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3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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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뭣이오!? 내 당장 올라가리다!”
아침 6시. 소라에게서 급히 연락을 받은 우주는 악어팀의 기자회견을 성일에게 맡기고 서둘러 회사 전용기를 타고 서울로 올라왔다.
오는 동안 속이 타는 심정으로 료코에게 수십 차례 연락을 취해봤지만 그녀는 일절 전화를 받지 않았다. 소민도 마찬가지였다.
‘료코에게 대체 무슨일이 생긴것일까!’
한편으로는 그간 너무 안일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 순간 떠오르는게 있다면 하시도루의 서울 방문.
그자가 료코를 가만 놔둘리 없을 것이 뻔했는데 어째서 진즉에 대비하지 않았을까!
비행기 안에서 그는 주먹을 불끈쥐고 제 무릎을 쳤다.
“이 멍청한 자식!”
서울.
아파트 고층에서 새어나온 거무스름한 연기가 허공으로 피어올랐다.
긴급 출동한 소방차와 경찰차로 인해 현장은 시끄럽고, 복잡하고, 부산스러웠다. 경찰들은 현장을 통제하며 구경꾼들과 취재 기자들의 접근도 막았다.
우주가 도착했을때도 그의 집 베란다에서는 여전히 연기와 함께 불길이 활활 타올랐으며 길바닥에는 온통 유리파편과 철골자재가 널려있어 지저분했다.
그는 울며불며 집안으로 뛰어 들어가려했지만 소라와 소방관들의 강력한 제지를 받았다. 유창성까지 나타나서 그를 말렸다.
우주는 어쩔 수 없이 아파트 앞에 마련된 소방 지휘본부에서 발만 동동 굴렸다.
지휘본부에는 이번 폭발사고의 관할 경찰서장과 소방서장이 동시에 얼굴을 내밀었다. 두 사람은 안쓰러운 얼굴로 우주에게 꼭 달라붙어서 흘러가는 모든 상황을 시시각각 꼼꼼하게 전달했다.
“불이 곧 잡힐 것입니다.”
시간은 속수무책으로 흘러만 가고 어느새 정오.
이윽고 화재가 진압되자 현장을 정리하던 소방관들에게서 조금씩 정확한 보고가 들어왔다.
천막에서 탁자를 사이에 두고 그를 위로해주던 소방서장이 전화를 끊고 말했다.
“남성으로 추정되는 여섯 구의 시신이 발견되었다고 합니다. 짐작가는 게 있으십니까?”
“그럴 리가. 소생은 그들을 전혀 모르고 우리집에 남자가 들어올일도 없소. 여성 두 명의 시신은 없었소?”
그때 함께 듣고 있던 소라의 눈썹이 조금 꿈틀거리며 우주를 흘끗 보았다.
‘여성 두 명? 료코만 있는게 아니었나?’
소방서장이 말했다.
“방을 샅샅이 찾아봤지만 그외 시신은 발견되지 않았다는군요. 다만...”
“다만...?”
“세 명의 시신은 그나마 온전하게 불에 타 발견되었지만, 시신 둘은 폭발을 직격으로 맞은 것처럼 훼손이 무척이나 심해서 남아있는 하반신으로만 남성이라고 추측 할 따름이랍니다. 그리고 또 하나의 시신은 목이 잘린채로 발견되었다는데, 칼처럼 날카로운 무언가에 깔끔하게 잘려 있었다는군요.”
‘어쩌면 그건 료코가 했을지도!’
그런 생각이 번쩍 들었다.
우주는 천천히 시선을 내려깔며 잠시 깊은 생각에 잠겼다.
남성의 시신만 발견되었다는 말에 그는 내심 안도하는 한편 놀란 눈치다.
‘어떻게 된 일이지? 집이 폭발하기 직전에 료코와 소민 낭자가 탈출한 것일까?’
곧 고개를 저었다.
‘아니지. 아니야. 어쩌면 납치되었을지도 몰라.’
그러는 동안 소라는 미소를 띄우며 두 서장을 향해 말했다.
“시신이 발견된 부분 관련해서는 수사가 종료될때까지 언론에 일절 노출되지 않기를 바랍니다. 자칫 대중에게 오해를 불러올 수도 있고 그 파장이 만만치 않을테니까요.”
“물론입니다.”
“당연한 말씀이십니다.”
소방서장과 경찰서장이 이해한다는 얼굴로 동시에 끄덕였다.
그렇잖아도 이번 사건과 관련해서 경찰청장과 소방방재청장에게 일찍 전화가 걸려왔었다. 이번 사건과 관련해서 말을 아끼라는 상부의 지침이었다.
그 말인 즉슨, 경찰청장과 소방방재청장을 능가하는 그 이상의 누군가가 이번 사고를 주의깊게 지켜보고 있다는 것이었으며, 그것은 어쩌면 대한민국이 우주를 지켜주려는 것일 수도 있고, 또 앞으로도 그의 활약이 지속되기를 바란다는 말과도 일맥상통했다.
