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9화
무전 너머로 지원조의 다급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우주와 미라가 있던 지점은 불꽃과 연기로 시야가 지독하게 어두웠다.
멀리서 바라보던 공격조 또한 우주의 생사를 육안으로 확인하기가 어려웠다. 보이는 것이라고는 거무칙칙한 연기 사이에서 언뜻 드러나는 사탄의 하얗디 하얀 형체뿐.
“아까도 끄덕 없었는데 괜찮을걸세.”
“설마 당했을라고...”
“사탄의 대가리가 밑을 향하고 있는 것을 보니 그쪽에 누군가 있어. 대장님이 버티고 있을 확률이 높아.”
팀언들의 걱정은 오래가지 않았다.
얼마 지나지 않아 무전기에서 바라던 목소리가 울렸다.
[여기는 악어1. 무사, 하다.]
되도록 침착한 우주의 목소리.
악어팀 전원 안도의 한숨을 내쉬면서 탄성을 내질렀다.
이어서 사탄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우주가 천천히 B포인트로 이동을하면서 끌고오는 것이다.
그 후, 우주는 B포인트 도착 전에 뒤따라오던 미라에게 사탄을 인계했고, 그녀가 사탄을 데리고 정확하게 B포인트에 안착하면서 공격조의 거리낌 없는 공격이 이어졌다.
우주는 미리 대기하고 있던 견인차에 맹수를 싣고나서 정비조와 지원조가 있는 후방에 도착했다.
“대장님 최곱니다!”
“유후!”
전선에 나가있는 팀원들의 분위기가 좋아 후방 또한 활기가 넘쳤다.
그가 도착하자마자 하나가 찬우를 비롯해서 정비조원들이 분주하게 움직이기 시작한다.
하나는 맹수를 수리하기 전 우주에게 다가와서 종이컵에 담긴 커피를 건넸다.
“이거 드세요. 드시는 동안 얼른 수리할게요.”
“고맙소.”
얼굴에 때가 탄 우주는 미소로 화답하고 뜨거운 김이 모락모락 피어나는 커피를 받아들더니 그대로 쭈욱 원샷했다.
그의 예상치 못한 행동에 그녀가 놀랐는지 눈을 조금 크게 떴다. 마치 자신의 목구멍이 타오르는 것 같았다.
“저, 저기...!”
우주는 그녀를 향해 엄지를 척 치켜세웠다.
“카페인 섭취 완료!”
“속 괜찮아요? 안뜨거우세요?”
우주는 종이컵을 동그랗게 구기더니 멀리 내던지며 대답했다.
“훗, 안뜨겁소.”
“아, 예...”
그녀는 참 신기하다는 눈빛으로 멍하니 고개를 끄덕였다.
“전 얼른 수리하러 가볼게요.”
“부탁하오 낭자.”
“부탁이랄것까지야, 제 일인데요 뭘.”
하나는 웃으며 맹수쪽으로 깡충깡충 뛰어갔다.
소음이 엄청났다.
전동드라이버가 돌아가는 소리, 컴프레서와 발전기가 내는 소리가 귀를 따갑게했다.
정비차량으로 옮겨져 장갑이 벗겨진 맹수에는 세 명의 수리공이 달라붙어서 열심히 손을 보고 있었다.
“뭐뭐 필요해!?”
하나는 소음에 지지 않을 목소리로 크게 말했다.
찬우가 손가락으로 한쪽 귀를 막으며 소리쳤다.
“좌우 팔이랑 흉부 장갑 교환하고, 유압실린더하고 냉각파이프도 새 것으로 갈면 될것 같아!”
“다른데 파손된 곳은 없어?”
“자잘하긴한데 지금 고치기에는 시간이 없어!”
하나는 고개를 끄덕이더니 부품 창고로 서둘러 뛰어갔다.
나중에는 자신이 직접 용접마스크를 쓰고 맹수의 오른쪽 다리부분에 매달려 땜질을 했다.
용접으로 인한 불똥이 번쩍번쩍 사방에 튀었다.
[악어3으로부터 7에게! 좌측 100미터 지점에 돌연변이 멧돼지 출현!]
[악어 25로부터 2에게! 사탄의 우주펀치 감지! 조심하십시오!]
우주는 잠깐의 기다림동안 지원조가 있는 전술지휘차량에 들렸다.
컨테이너 박스와 비슷한 외관의 좁고 길다란 통로 양쪽에 최첨단 기기가 널브러진 실내에 들어서면 향긋한 향기가 코를 찔렀다.
안에 있는 사람들이 모두 여성인 까닭에 그러리라.
출입문이 열리자, 무척 바쁜와중에도 두 사람의 시선이 일제히 그에게 향했다.
