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레지스트 쉴드-110화 (110/285)

110화

“자, 어서 일어나요. 나갑시다.”

“조금 더 누워있고 싶군요.”

차영웅의 목소리는 나른함에 젖어있다.

이선주는 몸을 일으켜 세웠다. 발가벗은 몸을 드러낸 그녀는 새우처럼 등을 구부리고 바닥에 떨어진 타올을 주워 몸을 가렸다.

“안돼요. 영웅 씨에게 허락된 외출시간은 5시간뿐입니다. 벌써 2시간이나 지났네요.”

이선주는 그대로 욕실로 들어가 문을 잠갔다.

“흐음...... 시간에 쫓겨보는 것도 오랜만이군.”

차영웅은 침대에 반듯이 누웠다. 답답한 연구소를 벗어나 사람다운 생활을 누리기는 실로 오랜만이었다.

이곳은 이선주의 자택. 2시도 안된 이른 오후라 그런지 동네는 한적했다. 창가의 선반에 놓인 난꽃이 희미하게 흔들렸다.

“기분 좋아......”

섹스도 오랜만이었다.

매일 연구소에 갖혀 지내는 생활은 그에게 있어 동물적인 본능만 생겨나게 할뿐 지루하기 그지없었다.

그럴때 마침 이선주가 찾아와 그에게 외출을 제안했다.

그녀의 차를 타고 밖으로 나오자마자 곧바로 그녀에게 말했다.

“어디 안마방에나 좀 들렸다 갑시다.”

“왜죠? 몸이 뻐근한가요?”

“뻐근하다기 보다, 갈증이 좀 나는군요.”

“갈증이라.....”

의외였다. 남편과 사별한 여자가 다른 남자에게 몸을 쉽게 허락한다는 것은 어지간해서는 있을 수 없는 일이다.

그러나 어째서인지 이선주는, 스스로 직접 그의 욕구를 풀어주겠다며 차의 방향을 바꾸었다.

“남편의 죽음 이후 제 몸을 거쳐간 남자는 수두룩 하죠. 수치심과 치욕, 더러움, 모욕감, 이런 감정들을 잊어버린지 이미 오래. 어쩌면 세상 그 어떤 창녀보다도 더 지독한 창녀일지도 모르겠군요.”

“부인에게 이러한 모습이 있을줄은 상상도 못했습니다.”

“이러지 않았다면 아마 지금의 신라는 없었겠죠. 남편의 동생인 한규만 회장의 제네틱스에게 잡아 먹혔을테니까.”

“그 말은 제게도 뭔가 얻을게 있다는 것처럼 들리는 군요.”

“오해는 마세요. 지금의 차영웅 씨는 가진게 없다는 것을 누구보다도 잘 아니까.”

“그럼 어째서...?”

“성욕은 인간의 3대 욕구중 하나라죠. 아무리 돈이 많아도, 아무리 권력의 최정점에 서도, 그리고 제아무리 도덕적인 인간이라해도 한낱 짐승에 불과한 우리는 원초적인 욕망을 이겨낼 수는 없죠. 그건 저 역시 그래요. 늙어도 성욕은 남아있더군요. 젊은 남자야 얼마든지 돈으로 살 수 있지만 소문이 나기 마련이고, 이럴때 아니면 언제 20대 청년과 자보겠어요?”

“난 소문 날 껀덕지가 없어 안전하단거군......”

“상처받았나요?”

이선주는 미소를 지었다.

그녀는 자신의 집으로 그를 안내했다. 그리고 그곳에서 극히 자연스럽게 섹스가 이루어졌다.

침대로 끌어들이기까지 마음을 얻어야 하는 등 남녀 사이의 어려운 절차는 별개였고, 두 사람에게는 오직 강렬한 욕망만이 일렁거렸다.

이선주가 샤워를 마치고 나왔을땐 오후 2시가 조금 지나있었다. 차영웅은 침대에 걸터앉은 채, 그녀가 서랍을 열고 속옷을 꺼내 입는 모습을 느긋하게 감상했다.

“뭐 하나 물어봐도 됩니까?”

“뭐죠?”

