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1화
‘제네틱스서 마음 떠난 신우주, “신라그룹 가고파”’
-신우주(20. 제네틱스)의 마음이 완전히 떠났다. 신우주의 한 측근은 신우주는 이번 드롭존 테러를 미연에 방지하지 못한 제네틱스에게 실망했다고 귀띔을 했다. 이 측근은 이어 ‘내년 자유계약 수라가 되는 상황에서 신라그룹과의 계약을 바라고 있는 것으로 안다’ 고 덧붙였다... (중략)기사를 다 읽고난 소라의 얼굴은 싸늘했다.
“이게 뭐죠?”
스마트폰으로 기사를 보여주자 우주는 눈이 휘둥그레졌다. 자신은 전혀 모르는 일이었다.
게다가 그 다음 기사는 더 가관이었다.
“아하, 빼도박도 못하게 여기 다정하게 찍힌 사진이 있네요. 절대 안만났다고 거짓말도 못해서 어쩌나.”
냉담한 목소리로 그녀가 기사를 클릭해서 사진을 보여주자 우주는 말문이 막힌 채 크게 당혹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속보. 제네틱스의 황태자 신우주, 신라그룹 한소민과 비밀접촉!’
-내년 FA시장의 대어로 불리는 신우주의 신라그룹 입성이 보다 확실해졌다. (사진: 9일 오전 서울시 교외의 한 까페에서 비밀리에 만난 신우주와 한소민.(기사 추가 작성중.)소라는 누가봐도 대단히 화가나 보였다. 그녀는 가증스럽다는 표정으로 우주를 쳐다봤다.
“나 몰래 이런 일을 꾸미고 있었단 말이죠?”
“아, 아니. 그게 아니오.”
그는 놀란 얼굴로 사진을 뚫어지라 바라봤으며 일단 만났다는 사실이 맞긴 하니 그 어떠한 변명도 하지 못하였다.
“이 쓰레기들아!”
소라는 스마트폰을 바닥에 내팽게쳤다.
바닥에 떨어진 스마트폰의 액정에는 우주와 소민이 테이블을 사이에 두고 앉아있는 사진이 표시되고 있었다.
“도대체 내가 못해준게 뭐가 있는데!”
소라는 상당히 분한 얼굴로 씩씩댔다.
몇걸음 걸어가서 액정을 구두로 콱! 밟아버렸다.
“누군 생각해준답시고 팀까지 만들어줬는데 그놈은 이딴짓이나 하고 다녔다니!”
소라는 대리점 앞에서 주위 눈치도 안보고 그를 향해 윽박 질렀다.
그때 우주는 우둔했던 자신을 탓하며 속으로 탄식만 했다.
‘아아, 내가 한소민한테 당했구나! 이 요망한 년! 순한 양인줄 알았더니 여우였어!’
그러면서도 겉으로 그는 차분한 표정을 지어보였다.
흥분한 소라를 달래려 했다.
“화내지 말고 우선 내 말을 들어주시오.”
“듣고 자시고 계약서에 써진 내용으로만 이야기 합시다!”
그녀는 분을 삭이지 못한 채 차갑게 말을 내뱉고 등을 돌렸다.
그대로 도로가에 성큼성큼 걸어가서 지나가던 택시를 잡아세웠다.
“소라 낭자! 내가 왜 한소민을 만났는지 사정을 듣고 가야하지 않겠소!”
우주가 소리쳤다.
그녀가 택시의 문 손잡이를 잡아쥔채 뒤돌아봤다.
“그 이야기는 회사 법무팀한테나 하십시오.”
소라는 쌀쌀맞은 투로 말을 뱉고는 택시에 올라탔다.
문이 쾅 닫히며 부우웅 떠나버렸다.
혼자 남겨진 우주. 소라가 탄 택시가 저 멀리 사라질때까지 속이 타는 심정으로 지켜보기만 했다.
