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레지스트 쉴드-119화 (119/285)

119화

***

“......?”

우주는 도통 영문을 몰랐다.

조금 전까지만 해도 다른 장소에 있었는데 갑자기 눈앞에서 빛이 번쩍 하더니 순식간에 낯선 장소에 와있었다.

함께 있던 외국 소녀들은 보이지 않았다.

“여긴 어디지?”

주변을 둘러보았다.

깨끗하게 정돈된 거리와 공원, 도시숲을 이루는 높은 빌딩들. 그러나 썰렁했다. 사람이라고는 일절 보이지 않았다. 인적이 끊긴 거리는 을씨년스럽기까지 했다. 마치 텅빈 유령도시와 같은 인상을 받았다.

한국이 아닌가 싶었지만, 한국이었다. 도로에 어린이 보호 구역이라고 써진 표지판이라든지 그가 서 있는 공원 입구에는 '해돋이 공원' 이라고 써진 비석이 세워져있었다.

“대체 어찌된 일이란 말이냐...”

혼자 중얼거리며 두리번 두리번 멍하니 걸어다니던 그때, 바지 뒷주머니에 넣어뒀던 휴대폰에서 벨소리가 울려왔다.

휴대폰을 꺼내 액정을 봤다.

‘첫째 부인.’

받았다.

전화를 받자마자 료코가 대뜸 소리쳤다.

-(서방님! 얼른 집으로 돌아오십시오! 그 계집만은 절대 아니되옵니다! 소녀! 돌아오실때까지 잠 안자고 밖에서 기다리겠사옵니다! 그리고...!)그녀가 흥분해서 이말저말 다하려들때, 우주가 그녀의 이름을 부르며 말을 잘랐다.

“(기다려 료코!)”

-(네?)

“(진정해! 지금 그럴때가 아니야!)”

-(왜, 왜 그러시옵니까? 무슨 일이라도 생기셨습니까?)

“(조금 전 미국놈들이 날 습격했다. 집에는 아무이상 없는거지?)”

-(미국인? 일본인이 아닌 미국인입니까? 미국인이 어째서?)

“(설명하자면 복잡해. 그것보다 우선, 어쩌면 집으로 자객을 보냈을지도 모르니까 내가 갈때까지 문단속 철저히 하고 칼을 몸에 지니고 있도록 해.)-(네. 그리 하겠사옵니다. 그런데 서방님은 지금 어디십니까?)

“(여기? 여긴...)”

우주는 급히 주변을 둘러보았다. 그리고 이내 대답했다.

“(우리나라의 도시 같은데, 빌딩은 많지만 불은 전부 꺼져있고 거리에는 사람이 일절 보이지 않아. 꼭 유령도시처럼 스산하다.)”

-(유령도시라구요?)

“(갑자기 빛이 번쩍 하더니 이상한곳으로 와버렸다. 괜찮아. 금방 집으로 돌아 갈테니까 몸조심 잘하고 있어.)”

-(아니옵니다. 제가 당장 거기로 달려가겠사옵니다. 주변에 뭐가 보이는지 말씀만 해주시옵...)우주는 그녀의 말을 잘랐다.

“(말도 안되는 소리 하지마. 집 근처 밖에 모르면서 어떻게 찾아오려고 그래. 일단 내가 찾아보고 영 못찾겠다 싶으면 다시 연락할테니 그리 알도록 해.)”

-(하지만 서방님.)

“(내 말대로 해. 길이 엇갈릴 수도 있으니 우선 기다려줘.)”

-(네... 알겠사옵니다.)

“(그리고 10분에 한 번씩 전화할테니까 전화기도 가지고 있, ......?)”

갑자기 허공에 두 발이 붕뜨는 순간 우주는 흠칫 놀랐다.

누군가 그의 뒷목깃을 움켜쥐고 냅다 들어올린 것이었다.

고개를 돌려 뒤를 봤다.

어느새 다가온 것인지 신장이 2m는 족히 넘을듯한 거한이 빙그레 웃으며 그를 쳐다보는 중이다. 머리 크기 또한 19인치 모니터에 견줄정도로 무지막지하게 컸다.

