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레지스트 쉴드-95화 (95/285)

95화

왜냐하면 전신에 신비로운 기운이 감돌고 있었다. 가슴속에 스며든 무한한 에너지가 아지랑이처럼 그의 몸밖으로 발산되고 있었다.

이어서 전광석화.

미라의 좌우에 있던 사탄들이 미처 피할 사이도 없이, 그의 양손이 제각각 사탄의 심장에 파고들었다. 아주 간단했다. 분명 그가 하는 동작이 쉬운일이 아님에도 사탄들이 그저 가만히 당해주는 것처럼 보였다.

이렇다할 화려함도 없고 치열함도 없었다.

손만 뻗으면 사탄이 알아서 죽어버리니 참으로 간단명료해보였다.

“역시 대단해...! 나 같은게 감히 넘볼 수 있는 존재가 아니야!”

미라의 두 눈에는 사랑과 존경의 빛이 서렸다. 그에게 홀린 듯 넋이 나가있었다.

“한서방!”

미라쪽에 있던 우주가 허리를 틀며 저쪽 성일에게 붙어있는 사탄을 향해 빔 라이플을 쐈다.

빔이 사탄 세 마리의 얼굴을 때렸다. 따귀를 얻어맞은 듯 세 마리가 옆으로 몇발짝 움직이며 몸을 비틀거렸다.

그 틈에 우주는 하늘 높이 뛰어 올랐다.

눈으로 포착할 수 있는 그런 움직임이 아니었다. 사탄 세 마리 뒤로 착지하자마자 제일 가까운 한 마리에게 손을 뻗었다. 심장을 움켜쥐었다. 잡아뗐다. 녀석은 입으로 폭포수 같은 피를 흩뿌리며 이내 쓰러졌다.

실로 신기에 가까운 몸놀림과 힘이었다. 막내가 준 이 힘만 있다면 레지스트 쉴드를 내 집 안방드나들 듯이 드나들고 모든 돌연변이 생물을 단숨에 정복할 수 있을 것만 같았다.

하지만 지속적으로 쓸수 있는 힘이 아니었으니 우주는 서둘렀다. 지난번 홀로 사탄을 잡았을때도 그랬듯이 한순간 위기를 모면하고 나면 금세 사라질 힘이라는 것을 직감했다.

촤아악!

마치 폭포수가 떨어져 내리는 시원한 소리처럼 마지막으로 남아 있던 사탄의 앞가슴에 핏물이 뿜어져 나왔다.

마지막 남은 사탄을 처리하면서 그렇게 상황이 끝이났다.

칼날 같은 기세는 뭐라고 설명할 수 없을 정도로 단순하고 정확했으며 군더더기 없었다.

우주는 숨이 가쁜지 헉헉 대며 저 멀리 상공을 바라보았다. 밤하늘 별처럼 아주 밝게 빛나는 세이비어. 언젠가 저곳에 꼭 다다르겠다고 다짐하면서 말했다.

“고맙다 막내야.”

우주가 그렇게 중얼거리자, 그에 호응하듯 세이비어의 빛이 점점 약해지고 어마어마했던 힘이 한순간 몸밖으로 빠져나가버렸다.

잠시 후 무전기에 대고 말했다.

“악어 1로부터 모두에게. 상황 종료. 후방에 있는 정비조는 사탄의 사체를 실을 수거 차량을 가져오도록 하고 지원조는 즉시 신호탄을 발사하라.”

***

밤하늘. 녹색 신호탄이 상공 높이 떠올랐다.

악어팀과 10km 떨어진 장소에서 대기중이던 제네틱스 1개 팀이 그것을 발견하고는 팀장의 지시에 의해 서둘러 녹색신호탄을 발사했다.

레지스트 쉴드는 자기장의 변화가 심한곳으로서, 특수 개발된 중계탑이 없는 한 원거리 통신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는다.

곳곳에서 대기하고 있던 제네틱스 팀에 의해 녹색 신호탄은 연이어 솟구치며 마침내 전방주둔지까지 도달했다.

악어팀의 사탄 공략 소식은 즉시 청와대로까지 보고가 되었다.

새벽에 자고 있던 이세종 대통령은 비서실장으로부터 걸려온 전화에 화들짝 놀랐다.

“뭐라고?! 그것이 참말인가! 지난번 신라그룹처럼 거짓이 아니고?”

[우리 수라요원을 직접 레지스트 쉴드에 투입시켜 확인을 해보았습니다. 확실합니다. 사탄을 잡은 사진을 보내드리겠습니다. 확인해보십시오.]

그야말로 대단한 소식이었다. 전세계 최초로 한국에서 사탄을 잡아냈다는 사실은 이 글로벌한 시대에 엄청난 방향을 불러일으킬만한 획기적인 사건이었다.

무엇보다 한국의 대통령으로서, 앞으로 사탄이 우리나라에 가져다줄 이익이 눈앞에 아른거렸다.

