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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지스트 쉴드-101화 (101/285)

101화

눈을 뜨고 시계를 보니 시간은 새벽 1시 15분.

우주는 처음에 잠이 덜 깨서 벨이 울리는지도 몰랐다. TV라도 틀어놓고 자는 줄 알았다.

“......?”

침대에서 걸어나오던 우주는 팀원들 관련해서 불상사가 생겼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불쑥 들었다.

그는 이번 전국순회기간 통솔자며 책임자였다. 그런 생각이 들자 거의 무의식적으로 뛰어가서 얼른 문을 열어주었다.

“우, 우리 팀원들에게 무슨일이라도 생겼소?”

“어머나!”

복도에는 검정 미니 드레스를 입은 하나가 서있었다.

그녀는 우주의 속옷차림을 보자마자 손으로 황급히 눈을 가렸다. 우주의 신체 중심, 회색 팬티를 입은 상태에서 볼록 튀어나온 고추의 실루엣이 그녀에게 너무나 인상적이었다. 당황한 마음에 두 눈을 꾹 감아버렸지만, 뇌리에 박혀 잊혀지지 않았다.

그리고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까페 대문에 걸어놓으면 정말 대박이겠다......’

그녀는 신우주 팬까페 우그신의 회장이다.

“미, 미안하오. 잠시만 기다리시오.”

정신이 번쩍 든 우주는 서둘러 안으로 들어가서 흰 가운을 걸치고 나왔다.

“무슨일이오?”

“아, 그... 그게요.”

하나는 수줍어하는 눈초리로 손에 쥔 것을 들고 흔들어 보였다.

위스키.

술 한 잔 같이 하고 싶었단다.

그녀가 일부러 밤늦은 시간에 찾아온 이유도 우주의 방에 들어가는 모습을 남들 눈에 띄고 싶지 않아서였다.

우주는 잠시 고민을 하더니 손짓했다.

“얼른 들어오시오.”

우주는 하나를 방으로 들여보냈다. 그녀가 잠시 기다리는 동안 욕실에 가서 세수와 이빨을 닦고 나왔다. 수건으로 얼굴을 닦는 그의 모습을 보자 하나가 안쓰러운 얼굴로 말했다.

“주무시는데 깨워서 정말로 죄송해요.”

“괜찮소. 이대로 날새도 끄덕없소이다.”

우주는 웃으며 말했지만 사실 그의 속마음은 그녀에게 비정했다. 그녀가 찾아온 것이 오히려 잘됐다고 생각했으며, 이 참에 기회를 봐서 확실히 거절의사를 표시할 생각이었다.

100여년 전, 박필모가 이끄는 소년단에 속해 있을때였다. 소년단에는 10대 후반 사춘기 소녀들도 더러 있었는데, 그 당시 소년단을 이끌던 대장 박필모는 그녀들에게 단연 인기 최고였다.

그것은 외모와 하등 상관없었다. 그 시절 여성들은 시대가 시대다 보니 아무래도 쫄따구보다는 대장이라는 직함이 더 눈에 들어오는 것 같았다. 따라서 쫄따구 우주는 눈에 밟히지도 않는 그런 때였다.

하루는 우주가 박필모에게 물었다.

“형님, 형님만 지나가면 아주 그냥 계집애들 콧구멍이 벌렁벌렁 대다 못해 손길만 닿아도 우수수 쓰러질것 같던데 왜 안 건드는 거요? 나 몰래 숨겨둔 계집이라도 있소?”

박필모가 피식 웃어보였다.

“우주야.”

“응.”

“이것만 알아둬라. 같은 집단에 속한 여자는 말이지. 절대 건들어서는 안돼.”

“왜?”

“나중에 칼 맞을 수 있거든.”

“하하, 뭐요 그게.”

그때는 박필모가 농담처럼 말한 까닭에 우주가 콧방귀를 뀌며 대수롭지 않게 넘겼었다.

그러나 한달이 지나고 반년, 또 1년이 지나가며 우주는 그가 한 말을 뼈저리게 실감할 수 있었다.

어느날 새로들어온 소년단 앞에서 우주가 자기소개를 할때였다.

그는 험악하게 인상을 구겼다.

“이 안에서 연애질만 해봐. 했다가는 그년놈들 아주 작살을 내버릴테니까 진짜!”

그 시기 우주는 거친데다 철도 없었다. 게다가 그간 소년단 내에서 남녀가 눈이 맞아 도망치거나 어느 한쪽이 실연 당해 활동을 관둔 사람이 많아 크게 화가 나 있었다. 심지어 심한 경우에는 삼각관계를 넘어 살인까지 나는 판국이었다.

“여긴 연애질하러 온게 아니라 나라 지키러 온거야! 이 잡년놈들아!”

소년단 내에 짝이 되는 남녀 한쌍이 생기면 그것처럼 방해되는 것도 없었다. 열심히 하면 좋은데 지들끼리 코에 바람들어가서는 분위기 망치는 것은 물론이거니와 소년단 내에서 맡은바 임무도 뒷전이었다.

