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8화
***
살기등등한 외침에 두 소녀가 대화를 멈추고 우주를 응시했다.
이리나는 무언가 기분이 나쁜지 그를 아니꼽게 쳐다보았다.
“{이런 상황에 잘도 떵떵거리는군}”
반면에 올가는 감평을 늘어놓았다.
“{한국 남자 중에서 저런 얼굴형을 가진 남자도 있었구나. 완전히 내 타입인데.}”
치직.
드미트리 라는 자의 목소리가 무전기에서 들려왔다.
-{시간이 없다. 둘 다 잡담 그만하고 서둘러 포획하도록 해.}
“{네네, 알겠어요.}”
“{자, 우리 보스께서 시간이 없으시다니 서둘러 볼까요.}”
두 소녀들은 곧 자신들만의 전용 무기를 꺼내들었다.
먼저 이리나. 옆구리에 찬 아기자기한 가방에서 두꺼운 금색 팔찌를 꺼내더니 그것을 허공에 띄웠다.
휘리릭.
팔찌는 허공에서 빙글빙글 돌았다.
이리나는 떨어지는 타이밍에 맞춰 두 팔을 머리 위로 뻗었다.
철컥, 철컥.
팔찌는 양손목에 걸쳐지면서 모양을 달리했다.
지잉, 척.
그것은 자동으로 다수의 총구를 회전시켜 발사하는 소형 발칸포처럼 모양이 변했다.
이어서 옆에 서있던 올가는 자신의 의상색과 똑같은 검정색 장갑을 양손에 꼈다. 그러자 장갑 손등에서 30cm 길이의 매우 날카로운 비수가 철컹하고 튀어나왔다.
“{사냥 준비 완료.}”
“{슬슬 가보실까.}”
여유만만한 두 소녀.
우주는 그녀들의 무기를 보고 어이가 없었다.
“둘 다 고등학생 정도로 어려보이건만, 나이에 맞지 않게 흉악한 무기를 갖고 있구나.”
우주는 두려워하는 기색조차 없이 태연했다.
“연필을 붙잡고 한창 학문에 힘써야할 나이에 암살자 노릇이나 하다니 참으로 불쌍한지고.”
두 소녀의 입가에는 그를 바보 취급하는 듯한 비웃음이 더해진다.
“{뭔소린지도 못알아듣겠는데 뭘 저리도 진지한 표정으로 나불대는거지? 이리나, 먼저 본때를 보여줘.}”
올가가 팔짱을 끼고 이리나에게 눈길을 보냈다.
이리나가 양손의 소형 발칸포를 빛내며 히죽거렸다.
“{자신감이 충만한것 같은데, 춤 실력은 어떤지 볼까.}”
그녀의 얼굴에 한순간 살기가 서리며 두 팔을 앞으로 쭉 뻗었다.
정면에 우뚝 서있는 우주를 조준하고 예고도 없이 그대로 난사했다.
투투투투투투투! 투투투투투투!
손 전체를 감싼 팔찌에서 6개의 총신이 빠르게 회전하면서 탄알을 속사했다.
투투투투투!
“감히 내게 총을 쏘다니! 후회하게 만들어주마!”
총탄 세례를 받고도 눈하나 깜짝 않고 모조리 피하며 달려드는 우주. 그야말로 귀신 같았다. 그는 이리뛰고 저리뛰고 몸을 민첩하게 굴리면서 소녀들과의 거리를 점점 좁혀들어왔다.
“{어라? 저녀석 꽤 피하는데?}”
“{흐음. 그렇다면 보통은 아니라는 거네.}”
서로 거리가 가까워지자 이리나는 발사를 중지하고 곧바로 달려가서 날라차기를 날렸다.
우주는 두 팔을 교차해 공격을 막았다. 그 충격에 의해 뒤로 1m정도 밀려났다.
휘익!
이리나의 공격을 막자마자 이번에는 가만히 지켜 보고만 있던 검정 드레스의 올가가 이리나의 등을 밟고 허공을 도약했다.
검은 회오리처럼 몸을 회전시키며 우주의 정수리를 향해 칼끝을 내려꽂았다.
스릉!
우주가 잽싸게 피하자 그녀의 칼날은 사과를 찌르듯 아스팔트를 깔끔하게 뚫고 들어갔다.
“칫!”
올가가 혀를 찼다.
그 직후, 이리나의 총탄 공격이 다시 이어졌다.
투투투투투투! 투투투투투!
우주는 지근거리에서 쏟아지는 총탄들을 몸을 굴려가며 날렵하게 피해냈다.
아스팔트에 무수한 총탄이 박히며 먼지가 자욱하게 휘날리고, 인도의 가로수가 우지끈 부러지며 털썩 쓰러졌다.
“{이 미꾸라지 같은 자식이!}”
쓸데없이 총탄만 허비하자 이리나가 이를 갈았다.
