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8화
부산.
25명의 악어팀은 자신들의 이름이 적힌 오픈카에 다섯명씩 나눠 타고 부산시내를 가로지르며 카퍼레이드를 했다. 악어팀이 지나는 곳마다 빌딩에서 흩뿌려진 오색종이가 파란하늘을 뒤덮었다.
카퍼레이드를 마친 뒤에는 부산 사직체육관에 들렸다. 그곳에서 우주는 부산 중소기업에서 활동하는 수라 천여명과 일반인 6500명이 모인 앞에서 ‘호랑이급 돌연변이 생물은 어떻게 쉽게 잡는가’ 라는 주제로 강연을 했다.
“폭스네이크의 경우에는 머리를 집중 공략해야하오. 여길 보면.”
그는 무대에 설치된 대형 스크린 앞에 서서, 레이져 포인터로 스크린에 투영되는 폭스네이크의 정수리 부분을 가리켰다.
“이 부분이 약점이라고 할 수 있소이다. 무기는 위력이 강한 산탄총류가 좋고, 등에 올라타서 최대한 가까이 붙어야 한다오.”
무대 앞좌석에는 악어팀 멤버들이 줄지어 앉아 있었고, 우측 맨 끝자리에는 하나와 찬우가 나란히 앉아 있었다.
“영상을 틀어 주시오.”
무대 구석 노트북 앞에 앉아있던 사내가 마우스를 클릭했다. 그러자 스크린에서 우주가 예전에 폭스네이크를 잡는 영상이 재생됐다.
“우와아!”
강연을 듣고 있던 사람들에게서 노도와 같은 환호와 함께 박수가 터져나왔다.
하나는 뒤를 돌아봤다. 많은 사람들이 일어나 무대에 서 있는 우주를 향해 엄지손가락을 치켜올리는 중이었다.
“대단해!”
그녀는 다시 무대에 있는 우주를 쳐다봤다. 형광등 백개를 켜놓은 것처럼 눈이 부셨다.
“정말 멋지다.”
“아주 좋아 죽겠어?”
옆에 앉아있던 찬우가 시샘하는 표정으로 심술궂게 말했다.
하지만 우주를 보며 헤죽거리는 그녀에게 들리지 않은 것 같다.
그는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후방에서 늘 대기하는 정비사 따위 포기하고 최전선으로 나가 활약하고 싶다고.
그 시각 조직재생공학연구소.
“아아, 우상님......!”
미라는 1인 병실 침대에 누워 앱플패드로 우주의 강연을 시청하고 있었다. 그의 강연은 유투브로 생중계되는 중이다.
[여러분도 자신감만 있으면 충분히 해내실 수 있다오.]
“맞아요. 저도 우상님처럼 자신감 충만하게 살거에요.”
미라는 실실 웃었다. 그녀는 현재 전신 3도 화상을 입어 조직재생공학 연구소에 입원해 치료를 받는 중이었다. 따라서 악어팀의 전국 순회 일정에는 참석하지 못하였다.
얼마 안지나 우주가 무대에서 내려가자 방송도 끝이났다. 그녀는 더보고 싶은 아쉬운 마음을 달래기 위해 앱플패드에 저장된 그의 동영상을 틀었다. 소리를 크게 올려놓고 머리맡에 놔뒀다. 그리고 휴대폰으로 최근 가입한 우그신 까페에 들어가 이번 우주의 강연에 대한 팬들의 반응을 살펴봤다.
그렇게 한참을 까페 글을 뒤적이고 있는데, 갑자기 병실문을 누군가 두드렸다. 미라가 문쪽을 돌아보며 들어오라고 말했다.
곧바로 문이 열리며 한 여성이 들어왔다.
자신과 같은 환자복을 입고 있었으며 긴 머리에 약간 치켜올라간 눈매가 사뭇 도발적으로 보이는 여성이었다.
“오수연?”
“네.”
미라는 서로 만난 적은없지만 TV에서 한번쯤 봤기에 오수연을 알고 있었다.
그것은 오수연 역시 마찬가지였다.
두 사람은 방송과 언론으로만 서로를 접했었다.
“전에는 머리가 짧더니 많이 자라서 몰라보겠네요.”
“어울려요?”
“뭐, 그럭저럭.”
미라는 대충 대답하면서 그녀의 전신을 쭉 훑어보았다.
수연의 멀쩡한 두 다리에 시선이 멈춰서며 자연스럽게 입가에 미소를 띄웠다.
“축하해요.”
“축하랄것까지야.”
문앞에 서 있던 수연이 안쪽으로 걸어들어왔다.
침대 옆에 놓인 책상에서 의자를 끌어내 앉았다.