“딸이 안보이는군. 한 집에 사는 걸로 아는데. 지난번 기자회견 이후로 외출을 안한다는 뉴스를 본 적이 있습니다.”

“아, 소민이요.”

그녀는 담담하게 이어말했다.

“현재 신우주와 함께 있습니다. 그의 집에서 뭐하고 지내는지는 모르겠지만.”

“호오.”

차영웅이 재밌다는 반응을 보였다.

“우주 군과 소민 양이 어쩌다 만나게 됐습니까? 둘 사이를 한소라가 가만놔둘리 없을텐데 말이지요. 행여나 우주 군을 신라그룹에 빼앗길 수도 있는 노릇일텐데.”

“그것까진 저도 잘 모르겠네요. 소민이가 신우주의 집에 있다는건 그 애를 미행중인 우리측 경호원의 말이니까.”

차영웅은 문득 그녀의 목소리에서 무언가 쌀쌀맞은 감정을 느꼈다.

“딸이 걱정되지 않으십니까?”

“저처럼은 되지 않게 키울 생각이었지만, 결국 피는 못 속이겠더군요. 마치 거울을 보는 듯이 저를 쏙 빼닮은 모습에서 왠지 소름이 끼쳤습니다. 어릴때부터 지금까지 좋은것만 보여주려 노력했었는데.”

“선주 씨를 닮은 모습이라면...?”

두 손을 등으로 넘겨 브레지어의 후크를 채우려던 그녀가 동작을 멈췄다.

차영웅을 돌아봤다. 섹스는 섹스. 그는 그저 타인이라는 눈빛.

“남의 집 사정을 알아서 뭐할 생각이죠?”

이후 이선주와 차영웅은 집을 나섰다. 그녀의 페라리가 부드럽게 미끄러지며 주차장을 빠져나갔다.

이윽고 두 사람이 도착한 곳은 경기도 구리시에 있는 신라전자 로봇연구소였다.

이선주는 지하 5층으로 차영웅을 데리고 갔다.

그곳에서 한 남자 연구원을 만났다.

“반갑습니다 차영웅 씨. 남궁철민이라고 합니다.”

짧은 머리에 키도 훤칠하고 마른 사내였다. 깔끔한 인상을 가진 반면에 잘 웃지는 않았다.

그는 차영웅과 악수를 나눈 뒤 천천히 앞서 걷기 시작했다.

그를 뒤따라가며 이선주가 말했다.

“철민 씨는 전지연 박사와 함께 국내 로봇분야의 쌍두마차입니다. 제네틱스의 전지연이 로봇방어기술의 독보적인 실력자라면 우리 철민 씨는 로봇공격기술의 자타공인 실력자죠.”

“맹수는 방어적이고 샥스핀은 공격적이란 말입니까?”

“맹수를 홍보하는 영상을 다 찾아 보긴했습니다만, 튼튼해보일진 몰라도 샥스핀처럼 공격력이 뛰어나지는 못하더군요. 쉽게 갈수도 있는 길을 어렵게 간다고 할까.”

“한 번 쏘면 끝날 일을 굳이 두 방, 세 방 쏴야하는 것처럼?”

“예. 간단히 표현하자면 그렇겠죠.”

“이쪽입니다.”

남궁철민은 최첨단 설비가 갖춰진 연구실로 두 사람을 인도했다.

널따란 연구실은 각종 케이블과 전선으로 지저분했으며 육중한 기계가 돌아가는 소리로 웅웅거렸다.

10명의 연구원은 서서 컴퓨터를 조작하거나 더러는 바삐 오가고 있었다.

그 와중에 실내 한가운데에 있는 선반에 놓여진 커다란 대검이 눈길을 끌었다. 사람 팔 모양의 기계 세 대가 무언가를 하나하나 칼날에 박아넣으며 아주 세심한 작업을 하는 듯 보였다.

“최종적으로 확정된 크기는 칼날폭 30cm, 길이는 2.5m입니다.”

이선주를 바라보며 남궁철민이 말했다. 그녀와 차영웅은 유리벽을 통해 대검을 관망 중이었다.

차영웅이 소감을 밝혔다.