총탄 세례 속에서도 우주는 여유로웠다. 그는 동체 시력으로도 따라갈 수 없는 총탄을 숨조차 흐트러뜨리지 않고 피하고 있었다.
참고로 수라의 시력은 일반인보다 월등히 발달해있고, 그러한 신체적 특징은 수라 간에도 개인차가 있었다.
“잘보거라! 이게 바로 수준 차이라는 것이다!”
우주는 전속력으로 이리나를 향해 달려나갔다.
이내 두 사람의 격돌.
우주가 접근전을 펼치니 그녀도 어쩔수 없이 주먹과 발로 맞서 싸웠다.
그러면서도 양팔에 달린 총구는 우주의 신체를 필사적으로 노렸다.
하지만 그녀가 팔을 내지를 때마다 우주는 그것을 매번 위로 처내 총구가 하늘을 향하도록 만들었다.
주 무기인 소형 발칸포가 완벽하게 봉쇄당하자 이리나는 막기에 급급했다. 때릴수록 빨라지는 우주의 동작은 점점 그녀를 초조하게 만들었다.
퍼억!
“크윽!”
마침내 우주의 돌려차기가 이리나의 가슴에 제대로 명중했다. 그녀는 몸이 붕뜨더니 수십미터를 날아가 아스팔트 위를 데굴데굴 굴렀다.
“{이리나!}”
올가가 안타깝게 소리치며 흉포한 기세로 우주에게 달려들었다.
“{너 이 자식!}”
소녀가 가진 가녀린 다리로 날카롭고도 매서운 공격이 숨가쁘게 이어졌다. 근접전 무기를 가진 탓인지, 그녀는 이리나와는 솜씨가 달랐다.
화려함속에 정확도까지 가미된 발차기를 구사하는 것이, 마치 태권도의 현란한 발차기 기술을 보는 것 같았다.
“제법이로다.”
우주는 발차기를 팔등으로 일일이 막아내면서 조금씩 뒤로 내몰렸다. 아까 차 사고로 이마에서 흘러내린 피가 그의 오른쪽 눈을 가리고 쓰라리게 했다. 시원하게 닦아냈으면 좋으련만, 그럴 틈조차 없었다.
“{감히 날 때리다니......!}”
멀찌감치 떨어져나갔던 이리나가 분한 얼굴로 다시금 일어섰다.
그녀는 피가 고인 침을 퉤하고 내뱉었다. 상당히 힘이 들어간 눈동자로 우주를 쳐다보더니, 이내 용수철처럼 튀어올라 그 앞으로 달려들었다.
“{죽여버리겠어!}”
이리나의 가세로 소녀들의 공격이 더욱 사나워졌다.
우주는 막기에만 급급할뿐 이렇다할 반격을 하지 못했다. 그는 한쪽 눈이 신경쓰여 답답해 미칠것 같았다. 속시원하게 누가 좀 닦아줬으면 좋겠다는 생각만 간절했다.
그리고 한순간, 두 소녀가 호쾌하게 날아오르며 짜맞춘 듯 동시에 내지르는 3단 발차기가 마침내 그의 배를 연속으로 강타했다.
퍽, 퍽, 퍽!
총합 6타를 가격당한 우주의 몸이 기세 좋게 뒤로 나가떨어졌다.
먼지를 풀풀 날리며 데굴데굴 구르던 몸은 건물벽에 부딪히고 나서야 간신히 멈출 수 있었다.
올가는 쓰러진 그를 매섭게 노려보며 숨을 작게 씩씩 거렸다.
옆에 서 있던 이리나에게 말했다.
“{이리나. 지금이야 쏴.}”
“{죽어버려, 쓰레기!}”
이리나의 냉랭한 목소리가 밤하늘에 울려퍼졌다.
***
소라는 자신의 집 앞에 도착해 있었다.
디지털 키에 비밀 번호를 입력 한뒤 현관문을 열고 집안으로 들어갔다.
우주가 있어서 환할 것이라는 기대와는 달리 실내는 어둡고 썰렁했다.
현관 바닥에는 우주의 신발조차 없었다.
그녀는 의아한 표정을 짓고, 신발을 벗고 천천히 거실로 들어섰다.
불을 켰다.
아무도 없었다.
“우주 씨...?”
처음엔 그가 놀래켜줄 생각에 장난이라도 치는가 싶었다.
‘이런 장난꾸러기. 절대 놀라지 말아야지.’
하면서 긴장된 마음을 달래던 그녀는 이 방 저 방을 조심스레 기웃거리다가 정말로 집에 아무도 없다는 것을 깨닫고 나자 힘이 쫙 풀렸다.
그리고 화가 솟구쳐 들고 있던 핸드백을 바닥에 내팽개쳤다.
시계를 보니 새벽 1시가 넘었다.
