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6화
***
소라를 태운 에쿠스가 전방주둔지를 빠져나왔다.
뒤이어 5분 뒤, 우주를 태운 벤이 거리를 두고 에쿠스를 따라갔다.
이윽고 두 차는 강남에 있는 캐슬펠리스에 도착했다.
소라가 먼저 차에서 내려 유창성을 돌려보냈다. 그리고 아무렇지도 않은척 홀로 집으로 걸어 올라갔다.
이어서 벤이 미끄러지듯 캐슬펠리스 앞에 멈춰서며 얼굴을 꽁꽁가린 우주가 내렸다.
그는 차문을 닫기 전 철수에게 말했다.
“김대리, 서울이나 경기도 쪽에 땅 좀 알아봐주겠소?”
“땅? 왠 땅이요? 투기라도 하려구요?”
“그게 아니라 차를 한 대 더 사려는데 마땅히 주차할 공간이 없어서 말이오. 땅 사서 집도 짓고 주차장도 크게 지을 생각이오.”
집을 짓는다는 이야기를 마치 아이들 장난감 사듯 쉽게 말하는 것이 누군가 들으면 농담으로 들리겠다.
“그렇다면 사야죠. 그래 평수는요?”
“600평 정도면 충분할까 싶은데.”
“그렇게 많이 사요? 못해도 최소 50억은 하겠다.”
“모은 돈이 있으니 한 번 알아봐주시오.”
우주가 웃으며 문을 닫으려는 찰나 철수가 다시 불렀다.
“본부장님과는 언제 그렇고 그런 사이가 된거예요?”
“그런 사이는 무슨. 아무 사이 아니오. 그냥 커피나 한잔 타 주겠다고 해서 온거요.”
“본부장님이 커피를 탄다구요? 와 좋겠다. 나도 높으신분이 타주시는 커피 마시고 싶다.”
“소생이 다음에 타드리리다.”
우주는 웃으며 문을 닫았다.
철수를 향해 손을 한 번 흔들고 이내 발걸음을 옮겼다.
60층.
벨을 눌렀다.
기다렸다는 듯이 문이 활짝 열렸다.
정장차림의 한소라가 툴툴대는 표정으로 팔짱을 끼고 서있다.
“왜이리 늦었어요?”
“빨리온다고 온건데 많이 늦었소?”
“많이 늦었...... 읍!”
소라가 하려던 말은 우주의 저돌적인 키스에 의해 입안에 멤돌기만 할뿐, 밖으로 새어나오지 못하였다.
말하느라 살짝 벌어졌던 소라의 입안으로 그의 혀가 매끄럽게 들어왔다.
소라의 몸이 중심을 못 잡고 비틀거리자 그 혼란을 틈타 우주는 그녀를 벽으로 밀어붙이며 아랫입술을 부드럽게 핥았다.
“시, 싫어요...!”
소라가 그의 손아귀에서 빠져 나오려고 얼굴과 몸을 비틀었다. 하지만 제 힘을 다 쓰진 않았다. 처음 하는 키스의 강렬함에 말로 표현할 수 없는 감각이 몸속에서 스멀스멀 피어올랐다.
키스의 황홀감에 취한 소라.
그녀의 저항은 그리 오래가지 못하였다. 급기야 자신도 모르게 신음을 내뱉었다. 전기에 감전 된 듯 짜릿한 감각이 그녀를 마비시켰고, 머리를 젖힌 채 그가 하는대로 자신을 내맡겼다.
그렇게 두 사람은 10분 동안 불같은 키스를 나누었다.
이윽고 우주가 천천히 입술을 떼고 그녀의 붉은 얼굴을 바라보았다. 소라는 감기에 걸린 사람처럼 온몸이 뜨거웠다. 그리고 앞으로 펼쳐질 일을 예상한 듯 가슴의 고동이 북소리처럼 커져있었다.
우주가 말했다.
“죽다 살아나니 나도 모르게 대범해지는 구려. 레지스트 쉴드에서 죽는줄만 알았소.”
“걱정 많이 했어요. 정말 살아돌아와서 다행이예요.”
우주는 그녀의 뺨을 쓰다듬었다.
“이리오시오. 내 쌓였던 정열을 발산해주리다.”
