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5화
소민이 갑자기 말을 돌렸다. 그녀는 수건으로 말아올린 머리를 한 채 신기한 눈빛으로 거실을 둘러봤다.
“넓고, 예쁘고. 와아.”
“내 얘긴 듣고 있소?”
“드라이나 하고 올게요.”
드라이를 한 후에는 능청스럽게 다가와 소파에 앉았다. 이제 막 샤워를 마치고 나와서인지 좋은 향기가 코끝을 스쳤다.
“주방에 계신 여성 분은 가정부인가요? 아니면 친동생?”
“가정부외다.”
“아~ 가정부라기에는 너무 젊고 예뻐서 놀랐네요. 대학생 정도로 밖에 안보이던데.”
“......”
우주의 시선은 TV에 고정된 채 움직이지 않았다. 이렇다할 반응이 없자 소민은 엉덩이를 들어 좀 더 그에게 달라붙어 앉았다.
“뭐 보시는거예요? 아, 예능프로그램이네. 재밌어요?”
“그냥 하길래 보고 있소이다.”
무뚝뚝한 대답.
소민은 곁눈질로 우주를 살폈다.
‘왜 반응이 미지근하지?’
오늘 그녀는 우주에게 호감을 사기 위해서 이 집안에 들어온 것이다. 일 이야기는 하지 않아도 좋았다. 그저 자신의 섹시미를 부각시켜서 그의 시선을 사로잡기만 하면 충분했다.
21세기에 들어서 영리한 여성들은 섹시함을 비즈니스 무기로 활용하기 시작했다. 남자인지 여자인지 모를 정도로 어정쩡한 여성성을 가지고는 남자가 지배하는 자본주의 사회에서 성공하기란 힘들었다. 선천적으로 외모가 예쁘지 않다면 패션이나 화장으로 그것을 극복했고, 그마저도 힘들면 성형을 하면서 부족한 부분을 보강했다.
여성의 섹스어필은 남심을 공략하는 강력한 무기다. 매력적인 여성에게 관심의 눈길을 보내지 않는 남자는 없다. 예부터 꽃 중에서도 유독 뇌쇄적인 느낌으로 다가오는 꽃이 하나 있다. 바로 도화(복숭아 꽃)다. 도화는 거부할 수 없는 치명적인 아름다움으로 자신을 감상하는 모든 이를 유혹한다. 아름다운 꽃에 벌과 나비가 모여들듯 소민은 도화꽃이 되기로 했다.
우주에게 섹시함으로 호감을 산뒤 가뿐히 집으로 돌아갈 생각이었다. 한번 관심을 사고 나면 그 뒤부터는 그가 알아서 찾아올 테니까. 그 후부터는 살살 미끼를 던져주면서 본격적으로 일 이야기를 꺼내는게 그녀의 계획이었다.
하지만 그와 육체 관계를 맺을 생각은 전혀 없었다. 어디까지나 완고한 그의 마음을 허물기 위해서 섹스어필을 하는 것이지 그렇게 헤픈 여자는 아니었다. 그런 면에서 그의 집안에 가정부가 존재한다는 사실이 그녀에게 무척이나 안심이 되었다. 행여 무슨일이라도 생기면 도움을 바랄 수 있을테니까.
“다리에 털이 없네요? 신기하다.”
소민은 허리를 숙이며 아무렇지도 않은척 반바지를 입은 우주의 정강이를 쓰다듬었다.
TV를 보던 우주가 인상을 구기며 쳐다봤다.
“뭐하는 거요?”
“아뇨. 그냥 신기해서요. 남자치고 피부도 부드럽네요.”
“만지지 마시오.”
“미안해요.”
소민은 다시 허리를 펴며 다리를 꼬았다. 그리고 보란듯이 자신의 매끈한 다리를 한손으로 어루만졌다.
“저 때문에 화나셨으면 공평하게 제 다리도 한번 만져볼래요?”
“......?”
“만져봐요. 괜찮으니까.”
우주는 잠시 소민의 하얀 다리를 물끄러미 바라보다 이내 무슨 생각을 한건지 거리낌없이 다리를 만졌다.
그의 손이 소민의 맨살을 더듬으며 무릎에서 허벅지로 천천히 올라갔다.
‘설마 가랑이까지 만지진 않겠지...’
소민은 좀전의 당당함과는 달리 조용히 침을 삼켰다.
하지만 사타구니까지 가려던 우주의 손이 다시 밑으로 내려가며 종아리를 쓰다듬었다.
“다리가 부드럽소이다. 참 고운 다리요.”
“그, 그런가요? 고마워요.”