“오셨어요?”
임무시 악어3으로 불리는 강혜주가 살짝 머리를 숙였다. 하나로 질끈묶은 머리가 새초롬하게 잘 어울렸다.
인사를 하고난 뒤 그녀의 시선은 다시 모니터로 향했다.
그녀의 나이는 23세. 어린 나이에 미국 MIT 경제학과를 졸업한 재원이다. 평소에 워낙 말수가 적은 편이기에 그녀의 목소리를 듣고 싶으면 함께 일을 편이 훨씬 빠르다고 팀원들간에 우스갯소리가 나올 정도였다.
우주는 그녀를 볼때마다 마치 누군가를 닮았다는 기분을 느끼기도 했다.
“안, 안녕하세요.”
이어서 악어25로 불리는 박안나가 꾸벅 인사를 건넸다.
그녀의 나이는 19살로 악어팀에서 제일 어렸다. 아직 학구열을 불태울 나이지만 그녀는 14살 어린나이에 고입 검정고시에 합격했고, 그해 8월 고졸 검정고시에 합격한 수재였다.
게다가 같은해 10월에는 한국서울대학교에 수시전형으로 합격했으며 그로부터 3년이 지난 2010년 올해 2월에 졸업을 했다. 그뒤 그녀의 첫직장은 제네틱스가 되었다.
소라는 그녀가 해외로 유학간다는 것을 최고의 조건을 제시해가며 만류하면서 공들여서 스카웃했다.
“두 분 다 고생하시는 구려.”
우주는 가운데로 걸어들어갔다.
의자에 앉아있는 그들 뒤에 묵묵히 서서 모니터를 들여다 보았다.
특별한 전달사항이 없는한 방해할 생각은 없었다. 상황이 어떻게 돌아가는지만 파악할 생각이었다.
턱을 괸 채 서서 한 5분 지났을까.
교신이 바쁘게 오고가는 긴박한 상황 속에서 미라는 잘해주고 있었다. 다만, 피해가도 될일을 굳이 피하지 않고 사탄과 힘 대결을 벌이는 등 좀 과한 부분도 없지 않아 있었지만 그녀가 받는 연봉에 비해서는 기대 이상의 실력을 보여주고 있었다. 미라의 연봉은 기존 150억원에서 사탄을 잡고난 뒤 300억원으로 배이상 올랐었다.
“대장님?”
하나가 지휘실 문을 벌컥 열고 안으로 들어왔다.
“맹수의 수리가 완료 되었어요.”
“서둘러서 끝냈군. 우리 정비조는 세계 최고요.”
우주는 엄지를 치켜든 밖으로 나갔다.
정비조원 모두 그를 향해 동그랗게 몰려 들었다.
곧바로 맹수가 실린 견인차량의 뒷칸에 탑승한 뒤 손목시계를 들여다봤다.
“벌써 시간이 13시요. 사탄을 잡고나서 여기서 식사를 할 계획이니 지원조분들과 협력해서 식사 준비 잘부탁드리겠소.”
“예, 맡겨주세요!”
찬우가 힘차게 대답했다.
방어조 3명과 공격조 15명이 전선에 나가있는동안 취사당번은 정비조 5명과 지원조 2명이 담당했다. 물론 길다란 테이블과 의자를 설치하고 미리 챙겨온 음료와 전투식량을 지급하면 그뿐이었다. 간단했다.
부르릉!
정비차량이 B포인트로 이동하는 동안 우주는 맹수를 착용했다.
“좋군.”
두 주먹을 쥐었다 폈다. 정비를 맡기기 전 동작이 부자연스러웠는데 부드럽게 움직여졌다.
아주 깔끔했다.
[악어 1로부터 모두에게. 정확히 3분 뒤 전선에 복귀한다.]
[악어 7로부터 1에게. 기다리느라 목빠지는줄 알았네.]
성일의 투정 아닌 투정에 우주는 살짝 미소를 머금었다.
[서둘러 가도록 하겠소. 빔 라이플의 에너지 잔량은 어떻소?]
[조금 전 확인한 결과 15명 모두 1/3 가량 남았다네. 슬슬 바닥날때가 되었어.]
[견인차량에 에너지 충전장비도 싣고 가는 중이니 실컷 쏘셔도 좋소.]
***
이윽고 B포인트에 도착한 우주는 사탄을 상대하던 미라의 뒤에 가만히 서서 대기했다.
공격조원들은 견인차량쪽으로 교대로 뛰어가 빔 라이플의 에너지를 충전했다.
“괜찮으려나......”
우주는 웨어러블글래스를 통해서 미라의 상태를 체크했다.
