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0화
타이탄 고릴라가 가슴팍을 치는 잠깐의 시간동안 우주는 저멀리 강미라를 보고 있었다.
무전에서는 미라의 안전을 확인하는 목소리가 다급하게 들리고 있었다.
오른쪽 눈에 장착한 ‘웨어러블 글래스’ 가 땅바닥에 엎어져 있는 맹수를 센서로 관찰하며 곧바로 정보를 표시해주었다. 실선으로만 그려진 맹수의 그림이 표시되며 고장난 부위에 관해서는 붉은색으로 깜빡였다.
[악어팀-02 강미라 경상.]
[맹수-002 오른쪽 어깨 장갑 파손.]
[방패 사용불가.]
[정상작동율 90%]
우주는 알려진 정보를 토대로 무전기에 대고 말했다.
“악어 2는 무사하다. 서둘러 도착해 빠른 수리를 부탁한다. 이상.”
[악어7 수신양호. 지금 수리팀이 출발했다.]
[수신양호.]
우주는 무전을 마치고 나서 타이탄 고릴라를 바라보았다. 녀석은 자축 세레모니를 끝내고 바로 육박해왔다.
이에 우주는 한쪽 무릎을 끓고 빔 라이플을 쐈다. 보라색의 얇은 레이저가 화살처럼 직선으로 날아갔다.
타이탄 고릴라는 재빨리 옆으로 한 바퀴 굴러서 피하고는 가볍게 튀어 올랐다. 단숨에 우주와의 거리를 좁혔다. 육중한 덩치에 비해 그 속도는 가히 충격적이었다. 광속처럼 우주를 덮쳤다.
“후오후오후오!”
미라를 통해 방패가 무용지물이라는 것을 알게된 우주는 일말의 망설임도 없이 빔 라이플과 방패를 버린뒤 타이탄 고릴라와 양손을 맞잡고 깍지를 끼었다.
완력대결이었다.
맹수는 타이탄 고릴라와 거의 대등한 힘 겨루기를 했다.
[200% POWER]
[300% POWER]
[400% POWER]
[500% FULL POWER!]
[경고!]
[경고!]
[경고!]
맹수의 완력 수치가 한계에 도달하자 웨어러블 글래스에서 경고 박스가 대문짝만하게 떠서는 급하게 깜빡거렸다. 또한 맹수의 팔 장갑 부분에서는 흰 연기가 솟아오르며 기계타는 냄새까지 나는 것 같았다.
“기대 이하로군!”
우주는 혀를 찼다.
맹수를 가지고 이따위 호랑이급도 상대 못하다니!
이래서야 사탄을 어찌 잡겠는가!
“젠장!”
완력 대결은 포기해야만 했다. 이대로 계속 하다가는 맹수가 고장날것 같았다.
하지만 손가락 관절을 다 잡혀서 물러날 방법을 찾기는 쉽지않았다.
그래도 우주가 누구인가.
다 방법이 있다.
상대보다 낮은 완력은 기술로 극복하면 된다.
바로누우면서 메칠 생각에 유도 기술 중에 배대뒤치기(뒤로 넘어지며 발로 배를 차서 메치는 기술)를 하려던 찰나.
지잉, 지잉, 지잉!
갑작스럽게 빔 소리가 들려왔다.
“후오오옷! 후오오오옷!”
타이탄 고릴라가 괴성을 내지르며 깍지를 먼저 풀었다. 등에 빔을 맞자 모기 물린 것처럼 가려운지 마구 긁어대며 펄쩍펄쩍 날뛰었다.
“대장님 저희가 왔습니다!”
후방에서 10명의 동료들이 지원을 해왔다. 그리고 그들은 모두 빔 라이플을 소지하고 있었다.
빔 라이플은 탄환같은 투사체나 미사일 같은 발사체를 튕겨내는 사탄에게 대항하기 위해서 만들어진 무기였으며 제네틱스 내에서 악어팀에게만 유일하게 주어진 값비싼 총기였다.
◆
“미라 씨! 미라 씨!”
“일어나세요! 미라 씨!”
기절해있던 미라는 자신을 흔들며 깨우는 소리에 정신이 돌아왔다.