우주가 손을 떼자, 소민은 안도의 한숨을 내셨다. 남성이 자신의 다리를 만졌다는 사실에 묘한 기분이 들기도 했다.
그녀는 곁눈으로 우주의 눈치를 살폈다. 그의 시선이 다시금 TV로 돌아가있다.
‘겉으론 담담한척 하면서도 다리말고 다른곳도 만져보고 싶고 애 좀 타려나...?’
소민은 곧바로 두 번째 작전에 들어갔다.
“조금 실내가 덥지 않아요?”
“덥소?”
우주는 에어콘이 달린 벽쪽을 바라봤다.
“에어콘은 잘돌아가오만?”
“그럼 전 왜 이리 덥죠. 방금 뜨거운 물로 샤워해서 그런가. 후~”
우주는 무심코 옆에 앉은 소민을 돌아보았다. 그러자 시선이 절로 그녀의 배로 쏠렸다.
“이러니 좀 시원하네.”
소민은 덥다는 표정을 짓고 티의 아래를 붙잡고 부채질을 하는데 배꼽과 유방 밑부분이 보일 정도로 크게 펄럭거렸다. 더구나 그녀는 갈아입을 속옷도 없었기에 노브라 상태였다.
“크음! 험험. 속살이 다 비치니 조심하시오.”
“어머.”
우주가 손으로 배꼽을 가리키자 소민은 능청스럽게 당황한 표정을 지었다.
“어머 나 좀 봐. 여기가 너무 편해서 집처럼 생각했나봐요.”
“정 더우면 저기 에어콘 앞으로 가서 바람 좀 쐬시오.”
“괜찮아요. 여기 그냥 있을래요.”
우주는 다시 TV쪽으로 시선을 돌렸다. 얼굴빛이 살짝 붉어진것 같았다.
소민은 속으로 쾌재를 불렀다.
‘좋아, 효과가 있어! 이제 여기서 조금만 더 하고 휑하니 집으로 가버리는 거야. 그렇게 하면 신우주는 분명 뭔가 맥이 끊긴 기분에 날 다시 만나고 싶어할테지!’
그녀는 서둘러 실행에 옮겼다.
소파에 있던 방석을 하나 집어 실수인 척 우주의 앞으로 던졌다.
“음?”
우주가 그녀를 돌아보았다.
“이크. 소파 옆으로 살짝 던진다는게 잘못던졌네요. 운동은 정말 잼병이라니까요. 제가 주울게요.”
소민은 그의 앞으로 나아가서 TV를 가리고 그를 등졌다. 그대로 천천히 아주 유연하게 허리를 숙이면서 핫팬츠를 입은 자신의 엉덩이를 우주의 눈앞에 고스란히 갖다 바쳤다.
“......!”
애플힙이 돋보이는 엉덩이 라인에 우주는 절로 탄성을 자아냈다.
게다가 그녀가 허리를 숙이면서 자연스레 티셔츠가 위로 올라가자 속살이 내비쳤다.
“TV 가려서 미안해요.”
방석을 주운 그녀가 산뜻하게 머리를 귀뒤로 쓸어넘기며 다시 자리에 앉으려 했다.
하지만 우주가 재빨리 그녀의 손목을 붙잡았다.
“어머 놀래라. 왜, 왜요?”
갑자기 정색한 그의 표정에 그녀는 당황한 얼굴을 지었다.
“역시 더 머물면 안될것 같소.”
“조금 전에 차 마시고 가라고 했잖아요.”
“됐소. 이제 그만 집에 가는 것이 좋을것 같소.”
“그래도 이런 옷차림으로는 밖에 나갈 수가 없어요. 절 알아보는 사람이라도 만났다간...”
우주는 미간을 좁히며 말을 잘랐다.
“집까지 태워다 드릴테니 이만 나갑시다.”
“싫어요. 차까지 다 마시고 갈거에요.”
집주인도 아닌 그녀가 고집을 부렸다.
당연했다.
그의 마음을 얻기에는 부족한 시간이었다. 뭐라도 더 해야했다.
‘여기서 조금만 더 했으면 됐는데! 조금만 더 하고 내가 먼저 간다는 말을 해야...!“
그렇다면 남은 것은 하나.
온몸을 내던질 수 밖에.
“어마맛!”
“웁!”
소민은 만세하는 포즈로 미끄러지며 소파에 앉아있던 우주를 그대로 덮쳐버렸다.
우주는 허리를 곧게 세우며 뒤로 넘어가지는 않았지만 얼결에 그녀를 받으며 허리를 끌어안아 버렸다.
소민 또한 그의 목을 두 팔로 감싸안았다.
“괜찮으세요?”
“괘, 괜찮소. 목에 손이나 풀어주시오.”
