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레지스트 쉴드-82화 (82/285)

82화

좌우간 우주는 다 재쳐두고 전방주둔지 내 천막술집을 찾았다. 오늘은 피곤했다. 그리고 팀원들간의 화합을 다지는게 먼저였다.

우주가 소주잔을 들고 일어섰다.

“난 우리 팀원들 하나하나가 다 좋소. 첫만남을 기리며 건배나 한번 합시다!”

“건배에!”

테이블마다 다섯명씩 옹기종기 모여앉은 사람들이 일제히 소주잔을 쭈욱 들이켰다.

우주는 머리 위로 잔을 털어내고는 입술을 닦았다. 머리위로 잔을 털어내는 것은 현주에게 배운 버릇이었다.

그는 기분 좋은 표정을 지었다.

“오늘 술값은 소생이 쏘겠소. 먹고 싶은거 있으면 마음껏 시켜드시오!”

“와아~!”

악어팀 일동은 술자리를 가진 30여분 만에 모두가 빨개진 얼굴로 계속 술잔을 기울였다.

타이탄 고릴라 이야기로 여기저기서 왁자지껄했다. 서로가 오늘 처음 만났음에도 그새 친해진 모양이다.

특히 우주는 전원에게 한 잔씩 돌리며 다시 받고 하다보니 제일 먼저 취기가 올라왔다.

“어이, 대장! 우린 사탄한테 언제 가는 거야?”

덮수룩하게 콧수염을 기른 30대 후반의 남자가 얼큰하게 취한 목소리로 물어왔다. 그는 오늘 팀내에서 정비차량을 몰았다.

우주는 그에게 잔을 따라주면서 금세 생각을 정리했다. 팀 사기를 위해서라도 가벼이 대답할 일은 아니었다.

그러나 분명히 밝혀둘 일이기도 했다.

“듣기로는 신라그룹이 벌써 사탄 공략을 시작했다고 하던데, 우린 우리 페이스대로 갈 생각이오. 다른이들이 나불대는 말은 듣지 마시오. 소생은 조금 더 팀웍을 다진 후에 시작하겠소.”

그 말에 털보 남자가 껄껄 크게 웃었다.

“우리 대장이 그렇게 한다면 따라야지!”

그리고 덧붙였다.

“하긴 그래. 우리가 걔들 신경 쓸것 없지! 우린 우리의 갈길을 가자구! 그 왜 마이웨이란 말있잖아? 앤드 나우~ 디 엔드 이즈 니어~♪”

남자가 되도않는 발음으로 프랭크 시나트라의 My Way를 부르자 주변에 앉아있던 팀원들이 한바탕 폭소를 터뜨렸다.

이후에도 모두가 흥겨워 하는 분위기 속에서, 우주는 남은 팀원들에게 마저 잔을 다 돌리고 제자리로 돌아와 앉았다. 한바퀴 돌고 오니 보통 취한게 아니었다.

소주잔으로 팀원들에게 술을 따라주면 팀원들은 그걸 받아 마시고 나서 다시 그에게 맥주와 소주를 섞은 폭탄주를 500ml 맥주잔에 한가득 따라주었다. 그렇게 받아 마신게 13잔이었다. 그러다 보니 제 몸 가누기 힘들정도로 상체를 비틀비틀 거렸다.

“허어, 취하는 구만. 딸꾹!”

좌우에는 미라와 하나가 앉아 있었다. 우주가 자리로 돌아와서 앉자 미라는 기다렸다는 듯이 소주병을 들었다.

“제 술도 받으세요.”

“좋소! 좋소이다. 우리 미라 낭자 것도 한 잔 받아나볼까!”

우주는 헤벌쭉한 얼굴로 혀꼬인 목소리를 냈다. 그는 과장된 몸짓으로 공손히 빈 소주잔을 들었다.

“황송하외다아.”

그때 하나가 끼어들었다.

그녀는 손을 뻗어서 우주의 소주잔을 막으며 단호하게 말했다.

“안돼요. 지금 우주 씨 취해서 더 마시면 안됩니다.”

“아니오 낭자. 돼써, 돼써, 돼써...”

우주는 고개도 제대로 가누지 못하고 힘없이 손을 휘저었다.

“가만있어요.”

하나가 그 손을 콱 잡으며 주의를 줬다.

그랬더니 우주는 ‘넷!’ 하고 크게 대답하더니 기합이 팍 든 이등병 마냥 차렷자세를 취했다.

“하, 하나 띠, 시례했슴다!”

평소에는 씨가 아닌 낭자라고 하더니 술에 취해 웃기고는 싶고, 정신이 어지간히 없는 모양이었다.

