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5화
어떤날은 료코와 소민을 데리고 바닷가로 낚시를 가기도 했다.
매주 바쁜 일정을 소화하다보니 마음에 여유가 없어지는 것 같았다. 재충전의 시간이 필요했다.
철수와 강민과 함께 점심을 먹으며 그런 고민을 토로했더니 강민이 이틀쯤 여행을 다녀오라는 조언을 건넸다. 그리고 꽃게 낚시도 권했다.
허탕칠일은 절대 없고 잡는 재미가 쏠쏠하며 초보자도 손쉽게 할 수 있는 낚시가 바로 꽃게 낚시란다.
꽃게 낚시에 관해서 강민에게 이런저런 설명을 전해듣고 우주는 즉시 료코에게 전화를 걸었다.
“(마트에 가면 고등어 대가리를 공짜로 얻을 수 있다네. 응. 가서 제일 냄새나고 상한거 있음 그런걸로 한봉지 얻어와봐.)”
꽃게는 바다의 청소부며, 썩은 생선을 그렇게 좋아한단다. 강민은 꽃게 낚시를 할때 망둥어가 제일 좋고, 보통은 잘린 고등어 머리를 쓴다고 말했다.
철수가 밥그릇을 싹싹 비우며 강민에게 말했다.
“그런건 어떻게 알았어요?”
“수영이랑 자주 갔으니까.”
“하튼 커플들은 좋겠어. 부럽다. 여친이랑 낚시도 가고.”
“여자들도 꽃게 낚시, 좋아해.”
금요일 저녁.
우주는 벤을 타고 집에 오며 휴대폰을 만지작 거렸다.
간만에 소라에게 전화를 걸참이었다.
그러나 그를 주저하게 만드는 기억.
‘내 말이 틀렸어요? 나라를 위해 끊임없이 희생하려는 당신을 누가 알아줄 것 같아요? 자신의 일생을 엉망진창으로 만들어서 뭐해요? 조국이 당신의 업적을 알아주기라도 한데요? 지금 국회에만가도 친일파 의원이 수두룩하고 하다못해 초중고 학생들이 배우는 교과서까지 친일교과서로 싹 바뀌고 있다구요! 당신이 백날 나라를 생각해봤자 돌아오는 것이라고는 오직, 아~ 내가 그땐 그랬었지라고 하며 판잣집 사는 독거 노인의 회고뿐이라구요! 젊은 시절 조국을 위해 그렇게 몸바쳐 일했는데도 곁에는 아무도 없어! 태평양 건너 미국에서는 조국을 위해 몸바쳐 싸운 애국지사 후손들한테 베벌리힐스에 집까지 지어준다는데!’
그녀의 말이 옳았지만, 싫었다. 그리고 너무나 잔인한 말을 당연하게 여기는 점에서 화가났다. 무언가 잘못돌아가고 있다는 것을 알면, 그것에 순응하기보다는 우린 그러지 말자며 함께 노력할 생각은 없는 것일까? 왜 내편이 되어주지 않는 것일까. 그녀는 왜 자기 생각만 주장하는 것일까.
그날 싸운 뒤로 서로 사적으로 연락한적이 없다. 만나도 공개적인 장소에서 만나거나 오직 일에 관련된 이야기만 아주 간단하게 나누었을 뿐이다.
“......”
우주는 차창밖을 뚫어지라 바라보기만 했다. 그러다 이내 휴대폰을 도로 집어넣었다.
소라도, 우주도, 서로 자기고집만 부리며 상대방의 연락만 초조하게 기다리는 연애 숙맥들이었다.
다음날.
새벽 일찍 일어나 주섬주섬 짐을 챙기고 길을 나섰다. 선물로 받은 페라리를 타고 갈까 하다가 사람들의 이목을 피할겸 아반떼로 골랐다.
목적지는 구룡포 해수욕장이었다.
중간중간 휴게소에 들렸다가 포항에 도착하니 정오가 지났다.
10월말이라 그런지 해변에는 사람이 적었다. 그러나 10월 꽃게 축제가 한창인지라 근처 식당가에는 관광객들이 많았다.
우주와 료코, 소민, 세 사람은 콘도형 민박집에 짐을 풀고나서 낚시할 장소를 찾았다.
료코와 소민은 신이 난 듯이 맨발로 모래사장을 뛰어다녔다. 그러다 곧 발이 시렵다며 추위에 몸을 움츠렸다.