◆
우주는 끓어오르는 분노를 갖고 자신의 승용차에 올라탔다.
바로 한소민에게 전화를 걸었다.
-네. 신라그룹 경영운영본부장 한소민입니다.
그녀의 목소리는 짜증날 정도로 평온했다. 이번 일에 관해서 아무런 죄책감도 없어보였기에 그를 더욱 화나게 만들었다.
그래서 다짜고짜 소리를 내질렀다.
“지금 뭐하자는 거요!”
-우주 씨. 진정하시고 제 말을 들어주세요.
“무슨 말을 들어보라는 거요! 처음부터 언론에 공개할 속셈으로 만나자고 한거였소이까!”
-그게 아닙니다. 어디서 알고 온것인지 파파라치들이 있을 줄은 저 역시 몰랐습니다. 우리 만나서 이야기하죠. 네?
“이런 상황에 또 만났다가 무슨 봉변을 당할줄 알고 만나겠소! 내 소민 씨 그리 안봤는데 다음부터 그리 살지 마시오! 천벌을 받을거외다!”
뚝!
우주는 자기 할말만 내뱉고 전화를 끊었다.
아직도 분이 안풀렸는지 가슴을 씩씩대며 안전벨트를 멨다.
후진해서 차를 뺐다.
핸들을 오른쪽으로 돌려서 그대로 미끄러지듯 앞으로 나아갔다.
두 시간을 달려서 그의 아파트로 돌아왔다. 일부러 머리를 식힐겸 꽤 멀리 돌아왔다.
정문을 통과해서 차를 주차시키고 자신이 사는 동으로 걸어가는데 이게 뭐람?
“우주 씨 기다렸어요.”
입구에서 뜬금없이 소민과 마주쳤다.
말쑥한 정장을 입은 그녀를 보자마자 우주는 미간을 좁혔다.
“여기는 어떻게 알고 왔소!”
허락도 없이 언제 남의 집주소까지 파악한건지!
우주는 더욱 성질이 났다.
괘씸한 년! 괘씸한 신라그룹 놈들!
“제 말 좀 들어주세요. 부탁합니다 우주 씨.”
소민이 애걸한 표정으로 달라붙었다.
하지만 우주는 무시하고 지나쳤다.
삑삑삑삑삑.
비밀번호를 입력하자 두우웅.
자동문이열렸다.
“가지말고 저랑 말좀해요 제발.”
안으로 들어가는데 그녀가 뒤따라 들어오려고 했다.
“거기서 더 오지 마시오!”
우주가 싸늘하게 노려보며 말했다.
“더 왔다간 경비실에 신고하겠소!”
“하지만 우주 씨...”
그렇게 말하니 소민이 더는 발걸음을 떼지 못했다. 그저 안타까운 표정으로 가만히 지켜보며 서있기만했다.
우주는 그런 그녀를 두고 무심히 엘리베이터에 올라탔다.
“엄청 화가 났나 보군요.”
우주가 사라지자 어디엔가 몸을 숨기고 있던 소민의 여성경호원이 등장했다.
“그런것 같아.”
소민은 치마주머니에서 손거울을 꺼냈다. 거울을 들여다보며 표정을 고쳤다.
“아야어여오요으이.”
입모양을 크게 벙긋 하며 얼굴 근육을 풀었다.
슬픈 표정은 금세 사라지고 아무일도 없다는 듯이 평범한 표정으로 되돌아왔다.
“예상은 했지만 반감이 심하네. 오늘은 대충 여기까지만 하고 가자.”
그녀는 도로 손거울을 집어넣고 자신의 복장을 위에서 아래로 훑어보았다.
“내일은 옷차림을 좀 야하게 입고 와볼까? 오늘은 급하게 서두르느라 심심한것 같지?”