망가진 팀장의 모습을 본 팀원들이 모두 배꼽을 잡고 웃음을 터뜨렸다.

미라도 킥킥 거리면서 한동안 그를 귀엽다는 듯이 쳐다보다가 이내 하나에게 노골적으로 사악한 미소를 지었다.

“대장님께 술 한잔 드리고 싶었는데, 하나 씨가 막았으니 대신 마셔줄래요?”

“그러죠. 저한테 따라주세요.”

하나는 우주를 지켜주고 싶은 마음에 그랬으나 한편으로는 미라에게 지고 싶은 생각도 없었다. 어째서 그런 마음이 생겼는지 묻는다면 그건 아마도 그녀가 속한 무리 중에서 미라가 제일 아름다웠기 때문이었다.

어딜 가나 집단 내에서 예쁜 사람, 멋진 사람 하나씩은 꼭 있다. 그런 사람들은 동료의 지대한 관심을 받는다.

강미라가 그런 사람이었다. 강미라는 악어팀에서 가장 예뻤다. 그래서 유독 신경이 많이 쓰였다.

남자는 예쁜 여자를 좋아하지 않던가? 자칫 잘못했다간 신우주 또한 그녀에게 넘어갈지도 모른다는 경각심이 들었다. 따라서 그의 열혈팬을 자처하는 그녀로서는 강미라라는 암컷을 곱게 볼 수만은 없었다. 외모에서부터 미묘한 질투를 느꼈다.

“자요.”

하나는 자신의 소주잔을 내밀었다.

미라는 소주잔을 힐끗보며 피식 웃더니 이내 알바생을 불렀다.

“맥주잔 하나 갖다 줘요.”

알바생이 500ml 맥주잔을 가져왔다.

미라가 웃으며 맥주잔을 하나의 코앞에 놓았다.

“흑기사는 소주잔으론 어림도 없어요. 기왕하는거 맥주잔으로 마실 수 있죠?”

“......”

그녀의 말에 하나는 대놓고 인상을 썼다.

“마셔라! 마셔라, 마셔라!”

두 사람의 모습을 흥미진진하게 지켜본 남자들이 나란히 어깨동무를 하고 좌우로 몸을 흔들며 노래를 불러댔다.

하나는 힐끔 우주를 쳐다봤다.

“마셔라. 마셔라, 마셔라...”

팔꿈치를 테이블에 기댄 채 주먹을 움켜쥐고 힘없이 앞뒤로 흔들면서 덩달아 외치고 있었다. 분위기에 휩쓸려 그냥 따라서 하는 투다.

눈은 풀려가지고 초점도 없는 것이 상황파악이 안되는 것 같았다.

‘내가 우주 씨를 위해 흑기사까지 했다고 내일 꼭 말해줄테야.’

분위기가 달아오르다 보니 하나도 뺄 수 없었다.

소주잔을 내려놓고 맥주잔을 들었다.

내밀었다.

미라는 소주 한 병을 전부 따랐다. 그럼에도 많이 남았다. 소주 한 병을 더 시켜서 반 정도 부으니까 그제야 맥주잔이 가득 찼다.

“흑기사는 무조건 원샷이에요. 중간에 한 번이라도 쉬면 다시 만땅갑니다.”

하나는 조금 눈을 부라리며 미라를 노려봤다.

“저도 알아요.”

“술에 취해 모르는줄 알았죠.”

미라는 생긋 웃어 보였다. 그 미소가 보기 싫을 정도로 얄미웠다.

‘앙큼한년!’

어지간해선 욕을 안하는 그녀였는데 저도 모르게 그만 나와버렸다.

‘지지 않겠어!’

벌컥벌컥.

팀원들의 우레와 같은 갈채를 받으면서 하나는 맥주잔을 시원하게 쭈욱 들이키기 시작했다.

“잘 마시네!”

“우오, 멋지다!”

“다 마시면 신부 삼아줄게!”

“커읍...!”

하필이면 반정도 넘겼을때 소주가 목을 타고 도로 넘어왔다.

“콜록, 콜록!”

사래가 걸렸다.

미라가 흡족해하며 짝! 하고 박수를 한 번 쳤다.

“한 번 쉬었으니까 다시. 규칙은 규칙.”

그것처럼 듣기 싫은 말도 없었다.

“하아...”

하나는 절로 한숨이 흘러나왔다. 조금만 마신것 같은데도 짧은 사이에 취기가 금세 올라왔다.

그래도 당당한척, 아무렇지도 않은 척, 묵묵히 술잔을 내밀었다.

“다시 줘요.”

“네네. 여기 붓습니다.”