그저 지들끼리 은밀한곳에서 섹스, 섹스. 그러다 나중에 한쪽이 차이게 되면 온갖 오만상을 찌푸리며 낙담하게 되고 그 길로 소년단 활동을 그만두었다.

더욱이 간부가 수하의 여자를 건들게 되면 그것 만큼 안좋은 상황도 없었다. 단원들은 그 간부의 통제를 따르기는 커녕 흉보고 깔보며 그의 말을 우습게 여기는 경향이 있었다.

그러니 지도자로서 자기 욕망에만 충실했다가는 당나라 부대가 되는 것은 한순간이었다.

우주는 1년 뒤 박필모의 두 손을 꼬옥 맞잡으며 크게 감탄했다.

“내 형님의 큰 뜻을 이제야 알겠소. 조직 내 기강 헤이와 헤어짐으로 인한 병력 손실을 우려했던게요.”

그것은 그의 마음속 깊이 새겨지며 오늘날까지 참된 교훈으로 남아있었다.

그때와 달리 우주의 성격도 많이 순화되었지만 박필모가 남기고 간 명언 만큼은 절대 잊지 않았다.

‘같은 집단에 속한 여자는 말이지. 절대 건들어서는 안돼.’

그것은 하나에게도 통용되는 말이었다.

우주는 그녀에게 이렇다할 흑심을 절대 품지 않았다.

오늘 파티용 미니 드레스를 입은 아름다운 모습을 눈앞에 두고도 말이다.

그녀는 평소와 다르게 무어라 형언할 수 없는 매우 아름다운 모습을 지니고 있었다. 드레스를 입은 모습은 마치 르네상스시대 유명 화가가 그려놓은 한폭의 그림처럼 고귀해 보이기도 했다.

하지만 우주에 대한 그녀의 욕망, 우주에 대한 그녀의 슬픔, 연정이 깃든 눈동자에도 우주는 꿈쩍도 안했다.

오로지 목석처럼 단단했다.

술에 취해 여자를 탐하고 싶은 간절한 본능이 생겨나는 것은 당연했고, 아늑한 노란색 조명 아래 눈앞에 있는 하나의 모습이 매우 섹시해 보이는것도 당연했지만 오늘밤 그는 시크하다. 더욱이 좆을 잘못 놀렸다가는 소민이 그랬던 것처럼 그녀에게 발목 잡히는 수가 있기에 최대한 경각심을 세웠다.

두 사람은 탁자를 사이에 두고 술을 마셨다.

우주는 하나가 조금 전 따라준 위스키를 쭈욱 들이켰다. 컵의 바닥이 보이자 얼음까지 입에 담았다.

“하나 낭자.”

“네?”

“소생이 말이오. 좀 골치 아픈일이 있는데 터놓을 사람이 있어야 말이오. 한번 들어봐주시겠소?”

“뭔데요?”

“같이 사는 여자가 있는데......”

우주는 직접적으로 거절하지 않고 뜻을 넌지시 비췄다. 딱 이 정도 말로도 명석한 그녀는 충분히 알았들었을 것이다.

아마 동거녀가 있다는 사실에 많이 놀랐겠지. 그녀의 유순한 성격으로 비춰볼때 동거녀가 있다는 사실에 울지나 않을까?

그러나 예상과는 딴판이었다.

하나는 아무렇지도 않았다. 무척 덤덤해보였다.

“같이 사는여자가 무슨 문제라도 일으키나요?”

두 눈 크게 뜨고 놀란 것은 오히려 우주 였다.

“소생에게 동거녀가 있다고 했소만?”

“그래요 있어요.”

“괜찮...... 괜찮은거요?”

“네 전부터 알고 있던거라 이제와 딱히 상관은 없는데. 헤헤”

“어떻게 알으오? 말해준적이 없는데...?”

“전에 술자리에서 철수 씨한테 들은 적이 있거든요.”

하나는 얼음이 동동 띄워진 위스키 잔을 흔들더니 이내 마른 목을 적셨다.

그 후 동거녀에 관한 이야기가 계속 이어지면서 두 사람의 취기도 슬슬 올라왔다.

사랑에 빠지면 아무것도 안보인다고 누가 말했던가.

대화 사이 사이 우주가 언뜻 속을 내비춰도 그녀는 몰랐다. 아니 그저 순수했다. 그가 무엇을 말하든 곧이곧대로 들었고 솔직하게 대답했다.

“사실 동거녀가 임신했소.”

우주는 도저히 에둘러 말할 수 없겠다 라는 생각이 드는 순간, 마침내 비장의 카드를 꺼내들었다. 이 정도까지 꺼냈으면 거의 게임오바다. 하나는 크게 상심하며 어쩔 수 없이 물러날 수 밖에 없겠지.

“어, 어쩌다 그러셨어요? 콘돔이라든가 피임을 하시지!”