“좋은 생각이신 것 같습니다. 얼마전에 TV를 보니 남심을 공략하려면 섹시한 옷차림이 필수라고 하더군요. 하지만 과하게 입으셨다간 오히려 천박해 보이기 때문에 고르고 골라 신중하게 입으셔야 될것 같습니다.”
다음날.
각 기업의 모든 수라들에게는 2주간의 여름 휴가가 주어졌다. 한국, 중국, 러시아 정부는 3국 공동 협약에 의거해 8월 중순부터 말까지 레지스트 쉴드 내에서의 생산활동을 전면 중단 시켰기 때문이다.
3국 공동 협약이란 1년중 하계/동계 각 한 번씩 모든 기업들이 일을 쉬고 돌연변이 생물들에게 번식 기간을 주는 것을 말한다. 레지스트 쉴드가 안식을 누리는 2주간, 돌연변이 생물들은 무서울 정도로 번식케 되고 그로인해 생산성도 높아진다. 석유나 천연가스처럼 자원이 고갈될 우려도 없었다.
◆
‘제네틱스의 강미라 영입설, 사실이었다.’
-오성그룹 강미라(23, 오성그룹)의 제네틱스 이적이 확정적이라는 소식이다. 이름을 밝히기 꺼려한 에이전트 관계자는 ‘강미라가 800억원의 이직료에 50억원의 옵션을 더한 금액으로 제네틱스의 수라가 될것’이라고 밝혔다. 연봉은 150억원으로, 오성그룹에서 받은 연봉보다 50억이 오른 금액이다...(중략)
‘한소라, 신우주 이직은 어림없는 소리. 내년에도 제네틱스에 남을 것.’
‘신우주, 신라그룹 계약설 사실 아니다 부인.’
‘신우주, 한소민과는 전부터 친분관계를 유지했을뿐. 계약설 관련 소문 일축.’
‘제네틱스, 신우주와의 재계약 긍정적.’
제네틱스는 실로 바빴다. 신라그룹에 대항해 반박 기사를 막 뿌려대고 있다고 표현해도 좋을 만큼 회사가 총력을 다해 수천개의 기사를 쏟아내고 있었다. 개중에는 한달 뒤에나 발표하려던 강미라 영입 소식까지 흘리며 이번 일을 전해들은 투자자들의 충격을 상쇄시키려고도 했다.
한편, 일제시대 건물을 그대로 구현해놓은 야외세트장.
우주는 다음 촬영이 준비되는 동안 간이 천막 아래 앉아서 쉬는 중이었다.
소라는 전화도 안받았다. 그녀는 휴대 전화가 두 대였는데 한 대는 어제 부쉈고 나머지 한대는 지인들과 연락을 주고받을때 쓰는 전화다. 그 전화기의 우주 번호를 아예 차단시켜놓은 상태였다.
우주는 답답한 기색을 숨기지 않고 옷깃을 고쳐주던 강민에게 털어놓았다.
“민형, 요즘 세상은 눈뜨고 코베이기 쉽상인 것 같소.”
“누가?”
“한.”
우주는 소민이라고 이어 말하려다 한숨을 푹 내쉬었다.
“있소 그런 사람이.”
“우주 씨, 우주 씨!”
벤에 다녀온 철수가 허겁지겁 뛰어오더니 찰싹 달라붙었다.
“이거봐요. 이거.”
우주에게 자신의 스마트폰을 들이밀었다.
김아라에게 온 문자였다.
[철수 아저씨. 절 돌봐주시는 분께 앞으로 편지를 쓰고 싶어요. 컴퓨터로 쓰면 성의 없어 보일 것 같고 직접 손편지를 쓰고 싶은데, 집주소 좀 알려주시면 안돼요?]
아라는 이번달에 치뤄진 중졸 검정고시를 무난히 합격하고 새롭게 고졸 검정고시를 준비하는 중이었다. 본래는 고등학교에 보낼 생각이었지만, 그녀는 철수에게 학교보다는 학원을 다니면서 고졸 검정고시를 준비하고 싶다는 의향을 전했다.