그런 생각이 들자 곧바로 비서실장을 시켜 참모진과 장관들을 서둘러 소집시켰다.

각 방송사는 새벽 1시부터 특집 뉴스를 편성했다. 신우주의 그간 활약상을 담은 영상을 보여주는가하면, 악어팀 전원의 프로필과 행적들을 차례차례 소개하기도 했다.

또한 각계각층의 전문가들이 나와서, 앞으로 한국은 21세기 최고의 국가 경쟁력을 갖추게 되었으며 글로벌 리더로서 세계를 이끌게 되었다고 자평하기도 했다.

“비켜주세요 자리 좀 잡읍시다!”

전방주둔지 넓은 광장에는 실로 오랜만에 기자들과 일반인들의 출입이 허락되었다. 한국 언론을 비롯해 미국 AP통신과 CNN, 중국 신화통신, 영국 BBC, 일본 교도통신 등 16개국 83개 매체 외신기자가 몰려들었고, 서울 시립교향악단 및 서울 각 대학에서 모집된 여대생 100명이 각자 한복을 입고 축하 플랜카드를 든 채 복귀하는 악어팀을 맞이할 준비를 하고 있었다.

이세종 대통령은 각 참모진과 장관들을 데리고 전방주둔지에 도착했다.

많은 사람들에게 둘러쌓인채 넓은 광장으로 걸어나오자, 사전에 연락을 받고 기다리고 있던 한소라가 회사 관계자들을 대동하고 다가와 반갑게 웃어보였다.

“축하해주시러 직접 와주시다니 영광입니다. 대통령님.”

“자네 기업이 정말로 대단한 일을 해냈구만. 축하한다네.”

이세종 대통령과 소라는 레지스트 쉴드로 향하는 커다란 게이트 앞으로 나와 있었다. 주변에서는 취재진들의 카메라가 쉴새없이 터지며 두 사람의 모습을 담고 있었다.

“저기 온다!”

이윽고 악어팀의 차량이 게이트를 통과해 줄줄이 모습을 드러내자 환영인파는 열렬한 환호를 보냈다.

차에서 내린 우주와 악어팀 전원은 어안이 벙벙했지만 미리 연락을 받은 상태였다.

이세종 대통령과 소라가 앞으로 나와 우주와 팀원들에게 차례차례 악수를 건넸다.

“자네가 신우주군인가. 정말로 고맙다네.”

“대통령님의 용안을 직접 뵙게 될줄이야 크게 놀랐사옵니다.”

우주는 조선시대 임금님을 대하는 것처럼 엎드려 절까지 하려 했다.

그에 대통령 비서진들이 황급히 말리며 악수만으로 족하다고 귀띔을 했다.

이세종 대통령이 옆으로 이동하고 다음으로 소라와 악수를 나누었다.

“걱정을 많이했는데 살아돌아와서 정말로 기뻐요.”

“덕분이오. 좋은 결과가 나와서 다행이외다.”

이후 악어팀 전원은 취재진 앞에 섰다.

모두가 심신이 피로하기에 그리 길게 끌수는 없었고, 팀장인 우주만 나서서 소감을 밝혔다.

“우리 악어팀이 첫임무부터 사탄을 공략하게 되리라고는 전혀 생각도 못하였소. 소생과 팀원들은 이게 전부 국민 여러분의 응원 덕분이라고 생각한다오. (중략) 마지막으로 이번 임무를 위하여 물심양면 지원을 아낌없이 해주신 제네틱스 한소라 본부장님과 이하 임직원 일동에게 깊은 감사를 드리오.”

5분간의 짧은 소감이 끝난 뒤에는 25명의 악어팀 전원을 가운데 두고 이세종 대통령과 한소라가 가운데 서며 취재진들을 향해 포즈를 취했다.

그때 일부 시민들이 악어팀을 더욱 가까이 보기 위해 다가가면서 취재진의 포토라인 일부가 무너지기도 했지만 경호원들이 후다닥 뛰어가 그들을 막아세웠다.

그렇게 공식적인 환대행사는 끝이났고, 내일부터 당장 서울 카퍼레이드를 시작으로 전국의 도시를 순회하기로 일정을 잡았다. 악어팀은 그야말로 개선장군·금의환향이 따로 없었다.

환대행사가 끝난 뒤에는 악어팀 전원 연봉협상을 진행하였다. 인파속에 파묻혀있던 김철수가 어느샌가 다가와 우주 옆에 찰싹 달라붙었다. 그는 새로 고용한 변호사까지 데리고 왔다.

“이번에 최소 500억 이상 부를테니 저만 믿으세요. 사탄 공략한게 어딘데 지들이 안주고 베기겠어요?”

참고로 우주의 연봉이 오르면 김철수의 연봉도 함께 오른다. 철수는 현재 10억을 받고 있었다.

