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6화
그곳에 소민도 데려갔다.
주차장에 아반떼를 세웠다.
사이드브레이크를 올리고 조수석에 앉아있던 그녀를 쳐다봤다.
“하아......”
그녀에게 말을 붙이기도 전에 한숨이 절로 나왔다.
소민은 부들부들 떨고 있었다. 차밖에서 혹시 누군가 자신을 알아볼까 불안한 나머지, 들고있던 핸드백으로 코까지 가리며 두리번 두리번 눈동자를 굴렸다.
“정말 안 갈거요?”
“아, 안가요. 호, 혼자 갔다 오세요.”
“후우~”
우주는 애초에 우연진과 잘알지도 못한다. 그럼에도 굳이 장례식장까지 찾아온 이유는 소민 때문이었다.
대인기피증이 생긴 그녀를 괜히 건들어서 괴롭게 만들 생각은 없었지만, 최소한 사람으로서 도리는 지키게 하고 싶었다.
“데리고 있던 사람인데 마지막 가는 길은 봐야할것 아니오. 내일이 발인이라는데 오늘 밖에 없소이다.”
“시, 싫어! 싫단 말이에요!”
소민은 무서웠다. 우연진의 장례식장에 참석하고 싶은 마음이야 있었지만 장례식장 안을 가득 메우고 있을 인파를 생각하자니 두렵고 끔찍했다.
무슨 염치로 그곳을 가랴.
모두가 경멸에 찬 시선으로 자신을 바라볼 것이고 비난과 조롱을 보낼 것이다. 안 봐도 뻔했다. 지금 이 주차장에 있다는 것만으로도 숨이 막혀왔다. 뜨거운 태양볕 아래 넓은 광장에서 혼자 알몸으로 서있는 것 마냥 피 말라 죽을 것 같았다.
“호, 혼자, 빨리 갔다와요. 전 여기서 있을테니.”
그렇게 말하며 그녀는 검정 구두를 벗더니 검은색 스타킹을 신은 두 무릎을 감싸안았다. 절대 안 가겠다는 표시였다.
“......”
우주는 말없이 그녀를 훑어봤다. 장례식장에 오기 위해서 일부러 검은색 치마정장도 사다줬다. 료코의 도움으로 간신히 갈아입혔다.
“어쩔까... 어쩔까...”
핸들에 손가락을 까닥하며 잠시 궁리하던 그는 이내 운전석 문을 열고 밖으로 나와서 반대편 조수석으로 향했다.
그대로 차문을 열고 그녀를 억지로 잡고 끌어내려했다.
“갑시다!”
“아, 안가! 안간다구요. 에잇!”
“우웁!”
스타킹을 신은 발바닥으로 그의 얼굴을 짓눌렀다.
“우웁. 가잔말이옵! 우우웁!”
“안간다구요!”
퍽퍽!
두 발로 그의 얼굴이며 어깨를 걷어쳤다.
성질 같아서는 발을 확 잡아서 끌어내리려다 소민이 다칠 것 같아서 왠지 위험하고, 그래서 허리를 끌어 안을랬더니 그녀가 운전석 쪽으로 힘껏 기어서 도망쳤다.
그래도 겨우겨우 끌어내는가 싶었다.
하지만.
“아아아아!”
그녀가 사정없이 꼬집었다. 목이며 겨드랑이며 가장 아픈곳만 골라 있는대로 다 꼬집어댔다.
손이 어찌나 맵던지 수라도 아프다. 더욱이 손톱까지 기니까 손톱으로 긁기도 했다. 특히나 제일 중요했던 헤어스타일까지 손으로 짓뭉겠다. 남자는 머리빨. 우주에게 있어서 그것만은 절대 안되는 일이었다.
“헉, 헉...!”
머리가 더 망가지기 전에 일보 후퇴.
숨을 고르며 잠시 휴전.
둘이 옥신각신 하는 와중에 우주는 그녀에게 꼬집혀서 피부가 온통 새빨갰고, 소민은 치마가 무릎까지 벗겨지면서 파란색 팬티 위에 검은색 팬티스타킹을 입은 모습이 적나라하게 노출 되었다.
“환장하겠군.”