우주가 예상한대로 그녀는 눈을 동그랗게 뜨며 자신을 쳐다보았다. 그리고 표정이 가관이다. 안타까움에 속이타들어가는 것처럼 보였다.

‘후후, 이제 됐다.’

“그녀와 아이를 낳고 싶었소.”

하고 그가 진지한 얼굴로 대답했다.

잠시 침묵이 흘렀다.

하나는 반 놀라고 반 괴로운듯 울상을 지었다.

“왜, 왜 조심하지 않으셨어요?”

우주는 되도록 담담하게 목소리를 깔며 대답했다.

“조심이라니오. 그녀를 사랑했기에 아이를 갖고 싶었소이다.”

“그게 아니잖아요!”

“음......?”

하나가 대뜸 탁자를 치며 소리치기에 우주가 움찔했다.

그녀는 속사포처럼 쏟아냈다.

“우주 씨는 유명인이라구요! 만약 동거녀가 임신했다는 소식이 팬들에게 알려지면 단숨에 인기가 식을지도 모른다구요! 피임도 해가면서 조심하시지 어쩔려구 그러셨어요! 그리고 원래 그 사람이랑 결혼할 생각도 없었는데 혼전임신을 해버려서 사랑한다고 말하는 거잖아요! 다 알고 있어요! 우주 씨는 너무나 착하고 순수한 사람이니까!”

“......”

그녀의 괴상한 논리에 우주는 그저 입을 헐, 쩍벌리며 조금 멍한 표정을 지어보였다. 아니, 어떻게 이런식으로 해석할 수 있지?

그것은 당연했다.

하나는 그의 팬클럽 회장이다. 대한민국에 한때 빠순이라는 단어가 유행한 적이 있었다.

모든 일을 제쳐두고 운동선수나 가수, 배우등을 쫓아다니면서 응원하는 여성들을 일컫는 단어다. 그녀들에게는 진실이 눈에 보이지 않는다.

오로지 우리 오빠만 생각해주며 우리 오빠가 사회적으로 성폭행 물의를 일으켜도 지고지순하게 우리 오빠의 아군이 되어주는 열성적인 팬들이다.

“전 우주 씨를 이해할 수 있어요. 남자는 성욕이 많으니 어쩔 수 없잖아요. 흑흑...!”

하나는 기어이 울음을 터뜨렸다. 크게 울진 않았지만 흐느끼며 손등으로 눈가에 맺힌 눈물을 닦아냈다.

보는 이로 하여금 스스로 죄책감이 들만큼 안타까운 장면이었다.

“아... 그... 저...”

우주는 그녀의 뜻밖의 행동에 몸둘바를 몰랐다. 안절부절못하며 그야말로 가시방석이다.

그리고 그러다 문득 생각해낸 그의 최후의 수단.

그래 차라리 더러운 놈이 되자.

보통 여성들은 더러운 남자를 극히 혐오한다.

그 앞에서 방귀라도 뀌면 믿었던 환상이 깨지는 것은 당연한 이치. 어쩌면 하나가 씨발 하며 자리를 박차고 이 방을 나갈지도 모른다.

그러니까 그 즉시,

뿌웅-!

우주는 소리가 크게 나도록 방귀를 힘껏 뀌었다.

그런데 좀 약한 것 같다.

한번 더.

뿌웅-!

그 소리에 놀란 하나가 갑자기 울음을 뚝 그쳤다.

“아이쿠, 이런. 소생도 모르게 그만 쌍바위골에서 비명이. 하하하...”

우주는 천연덕스럽게 말하며 하나의 눈치를 슬쩍 살폈다. 그녀는 넋이 나간 눈빛으로 우주를 똑바로 마주보며, 지금 이게 무슨 소리냐는 듯 큰 충격을 받은 표정이다.

우주는 내심 잘됐다 생각하며 머리를 긁적긁적하더니 멋쩍게 웃어보였다.

“생리현상이다 보니 참을 수 없었소이다. 허허허.”

그러면서 속으로 생각했다.

이제 그녀는 서둘러 이 방을 떠날 것이다.

그리고 평생 날 더럽다며 혐오하겠지.

억울하지만 잘됐다.

차라리 잘됐다.

우주는 모든 것을 받아들일 준비가 되어있었다.

그러나 그러한 슬픔 섞인 기대도 잠시.

“풉.”

“......?”

“큭큭...”

그녀가 갑자기 입을 가리고 키득키득 거리기에 우주는 영문을 모르겠다는 눈빛으로 조심스레 물었다.

“왜 웃는거요......?”

“그게요! 아하하하!”

하나는 새어나오는 웃음을 참다 못해 크게 웃음을 터뜨렸다. 배를 움켜잡고 깔깔거리며 웃음 때문에 눈물이 나올지경이었다.

“제가 슬퍼보이니까 일부러 방귀끼신거죠? 절 웃겨주시려구 일부러 한거잖아요! 정말 센스 있다! 진짜 웃겨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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