환자복의 가슴 부분이 벌어져서 가슴 계곡이 훤히 들여다보였다.
미라가 말했다.
“노출은 여전하시군요. 수라 중에서 가장 야하게 입고다는다는 소문에 걸맞게.”
수연이 활발하게 활동하던 당시, 그녀는 각종 잡지화보와 트위터를 통해 풍만한 가슴과 골반 등 몸매를 강조한 사진을 공개하거나 언더웨어 광고와 노출이 잦은 광고에 출연하기도 하며 섹시한 이미지를 주로 어필해왔었다.
“전 답답한 옷차림은 싫어하는 스타일이라서.”
수연이 방긋 미소를 지었다.
“우주네 팀에 속해있다면서요?”
“네.”
“그리고 잠시 대화를 나누고 싶은데.”
수연은 새빨간 매니큐어로 칠해진 손톱으로 앱플패드를 가리켰다.
“실례가 안된다면 소리 좀 줄일 수 없을까요?”
영상에 나온 우주는 돌연변이 생물을 향해 신나게 총을 쏴대는 중이다. 총소리가 어찌나 큰지 병실이 울렸다.
“소리가 큰 가요? 전 딱 좋기만 한데.”
미라는 그렇게 말하더니, 침대옆 서랍 첫번째 칸을 열고 이어폰을 꺼냈다.
그것을 앱플패드에 꽂고나서 이어폰 한쪽을 귀에 꽂았다.
그녀는 좋아하는 것을 계속 듣고 있어야 심리적으로 안정이 된다. 사실 잘알지도 못하는 수연을 쉽게 병실에 들인것도 마음에 여유가 찾아와서였다.
“근데 우주라니, 대장님을 잘 아시나봐요?”
“당연히 잘알죠. 한팀에 속해있었으니까.”
“한팀에 속해있어도 친하지 않은 사람들이 꽤 있죠. 그런 부류는 아니었나요?”
그 말에 수연이 피식 웃었다. 자신보다 7살이나 나이 어린 후배가 참 당돌하게도 말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럼 미라 씨는 어느쪽? 친한쪽? 안친한쪽?”
“저는 사랑받는쪽.”
“푸훕.”
뜻밖의 말을 태연하게 입에 담는 미라를 보며 수연은 저도 모르게 실소를 머금었다. 그리고 혀끝으로 입술을 핥았다.
미라와의 대화가 왠지 재밌어질 것 같았다.
“제가 왜 왔게요?”
“글쎄요. 대장님에 관해 물어볼게 있어서 오셨을까나?”
수연이 웃어보였다.
“그것도 맞긴한데, 실은 미라 씨 보러 온거에요. 같은 직종에서 일하면서 어떤 사람인지 궁금했거든요.”
“아하.”
수연은 레지스트 쉴드에서 활동했을적, 동료로부터 미라에 대한 소문을 익히 들어 그녀의 성격에 관해 대충은 알고 있었다.
“오성그룹에 신입 수라가 왔는데 완전 미친년이야.”
“엊그제는 동료한테 총을 쐈다더라구. ‘이 구역의 미친년은 나야!’ 이 지랄떨면서. 하하하!”
레지스트 쉴드에서 떠도는 소문이야 실제 일어난 일보다 과장되서 떠도는 것이 많았지만, 아니 뗀 굴뚝에 연기나랴 라는 말이 있듯이 미라가 사고를 친건 분명했다.
그리고 그런 소문이 난 다음날에는 어김없이 미라에 관한 뉴스가 인터넷에 뜨며 사람들의 입에 오르락 내리락 거렸다.
워낙 악동이미지가 강했던 그녀는 대기업을 가도 상급에 준하는 실력을 갖긴 했지만 멘탈에 의문부호가 붙기 시작하면서 대중들에게서 점차 외면받았다.
그리고 마침내 올해 2월 초, 오성그룹에서 그녀를 제명했다는 기사가 떴었다.
“어떻게 다시 일하게 된거에요?”
수연이 물었다. 8개월이 지난 지금 어떻게 다시 일하게 되었을까? 게다가 제네틱스에는 또 어떻게 들어가고?
이곳 생활이 무료하던 차에 미라가 와서 다행이었다.
분명히 즐거운 이야기를 나눌 수 있을테니까.
“우리 악어팀의 대장님 덕분이죠.”
두 사람의 대화는 점차 활기를 띠었다. 간혹 이야기가 막힐때면 신우주라는 공통 화제가 있었기에 더욱 좋았다.
미라는 그에 관한 이야기를 할때면 짐승처럼 섬뜩한 눈빛이 한층 가라앉으며 수다쟁이처럼 말이 많아졌다.
“제가 다시 일을 할 수 있었던 건 전부 대장님 덕분이에요. 벼랑 끝에 몰렸던 제 삶을 구원해주신 우상이시죠.”