“아니 잠시만, 잠시만요. 가슴이 쿵쾅쿵쾅 뛰는것 같아서 그러니 잠시만 이대로 진정 좀 할게요.”
“지금 아무일도 없었는데 왜 갑자기 심장이 뛴다는 거요?”
“심장이 약해서 평소에 아파서 가끔 이래요. 부탁이니까 이대로 가만히 있어주세요.”
“허, 참.”
소민에게서 그녀의 살냄새가 물씬 풍겨왔다. 게다가 약하고 새하얗다 못해 투명한 피부의 목덜미가 눈앞에서 아른거렸다.
우주의 표정이 점점 변해만 갔다.
색에 굶주려서가 아니라 갈수록 화가 치미는 표정이다.
폭발했다.
“내 참으려 했건만!”
순식간의 일이었다.
우주가 버럭 소리를 내지르더니 그녀를 소파에 눕히고 그 위를 덮쳤다. 깜짝 놀란 소민은 저항하려 했으나 수라도 아닌 여자의 힘으로 그러기에는 역부족이었다.
“도대체 왜 이러는 거요!”
“제, 제가 뭘요! 이거 놓으세요! 놓고 이야기 해요!”
“그럴순 없소. 더는 용서없소이다!”
우주는 그녀의 두 팔을 머리 위로 쭉뻗게 한다음 양손목을 교차시키고 왼손으로 한번에 붙잡았다.
소민이 몸부림치며 거세게 반항하자 그 위에서 꼼짝 못하게 몸으로 짓누른 다음 오른쪽 무릎으로 그녀의 가랑이 사이를 억지로 벌렸다.
“두 번 다시 찾아오지말라고 내 엄중히 경고했건만 또다시 날 찾아온 이유가 뭐요! 게다가 왜 날 유혹하려드는거요!”
“제가 언제 유혹을 했다고 그러세요!”
“아까부터 의도적으로 속살을 내비쳤다는걸 소생이 모를줄 아는거요!?”
“전 그런적 없어요! 우주 씨 혼자 김치국마시는거겠죠!”
“하하.”
우주가 피식 웃었다. 그 눈은 악마보다도 사악했다.
“지, 진정하시고 천천히 이야기 하도록 해요. 안에 가정부도 있으니까 우주 씨가 이러는걸 알면 큰일나요. 그러니 지, 진정하세요.”
“가정부는 걱정할 필요 없소이다. 난 지금 당신의 본심이 무엇인지 아는게 급선무요.”
소민은 두려움에 몸이 떨려왔다.
“제, 제 본심은 보는 그대로예요. 아, 아무 것도 없어요. 그러니 제발 이것 좀 풀어줘요.”
“풀어줄 수 없소.”
“푸, 풀어주지 않으면 어쩌실 작정이신데요?”
“낭자가 원하던것을 해주리다.”
“전 원하는게 없어요. 그러니 이제 그만 풀... 으읍!”
우주는 소민의 입술을 덮쳤다.
그녀의 입술을 세차게 빨았다. 입속으로 혀를 밀어 넣으려고했지만 밑에 깔린 그녀는 이를 악물고 벌리지를 않았다. 어떻게든 그를 밀어내려고 안간힘을 썼다.
“읍! 으웁! 웁!”
우주는 입술 빠는 것을 멈췄다. 코앞에서 그녀를 내려다보며 물었다.
“소민 낭자 왜 그러는거요? 아까부터 이런것을 바란게 아니었소이까?”
“아니었어요!”
“그거 이상하외다. 아까는 분명 소생 앞에서 스스럼없이 속살을 비추질 않나 마치 만져주길 바란다는 듯이 엉덩이를 내밀었던게 소민 낭자가 아니오?”
“그럴 의도는 전혀 없었습니다! 오해하시는거예요!”
우주는 입꼬리를 치켜올렸다.
“오해인지 진심인지 아랫입술을 만져보면 알것이오.”
“아, 아랫입술!?”
그때 소민의 겁먹은 시선에 문득 료코가 보였다. 그녀는 차와 과자를 쟁반에 들고 거실에 들어와 있었다.
소민이 냅다 그녀를 향해 소리쳤다.
“도, 도와주세요! 절 강간하려는것 같아요!”
하지만 료코는 시선을 바닥에 둔채 아무런 반응도 보이지 않았다. 그녀는 공손한 자세로 탁자 앞에서 무릎을 꿇더니 차와 과자를 조심스레 올려놓고는 말없이 일어섰다.
“(주인님 차와 과자를 가져왔사옵니다. 식기 전에 드시지요.)”
“내 지금 바쁘니 이따 먹겠다. 어여 가보거라.”
“어......?”
