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8화
토크클럽을 종료한 우주는 인터넷 포털 사이트에 접속했다.
인터넷에서는 대인기피증 치료를 위해 종교를 믿어보라거나 정신병원에 입원시키라는, 또는 뜬금없이 자격증 학원 홍보가 나오는 등 허무맹랑한 답변들이 즐비했다.
‘이것 참 어렵군.’
인터넷에서 마땅한 답변을 찾지 못한 우주는 옛기억을 더듬어 한 정신과 전문의에게 전화를 걸었다.
“김선생. 소생 신우주요. 긴히 여쭤볼게 있어서 이렇게 연락 드렸소이다.”
일전에 차영웅의 고릴라팀이 전멸했을 당시, 정신적 공황상태를 겪었던 우주가 소라와 함께 만났던 정신과 의사였다.
우주는 그에게 제대로 된 상담을 받아볼 요령이었다.
“고맙소. 조만간 그 지인을 데리고 찾아가리다.”
30분 간에 걸친 통화가 끝이났다.
집에서도 환자의 상태가 호전될 수 있는 치료법에 관한 조언을 받기는 하였지만, 무엇보다 제일 좋은게 일단 병원부터 데려오란다. 자신이 직접 환자와 면담을 갖고 그 환자에 맞는 적절한 치료법을 강구해보겠다고 하였다.
진료비는 사진 찍어주는 대가로 안받는다고도 하였다. 우주와 함께 찍은 사진을 병원에 걸어놓을 생각인 것 같았다.
우주는 거실로 나왔다.
주방에는 료코와 소민이 마주보고 앉아서 점심을 먹는 중이었다. 소민이 집에 온지 3일도 채 안됐는데 두 사람은 벌써 친한 친구처럼 잘 어울려 지냈다. 특히 료코가 많이 즐거워했다. 그녀가 한소민을 대하는 모습은 전에 소라가 집으로 찾아왔을 때와는 아주 딴판이었다.
“식사 후에 나갑시다.”
“예? 어디로요...?”
주방에 들어온 우주가 하품을 하며 말하자, 소민은 덜컥 겁부터 집어 먹었다. 밖으로 나가자는 말만들어도 무서운 것 같았다.
“소민 낭자, 초등학교는 어디나왔소?”
“갑자기 초등학교는 왜요? 저 용신 초등학교요.”
서울 강남구에 있는 초등학교다.
“바람쐬러 거기나 다녀옵시다.”
그리고 료코를 쳐다봤다.
“(너도 같이 가자.)”
“(저도 갈까요?)”
“(응. 같이 가는게 낫겠다.)”
소민의 대인기피증이 저절로 극복되기를 마냥 기다릴 수만은 없었다. 하루 빨리 집에서 내보내야 했다.
우주는 조금전 정신과 전문의의 조언대로 그녀가 다시금 세상을 마주볼 수 있도록 하나하나 도와줄 계획이었다.
그래서 그녀에게 호기심을 갖기로 했다.
상대방에 대한 관심이 많은 대화를 만들어낸다고 했다. 소민이라는 사람은 과거 어떤 사람이었는지 그녀에게 묻고, 그녀를 차츰 알아갈수록 그녀는 마음의 안정을 찾게되고 닫혔던 벽이 다시 열리길 바랐다.
이른바 대화요법이다.
그 첫번째로 소민의 어린 시절을 찾아가볼 생각이었다. 초등학교를 다니던 시절의 소민은 어떤 아이였을까?
료코를 데리고 나간다고 하니 소민도 어쩔 수 없이 따라나왔다.
“가기 싫은데......”
감옥에라도 끌려 가는 것처럼 표정이 시무룩했다.
“막상 가보면 기분이 한결 나아질거요.”
우주는 화장을 하고 예쁘게 차려 입은 두 미인과 길을 나서니 왠지 모르게 마음이 들떠있었다.
지나가는 행인들에게 자랑하고 싶은 마음도 불쑥 들었으나, 어쩌랴. 자신을 포함해서 소민 또한 얼굴이 알려지면 안된다.
