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레지스트 쉴드-104화 (104/285)

104화

“아이고, 본부장님까지 오셨었네요.”

철수와 강민은 소라를 발견하고 정중히 인사부터 건넸다.

“네, 뭐.”

소라는 그들과 조금 거리를 두고 고개만 살짝 까닥이며 인사를 받아주었다. 그녀의 눈에 두 사람은 미개한 생물체처럼 보였다. 한마디로 어울리기에는 격이 다르다는 것이다. 행여나 이들과 함께 사진찍히는 것조차 부담스럽다. 그래서 우주의 뒤로 가서 팔짱을 끼고 가만히 듣기만 했다.

“어떻게 된거예요? 멀쩡한 집에 갑자기 폭발이라니 왠 난리야. 아이구. 중동에서 테러리스트라도 왔다갔나?”

“다친덴?”

“두 사람 모두 전화만 하면되는걸 일은 어쩌고 여기까지 달려온거요.”

“우주 씨, 제가 우주 씨 매니저지, 글로리아 매니저는 아니잖아요. 우주 씨는 너무 매니저를 등한시하는 경향이 있어서 이런 점이 참 서운하다니까. 어딜가든 같이다니고 뭘하든 같이해야지. 특히 이런 일이 생겼을땐 제가 제일 먼저 와야 하는거 아니겠어요.”

“나도 대타.”

우주가 강민을 쳐다봤다.

“민형은 다른 사람을 대신 보내고 여기로 왔소이까?”

“응. 그래서 오늘 tu.”

그 순간, 귀를 쫑긋 세우며 듣고만 있던 소라가 우주의 뒤에서 불쑥 튀어 나왔다.

“아, 당신이 강민 씨?”

“강민.”

강민은 자신의 이름을 말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우주가 말했다.

“몰랐소? 낭자가 직접 소생에게 민형을 붙여줬소이다.”

“음, 그랬나?”

소라가 갸웃거리자 강민이 대답했다.

“우주 코디 뽑을때 서류 통과되고 한번 뵌적이 있습니다.”

“아하.”

그녀는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강민을 기억못하는건 그녀에게 별로 신경쓸일도 아니었다. 우선 그에게 묻고 싶은 게 먼저였다.

“강민 씨.”

강민은 말없이 대답을 끄덕였다.

“여자친구가 있다면서요? 여자친구는 지금 어디에 있죠?”

“수영이...?”

소라가 뜬금없이 자신의 여자친구 이야기를 꺼내자 강민은 의아한 얼굴로 우주를 힐끔 바라봤다.

“......”

우주는 난감한 얼굴로 이마를 어루만지고 있었다. 분명 곤란하다는 표정으로 미간을 모았다.

강민은 대답을 주저하다가 문득 소리를 냈다.

“글쎄...... 음......”

“글쎄?”

강민의 대답에 소라가 인상을 찌푸렸다. 본인 여자친구 어디있냐고 물어보는데 글쎄요 라니, 장난처럼 보여 좀 황당하다.

그녀의 눈초리가 날카롭게 치켜올라갔다.

“글쎄라는 건 여자친구가 어딨는지를 모른다는 겁니까?”

그때 우주가 급히 끼어들었다.

“민형! 수영 낭자는 어딨소? ‘료코!’와 같이 있던 수영 낭자 말이오! 혹시 어제 저녁 일찍 집으로 돌아간게요? 돌아간거 맞을거요! 돌아갔다고 말해주시오!”

우주는 뻔뻔함으로 밀고나가기로 작정한 것인지, 갑자기 강민의 어깨를 흔들며 대답을 보챘다.

“어...... 그러니까......”

강민은 대충 상황을 눈치를 채고 그의 장단에 어울렸다.

“수영이 어제 우리 집에서 잤어.”

“하하하하! 다행이오! 참 다행이외다!”

우주는 밝게 웃으며 소라를 돌아봤다.

“수영 낭자는 어제 돌아갔다는 구려. 하하.”

우주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빙그레 미소를 지었다.

한소라는 그 모습을 못마땅해 하는 얼굴로 강민에게 되물었다.

“방금 글쎄라고 했잖습니까?”

그녀의 추궁 어린 물음.

“그건......”