“외관은 정말로 멋진 칼이군요. 그러나 멋져보이긴 한데, 사람이 쓰기에는 무척이나 힘들어 보일듯 싶군요.”

“사람이 쓸게 아닙니다. 샥스핀의 무기에요.”

차영웅이 그녀를 쳐다봤다.

“저 칼을 보여주려고 여길 오자고 했던 것입니까?”

“그래요.”

그녀의 대답에 그는 입술을 힘없이 터뜨리며 싱겁게 한 번 웃었다.

사탄을 잡는데 있어서 겨우 저런 칼이 무슨 도움이 되겠냐고 하는 표정이다.

그런 그의 생각을 간파했는지 이선주가 말을 이었다.

“저 칼은 보통 칼이 아닙니다. 사탄의 사체를 이용해 만든 무기다 보니 거진 신의 무기라 불러도 좋아요.”

차영웅이 고개를 갸웃했다.

“사탄의 사체를? 신라그룹이 사탄을 잡은 적이 있습니까?”

“잡은 적은 없지만, 공짜로 얻긴했죠.”

“어떻게?”

“당신이 이끌던 고릴라팀이 전멸하던 날 신우주가 세계 최초로 사탄을 잡아냈거든요. 공식적으로 발표된건 아니지만.”

“아.”

차영웅이 실없이 웃었다. 그에게 있어서 고릴라 팀의 전멸은 뼈저린 아픔이자 다신 듣고싶지않은 사건.

복제되고 난뒤 TV와 인터넷을 통해서 자세한 정황을 알 수 있었다.

그리고 그 사건은 모체이자 죽은 차영웅의 실책이지 자신이라면 더 잘해낼 수 있다는 투지를 불러오게도 만들었다.

이를테면 죽은 차영웅은 가짜고 지금 이렇게 숨쉬는 차영웅이야말로 진짜라는 것이다. 이번에야말로 본때를 보여주겠다는 각오가 그의 마음속에 자리잡고 있었다.

그나저나 신우주가 자신을 죽게 만든 그 소형사탄을 잡아냈다고?

전혀 믿기지 않았다.

그는 다시 되물었다.

“우주 군이 그날 사탄을 잡아냈습니까?”

이선주는 가만히 고개를 끄덕였다. 시선은 유리벽을 넘어 대검을 향해 꽂혀있었다.

차영웅은 이상한 분위기를 느껴 그녀의 두 눈동자를 가만히 들여다 보았다.

분함, 질투, 원망, 시기, 급기야는 죽음과 멸망을 기대하는 빛이 서려있었다.

우주의 죽음과 제네틱스의 멸망. 그녀는 왠지 험난한 세상에서 독하게 살아남은 암고양이같았다.

그러한 소감을 뒤로하고 차영웅은 미소를 지었다.

“역시 우주 군이네요. 그럴줄 알았습니다. 처음봤을때부터 예사롭지 않았거든요.”

“소민이를 내버려둔 까닭도 그런 연유입니다.”

이선주가 불쑥 딸의 이야기를 꺼냈다. 남궁철민은 유리벽 안으로 들어가서 연구원들에게 지시를 내리고 있었다. 이곳에는 두 사람 뿐이었다.

“왜죠?”

“신우주의 계약기간이 내년 7월부로 끝나니까요. 제 딸을 이용해서라도 그를 신라그룹으로 데려올 가능성을 더 높이고 싶을 뿐입니다.”

“친분을 쌓으라 이 말입니까?”

“네.”

이선주는 일말의 고민도 않고 대답했다.

경영자로서 틀린 말은 아니다.

그러나 고용된 입장으로서 서운했다.

그가 말했다.

“그를 데려올 생각이 있었다면 전 애당초 필요없었겠군요.”

“......”

이선주는 잠시 말이없었다. 그녀의 시선은 여전히 대검에 향해있었다. 그 눈동자가 무엇을 생각하는지 파악하기도 어려웠다.

이윽고 침묵을 깨고 그녀가 입술을 열었다.

“그 사람보다 당신이 잘나면 되죠.”

“......”

이번에는 차영웅이 입술을 꾹 다물었다. 그러나 그의 입꼬리가 올라가있었다. 그런건 별로 어렵지 않다는 표정이다.

