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0화
찬우는 긴장된 표정이 역력했다. 보는 사람이 땀이 다 날정도로 조마조마한 통화가 거의 끝나갈즈음, 그는 전화를 끊지 않고 우주에게 휴대폰을 건넸다.
우주가 미소지으며 받았다.
“시간내줘서 고맙소.”
[우리 사이에 뭘 이런걸 가지고. 근데 나도 해줬으니까 다음에 너도 내 부탁 하나 들어주기.]
우주가 픽 웃었다.
“막무가내식 부탁은 안되오. 이번처럼 간단한 것만 해줄테요. 그럼 푹 쉬고 조심히 들어가시오.”
전화를 끊고 찬우를 바라봤다. 그는 감격에 찬 눈빛으로 우주의 두 손을 꼭 맞잡더니,
“감사합니다 대장님! 역시 대장님 뿐입니다! 제가 현아 씨와 통화를 했다니 믿어지지가 않습니다!”
우주를 앞에 두고 큰절이라도 올릴 기세였다.
“그, 그만, 됐소이다. 허허허.”
“뭐 드시고 싶으신거 있으십니까? 여기 계세요. 제가 가져다 드리겠습니다.”
계속 들어주다간 형님으로 모시겠단 말까지 나올 것 같아, 우주는 부담스러운 나머지 얼른 방으로 올라가자고 했다.
두 사람은 자리에서 일어나 파티장을 빠져나왔다. 그대로 엘레베이터를 타고 찬우를 호텔방까지 데려다 줬다. 그가 방문을 닫기 전 우주가 오른주먹을 쥐어보였다.
“힘내시오. 세상에는 하나 낭자 말고도 여자 많소이다. 한 여자때문에 속앓이 할 필요는 없소.”
찬우는 알겠다는듯 연신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전보다 한결 나아진 표정으로 말했다.
“하나를 당장 포기하기는 어렵겠지만, 전처럼 끙끙 앓지는 않을렵니다. 대장님이 경쟁상대라 해도 희망을 잃지 않고 하나에게 대쉬할 생각입니다. 그리고 만약 실패하면, 그땐 미련없이 떠날랍니다. 정말로 제 짝이 아닌거겠죠.”
“참으로 장하구려!”
우주가 돌아가고 난뒤 찬우는 방에서 가방을 뒤졌다. 거기서 이어폰을 꺼내 휴대폰에 꽂고 침대에 누웠다. 음악을 틀었다.
항상 너를 바라봐~♪
난 네가 너무나 좋은걸~♪
외로운 사랑인걸 알아~♪
짝사랑은 원래 그런거니까~♪
애절한 가사가 너무 와닿아 며칠이고 하루에 수백번을 반복해서 듣던 노래였다. 노래속 주인공이 마치 자신처럼 느껴졌었다.
하지만 이제 필요없다.
처음부터 끝까지 마지막으로 한번 듣고, 후회없이 노래를 지워버렸다.
***
우주는 방으로 들어왔다. 부산시에서 마련해준 숙소는 꽤 좋은편이었다. 10층에 위치한 그의 방은 아늑한 느낌을 주었고, 조용하고 전망도 확 틔어 있었다. 베란다로 나가보면 화려한 부산시 전경이 한 눈에 들어왔다.
샤워를 마친 뒤 호텔용 가운을 입고 편지를 꺼내들었다.
오늘 낮에 철수가 전해준 편지다.
아라가 어떤 내용의 편지를 보내왔을까? 하면서 설레이는 기분으로 의자에 앉아 편지를 뜯어보았다. 그 전에 조명을 은은하게 비춰 편안하고 안락한 분위기를 연출하는 것도 잊지 않았다.
요즘들어 우주에게 있어서, 틈틈히 보내오는 아라의 편지는 빼놓을 수 없는 낙이 되어버렸다. 그래서인지 편지를 읽기 전에는 할일을 모두 끝내놓고 가장 편안한 상태에서 읽는것이 습관이 되어버렸다. 편지를 읽는 동안은 방해받고 싶지 않은 기분에서다.
편지를 뜯어보면 9월 모의고사 성적표가 동봉되어있었다.
“음...”
우주는 그것을 대충 흝어본뒤 편지를 읽기 시작하였다.
가족같은 느낌이 드는 아저씨께.
7번째 편지입니다.
잘지내고 계시나요?
지난달 모의고사 결과를 보고 드리겠습니다. 학원 응시자 1200명 중에서 200등입니다.
많이 부족하다고 생각하고 아저씨의 기대에 부흥하지 못해 죄송하다는 말씀을 전하고 싶습니다.
그리고 같이 노량진 학원을 다니는 친구들 가운데는 검정고시에 붙고나면 자신이 공부 했던 책을 팔겠다는 아이도 있습니다.
팔아서 용돈으로 쓰겠다고 하는데, 저는 모두 모아둘 작정입니다.
아저씨가 제게 주신것이니까요. 버리기에는 아깝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전부 모아서 책장에 두고 나중에 할머니가 되었을때 다시 펴보고 싶습니다.