그녀는 악어팀에 관한 이야기를 했다. 그리고 번개처럼 사탄을 잡아낸 우주에 대해서도 이야기했다. 그러나 이야기는 가느다란 물줄기가 뚝 끊기듯 갑자기 끊겼다.
[오수연 씨. 오수연 씨께 면회가 왔습니다. 이 방송을 듣는 즉시 5층의 직원 레스토랑으로 와주시길 바랍니다.]
천장 구석에 달아 놓은 스피커에서 수연을 찾는 알림방송이 흘러나왔다.
수연이 쓰게 웃으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아쉽지만, 가봐야 할 것 같아요. 이따 다시 오도록 할게요.”
미라가 고개를 저었다.
“아니요. 안와도 돼요. 잘때까지 대장님이 나온 동영상 좀 보고 싶거든요. 괜히 약속 잡았다가 감상 중에 방해 받고 싶지 않아요.”
“아, 그래요.”
수연은 살짝 기가 막혔지만 애써 미소지으며 병실을 나왔다.
조용히 문을 닫고 중얼거렸다.
“지만 알고 배려란게 없는걸 보니 진짜 미친년 같네.”
5층의 직원 레스토랑.
쾌청한 날씨로 뒤덮인 테라스쪽으로 걸어가니 두 명의 남성과 우아한 분위기의 한 중년 여성이 음료수를 시켜놓고 테이블에 앉아있었다.
“어디갔다 온거야?”
수연이 자리에 앉자마자 선글라스를 낀 스포츠 머리의 남성이 미간을 좁히며 투덜거렸다.
수연이 그를 보며 말했다.
“그놈의 급한 성미까지 그대로 복제한거보면 참 신기하다니까.”
“지랄.”
복제 인간.
그는 이태평이었다.
그리고 그 옆에 앉아 있는 남자는 바로 차영웅.
하지만 생전의 모습과 똑같은 외모의 그는 없었다. 한창 전성기를 구가하는 20대 중반의 청년이었다.
“이제 다 모이셨네요. 그럼 이야기를 시작할까요?”
목재로된 원반 테이블을 사이에 두고 세 사람을 향해 말하는 여성.
다름아닌 신라그룹의 이선주였다.
그녀는 복제된 차영웅과 이태평, 그리고 오수연을 신라그룹에 영입할 계획이었다. 차영웅과 이태평의 경우에는 본인들이 사망함으로서 제네틱스와의 계약이 자동적으로 폐기된 상태였고, 수연의 경우에는 재계약이 3년이나 남았으나 이선주가 제네틱스 측에 영입의사를 표시한 결과 팔겠다는 긍정적인 반응이 나왔다.
“문제는 이 나라의 법입니다. 복제인간인 차영웅 씨와 이태평 씨가 세상밖으로 나오기 위해서는 일단 법이 바껴야 하거든요.”
생명윤리 및 안전에 관한법. 인간의 존엄성을 위협하며 인간 복제가 미칠 파장이 크므로 윤리 차원의 규정을 만들어 규제하는 법이다. 이선주는 이 법을 국회와 해외 로비를 통해 개정이나 폐지 시킬 생각을 갖고 있었고, 더욱이 잘된 일은 그간 유엔(UN)의 눈치를 보며 조직재생공학연구소의 행위를 암묵적으로 승인하고 있던 정부와 몇몇 국회의원들이 찬성파에 속해있었다.
“법이 바뀌기 전에는 우리가 사람이 아니라는 겁니까?”
차영웅이 나직이 물었다.
이선주가 대답했다.
“사람이 아니라기 보다는 사람인데 시민권이 없다고 하는게 타당합니다.”
신라그룹은 다시 정점에 서기 위해서 다각적인 모색을 꾀했다.
이선주는 애당초 우연진을 복제하고 싶었으나 그의 친부의 부딪혀 일을 성사시키지 못하였다.
그러한 상황에 조직재생공학연구소로부터 제의가 들어왔다. 투자를 대가로 차영웅과 이태평에 관한 정보를 귀띔해주었다. 그 미끼를 물든지 말든지 이선주의 선택이었으나 우연진을 잃고 난 신라그룹에 이렇다할 영웅이 없는 시점에서 그녀는 일단 물었다.
이 일이 과연 어디까지 추진될 수 있을지는 미지수였지만 한번 시도해볼 가치는 있었다. 불혹의 나이임에도 한때 제네틱스를 이끌던 차영웅이었는데다 젊은 시절의 그로 돌아오기까지 했으니 재등장 시킬 수만 있다면 제네틱스의 신우주를 넘어서게 되리란 것을 이선주는 믿어 의심치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