“으음......”
두 명의 남녀 정비사가 자신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으뜨뜨... 아우... 아파라...”
미라는 신음을 내며 천천히 몸을 일으켜 세웠다.
이후 정비사가 가져온 맹수 운반 차량(BTD1)에 올라가 바로 누우며 맹수의 착용을 해제했다.
푸쉬이이 하며 공기 빠지는 소리가 들렸다.
그녀는 다시 일어났다. 오렌지색 긴 머리카락에 몸매가 드러나는 슈트차림이었다.
차량 위에 서서 주변을 둘러보았다.
50미터 코앞에서, 거대한 짐승과 육중한 맹수가 열심히 치고박고 싸우는 중이었다.
“와우.”
우주와 타이탄 고릴라가 서로 얽혀서 땅바닥을 뒹구르고 있었다. 그 모습이 어찌나 멋지던지 미라는 그만 탄성을 질렀다.
그리고 10명의 악어팀원들이 조금 멀리 떨어진 곳에서 대기하며 관망 중이었다. 그들은 난투 중인 우주가 빔 라이플에 빗맞을까봐 그런지 공격도 못하고 발만 동동구르는 눈치였다.
“와... 대장님 멋지다.”
우주와 타이탄 고릴라는 점점 더 정신없이 싸우기 시작했다.
그리고 우주는 이윽고 완력보다는 오직 기술만으로 타이탄 고릴라를 짓누르며 올라타는데 성공했다. 그의 양손이 타이탄 고릴라의 목을 움켜쥐고 졸랐다.
하지만 금세 타이탄 고릴라의 주먹에 한대 맞고 우주가 저멀리 날아갔다.
그때 팀원들은 일제히 빔 라이플을 쏘기 시작했다.
화가 난 타이탄 고릴라가 그들에게 달려가려고 하자 우주는 재빨리 맹수의 손을 뻗어 손바닥에 장착된 로프건을 날려보냈다.
밧줄이 타이탄 고릴라의 발목을 휘감았다.
앞으로 쿵!
타이탄 고릴라가 고꾸라졌다. 기존에 사용하던 로프건과는 재질이 다른 특수 밧줄이었다.
“후오후오후오오!”
녀석은 이내 밧줄을 잡아당겼다. 우주가 대책없이 질질 끌려오며 동시에 팀원들의 사격도 멈췄다.
“안돼, 안돼...”
그러한 광경을 바라보던 미라는 내심 애가 탔다.
우주가 다치면 안된다. 자신이 일부러 일을 만든 것이 명확했지만 그것은 신우주가 다치면 안된다는 전제하에 벌인 일이었다. 그동안 동영상에서만 볼 수 있었던 우주의 활약을 두 눈으로 빨리 목격하고 싶었기에 그랬던 것이었다. 그러니까 그가 최선을 다하돼 다치는 것만큼은 결코 원치않았다.
만약 그가 죽는다면?
그녀는 갑자기 손이 부들부들 떨려왔다. 카트리지 벨트에 있는 주머니에서 정신병원에서 준 알약을 급히 찾았다.
물도 없이 꿀꺽 삼켰다.
강미라 라는 사람은 신우주가 나타나기 전과 나타난 후로 나뉘어진다.
우주가 나타나기 전의 미라는 사람들에게 온갖 멸시와 쓰레기 취급을 받으며 지내온 정신병자였다면 우주가 나타난 후의 미라는 정신이 조금 이상한 사람이긴 하지만 천재라서 그 실력이 아깝다로 평가되었다.
전에는 삶에 의욕없는 팔푼이었다면 지금은 우주가 하는 모든 것들을 따라하며 정상인 같은 흉내를 낼 수 있게 된것이었다.
그녀는 밤에 잠들기 전 우주와 관련된 동영상을 한 시간 정도 보고 자는게 정말로 좋았다. 그런 생활이 너무나 행복했다.
때문에 소라에게 영입 제의가 왔을때 그녀는 매우 기뻤고, 두말 않고 받아들였다.
당시 한소라가 물었다.
“우주 씨 팬이라는 정보가 있는데, 맞나요?”