아저씨에 대한 기억과 지금 이때를 떠올릴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아저씨는 혹시 제 학업에만 관심을 갖고 계시나요?
최근에는 다양한 기업에서 연락이 자주 옵니다. 어디서 전화번호를 알았는지는 모르겠습니다.
그 사람들은 전부 학업을 포기하고 수라의 길로 나서면 돈을 많이 벌 수 있다고 제게 유혹합니다.
심지어 지난주 토요일에는 친구(지난 편지에 말씀 드렸던 한정은이라는 친구입니다. )와 길을 가다가 유진기업 사람과 마주쳤습니다. 그리고 그 사람과 함께 까페에 들렸습니다.
(계속 따라오길래 하는 수 없었습니다.)그곳에서 이런저런 소책자를 꺼내들면서 기업에 입사하라고 제안을 해왔습니다. 수라에게는 학벌이 필요없고 레지스트 쉴드에서 일하기만 하면 고액의 연봉을 받고 살 수 있다고 설득을 하더군요.
그 사람의 말을 듣고 보니 제가 빨리 취업을 하는게 아저씨께도 부담이 덜되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아저씨는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제가 대학을 나오는게 좋을까요?
솔직히 심란합니다.
그러나 아저씨께서 하라는대로 하겠습니다. 제 보호자는 아저씨니까요.
“당연히 안되지.”
우주는 편지의 마지막 부분을 읽고나서 중얼거렸다.
편지를 책상 위에 올려두고 의자에서 일어나 휴대폰을 찾았다.
철수에게 문자로 [취업은 절대 안된다고 말해주시오.] 라고 보낸 뒤 소라에게 전화를 걸었다.
그녀와 섹스를 하고 난뒤 전화가 부쩍 잦아졌다. 아무일이 없어도 하루에 너댓 번 이상은 서로 연락을 주고받았다.
[우주 씨? 왜이리 전화가 늦었어요? 다른 여자 만났죠?]
소라는 밤 10시가 지난 이 시간에도 회사에서 일하는 중이었다. 아버지가 퇴근을 안해 곤란하다는 말도 덧붙였다.
그렇게 10여분 동안 서로 달콤한 말을 주고받다가 마지막은 일에 관한 이야기를 했다.
[오늘 인천에 있는 우리 회사 로봇공학연구소에 다녀왔는데, 맹수의 표면에 사탄의 가죽을 덧씌우는 작업을 하고 있었어요. 무게도 경량화되서 1톤이 나가던게 700kg으로 줄었다고 하고 다음주면 완성된다고 하니까 아마 다음 출근날부터 바로 사용할 수 있을겁니다.]
“호오, 전보다 많이 좋아지다니 빨리 써보고 싶소.”
[네, 성능이 무척 업그레이드 된것 같더군요. 전지연 박사가 하는 말이 사탄 덕택에 맹수의 성능이 대폭 업그레이드 되어서 버젼2 라네요. 맹수의 정확한 명칭도 맹수 v2로 바뀌었구요. 또 사탄이 그때 우주 씨의 맹수를 산산이 부쉈을때 쓴 기술도 막아낼 수 있을 것 같다고 평가하더군요.]
소라와의 전화를 끊은 뒤에는 바로 료코에게 전화를 걸었다. 신분증이 없는 그녀는 우주가 자신의 명의로된 휴대폰을 몇달 전에 선물해줬다.
딸칵.
신호가 두 번을 채 울리기도 전에 료코가 전화를 받았다. 그녀가 자신의 전화를 얼마나 애타게 기다리고 있었는지 알 수 있었다. 그녀는 기계가 무서운건지 조심스러운 목소리를 냈다.
[(서...... 서방님...?)]
“(그래 나야. 집에 별일없지?”
료코는 금세 환한 말투로 대답했다.
[(별일 없사옵니다. 내일 오후 3시에 돌아오시는 것 맞으시지요?)]
“(응. 그때쯤 갈것 같아. 소민 낭자는 잘있고?)”
[(그게 좀 문제가...)]
“(왜? 또 그러고 있어?)”
[(네... 아무래도 서방님께서 집에 안계시다보니...)]
순간 수화기 너머에서 소민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우주 씨 제발 빨리와요! 부탁이에요! 전 섹스가 없으면 죽을 것 같단 말이에요! 불안해 미치겠다구!]
서울, 우주의 집.
소민은 료코의 휴대폰을 빼앗아 귀에 가져갔다.
휴대폰을 쥔 손이 초조한 듯 가늘게 떨리고 있었고 잡아먹을 사람도 없는데 표정도 지나치리만치 불안해 보였다. 우주가 집을 비운 일주일동안 섹스를 못하다보니, 그녀는 마치 마약을 하다 금단증상이 온것처럼 굴었다.
“오늘 와주세요! 제발 부탁이니 오늘와달라구요!”
[술에 취해서 오늘 가는건 불가능하고 료코말 잘들으면 내일 집에 가서 많이 해주겠소. 그러니 오늘은 얌전히 주무시오.]
“지금! 지금 하고 싶단 말이에요! 아니다. 그냥 제가 부산으로 당장 내려갈게요. 거기 부산 어디에요? 네? 빨리 말해보세요 우주 씨!”