[악어팀-02 강미라 정상.]
[맹수v2-002 파손부위 없음.]
[특이사항 없음.]
[정상작동률 84%]
그 다음 사탄을 쳐다봤다.
마음에 걸리는게 하나 있었다.
지난번 만난 사탄은 1m길이의 날카로운 창을 만들어 폭우처럼 쏟아냈던 반면에 이번 사탄은 어째서인지 창 공격을 하지 않았다.
‘어째서 일까...? 어쩌면 사탄마다 조금씩 다른 것일까?’
생각해보니 그렇다. 지난번 마주친 사탄의 경우는 우주펀치가 이번 사탄처럼 강력하지 않았다. 적어도 숲이 불타는 일은 없었다.
하지만 이번에는 달랐다. 그 위력이 어마어마해서 전투 장소를 변경해야할 정도였다.
그런 생각도 잠시, 문득 지원조에서 강혜주가 외쳤다.
[사탄의 몸에서 이상 변화 감지! 곧 3페이즈로 진입할 것으로 보입니다!]
드디어 3페이즈 돌입.
모두의 예상대로 사탄의 몸이 뒤죽박죽 요동을 치며 기이한 현상이 발생하기 시작했다.
공격조 전원은 다시봐도 신기한 표정을 지었지만 두렵지는 않았다. 악어팀은 이에 대한 만반의 대비책을 준비해온 상태였다.
사탄의 힘줄을 섞어 만든 특수 밧줄을 사용해 신우주, 강미라, 한성일이 각각 두 마리씩 낚고 한 마리씩 목을 자르거나 심장을 파괴해 처리할 생각이었다. 체구가 작아진 만큼 죽이기도 용이했다.
그러나 반은 맞고 반은 틀렸다.
변하는 건 맞는데 사탄은 여섯 마리로 분리되지 않았다.
참으로 묘했다.
등에서 쫘악하고 찢어지는 소리가 나면서 순백의 커다란 날개가 솟아났기 때문이다.
“뭐, 뭐야 저거...? 날개가 생기고 있어?”
“씨발 또 뭐야!”
“아이고오...!”
검은 구름은 나직이 드리워지고 사탄은 처절하게 울며 바닥을 할퀴고 있었다.
우주는 그 광경을 넋놓고 바라보면서 그야말로 미치고 펄쩍 뛸 노릇이었다.
그리고 문득 뺨에 물방울이 떨어지는 것을 느꼈다.
“......?”
하늘을 올려다 봤다.
비가 한점 두점 떨어지더니 이내 주룩주룩 내리기 시작했다.
***
서울.
커튼 사이로 들어오는 오후의 햇살은 눈이 부셨다.
이선주는 알몸으로 침대에 벌렁 누워 머리맡의 시계를 보았다. 오후 1시 40분이었다.
낮시간에 쫓기는 정사는 어수선하긴 해도 서로가 뜨겁게 몰두할 수 있었다.
그 짧은 시간 안에 불타올라야 한다는 생각이 오히려 자극되어 더욱 뜨겁게 타오를 수 있었다.
“가야합니까?”
차영웅은 이선주가 시계를 보았을 때 움직이지 말라는 듯이 손으로 살짝 그녀의 팔을 당기는 동작을 했다.
그는 한번 더 하고 싶은 것일까.
나이가 들으나 젊으나 여자의 몸은 불가사의했다.
50대를 넘어선 이선주는 연상이라서 요염했다.
나이에 걸맞지 않게 봉긋한 유방과 잘록한 허리, 윤기나는 엉덩이가 하얀 멜론처럼 볼록하다.
특히 다른 남자의 아내였던 그녀의 압도적인 매력 앞에서는 아무리 신사라 할지라도 참을 수 없을것이다. 사내들은 그녀를 정복해보고 싶다는 일념하에 흥분하고 발정할테니까.
“영웅 씨와 함께 가볼 곳이 있습니다.”
이선주는 곧 침대를 나갈 것처럼 말을 했다.
차영웅은 못내 아쉬운 듯 그녀의 둥글고 풍만한 엉덩이를 어루만졌다.
“오랜만에 젊은 사내와 해보니까 어떻습니까?”
“몸은 젊지만 마음은 40대겠죠.”
“정액도 안나오는?”
그 말에 이선주는 피식 웃었다.
아직 복제인간 기술이 완벽하게 완성된것이 아니었는지 차영웅은 정자를 생성할 수가 없었다. 20대 몸으로 환생한 그에게 있어서는 좌절이었겠지만 이선주에게는 별로 중요하지 않다. 그녀 역시 폐경기가 지난 몸. 서로가 마음 편히 즐기면 그만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