무엇보다 왁스로 살렸던 머리가 죽어버렸다.
우주는 혀를 끌끌차며 오른쪽 백미러를 보며 머리를 만졌다.
조금 짜증났다.
“데려가지 않을테니 조의금이나 주시오. 돈은 있소?”
구석 끝까지 가서 생쥐처럼 몸을 웅크리고 있던 그녀가 조금 훌쩍거리며 고개를 끄덕였다.
네발 아기처럼 살살 기어오더니 조수석 쪽에 있는 핸드백으로 조심스레 손을 뻗었다.
장지갑에서 현금 33만원을 꺼내 내밀었다. 그게 전재산이었다. 지갑이 텅비었다.
“혼자 갔다올테니 여기 꼭 계시오.”
“알았어요...”
우주는 돈을 받아 지갑에 챙겨 넣고는 돌아섰다.
곧바로 장례식장으로 향했다.
◆
신라병원 장례식장.
그 앞에는 일반인을 포함해서 취재진들이 진을 치고 서 있었다.
우주는 그 광경을 보며 소민을 데려오질 않길 정말로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녀의 마음을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았다.
또 김철수를 데려올걸 하고 후회했다. 철수는 최근 체중을 찌우면서까지 극성팬이나 기자들이 달려들때 뿌리치는 기술을 터득중이었다.
하지만 소민 때문에 일부러 그에게 연락을 안했다.
“저, 저기 봐! 저기! 우연진의 라이벌이었던 신우주다!”
“신우주가 왔어!”
“어디, 어디!”
찰칵, 찰칵! 찰칵, 찰칵! 찰칵, 찰칵! 찰칵, 찰칵! 찰칵, 찰칵! 찰칵, 찰칵! 찰칵, 찰칵!
플래쉬가 쉴틈도 없이 터졌다. 파리처럼 몰려드는 기자들로 인해 앞으로 나가기조차 어려웠다.
살아 생전의 우연진과 항시 비교되던 그였으니 이러한 뜨거운 관심이 당연한 결과였을지도 모른다.
“신우주 씨! 지금 심경이 어떠신지 소감 한 말씀 부탁합니다!”
“이제 한국 제일의 수라로서 독주를 달리게 될텐데 그에 관해 어찌 생각하십니까? 그리고 새로운 경쟁자가 나타날 것이라 보십니까?”
“우주 씨! 악어팀의 사탄 공략은 언제 이루어지는 겁니까?!”
우주는 난처했다. 이곳이 기자 회견장도 아닌데 장소에 맞지도 않은 별별 질문들이 이곳저곳에서 쏟아졌다.
자신이 찾아온것이 왠지 민폐처럼 느껴질정도였다.
“비키세요! 비키라구요!”
조폭처럼 체격도 크고 머리도 짧은 사내가 후다닥 계단을 뛰어내려왔다. 대략 키 190에 120kg은 되어보이는 그가 기자들을 이리저리 밀치면서 시원스레 바닷길을 열어주었다.
“고맙소.”
“헤헤, 뭘요.”
덩치 큰 그가 머리를 긁적이며 헤헷하고 부끄럽게 웃어보였다.
우주는 그의 호위로 무난히 장례식장 안으로 입성할 수 있었다.
여느 장례식장처럼 입구에 들어서면 상주명과 호실을 알려주는 전광판이 깜빡이고 있었다. 1이라는 번호가 붙은 방에 우연진의 빈소가 마련돼 있었다.
1번방 입구에 들어서자 100명은 족히 돼보이는 조문객들이 방석을 깔고 앉아서 밥을 퍼먹고 있었다. 익숙한 얼굴도 많았다. 신라그룹 수라, 연예계 가수, 연기자를 비롯해 CF감독 조현상과 경성의여무사 조현기 PD 도 보였다.
우주는 형제인 두 사람에게 다가가 꾸벅 인사를 건넸다.
“아, 왔어요?”
조현상 감독이 미소를 지으며 어깨를 두어 번 토닥거렸다.
옆에 있던 조현기 감독이 우주의 머리를 가리켰다.