사탄의 사체를 꼼꼼이 분석하고 임무에서 사용한 장비 및 슈트에 부착된 카메라를 확인한 검시관은 팀원 간 진술을 토대로 악어팀의 연봉을 측정하고 제시하였다.

그에 철수는 마음에 안든다는 표정으로 연신 고개를 저으며 ‘그건 안됩니다’ 라고 하더니, 변호사를 데리고 담배를 태우며 잠시 의논을 했다.

그 틈을 타 검시관은 급히 소라에게 전화를 걸었다.

“본부장님. 자칫하다간 이, 이천억이 넘어가게 생겼습니다. 네, 네.”

나라가 축제처럼 들뜬 분위기라고 해서 되는대로 막 퍼줬다가는 다음에 우주와 재계약할때가 문제였다. 지금의 2천억이 다음에 3천억이 될지도 모른다. 더욱이 재계약이 일년도 채 안남은 상황이다.

“음, 그의 매니저가 그랬단 말이죠.”

전방주둔지에 세워진 제네틱스 건물에서 우주를 기다리던 소라는 잠깐 고민을 했다. 개인적으로 볼때 그가 돈을 많이 받으면 당연히 좋은 것이고, 반면에 경영자의 입장에서 그의 몸값이 높아지면 부담이 되는 것이 사실이었다.

그러나 소라의 고민은 그리 오래가지 않았다.

우주가 제네틱스에 기생하는 다코오 가문을 몰아내고 싶어한다는 것을 누구보다 잘알고 있는 그녀였다. 그렇기에 제네틱스를 점점 잠식해갈 수 있도록 그에게 스톡옵션을 붙여줄 계획이었다. 그럼 덩달아 회사의 재정 부담도 덜해지며 우주에게 자사의 주식을 시세보다 훨씬 낮은 가격으로 매입할 수 있는 권리를 이 기회를 빌미로 제공해줄 생각이었다.

사탄까지 잡아냈으니 누구도 반발할 수 없을 정도로 명분은 타당했다.

“제네틱스 인터내셔널 신주를 발행합시다.”

그와 함께 우주의 연봉 또한 900억으로 대폭 상승했다.

나중에 소라가 소집한 주주총회의 특별결의를 거쳐 우주는 제네틱스 그룹의 자회사인 제네틱스 화학이 신규 발행한 주식을 사들여 1%를 가진 주주가 되었다.

주주들은 우주가 많은 지분을 확보하는데 있어 불만은 없었다. 그가 사탄을 잡은 이상 제네틱스에 계속 남아있어야 그들에게도 돌아올 이익이 커진다.

참고로 그룹의 심장부인 제네틱스 인터내셔널 지분은 한규만 회장이 20%로 최대 주주이고 한소라가 10%를 보유하고 있었다. 그외 한규만 회장의 일가친척 및 우호세력이 가진 지분 비중이 25%를 차지했다.

덧붙여 다코오 가문은 5%를 소유하고 있었다.

***

러시아의 수도 모스크바.

크렘린궁 대통령 집무실.

우주가 사탄을 잡아낸 당일 아침.

보리스 대통령은 참모진을 통해 한국의 신우주에 관한 소식을 접했다.

“{믿기가 어렵군!}”

레지스트 쉴드에서 자원을 채취하는 한, 중, 러 3국 중에서 누구보다도 가장 먼저 사탄을 잡아내고자했던 러시아로서는 땅을 치며 통탄할 일이었다.

그리고 아침 일찍 그를 대통령으로 만들어준 푸틴 총리에게서 전화가왔다. 전대 대통령을 지낸 푸틴은 지금은 비록 총리였지만 그의 상관이나 다름없었고, 뒤에서 러시아를 이끄는 실질적인 실세였다.

[오늘 TV에 나온 신우주라는 친구, 한번 만나보고 싶군요.]

푸틴은 차분하게 그 한마디만 딱 내뱉고 바로 전화를 끊었다.

별거 아닌 말 같았지만 실은 그 한마디에 함축적인 의미가 담겨있었다.

우주를 러시아로 납치해오란 소리였다.

러시아로 납치해서, 수년 간의 교육과 세뇌를 거쳐 그에게 러시아 부인을 소개시켜주고 그를 완전히 러시아인으로 만들자는 것이었다. 그런 뒤 레지스트 쉴드로 보내서 사탄을 잡자는 의도다.

“{서둘러 진행해야겠어.}”

보리스 대통령은 전화를 끊자마자 러시아 해외정보국(SVR) 국장인 미하일을 집무실로 호출했다. 푸틴의 꼭두각시나 다름없는 2인자 보리스는 책상에 두 손을 가지런히 모은 채 토씨 하나 안틀리고 그에게 말했다.

“{오늘 TV에 나온 신우주라는 친구, 한번 만나보고 싶군요.}”

“{맡겨주십시오. 즉시 SVR요원들을 한국에 파견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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