그래서 철두철미하게 변장을 했음은 물론이거니와 두 여성분에게는 커다란 선글라스와 챙모자를 쓰게했다.
“(매일 기모노 입은 모습만 보다가 그렇게 입으니 선녀가 따로 없군.)”
“(선녀라니요. 소녀 부끄럽사옵니다.)”
료코는 무척 기분이 좋은지 입이 귀에 걸려있었다.
집에서 항상 기모노나 츄리링만 입고 있는 료코만 보다가 한껏 차려입은 그녀를 보니 마음이 설레일정도로 색달라 보였다. 이렇게 보니 료코가 참 미인이구나 하는 생각도 들었다.
우주는 그 옆에 나란히 서 있던 소민을 쳐다봤다.
“낭자도 아름답소. 행여 지나가는 벌들이 꽃인줄 알고 달려들지나 않을까 걱정이외다.”
“풉.”
소민은 듣기 좋았는지 웃음을 머금었다.
물론 우주로서는 그녀의 치료를 위해서 한 사탕발림 말이었다.
“두 사람 여기서 기다리시오. 차를 가져오겠소.”
료코와 소민이 아파트 입구에서 기다리는 동안 우주는 주차장으로 향했다.
처음에는 곱게 차려 입은 두 숙녀분을 위해서 마이바흐62s를 꺼낼 생각이었지만 그는 순간 발걸음을 멈칫했다. 그 차는 소라에게 선물 받은 것이었다. 소라를 만나러 갈때만 타고 다녔으며 오직 그녀를 위해서만 모는 차였다. 그런데 다른 여자들을 그 차에 태운다면 소라에게 왠지 미안해질 것 같았다.
“역시 아반떼 밖에 없군.”
아반떼는 다른 장소에 주차되어 있었다. 차가 두 대다 보니 불편한게 그거였다. 두 차를 한 장소에 나란히 두기가 어려웠다. 심지어 전에는 날계란을 맞은 적도 있었다. 누군가 주차자리를 빼앗겼다다며 분풀이를 하고 간 모양이었다.
우주는 그 때문에 넓은 차고가 딸린 단독 주택으로 이사를 고민하기도 했었다. 하지만 이사 가자 이사 가자 하면서도 시간이 없어서 차일피일 미루기만 하고 있었다.
우주는 흰색 아반떼를 둘러보았다.
“좀 더러운가?”
이럴줄 알았으면 세차라도 해올걸 그랬다. 사방에 먼지가 좀 묻어 있었다.
차량용 먼지떨이개로 대충 스윽 닦아내는데, 문득 소라가 했던 말이 떠올랐다.
‘차는 비싼만큼 안전하다는 거 몰라요? 여자친구를 이런 똥차에 태우고 다니다 만약 사고라도 나면 어떡할거에요? 외제차를 사라고는 안합니다. 적어도 국산 고급차는 타고 다녀야 안전하지 않겠어요?’
“음......”
우주는 잠시 고민했다.
하긴 그렇다. 아반떼가 굳이 나쁘다는 것은 아니지만, 소중한 사람들의 안전을 위해서라도 자신이 버는 수입에 맞게 차를 타고 다니는 것 또한 나쁘지 않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소라가 탈 ‘소라 차’는 있으니, 료코가 탈 전용 ‘료코 차’를 두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료코와 쇼핑이나 드라이브를 갈때 타고 다닐 차 말이다.
“소라 차, 료코 차, 아반떼...”
그럼 차가 총 세 대가 된다. 그런데 세 대를 가지고 있으려면 마땅히 주차할만한 공간이 없다.
“주차 장소가 필요한데, 어쩔 수 없이 집을 사야 하나...”
이리하여 우주는 주차 공간이 딸린 새집을 알아보기로 마음 먹었다.
집 사는데 돈 문제는 딱히 상관없었다. 그는 벌기만 했지 돈을 굴리거나 쓰는 것에 그동안 인색해왔던 것이 사실이다.