“머리가 왜 그래. 자다왔나 왜 이리 눌렸어? 신우주는 조문오는데 자다왔다고 인터넷에 올라오면 어쩌려고 그랬어요. 더구나 우연진이랑 사이가 안좋았다는 소문도 많았는데 이런거 하나가 트집 거리라구.”
그의 말에 우주는 멋쩍게 웃어 넘겼다. 그리고 문득 소민을 떠올리며 아무도 모르게 주먹을 불끈 쥐었다.
“향 올리고 같이 먹자고, 우린 끝났으니 갔다와요.”
“알겠습니다.”
우주는 빈소가 차려진 방으로 향했다. 우연진의 가족과 친척들이 까만 상복을 입고 모여있었다. 곱게 늙으신 어머니 한 분이 눈에 눈물을 그렁그렁 맺힌 채로 그에게 다가와 두 손을 꼭 맞잡아 주었다.
“에구구. 고마워요. 우주 씨... 우리 아들 보러와줘서 정말로 고마워요. 흑흑......!”
“감사합니다. 감사해요...”
우연진의 누나도 네 살배기 여자아이의 손을 잡고 와서는 우주에게 연신 허리를 굽히며 감사를 표했다.
“아니외다. 당연히 와야했소......”
우주는 모녀 앞에서 마음이 숙연해졌다.
향을 올리고 두 번 절을 했다. 상주와 맞절을 하고 난 뒤 우주는 일어나 영정 사진을 보았다.
밝게 웃는 우연진의 모습.
한 번쯤 만나 술이라도 마실걸 그랬다고 문득 아쉬운 생각이 들었다.
비록 회사는 달랐지만 언제나 같은 장소에서 일했던 동료다. 그런 의미에서 우연진의 죽음은 우주에게 의미하는 바가 컸다.
“어쩌면 나도 언젠가...”
레지스트 쉴드.
인류에게 새로운 희망을 안겨다 주었지만 정작 수라에게는 최악의 장소일지도 모른다. 언제든지 비명횡사할 수 있는 위험천만한 곳이니까 당연했다.
그때였다.
‘장례식장 밥이 더럽게 맛없긴 하지만 많이 먹고 가 인마. 와줘서 고마워.’
가벼운 사람처럼 보이고 왠지 짓궂어보이는 목소리.
생전에 개구쟁이 같은 이미지의 우연진.
앞에 영정 사진은 그렇게 말하는 것만 같았다.
“드롭존에서 당신을 넘었으면 했었소. 하지만 이제 그런 기회가 없으니 매우 아쉽기만 하오. 우연진. 당신은 최고였소.”
우주는 따뜻한 미소로 대답하고 빈소를 나왔다.
조의금 넣는 곳을 찾아가서 봉투에 신우주와 한소민을 적고 각각 일천만원 수표와 33만원을 넣었다.
그런 뒤 조현상과 조현기를 찾았다.
사람도 참 많다.
북적거렸다.
우연진은 살아 생전에 덕망도 많이 쌓았나보다고 우주는 생각했다.
참고로 안에 들어오지 못하고 밖에서 우는 여고생 떼도 많았다.
그리고 그 와중에 복도 건너편 방에는 고스톱을 치며 웃고 떠들고 히히덕 대는 사람들도 있었다.
우주는 그런 모습을 보며 한편으로는 안심되었다. 우연진을 고이 떠나보내는 광경이라고 생각되어졌기 때문이다.
본래 한국의 장례문화는 우울하고 슬픈 것이 아니었다. 그가 살던 시대의 장례식은 시끄러운 축제 같았다.
온갖 종이꽃들로 가득히 장식된 화려한 꽃상여 하며 술이며 떡이며 잔칫상과 다름없는 제삿상에 왁자지껄한 사람들... 꽃상여를 멘 가마꾼들은 유가족들이 곡소리를 하는 가운데 돈을 더 달라며 심술궂게 굴기도 하고 보는 이들에게 웃음을 유발했다.
옛날 한국 사람들은 죽음은 완전한 소멸이 아니라, 또다른 시작이며 삶이요, 여행일 뿐이라고 생각했다. 사람이 죽었을때 ‘돌아가셨다’ 라고 하는 이유도 바로 있던데, 왔던데로 다시 갔다는 뜻이니 그만큼 즐거운 일이 없다고 생각했다.