스포츠형의 헤어에 노란 머리색을 보며 우주는 아직 끝나지 않았음을 직감했다.

그는 쓰게 웃었다.

“두 소녀에 이어 이번엔 거인이더냐?”

말이 끝남과 동시에 거한은 귀청 따가운 괴성을 부르짖으며 우주를 근처의 가로수에 패대기쳐버렸고, 부딪힌 가로수가 우지끈 소리를 내며 쓰러졌다.

***

“(서방님! 서방님!)”

료코는 휴대폰을 귀에 대고 우주를 애타게 불렀다.

갑자기 대화가 끊기며 ‘우워어어어어어!’ 하는 괴한의 목소리가 잇따라 들려왔기에 그녀는 가슴이 철렁하며 노심초사했다.

아무리봐도 누군가에게 당한듯 싶었다.

“무슨일이니? 우주 씨한테 무슨일이라도 생긴거야?”

곁에서 지켜보던 소민이 걱정스러운 안색으로 물어왔다.

료코가 초조한 눈빛으로 그녀를 마주보았다.

“서방님이, 습격, 당했스므니다.”

소민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습격이라니......? 습격이 맞아?”

료코가 근심스러운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소민은 마음이 심란해져서 소파에서 일어나 거실을 왔다갔다했다. 그가 죽는다면 이 평온스러운 나날이 깨질것만 같았다.

“(서방님! 무슨 말이라도 해보세요! 서방님!)”

료코가 수차례 우주를 불러보지만 휴대폰은 곧 연결이 끊겨졌다. 다급해진 그녀는 소파에서 일어나 옷을 벗기 시작했다.

초조한 심정으로 손톱을 깨물던 소민이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어디가려구?”

“서방님에게 가봐야하므니다.”

속옷만 입은 료코는 자신의 방으로 들어가서 기모노를 꺼내왔다. 그것을 탁자 위에 올려놓고 속옷부터 하나하나 걸치기 시작했다.

소민은 서둘러 자신의 휴대폰으로 일본어 통역 어플을 켰다.

한국말을 적고 번역해서 료코에게 보여주었다.

-어디에 있다는데?

료코가 모르겠다는 표정으로 고개를 흔들었다. 그리고 소민의 휴대폰을 받아들고 일본말을 적었다.

-(서방님도 자신이 어디에 있는지 모르는것 같아요. 빌딩은 많고 사람이 없다는데 마치 유령도시 같다고만 말해줬어요.)

“유령도시?”

소민은 잠시 생각을 하는듯 하다가 어플에 한국말을 적고, 번역해서 료코에게 보여주었다.

-어딘지도 모르면서 무작정 찾아간다는 거야?

료코가 고개를 끄덕였다.

소민은 그녀를 말리고 싶었다. 그러니까 좀더 차분하고 침착하게 이 일을 마주해야 했다. 그저 유령도시라는 단서 하나만으로 이 대한민국땅을 언제 다 찾으랴. 게다가 혼자서라니.

“잠깐만 기다려줘.”

소민이 료코의 옷깃을 붙잡았다. 기모노를 다 입고 거실의 장식대에 놓인 세키가하라를 집으려던 료코가 뒤돌아봤다.

소민이 일본어 통역 어플에 황급히 적은 내용을 보여주었다.

-혼자서 무작정 가지 말고 차라리 소라한테 도움을 요청해.

료코는 가당치도 않다는 표정으로 그녀를 바라보았다. 그리고 일본어 통역 어플에 적었다.

-(한소라 라는 계집은 전혀 도움이 안됩니다.)-아니야. 큰 도움이 될거야. 제네틱스는 믿을만한 정보팀을 갖고 있어. 그들에게 도움을 받는다면 빠른 시간안에 우주 씨를 찾을 수 있을거야.

료코는 잠시 주저하더니, 세키가하라가 놓인 장식대 쪽으로 시선을 돌리며 단호히 대답했다.

“(그건 절대로 못합니다.)”

“료코!”

소민은 그녀의 앞으로 가서 두 손을 맞잡았다.

심각한 얼굴로 말했다.

“혼자 찾다가 구출이 늦어 우주 씨가 죽으면 어쩔셈이야?”

“......”

