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9화
소민의 말투에는 자신감이 흘러 넘쳤다.
“우주 씨가 우리 회사로 들어오면 우리 신라그룹은 전력을 다해 보호할 것을 약속드립니다. 물론 드롭존 1위도 보장하고요.”
우주가 이곳으로 오는 동안 소민이 영입을 제안 할것이라는 것을 예상치 못한것도 아니었다. 그러나 이해 안가는 점이 있었다.
“그쪽에는 이미 나보다 더 뛰어난 우연진이 있소. 그런데 왜?”
소민은 그의 눈동자에 두 눈을 고정시킨 채 의미심장하게 대답했다.
“우리 신라그룹은 전 세계 최초로 거대 사탄을 잡아낼 생각입니다.”
“사탄!”
“그렇습니다. 부디 우연진 씨와 함께 신라그룹을 이끄는 쌍두마차가 되어주십시오.”
“사탄, 사탄이라...”
사탄을 잡겠다는 부푼 기대를 안은 소민과는 달리 우주는 동요되는 기색이 없었다.
“지금 이 상태로도 좋지 않소? 왜 굳이 사탄을 잡으려 하는 거요. 그러다 사람이 죽으면 어찌할 작정이오?”
비록 작은 사탄이었지만 사탄의 위력을 몸소 체감한 그다. 작은게 그 정도인데 하물며 거대한 녀석을 잡겠다니?
이 여자가 제정신인가? 자신은 갑의 위치에 있으니 시키면 그만이고 밑사람만 사지로 몰아넣겠다는 생각인가?
소민은 그의 표정의 변화를 눈치채지 못한듯 여전히 상기된 목소리로 대답했다.
“우주 씨. 최초에는 물론 희생이 따르겠지요. 그리고 이러한 세상의 이치는 비단 우리에게만 국한되지 않습니다. 예를들죠. 역사속에서 사회 혁명이나 독립운동이 일인의 희생자 없이 진행된 것이 있었나요? 우리 나라 독립투사들이 죽음이 두려워 나라 지키기를 망설였던가요?”
“독립운동이라면.”
우주는 ‘독립운동’ 이라는 단어에 그녀가 말하고자하는 것이 무엇인지 언뜻 공감이 갔다.
하지만.
“이 나라 우리 백성을 위해서 벌였던 독립운동과 기업의 이익을 위해 사탄을 잡고자 하는 행위를 같다고 하기에는 분명히 어폐가 있소.”
“꼭 다르지만은 않다고 봅니다.”
“다르지 않다니 무슨 말이오? 그게 어찌 다르지 않단 말이오?”
소민은 여유있게 웃음을 지어보였다.
“향후 50년 후, 2060년 쯤에는 전세계 인구가 포화상태에 이르게 될것이라는 학계의 발표가 있었습니다. 혹시 재생 기술과 인간 복제 기술을 아시나요? 아, 말이 나와서 하는 말인데 우주 씨도 당연히 가입하셨겠죠? 조직재생공학연구소의 보험말이에요.”
재생 기술이라면 훼손된 신체를 원상태로 회복시켜주는 기술을 말하고 인간 복제 기술은 말그대로 복제를 일컫는다. 이 두 기술은 현재 한국 조직재생공학연구소에서 연구중이며 재생 기술은 이미 완성된 상태에 있고 인간 복제 기술은 향후 2년 내에 상업화가 머지 않았다.
“가입은 아직 안했소.”
“그러시군요. 하지만 레지스트 쉴드는 위험천만한 곳이니 언제, 어디서 무슨일을 겪게될지 아무도 모른답니다. 만약을 대비해 가입하는 것을 권해드려요.”
“고려 해보리다.”
소민은 싱긋 웃어 보인 뒤 다시 말을 이었다.
“사람이 죽어야 인구가 그나마 줄어들텐데 재생 기술과 인간 복제 기술은 자연의 순리를 역행하고 있죠. 또 조만간 레지스트 쉴드에서 얻은 자원을 활용한 신약이 개발되면서 국민 3대 질병인 암, 치매, 당뇨에도 사람들이 면역을 갖게 될것입니다.”