미라가 술을 따르는 와중에 이곳저곳에서 대신 흑기사를 해주겠다고 난리다.

“하나 씨! 힘들면 내가 흑기사 해줄게!”

“아니야 내가 해줄게! 대신 오늘밤 우리집 가서 자아~기!”

찬우가 걱정스러운 안색으로 하나에게 다가왔다.

“야, 그만해. 니 주량 빤히 아는데 뭔짓이냐 지금.”

“시끄러. 저리 가있어.”

완전히 취기가 오르자 하나는 오기가 생겼다. 이번에야말로 꼭 다 마시겠다고 필승을 다짐했다.

“오케이.”

미라가 맥주잔을 가득 채우자 하나는 바로 집어들고 벌컥벌컥 들이마셨다.

“우와! 대단해!”

“아이쿠 쑥숙 잘도 마시네!”

쾅!

이윽고 하나는 테이블 위에 빈 맥주잔을 세게 내려쳤다.

이번에야말로 기어코 다 마셨다.

사방에서 박수와 갈채가 터져나왔다. 남자들은 그녀를 보고 대단한 여자라며 추켜 세웠다.

하나는 눈이 핑돌았다.

“야, 너도 마셔. 너도 마셔어!”

혀꼬인 발음으로 미라에게 사정없이 손가락질을 해댔다.

미라가 피식 웃었다.

“후후, 오늘은 양보해줄게.”

그러더니 자리에서 일어났다.

“양보? 양보는 무슨 양보야!”

미라는 그녀를 무시하고 밖으로 향했다.

“야, 어디 까려꾸! 어디 까! 너도 마시라니까아!”

하나는 몸도 제대로 가누지 못했다. 몸집이 작아서 그런지 술도 바로 취했다. 그러다 언제 잠에 빠졌는지, 급기야 우주와 나란히 테이블에 엎어진 채 코를 골았다.

잠깐의 흥밋거리가 사라지고 나자 저마다 자리로 돌아가 다시 떠들썩해진 술집.

찬우는 엎어진 하나를 내려다 보며 측은한 마음이 앞섰다.

이어서 그의 시선은 나란히 엎어져있는 우주에게로 향했다. 그 눈길에는 화가 치밀어 있었다.

“대체 저 자식이 뭐가 좋아서!”

한 사람을 향한 애정바라기는 가슴 아픈 일이었다. 그에게 있어 짝사랑이란, 이별의 아픔보다도 더욱 크게 느껴졌다.

“모처럼 재밌었어.”

천막술집에서 나온 미라는 그렇게 중얼거렸다.

시간은 오전 9시. 언제나 그렇듯 이 시간의 전방주둔지는 고된 임무를 마치고 돌아온 수라들의 뒷풀이로 인해 광장은 상당히 퇴폐적이었다.

서로의 몸을 탐하며 키스하는 남녀, 여자들에게 작업거는 남자, 술에 취해 난동을 부리는 이들이 있는가 하면, 남들의 눈에 띄지 않는 구석진 곳은 이미 여러 커플로 들어차 후끈하게 달아올라있었다.

아마 일반인들이 이러한 실태를 목격한다면 믿었던 영웅들에게 단번에 실망할 것이다. 도덕과는 거리가 머니까 말이다.

하나 이는 어쩔 수 없다. 그들의 영웅들은 맨정신으로 레지스트 쉴드에서 버틸 수가 없었다. 목숨을 담보로 일하는 만큼 그에 준하는 즐거움도 필요했다.

물론, 모두가 다 그런 것은 아니었다. 나름 자기관리를 똑바로 하는 수라들은 임무를 마치고 바로 집으로 돌아가거나 술을 마셔도 적당한 수준에서 자기절제를 할줄 알았다.

하지만 그런 인원은 소수에 불과했다.

9월 중순이 되니 아침 날씨가 쌀쌀했다. 사복으로 갈아입은 미라는 어깨를 움츠리며 길을 걸었다.

그녀가 밖으로 나온 이유는 아쉬움을 달래기 위해서였다. 하나라는 존재만 없었으면 집에 돌아가기도 힘들어보이는 우주를 자신의 집으로 데려가서...

“하아!”

생각만 해도 신이났다.

왠지 모를 기대감에 눈을 한 번 꼬옥 감고 헤쭉 거렸다.

그리고 마음이 바뀌었다. 역시나 오늘이 기회인것 같았다. 두 번 다시 오기도 힘들 기회인데 하나에게 넘기기보단 자신이 주워가는게 좋을것 같았다.

“사실 그래서 먹인거잖아.”

방해물이었던 유하나는 진즉에 보내버렸다.

더는 방해할 사람도 없다.