소민은 황당한 표정을 지었다. 알고보니 이 둘은 한패지 않은가!
“(좋은 시간 되시옵소서.)”
료코는 우주를 향해 정중히 고개를 숙인 뒤 뒷걸음질로 거실을 나갔다.
우주가 히죽 거렸다.
“이 집에서 우리를 방해할 사람은 아무도 없소.”
“미, 미쳤어요? 방해할 사람이 없다한들 당신은 공인이에요!”
“공인? 공인임을 따지기 전에 소민 낭자가 먼저 소생을 원하던 것 아니었소? 그렇지 않고서야 매일 집앞에서 기다렸을리도 없었을테고.”
우주는 다 안다는 표정으로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지금은 부끄러워 숨고 싶은가본데 걱정마시오. 내 곧 그 소원을 이루어주리다.”
우주의 음흉한 시선이 그녀의 목덜미를 지나 가슴으로 내려갔다.
“무, 무슨 생각하는거에요?”
“알면서 뭘 물어보시오.”
“제발 그만둬주세요! 제발!”
소민이 필사적으로 소리쳤지만 소용없었다.
우주의 오른손이 그녀의 티를 붙잡고 머리 위까지 걷어올렸다. 소민이 울부짖으며 몸부림을 쳤으나 두 손목을 우주에게 붙잡혀 소용이 없었다.
하얗고 탄력있는 두 봉우리를 보며 우주는 왠지 씁쓸한 미소를 지었다.
“음. 더 컸으면 좋았을텐데 아쉽소. 이건 마치 계란 후라이 두 개를 가슴 위에 얹저 놓은 것만 같소이다.”
“그러니까 안된다고 했는데! 아흐흑!”
소민은 치부를 보였다는 수치심에 결국 눈물을 터뜨렸다. 하지만 우주는 그에 상관하지 않고 유두에 입술을 가까이대며 말했다.
“그래도 사내대장부로서 여인의 맛은 많이 볼수록 좋소이다. 내 낭자 맛은 어떤지 좀 봐야겠소.”
우주는 선홍빛 유두를 입술로 물었다.
“허윽!”
소민이 순간적으로 흠칫 놀라며 몸을 뒤로 재꼈다. 이어 그가 유두를 혀로 핥더니 가볍게 깨물어주자 그녀는 몸을 부들부들 떨었다.
“쭈웁, 추루룹, 쭈웁.”
“흑. 흐흑...”
소민은 모든 것을 포기한것처럼 망연자실한 표정으로 훌쩍거리기만 했다.
“가시오.”
소민이 문득 정신차리고 보니 우주가 무표정으로 자신을 내려다 보며 서 있었다.
얼마나 지난 것일까.
잠시 넋이 나가 있었나보다.
그녀는 뺨을 만져보았다. 눈물자국이 남아있었다.
가슴을 만져보았다.
“아...!”
흥분은 남아 있었다.
“나쁜 자식!”
찰싹!
소민은 부끄러움을 감추기 위해 소파에서 일어나자마자 따귀를 때렸다.
우주는 고개가 살짝 돌아간 채로 한쪽 입꼬리를 올렸다.
“또 이런꼴을 당하고 싶거든 언제든지 찾아오시오. 단, 다음에는 가슴만으로 끝나진 않을게요.”
“으름장을 놓는다고 누가 무서워할줄 알아요?”
“지금도 괜찮다면야 어디 한번 해보십시다.”
“헛소리 집어치워요!”
소민은 매서운 눈빛으로 우주를 노려보더니 이윽고 문을 쾅 닫고 집을 나가버렸다.
============================ 작품 후기 ============================
월류진님께서 물으셨는데 이번에 찍은 방송분은 다음주 방영예정입니다. 글구 길게 써주신게 있는데 그렇게 깊이 생각은 안하려구요 요즘 어떤 소설을 지향할 것인가 나름 고민을 해보았는데 킬링타임용 소설이 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복잡하지 않고 설명도 간단하고 생각없이 가볍게 휙휙 넘겨볼 수 있는 그런 소설이요. 현실에서 일어나지 않을법한 막장도 간간이 섞구요. 이번화처럼.
그래서 소설을 쓸때마다 어떡하면 독자의 스트레스를 더 줄일 수 있을까하면서 떡밥은 길게 끌지않고 가능한 바로바로 풀어주고 인간사 복잡하게 꼬지않고 전문지식 쓸데없이 나열하지 않고 아무튼 그런식으로 염두해두고 써내려 나가는 중이예요.
물론 킬링타임용 소설이 과연 어떤 것인가는 아직 잘몰라요. 계속 연구중이라서 최근 제가 쓰는 분량에 답답해 하시는 독자분들 계실거예요 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