그의 연봉이 현재 250억원이지만 세금을 제한 실 수령액은 160억원쯤된다. 게다가 주급이기에 매주 3억 3천만원 정도가 통장에 들어온다.
최근 CF와 드라마로 번돈까지 140억이나 고스란히 통장에 있었다.
“좋아, 간만에 통크게 써보지!”
우주는 주먹을 불끈 쥐었다. 새 차와 새 집을 살 생각을 하니 가슴이 두근두근 설레였다.
◆
쾌청한 가을 하늘.
시원한 바람이 도로를 스쳐가는 오후였다.
우주의 차는 어느 학교 앞에서 멈추어 섰다.
“여기가 맞소?”
“네......”
소민의 표정이 시무룩했다. 교문에는 용신초등학교라고 써 있었다. 소민이 다닌 초등학교였다.
“저도 나가야 하나요? 저는 차 안에 있으면 안되요?”
“꼭 같이 가야하오. 오랜만에 왔는데 옛기억도 떠올릴겸 좀 둘러나보다 갑시다.”
우주는 료코와 소민을 교문 앞에 내려주고 주차할 장소를 찾았다.
마땅히 주차할 만한 곳이 없어서 학교 뒤편에 있는 유료 주차장에 주차를 했다.
학교로 통하는 길을 혼자 걸어 올라갔다.
교문에서 기다리고 있던 그녀들과 만났다.
운동장에는 축구하는 아이들을 제외하고 아무도 없었다.
우주는 교내 건물들을 둘러보았다.
“증축이 되었는지 건물들이 다 새거처럼 보이는군.{”
“제가 다닐때 없던 건물들도 있네요.”
소민은 기억을 더듬어 앞장서 걸어갔다.
한 건물 앞에서더니 올려다 보았다. 강당으로 쓰여도 좋을만큼 크고 널따란 건물이었다.
“우리때는 없었는데 새로 지은거네요.”
우주는 입구 우측에 세로로 걸린 나무문패를 가리켰다.
“저기 보니 한자로 용신체육관이라고 써있구려.”
“저도 알아요. 근데 우린 다 밖에서만 체육했는데 지금 다니는 애들은 실내 체육관도 생기고 좋겠다.”
“학생들이 좋아들 하겠구만. 비가와도 걱정없겠소.”
“다 좋아하기보단 싫어하는 학생들도 더러 있을 것 같아요.”
“실내 체육관이 있으면 비도 안맞고 좋은데 싫어할 리가 있겠소?”
“제 경우엔 체육 수업이 껴있는 날엔 비오기만을 손꼽아 기다렸어요.”
“밖에 나가기 싫어서?”
“네. 체육시간에 밖에 안나가도 되니까요. 비오면 늘 교실에서 자습했거든요. 그게 제일 좋았어요.”
“그랬군.”
우주는 살짝 입꼬리를 올리며 옅은 웃음을 지었다.
체육관 건물을 보며 말했다.
“마치 대학교에서나 볼법한 건물이오. 초등학교에 있는것치곤 으리으리 하게 생겼군.”
“그러게요. 요즘은 초등학교도 시설이 좋네요.”
소민은 다시 앞장 서며 우주와 료코에게 손짓했다.
“이만 가요. 다음 장소로.”
그녀는 우주와 료코를 안내하면서 점점 말이 많아지기 시작했다. 추억들은 조금의 틈이라도 있으면 그 틈을 비집고 줄줄이 뛰쳐나왔다.
“예전에는 이 건물도 없었는데 새로 생겼네요. 뭐하는 건물이지? 아, 연구실. 교사 연구실인가보네.”
학교에는 사육장도 있었다. 그녀는 초등학생 시절을 떠올리며 웃음을 지었다.
“그때 비둘기가 알을 낳았는데 말이죠. 제가 그걸 수위 아저씨 몰래 두 개 집어서 집으로 가져 간거에요. 그런데 몇날며칠을 기다려도 알이 부화할 생각을 안하드라구요. 그래서 혹시나 하고 깨뜨려봤더니, 아~ 이게 뭐야. 다 썩었어~”
소민은 마치 옛날로 돌아간 것처럼 몰입해 있었다. 그 시절의 기억이 요전날의 일처럼 또렷하게 떠오른 것 같았다. 찡그리는 그 표정이 현실감 있었다.