빨리 차로 가서 약 봉지로 지저분한 차안을 정리한 뒤 술집으로 돌아가서 우주를 데려올 생각이었다.

그 들뜬 마음에 춤추는 듯한 가벼운 걸음걸이로 걷던 그녀였다.

갑자기 누군가와 어깨를 툭 부딪혔다.

“어이쿠!”

덩치 큰 사내와 부딪히는 바람에 그녀는 잠깐 비틀 거렸다.

쓰러지지 않도록 발에 힘을 주면서 고개를 돌렸다.

“뭐야? 뭘 꼬라봐?”

험악한 인상의 사내들이 네 명이나 있었다. 슈트의 색을 보아하니 모두 삼류 기업에 속한 다른 회사 사람들이다.

“죄송합니다.”

그녀는 지금 다른 일이 먼저이기에 생각에도 없던 말을 국어책을 읽듯이 순순히 꺼냈다.

얼른 우주를 데리러 갈 생각으로 그대로 쑥 지나치고 싶었다.

하지만 그들이 길을 막아 세웠다.

“뭐야 지금. 장난 하는 거야? 멋대로 부딪혀 놓고 그냥 가버리겠다구?”

미라와 부딪힌 남자는 짓궂은 미소를 지으면서 그렇게 말했다. 그리고 그의 동료들이 하나둘씩 그녀를 에워싸기 시작했다.

“어머? 뭐죠?”

미라는 영문을 모르겠다는 표정을 지으며 고개를 갸웃거렸다.

“어깨를 쳤으면 책임을 져야 할거 아냐. 안그래?”

“어떤식으로요?”

“그거야 하기 나름이지.”

남자들은 미라의 몸을 핥는 듯한 시선으로 바라보고 있었다. 참으로 음흉하기 그지 없었다.

“내 어깨가 무슨 봉도 아니고 장난해? 겁나 아파 죽겠네.”

“이봐 아가씨. 내 친구 어떡할거야?”

그들이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알것 같았다.

미라는 살며시 미소를 머금었다.

왠지 기분 나쁜 웃음이다.

큭큭 대며 웃더니 이내 요염한 미소를 띄우며 물었다.

“내가 어떡했으면 좋겠어요? 말해 봐요.”

애당초 그들에게서 술 냄새가 진동을 했다. 사실 맨정신에는 올바르다가도 술만 취하면 일반인 보다 강하다는 자부심과 자만심에 객기를 부리는 수라들이 종종 있었다. 더구나 오전 광장의 퇴폐적인 분위기 때문에 그 분위기를 타고 이렇게 개념을 상실하고 주폭을 부리는 수라들이 출몰하는 것은 비일비재한 일이었다.

하지만 솔직히 이러한 패거리가 나타나도 별로 걱정할 것은 없었다. 전방주둔지 내 치안대로 달려가서 신고만 하면 끝나는 일이었다.

그러나 강미라는 굳이 그렇게 하지 않았다.

구석진 장소로 그들을 순순히 따라갔다.

그리고 본색을 드러냈다.

“우후후후.”

“......?”

“뭐야 이년? 왜 처웃는거지?”

미라가 사악하게 입가를 일그러뜨리고 난뒤 얼마나 시간이 지났을까.

핏물에 젖은 바닥, 비가 주룩주룩 내린 것도 아닌데 그녀의 옷이 젖어버렸다.

“불쾌해 죽겠네. 빨리 갈아입어야 겠어.”

들고 있던 단검을 바닥에 내던졌다.

떠나기 전 주변을 둘러보았다.

그녀에게 사정없이 배를 찔린 사내들은 모두 바닥을 기어가며 고통을 호소하고 있었다.

꼴에 수라라고 아직 숨은 붙어 있었다.

그 모습이 너무나 재밌어서, 그녀는 좌우로 쭉 찢어진 미소를 지었다. 마치 영화 배트맨의 조커같은 웃음이었다.

“하하, 하하하!”

그녀가 현장을 떠난지 얼마 지나지 않아 그 부근 순찰을 돌던 헌병대에 의해 미라는 붙잡히고 바로 연행되었다.

전방주둔지 치안 담당은 군대에서 파견나온 ‘수라헌병대’가 맡고 있었다.

============================ 작품 후기 ============================

쿠폰 주신분들 코멘달아주신분들 추천주신분들 평점주신분들 모두모두 감사드립니다.

88회 코멘은 모두 봤어요!

그리고 오수연에 관해서 물어주셨는데 나올겁니다! 시기를 조율중인데 아직 나올때가 아니라 못넣고 있습니다! 아마 악어팀에 소속되려나..!?!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