“이것 받으시오.”
우주는 발을 닦으라며 두 사람에게 수건을 건넸다.
그는 등에 커다란 가방을 메고 있었다. 양손에도 짐을 한가득 들었다. 가방 안에는 낚시에 필요한 장비와 간이 의자라든지 버너, 캠핑용 난로, 파라솔, 식수, 음식 등등 별개 다 들어있었다. 무게가 무려 100kg이 넘었으나, 하나도 무겁지 않았다.
이곳저곳 둘러보다 그나마 인적이 드물고 조용한 모래사장을 골라 자리 잡았다. 꽃게 낚시를 할땐 암석지대에 터를 잡아서는 안된다는 강민의 가르침이 있었다. 바닥에 암석이 많으면 꽃게가 끌려올때 그물망이 찢어지나거나 꽃게가 돌에 걸려 낚기가 힘들어진다는 것이다.
가방에 들어있던 모든 짐을 꺼내고, 파라솔까지 완벽하게 세우고 난뒤 본격적인 꽃게 낚시를 준비했다.
작은 양파망에 썩은 고등어 머리를 집어넣고 입구를 질끈 묶은 뒤 인터넷에서 1500원 주고산 게그물을 씌웠다. 그것을 만원짜리 낚시대에 매달고 저멀리 힘껏 내던졌다.
휘유우웅~
똭!
“오메, 대단한지고.”
지나가던 낚시복 차림의 노인이 구경하다 감탄을 자아냈다. 우주가 낚시찌를 제 이마에 맞춘것을 보고 껄껄 웃었다. 옆에 있던 료코와 소민도 그를 보고 웃음을 터뜨렸다.
“(어머나 서, 서방님! 머리는 괜찮으시옵니까? 푸훕!)”
“우주 씨 엄청 웃겨요!”
“에고 이 사람아. 그리 던지면 안돼지. 낚시 처음온겨?”
노인이 뒷짐지고 다가와 묻자 우주가 머쓱하게 웃어보이며 대답했다.
“처, 처음이오.”
“그려? 이리 줘봐.”
노인이 제대로된 시범을 보이며 우주에게 던지는 법을 가르쳐주었다.
이윽고 4대의 낚시대를 모두 고정대에 일렬로 꽂아놓고나자 노인은 흐뭇하게 웃으며 떠났다.
10분 정도 지나자 드디어 입질이 왔다. 우주는 재빨리 낚시줄을 감았다. 이어서 끌려나오는 세 마리의 게들. 꽃게는 아니고 같은 게과인 박하지와 황게였지만 세 사람 눈에는 그저 신기했다.
“하하하!”
“와 대박!”
“(얘들 귀엽다.)”
꽃게 낚시는 초보자도 손쉽게 할 수 있다는 강민의 말이 맞았다.
그 이후 거의 쓸어담듯이 게를 낚았다. 던지기만 하면 걸려들었다. 게가 이렇게 쉽게 잡히는건지 몰랐다. 주로 박하지와 황게가 많았지만, 꽃게도 그럭저럭 잡았고, 우연찮게 불가사리나 갯가재까지 그물에 걸려오기도 했다.
곁에서 흥미롭게 지켜보던 료코와 소민도 나중에는 두 팔을 걷어 부치고 낚시에 가담했다.
“이건 이렇게 하는거요.”
우주는 옆에서 차근차근 얕은 지식을 전수해줬고, 몇번 반복해서 낚시대를 던진 두 사람은 빠르게 방법을 터득하며 마침내 게를 낚기에 이르렀다.
그리고 이내 또 한마리 잡았다며 아이처럼 뛸뜻이 기뻐했다.
“선상낚시는 안해볼라우?”
정신없이 꽃게를 낚고 있는데 어부 한 사람이 설렁설렁 다가와 그리 물었다. 양파망에 고등어 머리를 집어넣던 우주는 고개를 갸웃했다.
“선상낚시 말이오?”
“1인당 7만원씩만 주면 돼. 낼 아침 일찍 새벽에 출항하는데 어떻수? 지금 여기 잡힌거 대충 세어보니 한 70마리쯤 되는거 같은데, 바다 나가서 하믄 이보다 세 배는 잡어. 아니 세 배가 뭐여. 고기고 뭐고 아주 우라지게 잡힌다니께. 예전에 어떤 양반은 상어까지 잡아갔었어.”
