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레지스트 쉴드-102화 (102/285)

102화

“......”

매우 만족스러워 하는 듯한 그녀의 모습에 우주는 그저 작게 한숨을 내쉬며 고개를 떨구었다.

“숙녀 앞에서 방귀나 뀌고 매너꽝 아니오...?”

하나가 크게 손을 저었다.

“전혀요. 완벽해보이는 우주 씨에게 이런 소탈한 모습이 있다는게 무척이나 매력적인걸요. 막 결혼한 신혼부부끼리도 방귀트기가 힘들다는데, 우린 결혼도 하기 전에 방귀부터 텄으니 결혼 이상으로 친분이 깊다는 의미 같아서 너무 좋아요.”

“결혼......”

우주는 망연자실한 표정으로 중얼거렸다.

아무래도 하나를 떼어놓는 작전은 오늘밤 실패인듯 싶다.

***

오전 4시 서울 우주의 집.

새벽 4시는 인간이 생리적으로 가장 취약한 시간.

범죄는 이 시간에 행하면 딱 알맞고 쿠데타도 이 시간에 하면 성공하기에 딱 좋은 그런 시간대라고 했다.

“쿠울......”

료코와 소민은 안방 침대에 나란히 누워 새근새근 잠을 청하고 있었다.

그런 가운데 디지털 키로 잠금장치된 현관문이 쥐도 새도 모르게 열렸고, 베란다의 창문까지 어둠속에서 숨 죽이며 조용하게 열렸다.

여섯 명의 침입자.

그들은 어둠에 녹아들 듯 거실을 점령했다.

“......!?”

료코는 퍼뜩 눈을 떴다.

선잠은 닌자의 기본 기술. 안전하다는 보장이 확실히 없으면 절대 깊은 잠에 빠져들지 않는다.

료코는 침대에서 일어나 재빨리 벽에 귀를 기울였다.

알듯 말듯 사람의 기척이 느껴진다.

누군가 거실로 침입했다.

‘세키가하라는 거실에 장식되어있고, 이 안방에는 소민 언니가 자고 있다.’

모습은 보이지 않았지만, 료코는 자객의 숫자가 얼마나 되고 어느 정도 떨어진 거리에 있는지 정확히 알 수 있었다.

그만큼 귀가 밝았다.

그녀는 그자들의 움직임 하나하나를 그리고 있었고, 조용한 걸음의 보폭이 어느 정도인지도 알 수 있었다. 자객들이 4개의 방을 하나씩 들여다 보며 안방 근처까지 오는동안, 망사슬립만 입고 있던 그녀는 재빨리 옷걸이에 걸렸던 기모노를 걸치고 문쪽 벽에 등을 대고 바짝 붙었다.

그때 안방 문고리가 조용히 돌아갔다.

방 안에는 달빛이 스산하게 쏟아졌다. 잠들어 있는 소민의 규칙적인 숨소리말고는 아무 소리도 들려오지 않았다.

문틈으로 장갑 낀 손이 불쑥 들어오더니 무언가를 떨어뜨렸다.

주먹보다 작은 그것은 통, 통, 통, 몇 번 튕기며 또르르 굴러가더니 이내 흰 가스를 발산시켰다.

취이익-

‘수면탄?’

예전에 요인 납치와 암살을 전문으로 했던 그녀다.

그들의 목적을 예상한 이상 생각나는 것은 수면제를 이용한 납치 밖에 없었다.

그렇게 생각한 그녀는 숨을 꾹 참았다. 그리고 문고리를 확 잡아당겼다.

문이 활짝 열리고, 전부 얼굴에 방독면을 쓰고 검은 자객복을 입고 있었다. 어둠 속에 비치는 실루엣은 모두 셋. 남은 셋은 좌우벽에 붙어 있을 것이란 생각이 순식간에 들었다.

우선 제일 앞에서 웅크리고 있던 자의 뒷목 깃을 잡고 힘을 다해 방안쪽으로 내동댕이쳤다. 그자는 장농에 머리를 세게 꼬라박으며 바닥을 나뒹굴었다. 연이어 날카롭고, 빠르게, 두 번째 자객의 인중 부분을 발로 퍽 차자, 그자는 힘없이 뒤로 넘어가며 자빠졌다.

료코는 문앞을 막고 있던 자객들이 쓰러지자 반사적으로 전방공중회전낙법을 구사하며 쏜살같이 거실로 빠져 나왔다. 안방은 흰 연기로 인해 시야가 방해될 정도였다.

“핫!”

구르고 일어난 순간, 우측에서 그림자가 지체없이 주먹을 날렸다.

그녀는 급히 허리를 숙이며 오른손으로 그의 옆구리를 쳐내자 그 충격에 자객은 고통스러운 신음을 내며 옆구리를 감쌌다.

이번에는 왼쪽에서 발차기가 날아왔다. 왼쪽 팔등을 내밀어 그자의 정강이를 받아냈다.

그다음 두 손으로 재빨리 그자의 다리를 붙잡고 그대로 벽으로 밀어붙였다. 선반에 놓여있던 옥으로된 꽃병이 떨어지며 바닥을 굴렀다.

남성보다 키가 작은 여성의 경우에는 보통 상체보다는 하체를 공략하는 것이 편하다. 료코는 바로 주먹으로 낭심을 때렸다.

“아악!”

거실을 울리는 끔찍한 비명소리. 고환 두 쪽이 다 으깨진 것 같다.