소민은 눈앞의 컵을 들어 마른 목을 적셨다.
“이대로 가다가는 레지스트 쉴드로 인해 전세계 인구가 급속도로 증가하게 되고 마침내 인류 생존의 문제에 직면하게 되면서 새로운 문제를 야기시킬게 분명하죠. 이를테면 억지로라도 사람을 죽여야 하는 상황이 생길 수가 있는 거에요. 하루에 수백수천명씩 말이예요.”
“설마, 그러기야 하겠소?”
소민이 가볍게 고개를 저었다.
“그렇게라도 하지 않으면 다가올 2060년에는 인류가 살 수가 없는 걸요? 식량문제야 레지스트 쉴드로 해결된다치지만 덕분에 지구는 포화상태가 되는 거예요. 수많은 인구의 배설물 때문에 환경오염은 물론이고 집을 지을 공간마저 부족해질테죠. 그리고 상황이 그렇다보니, 아닌말로 미래에는 영화 배틀로얄이나 헝거게임처럼 사람들을 무인도에 가둬놓고 서로 죽고 죽이는 모습을 즐기는 스포츠가 생겨날지도 모르는 일이고요.”
소민의 말을 듣고만 있는 우주는 점점 미간이 좁혀졌다.
“그리고 인구 문제가 꼭 다가올 미래에만 있는게 아니예요. 지금 우리나라를 보세요. 손톱만큼 작은 이 땅에 자동차가 얼마나 많아요? 매일 밤 퇴근하고 집에돌아오면 이 골목 저 골목 자동차로 꽉 차있는 상황이죠. 이렇게 주차공간도 부족한 마당에 앞으로 인구가 더 늘어나면 어찌될까요? 현재도 사람이 너무 많다는 생각이 들지 않나요?”
우주는 점잖게 고개를 끄덕이다가 나직히 물었다.
“소저(小姐)의 생각이 뭔지 이해는 하겠소. 하지만 사탄을 잡는 것과 독립운동이 무엇이 같은겐지 아직은 어렵소.”
“간단해요. 독립운동이 만백성을 구제하기 위해 이뤄진 것처럼 사탄을 잡아 세계 인류를 구제하자는 점에서 의미가 같다는 것이죠.”
“사탄을 잡으면 무엇이 달라진다는 거요? 인구문제를 해결하려면 지구의 면적을 늘리거나 해야할텐데.”
“면적을 늘리는 것보다 더 확실한 방법이 있어요.”
“그게 무엇이오?”
“우주. 바로 우주죠.”
그녀가 대답하자 우주의 눈썹이 꿈틀거렸다.
“우주? 소생 말이오?”
소민이 쿡쿡 웃음을 터뜨렸다.
그녀는 한 손으로 입을 가리고 웃으며 다른손으로 천장을 가리켰다.
“하늘에 있는 우주(Universe)요.”
“아~”
“그러고 보면, ‘우주가 우주로 보내준다’ 면서 재미나게 마케팅을 진행할 수도 있겠네요. 이름 참 잘지으셨어요.”
그녀는 웃음을 멈추고자 잠시 헛기침을 작게 한후 이어 말했다.
“레지스트 쉴드는 우리에게 우주로 가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우주는 고개를 갸웃했다.
“레지스트 쉴드에서 얻을 수 있는 돌연변이 생물의 뼈는 신소재로서 미국과 러시아에서는 우주선을 만드는데 활용하고 있어요. 거기에 폭스네이크 아시죠?”
우주는 얌전히 고개를 끄덕.
“폭스네이크의 비늘은 무한한 산소를 자연적으로 발생시킵니다. 우주 속에서 살아남으려면 산소는 필수잖아요? 그리고 이밖에도 몇가지 예가 더 있지만 다 생략하고 일단, 우리가 우주로 가기 위해서 무엇보다도 가장 중요한 자원을 사탄이 갖고 있습니다.”