낚시의 재미에 푹 빠진 우주는 군침이 돌았다. 마치 그는 물고기 같았고 어부가 낚시꾼 같았다. 그는 미끼를 물지말지 고민하다가 료코와 소민을 슬쩍 쳐다봤다. 그녀들은 되도록 티 안나게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아쉽지만, 다음에 가리다.”
“그려. 나중에 한 번 타봐. 고기가 아주 우라지게 잡혀. 우라지게.”
어부는 그 길로 다른 낚시꾼을 찾아갔다.
우주가 두 사람에게 물었다.
“배타는거 재밌어보이는데, 왜 안타려고 했소?”
“(바다는 왠지 무서워요. 서방님.)”
“전 우리끼리만 놀고 싶어요. 사람있는거 별로 안좋아.”
저녁이 되자 달이 뜨기 시작했다. 보름달이 뜨는 날에는 꽃게가 잘 안잡힌다. 우주는 강민의 조언에 따라 일부러 보름달이 뜨는 날을 피해왔다. 밤 9시가 지나자 꽃게는 더 많이 잡혔다. 70마리였던 게들이 어느새 110마리를 넘어갔다. 물론 꽃게보다 황게와 박하지가 더 많았다.
이후 저녁거리를 사기 위해 료코와 소민은 근처 수산물 시장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그동안 우주는 바베큐 그릴을 설치했다. 숯을 넣고 철망을 올리고 호일을 씌웠다.
“이거 봐요!”
시장에 갖다온 한소민이 투명한 봉지에 담긴 것을 흔들어보였다. 파닥파닥 날뛰는 것이 살아있는 참돔이다. 거기에 키조개, 가리비, 참소라 등등 종류별 조개와 더불어 술도 사왔다.
슈슉!
샤사삭!
료코는 회 뜨는 실력이 정말 대단했다. 전용 회칼도 아닌 자신이 애지중지하던 명검 세키가하라로 회를 떴으니 그야말로 신의 경지에 이르렀다고 밖에 할 수 없다.
우주와 소민이 곁에서 지켜보며 수도 없이 감탄사를 연발했다. 단검도 아닌 장검으로 누가 감히 회를 뜰 생각을 해보았을까.
“음, 정말 맛있구나!”
“료코 대단하다. 그런 칼솜씨는 대체 어디서 배운거야?”
소민의 질문을 우주가 통역을 해주었다.
료코가 알아듣고 그제야 대답한다.
“(저 어렸을적 살던 곳이 해안 마을이었습니다. 그땐 고기를 잡으면 주로 회를 떠서 먹었지요.)”
“아, 그래서 회를 잘 썰었던거구나. 이 정도 실력이면 초밥집 사장님해도 되겠네.”
소민이 우주를 돌아봤다.
“돈도 많은데 료코한테 초밥집이라도 하나 차려주지 그래요. 실력을 썩히긴 아까운것 같아요.”
우주는 그 말에 웃음을 터뜨렸다.
“좋은 방법인것 같소. 내 생각해보리다.”
세 사람은 야외테이블에 둘러앉아 두런두런 이야기를 꽃피우며 초고추장에 회를 찍어먹었다. 달구어진 그릴 위에는 각종 조개와 꽃게, 갯가재가 올려져 있었다. 안주가 무척 일품이다 보니 캔맥주를 모조리 다 비우고 다시 가서 소주를 또 사올 정도였다.
그렇게 일상을 벗어나 자유로웠던 하루는 유유히 지나갔다.
자정이 되서야 민박집으로 돌아온 세 사람은 곧바로 침대에 드러누우며 서로 뒤엉켰다.
취기는 평소보다 더욱 강렬하게 성욕을 부추겼다.
료코와 소민은 침대 시트를 거머쥐고 온몸을 파르르 떨어야만 했다. 오늘밤 우주는 어제의 신우주가 아니었다. 꽃게를 먹고 힘이 불끈불끈 솟은 무쇠 같은 사내였다. 단단해진 고추로 그녀들의 국부를 찌르는 힘은 15km 이상 장거리 터널도 뚫을 정도로 강력했다.
“아앙!”
“흐으응!”
세 남녀의 육체가 부딪히며 방안을 후끈 달구는 열기 속에, 두 여성의 입술에서는 환락에 휩싸인 신음이 쉬지 않고 터져 나왔다.
우주는 아주 자신감 넘치는 얼굴로 힘차게 말했다.
“두 사람 다 오늘 홍콩보내주겠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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