 현시대의 아기는 두 남녀 사이 사랑의 결실이지만, 당시에는 농사를 짓기 위한 노동력이 필요해서 애를 많이 낳거나 왕족이나 귀족들이 권력을 세습하기 위해서 애정없이 낳기만한 결과물에 불과했다.

그 시대, 남녀가 단단한 신뢰로 이어지고 그 결실로 아이를 소중하게 여겼다면 아마 남아선호사상이란 말도 없었을거니와 남아/여아 구분없이 잘낳고 잘길렀을 것이다. 여아가 태어나도 두 사람은 행복했을테고 굳이 남아가 태어날때까지 첩이나 씨받이를 들일 이유가 없었을 테니까 말이다.

한마디로 지금의 우주는 아이를 사랑의 결실로 보는게 아니라 10명, 20명, 그 이상 더 많이 낳아도 상관이 없었다. 또 본처를 두고 거기에 여러명의 첩을 둔다는 생각에도 상당히 관대한 편이었다. 결정적으로 그는 돈이 많다. 처와 아이가 몇명있어도 자신이 부양할 수 있는 능력이 되었다.

또 몰락한 양반 가문의 자제로서 한때 영원히 맥이 끊어질뻔한 신씨 가문을 다시 널리 일으켜 세우는것 또한 그가 직면한 과제였다. 그렇기에 여러명의 첩을 둔다는 생각에서 더 나아가, 나중에 여력이 되면 그가 태어난 강원도 마을을 통째로 사들인다음 자신의 부인들과 그 사이에서 낳은 자식들을 데리고 신씨 마을을 조성하며 뿌리를 내리고 살고 싶은 기가 막힌 소망도 있었다.

한편, 료코는 다른 이유에서 우주와 아기를 갖고 싶었다. 우주에게 살갑게 대하는 행동은 그를 좋아해서라기보다는 소라가 안방을 차지할지도 모른다는 경각심과 함께 그의 아이를 낳으면 집에서 쫓겨나지 않을 것이라는 판단에서 우러나온 행동이었다. 그녀에게 이 집은 너무나 살기 좋았고 편했다. 심하게 말해서 우주가 이상한 인간도 아닌데다가 돈도 잘벌어오고 그 덕분에 윤택한 생활을 누리며 바깥에서도 능력을 인정 받은 남자인데 어느 여자가 그를 떠나고 싶을까. 그것은 구시대나 현시대나 모든 여자가 똑같았다.

료코는 원치않게 살인을 해야만했던 그 시절과는 너무도 달리 그녀가 바랐던 평온하고 안락한 생활이 이 집안에 있었다.

일본 전국시대때 남편이 있음에도 힘이 센 사무라이에게 몸을 바쳐야 살아남을 수 있었던 일본 여인들의 사고 방식이 쭉 이어져 지금의 료코를 만들었다. 그녀는 이 시대의 커리어 우먼이 아니다. 일본 메이지 시대 말기 여성이란 존재를 개와 똑같은 존재라 여겼던 시대를 살아왔던 여성이다. 현시대의 여성은 관심과 사랑의 대상이며 여자니까 보호받아야하는 존재라 생각하겠지만 메이지 시대 일본 여성은 그러하지 못하였다. 그 시대 일본 여성은 매매의 수단으로 전락했다. 서양 문물을 받아들이는 급변하는 사회속에서 많이 가지게 된 남자와 가진 것을 잃게 되는 남자가 생겨남으로써 여성은 단지 매매의 수단으로 전락 했고 남편들은 돈으로 부인를 사고 팔았다.

료코는 우주의 본처가 아닌 첩이되도 마냥 좋았다. 이 집안에서 그녀 자신과 그녀가 고생해서 낳은 아이만 지켜내면 그만이었다. 설령 우주가 자신을 쫓아낸다해도 그의 아이를 가진 몸일땐 그에게서 생존에 필요한 재물이나 심지어도 집까지 바랄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니까 혹시 모를 상황에 대비해서, 그리고 자신의 노후까지 안정된 생활을 위해서라도 그의 ‘아기 씨’가 필요했다. 하물며 좋아하지도 않는 사람의 아기를 낳는다는 것에 관해 일절 거부감은 없었다. 그녀가 살아왔던 시대가 원래 좋아하는 남성을 위해서 아기를 낳았다는 여성이 보기 드물었으니까.

첩으로서 주인님의 아기를 임신한 여성이 많았다. 또 그 아기는 본인에게 있어서 집안에서 큰 목소리를 낼 수 있는 일종의 방편이기도 했다.

다음날.

소라는 아침 일찍 떠났다.

우주는 PC 앞에 앉아 검색을 했다.

키워드는 ‘다코오’ 그리고 ‘제네틱스’

-일본 다코오 가문, 제네틱스 지분 추가매수 ‘경영참여’

3년 전 뉴스 기사였다.

우주는 기분이 썩 좋지 않았다.

그가 인터넷을 검색하는 동안 료코는 방바닥에 무릎 꿇고 앉아서 공손히 복숭아를 깎고 있었다.

의자에 앉아 있던 우주가 그녀를 내려다봤다.

“(신타로라는 자를 다코오 가문에서 보냈다 그랬지?)”

“(그렇사옵니다 주인님.)”

료코는 조금 전 우주에게 신타로에게서 들었던 이야기를 전부 말해주었다.

그래서 우주는 다코오 가문을 인터넷으로 검색해보았고 제니틱스가 연관되어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제네틱스가 친일 기업이었군. 게다가 마츠다이라의 후손이 지분을 소유한 한국 기업이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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