띠리리리. 띠리리.

이 와중에 갑자기 우주의 휴대폰에서 벨소리가 울렸다.

“음?”

휴대폰을 꺼내보니 모르는 번호였다. 하지만 서울지역번호가 찍히는 것을 보니 공중전화에서 하는 것일까?

일단 전화를 받았다.

곧바로 들려온 여성의 목소리에 우주는 아주 환한 표정을 지었다.

“료코!”

그녀에게서 걸려온 전화였다.

***

같은날 오후 청와대 대통령실.

이세종 대통령은 이번 신우주 자택 폭탄 테러와 관련해서 국정원장의 독대보고를 받는 중이었다.

국정원장은 사망자들의 신원이 일본인이라는 것을 파악했으며 그 밖에 아주 잡다한 사항까지 보고했다.

우주의 집에서 여성의 옷가지와 화장품등이 발견되었다는 점, 또한 신발 사이즈가 무려 세 종류나 된다는 점, 게다가 화장실에서 확보한 생리대에서는 각기 다른 혈액형을 가진 분비물이 나왔다는 점까지 파악하며 이를 토대로 신우주는 아마 여성 두 명과 동거중이었을 것이라고 추정했다.

“집에 살던 여성이 두 명? 영웅호색이라더니, 신우주도 역시 사내대장부였구만.”

이세종 대통령은 보고를 다 받고 나서 껄껄 웃음을 터뜨렸다. 그리고 말했다.

“증거물로 확보한 것은 전부 파기시키고, 이 여성들에 관한 추적도 당장 그만두게.”

“하지만 나중을 위해서라도...”

“어허, 이 사람이.”

이세종 대통령은 단호히 말했다.

“개인의 사생활은 건드는게 아니야. 하물며 정적이라도 말일세. 이 방을 나가는부로 당장 처분하게나.”

“알겠습니다.”

50대 후반의 국정원장은 정중하게 고개를 숙였다.

이세종 대통령은 깍지를 끼고 배 위에 올려놓으며 곰곰이 생각에 잠긴듯 말했다.

“그나저나 일본인이라... 신우주의 여자들을 납치해서 무엇에 쓰려 했을꼬. 음. 신우주를 설득하기 위한 인질로 쓸 생각이었다고 보나?”

“그럴 가능성이 농후하다고 보여집니다.”

“아마도 그렇겠지. 세계최초로 사탄을 잡은 사나이니까 납치라도 하고 싶었을게야.”

이세종 대통령이 덧붙였다.

“자네는 가능한 빨리 사망한 일본인들과 일본 정, 제계와의 연결고리를 찾아보게나. 이 일은 분명 거대한 배후 세력이 있어.”

“알겠습니다 대통령님. 그리고 말입니다. 일본뿐 아니라 러시아도 신우주의 납치 작전에 가담한 것 같습니다.”

이어서 국정원장은 가져온 가방에서 사진 한장을 꺼내 이세종 대통령에게 건넸다.

사진을 받아든 이세종 대통령은 그것을 가만히 바라봤다.

공항에서 찍힌 외국 남성의 모습이다.

“이 자는 누구지?”

“전 자슬론(러시아 해외정보국 소속 비밀특수부대) 출신 이반 세르게이노프입니다. 한국에 들어온지 일주일이 지났습니다.”

“주로 맡던 임무는?”

“해외 잔류공작원 보급 및 접수, 그리고 납치와 폭파입니다. 저희 국정원에서 1개 팀을 꾸려서 감시하는 중입니다만, 일주일 째 강원도 정선에만 머무르며 도박에 빠져 있습니다.”

“흐음, 이 친구는 또 왜 왔을려나......”

“현재로서는 신우주의 납치 밖에 딱히 떠오르지 않습니다.”

“나도 그렇긴 한데......”

이세종 대통령은 작게 한숨을 내쉬었다. 왠지 일이 귀찮아지게 되었다는투다. 레지스트 쉴드로 인해서 미국과 유럽, 일본의 견제를 받는 현 국제정세상, 우호를 다지면 다졌지 강대국 러시아와의 트러블은 왠만하면 피하고 싶었다.

***

소라는 마지못해 회사로 돌아갔다.