달콤한 그의 목소리가 그녀를 잡아끌었다.
소라는 얌전한 고양이처럼 따라왔다.
우주는 길다란 소파에 그녀를 눕혔다.
그의 입술이 다시 그녀를 덮쳤다. 가녀린 목덜미를 혀로 핥으며 치마를 입은 탐스러운 엉덩이를 손으로 매만졌다.
엉덩이를 쓰다듬던 손이 치마속으로 옮겨졌다. 팬티스타킹을 신은 부드러운 허벅지의 감촉에 그는 흥분을 느꼈다.
“후우...”
덥다. 우주는 점점 주체할 수 없었다. 우뚝 커져버린 아랫도리는 벌써 옷에 가려진 그녀의 음부를 콕콕 찌르고 있었다.
그는 시선을 올려 그녀의 반응을 살폈다. 소라는 눈을 감은 채 입술이 달싹거렸다. 우주의 애무에 못이겨 그녀답지 않게 많이 흐트러진 모습이다. 남성의 성기가 하반신을 찔러대는 느낌을 모를정도로 잔뜩 흥분에 취해 있었다.
“이렇게 보니 낭자는 참 귀엽소. 많이......”
평소 새침거리는 그녀가 홍조를 띠며 고양이 같은 신음을 흘리니 그 모습이 그렇게 마음에 들 수가 없었다. 귀엽다는 표현으론 턱없이 부족할 것 같다.
“에잇.”
우주는 더는 참을 수 없었다.
자제력을 잃기 일보직전이다.
침을 꿀꺽 삼키고 그녀의 치마속에 두 손을 넣었다. 그대로 팬티스타킹을 끌어내리려던 순간.
소라의 핸드백에서 휴대폰이 울렸다.
“갑자기 왜 전화를 하지?”
야릇한 기분에 젖어있던 소라는 정신이 번쩍 들었다.
거실 한켠에서 들려오는 벨소리를 듣자마자 뜨겁게 달아올랐던 흥분이 차갑게 식었다.
아버지였다.
아버지 전용으로 설정해놓은 착신벨소리가 집안에 기분 나쁘도록 울려댔다.
“아버지한테 오는거예요. 미안해요.”
소라는 소파에서 우주를 밀치고 일어나더니, 서둘러 흐트러진 옷매무새를 추스르며 목소리를 가다듬었다.
탁자에 놓인 핸드백을 열어 휴대폰을 꺼내들었다.
“아버지, 소라입니다.”
[그래. 언제쯤 돌아올 생각이냐. 회사에 하시도루 선생이 와 계시단다.]
“하시도루 회장님이 말입니까? 그분이 한국을 왜 오셨죠?”
[우리가 사탄을 잡았다는 소식을 듣고 크게 기뻐하며 아침에 비행기를 타고 왔다더구나.]
뻔했다.
사탄을 공략했다는 것은 마츠다이라가 봉인 되어있는 평양까지 드디어 갈수 있다는 말이기도 했고 그가 깨어날 날이 머지 않았음을 알려주는 것이었다.
하시도루는 아마 그 기쁨에 한달음에 서울까지 달려왔을 것이다. 그리고 소라를 만나 보챌 생각이다.
“서울에 하시도루가 왔다네요.”
전화를 끊은 소라는 그렇게 말하며 빗으로 머리를 단정히 정리했다. 즐거웠던 시간을 방해받아 무척이나 표정이 안좋아보였다. 그녀는 곧바로 나갈 준비를 했다.
“여기서 자고 있을래요? 저녁에 와서 깨워줄게요. 집에는 내일 가면되죠.”
우주는 고개를 저었다.
“아니오. 이렇게 된바에 소생도 집으로 돌아가 쉬는게 좋을것 같소. 내일은 아침 일찍 청와대도 가야고 집에서 출발하는 편이 더 나을 것 같소이다.”
우주는 애써 핑계를 대며 소파에서 일어나 나갈 채비를 했다. 하시도루란 이름만으로도 발기된 고추가 단번에 줄어들 정도로 기분이 다운되었다.
게다가 소라가 뭔 죄가 있겠냐만은 그녀와 하시도루가 만난다는 사실이 썩 달갑지만은 않았다. 집에 가겠다는 것은 그에 대한 투정부림이기도 했다.