이선주가 그의 눈동자를 마주봤다.

“저 칼의 이름은 신라(The Silla). 사탄처럼 영원불멸, 무한재생의 육체를 가진 그 어떤 돌연변이 생물이라 할지라도 그 영생을 멈추게 하고 순리대로 죽일 수 있는 세상 하나 뿐인 신의 검입니다.”

그렇게 말하고 나서 이선주의 손이 그의 뺨을 어루만졌다.

그것은 애틋하다기보다는 그를 달래기 위한 행동.

“복제인간에 관한 개정안은 곧 두 세달내로 통과될 것입니다. 우리 신라그룹은 당신과 당신을 믿고 따르는 이태평 씨와 오수연 양에게 모든 기대를 걸고 있습니다. 샥스핀을 착용하고 저 신라로 부디 사탄을 잡아주세요. 신우주를 이길 수 있는 사내는, 이 지구상에서 오직 당신 뿐입니다 차영웅 씨.”

“물론입니다.”

차영웅은 신우주를 떠올렸다.

이선주의 꼬드김은 전혀 눈에 들어오지 않는다. 오로지 신우주만 생각해냈다. 가능성 있던 후배에서 이제 경쟁자. 그를 죽여야만 자신이 산다.

복제인간 차영웅은 심적으로 쫓기고 있었다. 복제인간이 아닌 사람으로서 인정받고 싶었다. 그래서일까, 차영웅의 귀에는 꽃뱀이 스멀스멀 파고드는 것 같았다. 휘황찬란한 무늬의 아리따운 꽃뱀이 그의 귀를 통해 뇌까지 기어들어와 꽈리를 틀었다.

그는 히죽 웃었다. 마치 피에 굶주린 악마의 황홀경에 빠진 사람 같았다.

“신우주... 제가 나서는 순간 그의 종말이 시작되겠죠. 제네틱스는 곧 망할겁니다. 걱정마십시오.”

***

한동안 침묵이 흘렀다.

갑자기 찾아온 공포의 절정. 깃털이 달린 날개가 커지면 커질수록 사탄의 크기도 점점 줄어들었다. 그것은 도저히 믿을 수 없고, 상상하기조차 싫었으며, 또 다른 악몽의 시작 같았다.

그러나 현실.

최종적인 변화는 신장 10m에 한쌍의 날개를 좌우로 펼친 길이가 무려 30m나 됐다.

타악.

변신을 마친 사탄이 가볍게 땅을 차올랐다.

커다란 날개가 비와 바람을 갈랐고, 우렁차게 펄럭이며 녀석은 허공에 떴다.

사탄을 맞고 떨어진 수많은 빗방울들이 악어팀의 시야를 가렸다. 위를 올려다볼 수 없었다.

우주가 다시 눈을 들었을 때, 사탄은 악어팀을 내려다 보고 있었다.

불길한 징조.

그러나 저 하늘에 순백의 천사가 나타난 듯한 기이한 광경.

하늘에 떠 있는 것만으로도 눈부시게 빛을 발하면서 매우 모순되고 장황했기에 하늘에서 내려온 신과 싸우는 기분마저 들었다.

사실 모두가 그랬다. 하늘에 떠 있는 사탄을 올려다보며, 악어팀 전원이 싸울의지를 상실하고 두려움에 휩싸인 눈빛을 짓고 있었다. 그 압도적인 광경에 좌절감이 들정도였다.

“빌어먹을......!”

머리가 휑하니 비어있는 듯한 기분. 그들의 머릿속은 한결같이 백지장이다.

하지만 단 한사람.

“어림없다!”

비 내리는 가운데 실체없는 죽음의 그림자가 드리워지는 광경을 지켜보면서도 우주는 이를 갈았다.

“여기서 또 팀원들이 죽는 모습을 지켜보라구? 지랄하지마라!”

우주는 허공을 향해 윽박질렀다. 파도처럼 밀려오는 분노를 곱씹으며 애써 저항했다.

“니가 뭔 지랄을 해도 난 기필코 널 죽일테다!”

============================ 작품 후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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