그리고 이 모든 것은 오직 대한민국의 부흥을 위해서라는 점에서 전원 의견이 일치했다.
이야기를 마치고 난뒤 우주는 밖으로 나왔다. 북적북적한 곳을 피해 아무곳을 향해 걸었다.
천천히 발걸음을 옮기며 료코와 소민이 갈만한 곳을 생각해봤다.
‘피신했다면 소민 낭자의 집일테고, 만약 납치되었다면 하시도루가 데리고 있겠지. 하시도루 이 개놈자식!’
우주는 이를 뿌득 갈았다.
‘내가 없는 사이에 감히 이딴 수작을 부리다니!’
“우주 씨!”
뒤를 돌아보니 소라가 그를 뒤따라오고 있었다.
그녀는 또각또각 구두 소리를 내며 뛰지 않고 그를 불러세웠다.
우주는 마침 잘됐다는 얼굴로.
“혹시 하시도루가 묵는 호텔이 어딘줄 아오?”
“그보다.”
그녀가 다가오더니 그의 얼굴을 똑바로 마주보며 조금 의아한 눈길로 물었다.
“아까 서장한테 말할때, 여성 두 사람이라니요? 집에 료코 혼자만 있던게 아니었나요?”
“아, 그건...”
우주는 아차 싶었다.
하지만 번뜩 떠오르는 변명거리가 하나 있었으니, 그는 목을 가다듬고 제법 침착한 목소리를 냈다.
“소생의 코디 강민이라고 알것이오. 료코가 민형의 여자친구분과 친분이 있어서 소생이 집을 비운동안 함께 집 좀 봐달라고 부탁했었소이다.”
“료코가 다른 사람과 어울리는 성격이 아닐텐데요? 게다가 한국말도 못하잖아.”
소라는 금시초문이라는 얼굴로 눈을 가늘게 뜨며 그를 바라봤다.
우주는 애써 시선을 피하며 헛기침을 하더니 대답했다.
“설마 그러겠소. 그건 낭자가 료코의 성격을 잘 몰라서 그러오. 알고보면 상당히 활발하다오.”
“지금 내 앞에서 다른 여자 칭찬하는 거에요?”
소라가 흘겨보며 낮게 쏘아붙였다.
그녀는 샘도 많았다.
자칫하면 멱살이라도 잡힐 기세라 우주는 절로 한 발자국 뒤로 물러났다. 하지만 그가 물러남에 따라 한 발자국 더 다가오는 한소라탓에 그런 행동도 무의미해지고 말았다.
“칭찬하다니, 말도 안된다오.”
“이게 칭찬이 아니면 뭔데요?”
“잠깐만 낭자. 지금 이럴때가 아니외다. 소생의 집이 폭발로 날아갔소. 료코의 행방마저 모르고.”
“날아가면 또 사면되잖아요. 연봉 900억이나 받는 사람이 그게 아까워요? 그리고 료코야, 애도 아닌데 알아서 기어들어오겠죠. 뭐하러 신경써요?”
소라는 솔직히 료코가 이대로 죽어버렸으면 좋겠다.
그녀에게 있어 료코는 우주와 한 집에서 살기에 눈엣가시 같은 존재였다. 만약 죽지않았더라도 행방불명이라도 되면 정말 좋을 것 같다.
“아, 그리고 잠깐.”
소라는 무언가 생각났는지 그의 눈동자를 똑바로 마주보았다.
“그 강민이라는 사람은 지금 왜 여기 없죠? 여자친구가 죽었을지도 모르는데 현장에 안나타난다는게 이상하네요?”
우주는 속으로 뜨끔했다. 그러나 애써 침착한 표정으로 대꾸했다.
“연락이 아직 안 닿았나 보오. 소생도 경황이 없어서 전화한다는 것을 깜빡했소이다. 허허허. 생각난 김에 얼른 전화해보리다. 그럼, 이만.”
“어디가요?”
“전화하러 가오.”
“여기서 하면되는데, 왜?”
소라의 눈초리는 갈수록 의심을 더 해가며 그를 노려봤다.
“배도 아파서 잠깐 화장실에 가려 했소. 볼일도 보면서 전화를 할 생각에......”
우주는 궁색한 변명을 덧붙여 늘어놓으며 말끝을 흐렸다.
이 난관을 대체 어떻게 헤쳐 나가야 할까?
소민의 존재를 어떻게 해야 감출 수 있을까.
그때였다.
“우주 씨!”
“우주!”
저 멀리서, 경찰관의 안내를 받아 안으로 들어온 철수와 강민이 그를 발견하자 황급히 뛰어왔다.
하늘이 신우주를 반만 도운것 같다. 화제를 전환하기에 딱 좋았으나 강민의 등장은 또다른 위험으로 다가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