그녀는 또 500년은 살았을법한 굵은 나무 기둥을 가리켰다.
“여기 봐요 여기 봐. 이건 제가 했던 낙서에요. 아직도 있으니까 신기하다.”
그 후에도 그녀는 계속 싱글거리며 학교 안을 둘러보았다. 마음이 무척이나 들떠 있었다. 무언가 신비한 기분이 그녀를 감싸고 있었다.
“여기에서 친구랑 앉아 같이 점심을 먹고 있었는데, 어떤 남자애가 다가온거예요. 전 그것도 모르고 먹기 싫은 반찬을 젓가락으로 집어서 옆으로 던졌는데, 푸훕. 그만 그남자애 옷에 묻어버렸지 뭐예요. 그때 얼마나 미안하던지.”
“그 남학생이 화는 안냈소?”
“화요? 안내더라구요. 오히려 괜찮다면서 저한테 편지를 주고 가던데요?”
“편지? 왠 편지요?”
소민은 즐거운 얼굴로 벙긋 벙긋 입모양으로 말했다.
“러. 브. 레. 터.”
“오, 이런. 좋았겠소!”
우주에게 있어서 그녀의 이런 모습은 정말로 다행이었다. 초등학교 시절은 좋은 추억만 갖고 있구나 하는 생각이 들며, 가을 해 지는 노을녘 해안을 홀로 걷는 사람의 기분처럼 소민도 여유를 되찾고 그녀에게 힐링이 되길 바랐다.
이윽고 세 사람은 교내를 한바퀴 돌아보고 나서 운동장에서 그네를 탔다. 우주는 료코와 소민을 번갈아가며 그녀들의 등을 떠밀어주었다.
“초등학교 시절 좋아했던 사람은 없었소?”
소민은 저멀리 6학년 교실이 있는 건물을 바라보며 흐뭇한 미소를 지었다.
“좋아하기는요. 반대로 절 좋아하는 사람이 많았죠. 6학년때 제가 인기가 얼마나 많았다구요.”
“거짓말 하면 더 쎄게 밀거요.”
“안 믿겨요?”
“말로는 다들 잘나가더이다.”
“힝, 진짠데.”
지금의 소민에게는 우주가 짓궂게 말해도 그것을 받아주는 여유가 있어보였다.
“하루는 한 남자애가 쉬는 시간에 교탁 앞에 서서 이러는거예요. ‘야, 한소민! 나 너 좋아한다!’ 라고 하는거 있죠. 교실에 친구들도 다 있는데 그때 얼마나 창피했는줄 알아요?”
“좋은게 아니고 창피했단 말이오?”
“어려서 그런지 아님 걜 안좋아해서 그런지, 좋다기 보단 창피하더라구요.”
“아무리 그래도 사람 많은 곳에서 고백하는 그 용기를 난 칭찬해주고 싶소. 열혈남아가 따로 없구만. 그래서 받아주었소?”
“받아주긴요. 그런식으로 고백했던 남자애들이 스무명이나 더 있었다고 생각해봐요. 그게 먹히기나 하겠어요? 심지어 어떤 남자애는 전교생이 모인 조회시간에 학교 건물 옥상에 올라가서 교장 선생님이며 선생님 다 있는 곳에서 ‘야아~! 한소민 사랑해~!’ 라고 고백했던적도 있었다구요.”
우주는 돌연 그네 미는 것을 멈추었다.
그녀의 말이 허무맹랑해보였는지 짓궂게 말했다.
“저기, 우리가 모른다고 자꾸 거짓을 남발하면 료코랑 확 가버리는 수가 있소. 집까지 혼자서 걸어와볼테요?”
소민이 인상을 찡그렸다.
“진짜라니까요. 거짓말 아니에요.”
“증거를 가져와보시오. 증거를.”