“......”
소라는 마음에 들지 않는 눈초리로 그를 째려보다 이내 전화로 유창성을 호출했다.
그녀가 전화를 끊고나자 우주가 조금 머뭇거리다 입을 열었다.
“우리끼리 회사를 차리는건... 어떻소이까?”
“회사를 차린다구요? 왠 회사?”
우주는 예전에 철수와 강민하고 술자리에서 한 말이 떠올랐다. 갑부인 다코오 가문을 제네틱스에서 몰아내는게 불가능하다는 것이 기정사실이고 그럴 바에는 소라를 데리고 나와서 따로 독립을 해보는게 어떻겠냐는 이야기.
소라는 콧방귀를 꼈다.
“말도 안돼요. 회사를 언제 키워요.”
“마츠다이라가 죽어도 다코오 가문은 계속 제네틱스에 남아 있지 않소이까.”
“그건 그렇긴 하지만.”
우주는 물끄러미 그녀를 바라봤다.
“만약 소생이 제네틱스를 떠난다면?”
“미쳤어요?”
소라가 정색을 하며 대꾸했다.
“그럼 당신이 나와 함께 떠난다면?”
“......”
소라는 대답이 없었다. 그 표정만으로도 그녀가 제네틱스를 떠나고 싶어하지 않는다는 것을 알 수가 있었다.
아무리 아버지 회사라지만 자신을 먼저 생각해줄 수는 없는 것일까?
우주는 실망하다 못해 조금 화가 나서 그저 밀어붙였다.
“소생을 좋아하면 내가 하자는대로 따라와도 되잖소! 그렇게 거기 있고 싶소?”
내가 하라는대로 따라오라니, 참으로 가부장적인 틀에 갇힌 사내의 대사답다. 너무나 강압적인 말과 다름 없기에 소라는 이해고 뭐고 반감부터 들었다.
“제가요? 제가 우주 씨를 좋아한다구요? 허, 참. 기가 막혀.”
“그럼, 아까 한건 뭐요?”
“그건 우주 씨가 강제로 한거지 제가 원해서 했던건 아니었거든요? 힘으로 누르는데 어쩌라는거야.”
“뭐요?”
신우주가 미간을 좁혔다. 차갑게 말을 쏟는 그녀에게 무척 서운했다.
‘젠장, 제네틱스 따위 다 부숴뜨리고 싶군!’
속은 그랬으나 되도록 겉으로는 차분한 표정을 유지했다.
“소생이 낭자의 심중을 오해했나보오. 거참 실례했소이다. 이제라도 낭자의 마음을 알아서 참 다행이오.”
“......”
소라는 팔짱을 낀 채 별다른 대꾸없이 다른 곳에 시선만 둘뿐이다. 삐진 표정을 짓고 있음에도 속으로 아차 싶기도 했다. 그러나 어쩌랴 이미 엎질러진 물이다.
우주는 무심히 그녀를 지나쳐 현관으로 성큼성큼 걸어나갔다. 그녀가 그쪽을 황급히 돌아봤다.
“어디가요!”
“초대받지도 않은 집에 있어서 뭐한단 말이오? 경찰 부르기 전에 당장 나가야지.”
“내가 언제 경찰부른다고 했어요?”
“힘으로 눌렀다느니 어쩌니 하지 않았소! 소라 낭자한테 정말 실망했소!”
“저는 뭐 우주 씨한테 실망한적 없는줄 아세요?”
“그동안 낭자한테 최선을 다했다고 생각하오! 소생이 실망시킨게 뭐가 있소!?”
우주의 당당한 말에 소라가 버럭 성을 내며 소리 질렀다.
“집에서 료코를 내쫓아!”
“료코는 왜?”
“그 계집이 거기서 왜 사는데! 둘이 동거해? 결혼했어? 집에 여자를 두고 날 왜 만나는데!”
어깨가 들썩일 정도로 씩씩대는 그녀를 보며 우주는 할 말이 없었다. 하고 싶은 말이야 많았지만 가슴에 묻기로 했다.
잠시 그녀를 물끄러미 바라보다가 이내 몸을 돌렸다.
문손잡이를 잡았다.
그러자 그녀가 등에 대고 소리쳤다.
“어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