“설마, 늦었다고 가버린거야?”
휴대폰을 보니 부재중 전화도, 그 어떤 메세지도 없었다.
한마디로 바람맞은 기분이었다.
파티장에서 키스를 퍼붓고 그렇게 몸을 더듬어대더니 결국 바람을 맞춘다? 그녀는 상당히 수치스러운 기분이 들었다.
“이 백살 처먹은 늙은이 새끼가!”
기대는 배반당하고, 인생은 늘 생각대로 되지 않는다.
그녀는 우주에게 전화를 걸었다.
받지 않는다.
다시 걸었다.
마찬가지였다.
씩씩거리며 소리샘에 메세지를 남겼다.
“이 나쁜 자...!”
다짜고짜 욕설을 뱉으려던걸 애써 참고, 다시 말했다.
“도대체 뭐에요? 제가 조금 늦었다고 화나서 가버린거에요? 사람이 어쩜 그렇게 매너가 없을 수 있죠? 갈땐 가더라도 무슨 말이라도 남겨줘야 할것 아닌가요? 음성 듣거든 바로 연락하세요.”
소리샘에 음성을 남기고도 계속계속 전화했다.
야자수톡으로도 폭풍처럼 메세지를 보냈다.
그러면서 별의별 생각이 다 들었다.
조급한 마음은 섣부른 행동을 불러왔다. 소라는 발끈 화가 치밀어 올랐다. 우주에게 다시금 전화해서 소리샘에 욕설을 남겼다.
“뭔가 착각하나 본데, 나 결코 쉬운 여자 아니거든? 이래봬도 나 쫓아다니는 남자 많으니까 너처럼 백살 처먹은 새끼 나도 취급안해 우습게 보지마. 두 번 다시 껄떡댔다간 정말로 죽여버릴테니까 각오해!”
그녀는 그의 제멋대로인 행동에 울화가 치밀었지만, 그보다 수치심이 앞섰다.
이미 그와 섹스까지 해버렸다.
어쩌면 신우주는 자신을 정복했다고 생각했기에 이토록 무례하게 구는 것이 아닐까? 왜 그런 말이 있지 않은가. 섹스 전 남자는 간이라도 빼줄것처럼 굴다가도 여자를 쓰러뜨리고 나면 그 뒤부터 관심도 없어하며 지루해한다고.
“천하에 몹쓸놈!”
입술이 부르르 떨려왔다. 분한 마음에 주먹을 움켜쥐고 부들부들 떨고 있던 그녀는 기어코 눈물까지 흘렸다.
얼마 안가 절레절레 도리질을 했다.
“이러면 안돼. 슬퍼해봤자 나만 손해야.”
소라는 거실 커텐을 열어젖히고 베란다로 나가 찬 공기를 들이마셨다.
차가운 바람이 화를 식혀주려는 듯 그녀의 몸을 바로 휘감았다.
그리고 긴 머리카락에 잔잔한 물결을 일으키던 바람이 그녀에게 속삭였다.
‘성급했어.’
찬바람이 머리를 식혀줘서 그런지 막무가내로 벌인 행동이 금세 또 후회가 됐다.
우주에게 아직 그 어떤 변명조차 못들었는데, 사정이 어떤지도 모르고 소리샘에 심한 말을 남겨버리고 말았다.
소라는 무서웠다.
그가 연락을 무시하는 것보다 자신이 남긴 음성을 들을까봐 더 걱정되기 시작했다.
그래서 그녀는 결국 음성을 지우기로 했다.
거실로 돌아와 휴대폰을 집었다.
자신이 쓰는 휴대폰의 통신 회사는 SU텔레콤.
SU텔레콤 사장은 자신과 동갑내기 친구였다.
***
투투투투투투! 투투투투투투!
이리나가 전방을 향해 가차없이 총탄을 퍼부었다. 우주의 뒤에 있던 상점 건물이 주저앉을 정도로 강력한 공격이었다.
“{이리나 그만. 그러다 죽겠어.}”
히죽거리는 올가의 말에 이리나는 사격을 멈추고 하얀 치아를 드러내며 웃었다.
“{팔이나 다리 하나쯤은 날아갔을텐데 괜찮겠지?}”
“{잘했어. 그 편이 데려가기도 쉬우니까.}”
바로 그때였다.
발걸음 소리가 들리며 희뿌연 먼지속에서 흐릿한 그림자 하나가 당당히 걸어나오는 모습이 보였다.
그 순간 두 소녀의 입가에는 웃음이 싹 가셨다. 당황한 소녀들의 눈동자가 맞은편 그에게 못박혔다.
이리나는 저도 모르게 한발짝 물러서며 말했다.
“{뭐, 뭐야 왜 멀쩡해?}”
올가는 분한듯이 입술을 곱씹었다.