“몇년도 더 지난 일인데 증거가 어딨다고 그래요.”
“그러니 어케 믿겠소. 만약 낭자 말이 사실이라면 소생을 좋아했던 처자들은 저어기 백두산까지 줄을 섰었소이다. 에헴.”
“에잇, 진짜.”
답답했던 소민은 그 즉시 그네에서 휙 뛰어내리더니 토라진 얼굴로 우주를 막 때리려고 했다.
“거기서요! 거기서!”
“서란다고 서면 그게 바보지 뭐요!”
우주는 신나게 웃으며 계속 도망다녔고 소민은 짐짓 울상을 지으면서 그를 쫓아다녔다. 쫓고 쫓기는 두 사람의 모습은 마치 어린시절 순수한 아이들 같았다.
“어허, 너 소민이 아니냐?”
갑자기 소민의 청각을 자극하는 노인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익숙한 목소리. 우주를 쫓던 그녀가 눈을 동그랗게 뜨며 뒤돌아보았다.
등이 구부정한 채 흰머리에 주름진 노인이 서 있었다.
“서, 선생님!”
“에고, 이 녀석! 맞구나 맞아! 아니 여긴 어쩐일이냐!”
소민이 초등학생 시절 담임 선생님이었다. 지금은 교장 선생님이 되었단다.
“그간 별고 없으셨어요?”
“그럼. 시간의 무게에 못이겨 허리가 약간 구부러지긴 했다만, 그것 말고는 별탈 없단다. 그래 혜숙이랑 민선이랑은 아직도 연락하고 지내는 게냐?”
“네. 혜숙이는 여전히 이 주변에 살아요. 근데 민선이는 작년에 미국으로 이민갔어요.”
소민이 옛스승과의 뭉클한 해후의 시간을 갖는동안 우주는 료코에게로 돌아왔다.
그녀의 그네를 차분히 밀어주며 멀리 서 있는 두 사람을 흐뭇하게 쳐다봤다.
“(다행이군. 우리 말고도 다른 사람과 이야기를 할 수 있어서.)”
“(그러게 말이옵니다.)”
우주는 그네를 멈춰세우고 두 손을 료코의 양어깨에 짚었다.
“(한국말이 서툴러 대화에 끼기 힘들었지?)”
“(아니옵니다. 두 분의 즐거운 표정을 보고 있노라면 저 또한 즐거웠습니다.)”
우주는 천천히 고개를 끄덕인 후 소민이 타던 그네에 다가가 앉았다.
“(생리는 아직 안오고 있지?)”
“(예. 소식이 없사옵니다.)”
“(혹시 임신이 아닐까?)”
료코는 조용히 침을 삼킨 뒤 살짝 고개를 숙였다.
“(글쎄요. 지난달에도 그래서......)”
지난달은 우주가 드롭존에서 폭발 사건에 휘말린데다가 하시도루의 부하가 찾아왔던 까닭에 료코의 스트레스가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그 때문인지 생리가 오지 않았었다.
료코는 시선을 낮춘채 조심스레 말을 꺼냈다.
“(소녀. 주인님께 한 가지 여쭤보고 싶은게 있사옵니다. 들어주시겠습니까?)”
“(응, 뭔데.)”
고개를 깊게 숙인 그녀의 가냘픈 어깨가 파리하게 떨리는 것이, 왠지 우주의 눈에 아프게 파고들었다. 그 모습으로 보아 상당히 중요한 이야기인 것만은 틀림없었다.
감으로 알아챌 수 있었다.
료코가 천천히 고개를 들었다. 두 눈동자에는 눈물이 고일락말락했다.
“(소녀와 정말로 아기를 갖고 싶으신 것이옵니까?)”
“(당연하......)”
료코는 대뜸 그의 말을 가로막으며 말했다.
“(소녀. 주인님의 소중한 동료를 살해한 적이 있사옵니다. 그런데도 소녀와 아기를 낳고 싶사옵니까?)”
우주는 순간 절벽아래로 추락하는 기분을 느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