“사탄이?”
“네. 그때 우주 씨가 잡았던 소형 사탄에게서 우리는 매우 귀중한 자원을 하나 얻을 수가 있었습니다. 그것은 바로 사탄의 심장에 해당하는 부위였고 인류가 유인 우주선의 추진체로 사용하는 원자로보다 더욱 뛰어난 성능을 가진 동력원이었죠. 메가와트급 그 이상이에요.”
그녀는 잠시 말을 멈추고 입술만 가볍게 적실정도로 물을 한모금 마셨다.
“장거리 우주여행을 하기 위해서는 재급유나 잠시의 휴식도 갖지 않고 지속적으로 추진 엔진이 돌아야 합니다. 10년이고 100년이고 움직일 수 있는 막대한 양의 에너지가 필요하죠. 그런데 그걸 사탄의 심장이 해결해주었습니다. 한달 전 저희 회사가 미국 NASA와 업무 협약을 체결하면서 NASA의 모의 실험실에서 사탄의 심장을 로켓에 장착시킨 뒤 가속 실험을 해봤습니다. 실험하면서 로켓의 속력을 한없이 끌어올렸죠. 그 결과, 동력원으로서 사용기한은 최대 1천년, 그 속도는 빛의 속도와 동일하며 지구에서 태양까지 8분이 소요될 정도로 위력이 엄청나다는 연구결과가 나왔습니다.”
소민은 기대감이 비친 얼굴로 우주의 얼굴을 살펴보았다. 하지만 그에게는 아무런 감흥이 없어보였다. 그저 주의 깊게 듣고만 있었다. 우주선이니, NASA니, 계산이 안되서 그럴것이다.
이러한 사실을 모르는 그녀는 그의 미지근한 반응이 왜 그런지는 조금 의아했지만 그럼에도 계속 흥을 이어 나갔다.
“이게 무엇을 말해주는지 아세요? 우리가 다른 행성에 정착해서 스페이스 콜로니를 건설하거나 거대한 우주선에 지구와 똑같은 환경을 조성해서 몇백년이고 우주를 유랑하며 다닐 수 있는 힘이 생겼다는 겁니다. 실로 대단하죠?”
우주는 유심히 생각하며 머릿속을 정리하더니 뒤늦게 입술을 열었다.
“그러니까 그 말은 즉, 인류를 우주로 이주키겠다는 소리오?”
소민이 웃어보였다.
“맞습니다. 그것만이 지구와 인류를 지킬 수 있는 유일한 희망이니까요.”
“상상도 못할 일이군...”
우주가 혼잣말로 중얼거리더니 다시 물었다.
“그래서 사탄을 잡아서 동력원인가 뭔가를 얻겠다는 생각인게오?”
“예. 그런데 혹시 또 몰라요. 사탄에게서 심장 말고도 유용한 물질을 새롭게 발견해낼 수도 있을지. 그때 우주 씨가 소형 사탄의 사체를 완전히 분해하다시피 훼손시켰기 때문에 건져낸 것이라고는 심장뿐이었으니까요.”
우주는 마른 침을 삼켰다.
“왜 하필 거대 사탄이요? 소형 사탄이면 충분하지 않소?”
“그건, 소형 사탄의 개체 수가 매우 적다고 판단됩니다. 고릴라 팀 이후로 우리 회사에서도 개성으로 팀을 보냈지만 소형 사탄은 결코 만날 수가 없었습니다. 소형 사탄이 어떠한 이유로 생겨난 것인지 원인조차 파악할 수가 없구요. 아마 소형 사탄의 존재를 아는건 전세계에서 우리 신라그룹과 제네틱스 뿐일 겁니다. 자료가 없거든요.”
이후 두 사람은 잠시 휴식시간을 가졌다. 우주는 허리를 쭉 펴고 목을 돌려주었고, 그 앞에 앉은 소민은 휴대폰을 꺼내 만지작 거렸다. 회사에서 업무와 관련해서 이것저것 연락이 많이와 있었다.