나날이 공부로 바쁜 그녀였다.
“어쩌죠? 어쩔까요? 집주소 알려줘요?”
“주소는 안되오.”
우주가 손을 가로 저었다. 그러고 나서 잠시 고민하더니 말했다.
“귀찮겠지만 형님을 통해서 건네주었으면 하오. 주소를 알려줬다간 찾아올까 무섭소.”
“그쵸? 편지 주고받는다면서 주소 보고 찾아오려고 하는것 같아. 아라도 참 여우네 여우.”
우주가 작게 미소지었다.
“순수한 마음으로 알려달랬을지도 모르오.”
“에이, 요즘 애들이 얼마나 영악하다구요.”
강민이 끼어들었다.
“우주 부럽. 여학생이 편지도 써주고.”
“뭐해요?”
뒤에서 갑자기 수희 목소리가 들려왔다.
세 사람이 일제히 뒤돌아보면, 그녀는 이 더운 여름날에 하얀 도복을 입고 한손에는 하회탈을 들고 있었다.
우주가 희미하게 웃으며 말을 건넸다.
“덥지 않소?”
“더워도 할 일은 해야죠.”
대답이 차갑다. 그런 반면에 이마에는 땀이 주렁주렁 맺혔다.
“여, 여기, 여기 앉으세요.”
“고마워요.”
수희는 철수가 허둥지둥 건네준 의자에 앉았다.
동시에 그녀를 뒤따라온 건장한 매니저가 옆에서 부채질을 하기 시작했다.
우주는 의아한 얼굴로 수희와 매니저를 번갈아보다 물었다.
“왜 여기에 온거요?”
“누군 오고 싶어서 왔나요.”
“누가 보내기라도 했소이까?”
“보내긴요. 다음씬 케미 맞추려면 먼저 맞춰봐야 할거 아니예요. 초보데리고 내가 뭐하는 건지.”
그녀는 살짝 불만있는 표정을 지어보였다.
사실 수희가 우주를 찾아온 연유는 이러했다.
촬영장에서 우주는 신인 연기자였고, 그만큼 배우중에서도 밑바닥 신세였지만 최근 그가 나온 경성의 여무사 23화 시청율이 단번에 25%를 기록했다. 특히나 23화에 방송된 마상 추격씬에서는 문화평론가들을 비롯해 전국의 시청자들에게까지 드라마 연출의 한획을 그었다며 대대적인 호평을 받았다.
따라서 첫화 방영 당시 28% 시청률을 찍고 점점 하향세를 보이며 16%대를 달리던 드라마가 우주의 등장으로 인해 시청률이 단숨에 오르자 제작진측에서는 대단히 고무적인 일이었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조현기 감독은 엉덩이에 불이 붙었다. 우주를 냉대했던 이설희 작가에게 전화를 했다.
“신우주 분량을 좀 더 추가했으면 하는데 이 작가는 어때? 잘하면 30%도 넘볼수 있을지도 모르잖아. 여심도 홀릴겸 쌈박한 대사도 몇마디 주자구.”
조현기 감독의 부탁은 수희에게도 이어졌다. 오늘 오전에 그녀에게 슬쩍 다가가 귀띔했다.
“나름 작중에서는 서로 애틋한 사랑을 주고 받는 사이인데 카메라 꺼질땐 두 사람이 너무 떨어져 지내는 것 같아요. 내 보니까 신우주가 신인이다 보니 촬영장에 주눅든 나머지 선배한테 아양도 잘떨지 못하는 것 같애. 그러니 수희 씨가 먼저 다가가서 친해지면 어때요? 응? 평소 잘지내야 찍을때도 감정이 살지 않겠어? 더구나 이 드라마 주인공은 수희 씨니까 존심이고 뭐고 잠시 집에 두고서 주조연 연기자들 잘달래서 나랑 같이 잘 이끌어보자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