“그건 어찌 아셨죠?”
“악어팀은 신우주의 팀입니다. 이왕이면 그를 좋아하는 사람들로 팀을 이루고 싶습니다. 그렇다보니 우리쪽 스카우터들을 통해 이것저것 들려오는 소리가 참 많습니다. 예를들면 미라 씨는 지난달, 신우주 스페셜 블루레이를 10장 넘게 샀다고 하더군요.”
“후후후. 부끄러워라.”
“부끄러울일은 없습니다. 당당해지세요.”
“그럴까요? 네, 사실입니다. 전 우주 씨를 너~무 좋아해요. 함께 일할 수 있다면 더할나위없는 영광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때의 한소라는 우주에게 호감을 갖는 인원들로만 베스트를 구성했다.
우주를 잘따르고 그가 시키면 불평불만없이 잘할 것 같은 인원만을 선발해서 지금의 악어팀을 만들어낸 것이다.
그리고 하나가 악어팀에 들어올 수 있었던 이유도, 제네틱스 측에서 그녀가 우주의 팬까페를 운영하고 있다는 사생활까지 알았기에 가능했던 것이다.
스펙이나 실력은 적당하면 그만이었다. 소라는 오직 우주가 무리없이 악어팀을 이끌어나갈 수 있도록 팀내 단결력만을 중요시 하고 인원을 선발해 대주주들에게 추천했다.
그러나 세상 이치라는게 열 길 물속보다 한 길 사람 속은 알기가 어렵다.
그토록 신중하게 악어팀을 구성했건만 그럼에도 엉뚱한 곳에서 예상치 못한 일이 터질줄 누가 알았으랴.
미라는 현장에서 1KM미터 떨어진 작전지휘차량에 도착했다. 그곳에는 맹수 수리를 위한 간이 자동화 설비가 갖추어져 있었다.
“빨리 서둘러줘.”
“예, 조금만 기다려주세요. 서둘러 끝내겠습니다.”
미라가 맹수 운반 차량과 함께 도착하자 하나는 이마에 땀을 뻘뻘 흘리면서 기계를 작동했다. 지난 한달간 배운 기억을 모두 되살려 그녀는 매우 진지한 눈빛으로 수리에 임했다.
제일 먼저 타이탄 고릴라에의해 찌그러진 방패를 수리햇다.
슈퍼형상기억합금. 약 500도씨의 열을 가하자 찌그러졌던 방패가 서서히 원형을 되찾았다.
마침내 새것처럼 복구가 완료되자 하나는 이어서 맹수의 어깨부분 장갑을 살펴보았다.
그을린 철판 냄새. 그 외에도 윤활유 냄새가 코를 찔렀다.
파손된 어깨부분 장갑을 교체해야될 것 같았다. 그래서 소음이 엄청났다. 전동드라이버가 쉴새없이 돌아가며 어깨부분 장갑에 박힌 나사를 풀며 장갑을 뜯어냈다.
헤진은 안을 살피며 신속하고도 정확하게 부품 교체에 최선을 다했다. 그녀 외에도 두 명 밖에 없는 정비사가 수리도구를 들고 바쁘게 맹수를 고쳤다.
“찬우야. 볼트 좀 줘.”
“여기.”
박찬우. 21살 하나와 동기면서 동갑이었다.
그가 하나을 알게 된 것은 8월 중순에 시작된 맹수 관련 정비 교육에서였다. 그때가 두 사람의 첫 만남이었다.
사실 찬우가 맹수 정비 교육을 받을 수 있었던 이유도 그가 개인 블로그를 운영하면서 우주에 관한 우호적인 게시물을 많이 올렸기 때문이었다.
그로 인해 제네틱스의 눈에 띄었고, 스카우터들에게 많은 점수를 받은 찬우는 악어팀에 무난히 합류할 수 있었다.
그후 3주간의 정비사 교육이 끝났을 무렵, 그는 함께 교육을 받던 하나에게 이성으로서 호감을 갖고 있었다.
그가 볼때 하나는 마음이 심약해보이는게 매력이었다. 매일 기가 센 여자들만 보아오던 그로서는 너무나 호감이 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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