“{짜증나는 자식.}”
먼지속을 뚫고나온 우주의 모습은 말그대로 멀쩡했다.
“겨우 이깟 공격으로 날 쓰러뜨릴 수 있다고 생각했느냐?”
마치 지옥에서 살아 돌아온 듯한 위풍당당한 기세와 함께 부릅뜬 그의 눈은, 잠시나마 두 소녀를 옴짝달싹 못하게 만들었다.
“{저, 저녀석. 우리처럼 특수 군인이 아닌 일반 수라일텐데 어째서 저런 살기를 풍기는 거야?}”
이리나가 믿지 못하겠다는 투로 중얼거렸을때, 우주는 성난 표정으로 한 발짝 나서며 말했다.
“이 어린 것들아. 다시는 이런 짓을 못하도록 이 오라비가 오늘부터 학교 보내주겠다.”
묵직한 음성이 제법 위협적으로 들렸다.
서로 말이 통하지 않더라도 그 분위기 만큼은 두 소녀를 강하게 압박해왔다.
“{하, 하나도 무섭지 않아. 하나도 무섭지 않아. 하나도, 하나도, 하나도!}”
혐오스러운 과거의 기억에서 비롯된 이리나의 발작 증세가 시작되려하자 올가가 급하게 소리를 내질렀다.
“{정신차려 이리나!}”
그와 동시에 어느새 총알처럼 튀어온 우주가 넋이 나간 이리나의 눈앞에 아른거렸다.
“{우선 너부터.}”
그는 오른 주먹을 힘껏 처들고 그대로 이리나의 얼굴을 강하게 후려쳤다.
퍼억!
“꺄악!”
이리나는 한대 맞더니 추풍낙엽처럼 나가떨어졌다.
곧바로 우주는 풍차처럼 몸을 돌리며 올가를 노렸다.
하지만 그녀는 양손에 달린 칼날을 거침없이 휘두르며 그에게 맞섰다.
올가의 칼날은 우주의 허벅지나 가슴을 독랄(毒辣)하게 파고 들었다. 칼날이 미치는 범위에 있던 우주의 옷자락이 휙휙 찢겨 나갔다.
그러나 올가의 그러한 위세도 잠시, 우주가 정강이로 배를 가격하자 그녀는 ‘우욱’ 하고 신음을 흘리며 반사적으로 상체를 숙였다.
우주는 그 틈을 놓치지 않고 그녀의 한 팔을 붙잡고 한바퀴 부웅 돌렸다.
그리고 그 회전력으로 자신도 회전하면서 높이 뛰어올랐다.
도는 것을 멈춘 올가가 그를 올려다보는 순간.
몸의 회전력을 실은 발차기가 그녀의 안면을 번개처럼 가격했다.
발등으로 내려 찍어버렸다.
올가는 비명조차 지르지 못하고 한 방에 나가떨어지며 그대로 기절해버렸다.
“아파도 참거라. 다 너희의 업보이니.”
우주는 쉴틈도 없이 고개를 돌렸다.
조금 전 이리나가 날아간 쪽을 쳐다보았다.
그녀는 일어서 있었다.
입술을 파르르 떨며 죽일듯한 눈초리로 그를 쳐다봤다.
“{너, 너, 너어어어.......! 니가 감히 올가를... 쿨럭!}”
그녀는 입으로 울컥 한모금 핏덩이를 토해내더니 곧바로 달려들었다.
투투투투투! 투투투투!
이리나가 내뻗는 주먹마다 우주에게 막혀 허공으로 처올려 졌다.
몇차례 공수를 주고받던 그녀는 금세 지쳤는지, 맹렬한 기세가 죽은 틈을 타 우주에게 팔을 붙잡혔다.
그는 그녀의 팔을 잡고 사정없이 뒤로 꺾었다.
“꺄아아악!”
뼈가 부러질것 같은 고통에 그녀가 신음을 내질렀다.
우주는 그녀의 뒷무릎을 걷어차 바닥에 무릎을 꿇게했다.
그와 동시에 그녀의 인중을 무릎으로 찍었다.
“큭!”
그런식으로 이리나 마저 정신을 잃었다.
“후우...”
우주는 기절한 두 소녀를 내려다보며 입가에 묻은 피를 닦아냈다. 그러면서 가쁜 숨을 골랐다.
전투는 끝이났다.
“학교 가서 공부 열심히 하고 다시는 찾아오지 말거라.”
싸늘한 말을 남기며 떠나려할때였다.
이리나와 올가의 귀에 달려있던 소형 무전기에서 알 수 없는 외국어가 다급하게 들려왔다.
“{지금 당장 전송시켜!}”
말이 끝남과 동시에 하늘에서 새파란 빛기둥이 내려왔다.
빛줄기는 우주와 이리나, 올가를 감싸며 신비한 힘을 발휘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