그런 와중에 우주가 마치 지나가는 이야기처럼 슬쩍 꺼내 물었다.
“한국인이 회사를 차렸는데 어째서 다른 나라 사람이 경영에 간섭할 수가 있는거요?”
휴대폰 액정을 바라보던 시선이 그에게로 향했다. 소민은 희미하게 입꼬리를 올리며 상냥하게 대답했다.
“외국계 기업 아닌가요? 그럴 경우에는 보통 한국 사람을 사장 자리에 앉혀놓죠. 현지 사정에 밝고 무엇보다 언어때문이죠. 소통 문제도 있으니까.”
“그런건 아니고 회사를 설립한게 분명 한국 사람인건 맞소. 그런데 외국인이 자기 지분이 있다면서 경영 참여를 한다고 하던데, 어째서 그렇게 할 수 있는 거요?”
“설립자가 돈이 많으면 당연히 다른 사람에게 지분을 안주죠. 하지만 기업의 규모가 점점 커질수록 많은 자금이 필요하게 되요. 예를 들면 이거예요. 우주 씨가 치킨을 아주 잘튀겨요. 잘튀기니까 가게만 오픈하면 대박 날거 같은데 돈이 모자란 상황이예요. 그럴때 어떤 회사는 대출이나 회사채를 발행하는데 이건 회사가 빚을 지는 상황이라서 잘못하면 순식간에 망할 수도 있는 경우에요. 우주 씨가 빚을 내서 치킨집을 개업한 것과 똑같아요. 그런데 장사가 잘안되면 빚만 늘어나잖아요? 위험하니까 사람들은 빚을 내지 않고 부담없이 빌릴 수 있는 돈을 만들어냈어요.”
“빚을 안지고 돈을 빌릴 수 있단게 말이되오?”
“말이되죠. 자, 들어보세요. 우주 씨가 치킨집 10% 소유권이라고 써진 종이를 5장 만들어서 친구들 5명에게 일정 금액을 받고 팔았다고 쳐요. 친구들에게 받은 돈으로 우주 씨는 치킨집을 세우면되고, 후에 장사가 잘되면 그 수익을 치킨집 지분 10%씩 소유한 친구들에게 지분에 비례해서 나눠주면 되요.”
“장사가 잘되지 않고 망하면 어쩌하오?”
소민은 생긋 웃었다.
“친구들도 함께 망하는 거죠.”
그 이후 친절한 목소리로 자기자본, 타인자본, 내부이익 등에 관한 전문적인 설명이 쭉 이어지면서 나중에는 투자자가 뭐하는 사람들인지에 관한 신우주의 순백한 질문이 이어졌다.
소민이 담담하게 대답했다.
“대단한 사람이 아니고 보통 사람이예요.”
“보통 사람? 나 같은 일반인도 투자를 할 수 있다는 거요?”
“물론이죠.”
“아...”
우주는 이제야 알겠다는 듯 고개를 끄덕이며 작게 탄성을 내질렀다. 그렇다면 나도 제네틱스의 주식을 사면 경영에 참여할 수 있다는 소리인가?
“주식을 많이 사면 경영에 참여할 수 있소?”
“그렇죠. 기업 경영자가 대주주의 목소리를 무시할 수만은 없으니까요. 심하면 대주주가 소액주주들과 연합해서 기업 경영자를 바꿀 수도 있는걸요. 이런 경우야 극히 드물긴 하지만.”
“허허.”
회장까지 바꿀 수 있다니. 우주는 내심 놀라웠다. 어떻게 자기가 차린 회사에서 쫓겨날 수 있는거지?
‘이 시대는 참 실로 복잡하군!’
그러한 생각이 드는 한편 우주는 새로운 빛을 발견한 것 같았다. 소라의 기대에 부흥하면서 다코오 가문을 물리칠 수 있는 방법! 그것은 바로 지분 확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