그녀는 내심 료코가 있는 곳을 가보고 싶어했으나 그녀의 아버지 및 임원들과의 점심 약속에는 빠질 수 없는 노릇이었다.

그것은 매일 갖는 점심 회의였다.

그녀가 떠나고 난뒤 우주는 바로 소민의 오피스텔로 향했다.

료코와 한소민은 그곳에 피신중이었으며, 두 사람 모두 아무 상처없이 무사했다.

“서방님!”

“우주 씨!”

우주가 안으로 들어오자마자 두 사람이 한꺼번에 안겨들었다.

료코는 감정이 복받친 나머지 울기도 했고 한소민은 이제 무한한 섹스를 할 수 있게 되었다는 안도감에 마냥 즐거워했다.

우주는 복 많은 남자였다.

세 사람은 함께 목욕을 했고, 그간 못나눈 사랑을 나누었다. 료코와 소민은 그에게 평소보다 더 많은 사랑을 요구했다.

우주의 새 집은 당일 바로 제네틱스에서 구해주었다. 한국 최고 수라인 신우주에게 있어 합당한 대우였다. 하지만 급한대로 같은 아파트 단지에서 다른 동으로 옮겨준 것에 불과했다.

우주는 어차피 조만간 이사갈 것이라 크게 신경은 쓰지 않았다. 신경 쓴 것이 있다면 창문마다 방범 장치를 달고 경비업체와 계약을 맺었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날 저녁 소라의 깜짝 방문이 있었다.

소민이 집안에 있었다면 당황하며 놀랐겠지만, 미리 예상했던 일이다. 집 안에는 우주 혼자 있었다.

그는 혼자서 예전 집에서 간신히 건져온 물품들을 정리 중이었다.

그에 소라는 잠깐 들릴 생각이었지만 곧바로 생각을 바꿨다. 그의 집에서 그를 밤새도록 혼자 독차지 할 수 있다는 즐거움에 너무나 기쁜 표정을 지었다.

“하시도루는 어쩔거에요? 복수할 생각이에요?”

“그러고는 싶지만 좀 망설여진다오. 그의 신변이 불안해지면 신세기 프로젝트에서 소생을 몰아내기 위해 낭자의 아버지를 찾아갈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소. 그러니 알면서도 모르는 척, 묵인해야한다는게 화가 나지만 지금 생각으로는 그저 마츠다이라와 함께 하시도루를 끝장내는 수밖에 없다오. 게다가 어제 큰일을 벌인이상 저들도 당분간은 나서지 못할거요. 제 나라도 아니고.”

“저도 우주 씨의 말에 동감해요.”

그날 밤.

쾌락을 부채질하는 가슴속의 흥분이 점점 심하게 타올라, 소라는 마침내 욕망의 여신이 되었다. 그녀는 고혹적인 자태로 연신 숨을 헐떡이며 자신의 왕자를 애타게 끌어안았다.

“하앙! 하으응!”

자신의 갈증을 채워 주는 우주에게 자신이 가진 모든것을 내던졌다.

***

다음날 신우주 자택 폭발 테러 관련 기자회견장.

우주는 오전 10시 소라와 함께 기자회견장을 찾았다.

우주가 많은 사랑을 받는 만큼, 그의 자택 폭발 테러사건은 전국민에게 크나큰 충격을 안겨다 주었다. 따라서 갖가지 오해도 생기기 마련이고, 그랬기에 그가 직접 나서서 대중의 궁금증을 속시원히 풀어줘야만 했다.

“시, 신우주 씨. 지, 지금 무슨 소리 하시는 겁니까?”

당황한 사회자.

모두의 예상과 달리 우주는 기자회견장에서 기가 막힌 소식을 전세계에 전했다.

이로인해 한반도가 들썩이는 것은 물론이거니와 곁에서 보고있던 소라마저 기절초풍할 정도로 어이가 없었다.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그가 어디가서 약이라도 잘못먹고 온줄 알았다.

모두의 비아냥과 조소속에서 우주는 혼자 진지하게 말을 했다.

“앞으로 수개월 내에 일본 후쿠시마 원전에서 큰 사고가 일어날 것이오! 일본 정부는 당장 후쿠시마 원전의 가동을 중단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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