료코에게 자비는 없었다. 두 손으로 낭심을 감싸는 사내의 가슴을 무릎으로 찍고 내동댕이쳤다.

순식간에 장정 네 명을 쓰러뜨린 료코. 힘의 차이가 확연했다. 어쩌면 수라 그 이상의 수준을 넘어선 것이 아닌가하고 자객들의 대장은 속으로 생각했다.

지금은 그녀에게 반감을 살 때가 아니었다. 만약 칼이나 총같은 무기를 들고 맞섰다면 더 유리했겠지만, 절대 써서는 안된다는 하시도루의 엄명이 있었다.

남은 자객은 이제 세 명. 자객대장은 계획을 바꿔 그녀를 설득하기로 했다.

그는 료코의 행동을 멍하니 바라보고만 있었다. 그녀는 행동을 멈추지 않고 칼장식대로 뛰어가더니 이내 칼을 집고 베란다 밖으로 뛰쳐나갔다. 밤공기를 쐬며 그곳에서 잠시 숨을 골랐다.

“(쿠, 쿠로가네님......!)”

자객대장은 좀 전까지 드리워져 있던 적의가 사라진 채, 료코의 앞으로 다가가 털썩 무릎을 꿇었다.

그가 꿇자 그나마 몸이 성한 다른 두 명의 자객도 동시에 달려와서 무릎을 꿇고 머리를 조아렸다.

사내는 방독면을 벗었다.

료코가 살짝 미간을 좁혔다. 땀에 젖은 그의 머리. 어딘가 익숙한 얼굴. 예전에 길에서 마주친 그자였다.

“(네이놈! 하시도루가 시켰느냐!)”

료코는 잔뜩 성이 난 목소리로 무섭게 꾸짖었다.

사내는 눈을 마주치지 못하였다. 머리를 조아리며 간곡히 청했다.

“(소인 스즈키 노부유키라고 하옵니다. 부디 저희와 함께 일본으로 돌아가주십시오!)”

“(한번만 더 그딴 소리를 뱉어봐라!)”

료코는 가차없었다. 달빛이 녹아든 서슬퍼런 칼날을 그의 목에 들이대며 살기 가득한 눈길을 보냈다.

스즈키는 침을 꼴깍 삼키며 말을 더듬었다.

“(하, 하시도루님께서 서울에 와 계십니다. 자, 잠깐이라도 좋으니 한 번 만나보심이......)”

“(이미 늦었다! 단념하라 이르거라!)”

료코는 단호하게 선언했다.

“(난 이미 신진루이를 서방님으로 모시며 그분의 아이를 뱃속에 잉태하였다. 그러니 헛된 생각은 냉큼 집어치우고 더는 날 찾아오지 말거라!)”

“(예에...?)”

스즈키는 믿지못하겠다는 듯이 두 눈이 커졌다.

“(지금... 신진루이의 아이를 임신했다 하셨습니까...?)”

료코는 차가운 시선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이익...!”

스즈키는 이를 악물었다. 그 눈빛에는 좌절과 치욕이 번갈았다. 대일본제국의 상징이라고 생각했던 쿠로가네 료코가 하찮은 조센징의 아이를 잉태했다는 사실에 크나큰 충격을 받은 듯 했다. 그 수치심에 괴로운듯 그는 얼굴을 잔뜩 찌푸렸다.

“(어떻게... 어떻게 그런 일이...!)”

스즈키의 일그러진 얼굴은 점점 분별력을 잃었다. 괴로워하다가, 슬퍼하다가, 나중에 그는 히죽 웃었다.

료코가 신우주의 아이를 임신했다는 사실은 이제 그들의 할 일이 끝났음을 의미하는 것이었다.

또한 대일본제국의 수치, 쿠로가네 료코가 세상에 존재해서는 아니된다는 이야기이기도 했다.

“(대일본제국의 희망이 되어야할 쿠로가네님께서 오히려 조국에 치욕을 안겨줄바에는...!)”

순간, 공기가 변했다.

스즈키의 의식에 또아리를 튼 광기가 들춰지고 있었다.

“(네 이놈 무슨 생각을 하느냐!)”

료코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광기에 사로잡힌 스즈키가 무슨짓을 벌일지 한눈에 간파했다. 맹목적인 믿음을 갖고 환상에 빠진 자들이 잘하는 짓이다. 누구보다 그 느낌을 잘아는 그녀는 그 즉시 칼을 높이 치켜들고 그대로 내려쳤다.

싹둑.

섬광처럼 밤공기를 가른 칼날이 따끔한 철퇴처럼 스즈키의 머리를 시원하게 잘랐다.

목덜미에서 피가 쉼 없이 떨어졌다. 목울대 사이로 삐져나온 목구멍에서 마지막 남은 광기가 계속해서 터져 나오는 듯했다.

불길했다.

“(천황을 위하여, 국가를 위하여! 날아올라라 신풍특공대!)”

머리를 조아리고 있던 자객들이 하나같이 상의를 좌우로 열어젓히며 벌떡 일어섰다.

그들의 가슴에는 폭탄이 장착되었고 일제히 료코를 향해 달려들었다.

그녀를 껴안고 함께 죽을 생각이다.

“(이 미친녀석들!)”

료코는 눈살을 찌푸리며 혀를 찼다.

그리고 얼마 안지나 베란다에서 콰앙하고 큰 폭발이 일어났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