“여어! 여기야! 여기!”
조현기 감독이 손을 흔들며 우주를 불렀다.
두 사람 주변에는 남녀 연기자들이 모여 앉아 있었는데, 감독들의 눈에 들 생각에 이런저런 소속사에서 일부러 그 옆에 앉힌 것이었다. 밥상을 사이에 두고 마주보며 앉아 있는 두 사람의 비위를 맞추며 시시껄렁한 이야기에도 하하호호 웃어주란 이야기다. 개중에는 최근 드라마 주연을 맡았던 여배우도 껴있었다.
“내 특별히 우주 씨를 위해 자리까지 맡아 뒀지!”
조현기 감독이 빈 방석을 팡팡 두드리며 호탕하게 웃었다.
“벌써 취하셨소?”
우주가 양반다리를 하고 그의 옆에 앉으며 웃음을 짓고 말했다. CF 감독 조현상과 경성의여무사 PD 조현기 둘다 얼굴이 벌갰다.
그가 앉으니 우연진의 사촌동생들이 재빨리 그에게 밥과 국, 수육을 갖다줬다. 사람이 너무 많아 일손이 부족한 나머지 친척들이 일손을 거들어주는 중이었다.
거기에 우주가 오자마자 여자 연기자들이 갑자기 조신해졌다.
모두가 신기해 하는 눈빛으로 그를 뚫어져라 쳐다봤다.
“아까운 놈 하나 갔으니 이처럼 슬픈 날이 어딨어? 제엔장. 슬퍼서라도 마셔야지!”
조현기 PD가 한숨을 푹 내쉬더니 종이로된 소주잔을 쭈욱 들이켰다. 우연진은 예전에 조현기와 드라마를 찍은 적이 있었다.
다 마시고 나서 여자 연기자중 하나가 조현기에게 즉시 소주를 따라주려고 했다.
그에 조현기가 손을 저었다.
“아냐 난 됐고. 자, 받어.”
조현기는 오히려 자신이 마시던 소주잔을 우주에게 건넸다.
우주는 두 손으로 급구 사양했다.
“차를 끌고 왔소.”
그 광경을 지켜보던 연기자들은 일제히 속으로 ‘큰일났다!’를 동시에 외쳤다. 왜냐하면 감독이 권해주는 술잔을 거부하다니, 드라마 그만 찍고 싶다는 말과도 일맥상통 했다.
그러나 우주는 연예계에 미련이 없는 사람이다. 그는 오로지 사탄 공략과, 마츠다이라를 죽이는 것과, 동생을 만나는 것만이 유일한 목표였다.
다시 한번 말하지만 그에게 있어서 연예계는 언제 그만두어도 좋을 부업일 따름이었다.
“차만 안 끌고 왔어도 마셨을 텐데 아쉽소이다.”
우주가 천진한 표정으로 웃어 보였다.
그에 조현기 감독은,
“아, 그래 그래! 차 끌고 왔다면 하는 수 없지!”
이해한다는 듯이 여러차례 고개를 끄덕였다.
술 좀 취한 것 같다.
그 앞에 앉은 조현상 감독이 말했다.
“저놈은 내동생이지만 술취하면 정말 못말려.”
남녀 연기자들은 숨죽이며 조현기의 눈치를 살폈다. 드라마에 갓 얼굴을 내민 신인이나 다름없는 우주가 무례하다면 무례하게 굴었으니 조현기 감독에게서 다음에 어떤 행동이 나올까 궁금했다. 조현기 감독은 분명히, 어떡해서든 그에게 화를 낼 것이 틀림없어 보였다.
쿵!
역시나 조현기가 밥상을 팔꿈치로 쳤다. 그 모습에 보고 있던 연기자들이 모두 어깨를 들썩이며 깜짝 놀랐다.
그는 팔을 기대고 술 취해서 흐릿한 눈빛으로 우주에게 얼굴을 들이 밀었다.
목소리를 깔고 의미심장하게 말했다.
“우주 씨. 내 다음 드라마에 주인공으로 쓰고 싶은데 말야. 생각 없을까? 여주인공은 김수희로 해주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