수화기 너머에서 한숨 소리가 들려왔다.
[이 시간에 어떻게 온다는 거요. 내일 가니까 조금만 참고 기다리시오.]
“저, 저기 창문을 봐요! 세상 사람들이 날보고 다 비웃고 있어! 어떡해! 어떡해!”
발광하는 소민에게 어떠한 말도 소용이 없었다. 그녀는 방안에서 펄쩍펄쩍 날뛰며 일부러라도 과장된 몸짓과 목소리를 냈다.
그에 우주는 그간 숨겨왔던 비장의 무기를 꺼낼 수 밖에 없었다.
[잠깐 료코 바꿔보시오.]
“싫어! 싫어! 나랑 얘기해!”
[섹스해줄테니까 료코 바꿔보시오.]
“정말요? 부산에 있는데 어떻게?”
[좋은 수가 있어서 그렇소. 그러니 빨리 료코 바꾸시오.]
소민은 즉시 날뛰던 행동을 멈추고 료코에게 휴대폰을 급히 건넸다.
료코는 흘러내린 머리를 귀뒤로 쓸어넘기고 휴대폰을 귀에 갖다댔다.
“(서방님. 저 료코이옵니다.)”
[(있잖아. 옷방에 가보면 거기 빨간 상자에 회색으로 포장된 봉투가 들어있을거야. 그걸 열어보면......)]
우주는 ‘그것’의 사용법에 관해 료코에게 자세한 설명을 전했다.
본래 료코를 즐겁게 해주기 위해서 호기심 삼아 사둔것이었는데 이렇게 타인에게 쓰게될줄은 미처 몰랐다.
[(알겠사옵니다. 모르는게 있으면 다시 전화 드릴테니 맡겨 주십시옵소서)]
료코는 전화를 마치고나서 옷방으로 향했다.
그리고 그것을 이내 안방으로 가져왔다. 침대에 앉아 얌전히 기다리고 있던 소민에게 말했다.
“(누워보세요.)”
일본어를 잘모르는 소민에게 손으로 누우라는 시늉을 했다.
“뭐, 뭐할 생각인데요?”
소민은 료코가 손에 쥔 그것을 보며 짐짓 두려운 목소리를 냈다.
료코는 손으로 그것을 살펴보다 건전지를 끼워넣었다. 그리고 확인할겸 스위치를 켰다.
딱.
위이이잉~
길이는 15cm. 두께는 발기된 남성의 성기처럼 굵었고, 귀두처럼 생긴 끝부분이 빠르게 흔들리며 부르르 떨었다.
료코가 손에 쥐고있는 그것은 여성용 자위기구 바이브레이터였다.
“(누우세요.)”
“네......”
바이브레이터를 본 소민은 얌전한 고양이처럼 료코의 말을 따랐다.
망사슬립만 걸친 채 팬티를 벗고 침대에 반듯이 누웠다.
료코도 침대 위로 올라가 무릎끓고 곁에 앉았다.
“(눈 감으세요.)”
“네?”
손으로 눈을 가리키며 감는 시늉을 했다.
“아, 알겠어요.”
소민은 순순히 눈을 감았다. 색다른 행위를 한다는 기대감에 얼굴이 무척이나 상기되어있었다.
료코는 가랑이를 벌린 채 누워있는 소민의 꽃잎을 지그시 응시했다. 가운데 손가락으로 석류알처럼 둥근 클리토리스를 부드럽게 문지르기 시작하였다. 그리고 얼마 안가서 료코의 길고 가느다란 손가락이 촉촉하게 젖었고, 소민의 꽃잎이 늦가을 석류처럼 쩍 벌어지자 마침내 귀두를 닮은 바이브레이터의 끝부분이 꽃잎 사이를 비집고 들어갔다.
딱.
위이이잉~
“하악! 학...! 학!”
소민은 잡아달라는 듯이 한 손을 내밀며 뜨거운 숨을 토해 내기 시작했다. 료코는 손을 맞잡아주고 다른 손으로 바이브레이터를 이리저리 움직이며 소민의 젖가슴쪽으로 시선을 옮겼다.
검은 망사슬립에 덮인 유두.
료코는 고개를 숙여 그녀의 유두를 입으로 물었다.
“으... 억... 헉...!”
소민은 금방이라도 숨 넘어갈 것처럼 마구 껄떡거렸다. 자위기구는 우주의 고추처럼 가슴 가득 쾌감을 안겨주었고, 료코의 혀가 그녀의 가슴을 핥을때면 온몸의 세포가 전원 기립 박수를 하는 것 같은 전율이 일었다.
나중에 료코는 유두를 핥다말고 소민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감은 두 눈, 쾌감에 젖어 씰룩이는 눈썹, 가쁜 숨을 내쉬느라 벌려진 입술, 붉게 상기된 얼굴에는 꺾여서 시들해진 장미 한 송이를 옅볼 수 있었다.
“(아무리 슬픈 눈물도, 언젠가는 마를 날이 올거예요.)”
***
노크 소리가 들린 것은 한밤중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