료코는 그저 세키가하라를 빤히 바라볼 뿐 대답이 없었다.

타다다다닷!

치마가 짧은 기모노를 입은 료코는 한손에 검을 쥔 채, 닌자의 달리기 기술인 카카무이 주법으로 100미터를 3초만에 주파하는 등 건물과 건물 사이를 재빠르게 뛰어넘었다.

거리를 오가는 시민들은 자신들의 머리 위를 마음껏 날아다니는 그녀를 전혀 눈치채지 못하였다.

‘난 신라그룹으로 돌아가서 우리 회사의 정보팀을 이용해 우주 씨를 찾아볼 계획이야. 그동안 너는 소라를 만나. 소라를 만나서 그녀가 기무팀을 움직일 수 있도록 잘 설득해줘!’

소민은 소민대로, 료코는 료코대로 따로 움직였다.

소민은 애당초 우주가 위험한 상황에 빠졌다는 이야기를 전해 듣자, 마음이 나약해지면서 극도로 불안함을 느꼈다.

그러나 그것이 오히려 그녀에게 용기를 가져다 주었다. 기댈곳이 사라질까봐 두렵고, 또 세상의 비난이 무서워 뒤를 돌아볼 수도 없었다. 선택의 여지가 없었기 때문에 그녀는 대인기피증을 감수하고서라도 신라그룹을 찾아갔다.

***

불쑥 휴대폰이 울려왔다.

취한나머지 어느새 잠들었던 소라가 눈을 떴다.

손을 뻗어 탁자 위를 더듬더듬 짚으며 핸드백을 찾았다. 그러다 균형을 못잡아 소파 아래로 굴러떨어졌다.

쿵!

“으....”

어찌나 독한 술을 마셔댔는지 몸이 아픈것보다도 머리가 더 지끈거렸다.

이마에 손을 집고 게슴츠레한 눈으로 그 앞을 응시했다. 바닥에 떨어진 핸드백이 보였다.

기어가다시피 해서 핸드백에서 휴대폰을 꺼냈다.

액정을 보니 모르는 번호다. 받을까말까 하다가 어쩌면 우주일수도 있겠다는 생각에 일단 받았다.

거의 죽어가는 목소리로 말했다.

“여보... 세요...”

[료코데쓰.]

소라는 잘못들었나싶어 살짝 미간을 찌푸렸다.

“료코?”

-(그래 료코다.)

소라는 상체를 일으켜 세우며 목을 가다듬었다. 그러고는 심드렁하게 말했다.

“(당신이 뭐하러 전화를 했지?)”

-(긴히 할 이야기가 있다.)

“(할 이야기? 난 너랑 할 이야기가 없는데? 그보다 거기 신우주 있으면 빨리 바꿔봐.)”

-(지금 난 혼자다. 제네틱스 본사로 가는 중이니 너도 그쪽으로 나와.)

“(니가 뭔데 날 오라가라야?)”

-(서방님이 미국인들에게 습격을 받았다. 네 도움이 필요해.)“

“(뭐라구?)”

소라의 눈이 커졌다.

그녀는 전화를 끝마친 뒤 황급히 유창성을 호출했다.

멋진 호텔에서 애인과 달콤한 하룻밤을 보내던 창성은 부랴부랴 옷을 챙겨입고 그녀의 집앞으로 차를 끌고왔다.

“빨리 본사로 갑시다.”

소라가 차에 타자마자 술냄새가 진동했다.

창성은 모른척 차를 출발시키며 물었다.

“이 시간에 회사입니까?”

“우주 씨가 위험합니다. 미국에서 파견한 요원들이 그를 납치한것 같아요.”

“예?”

창성이 놀란 표정을 지었다. 그러면서 저도 모르게 엑셀을 밟은 발에 힘이 들어갔다.

그리고 그때, 뒷좌석에 타고있던 소라가 갑자기 무언가 떠오른듯 심각하게 말했다.

“미국이 아니야. 설마...?”

오늘 파티장에 나타난 가짜 조택우. 진짜 조택우는 러시아 당국이 발을 묶고 있었다는 점. 그녀는 왠지 그 일이 마음에 걸렸다.

주섬주섬 휴대폰을 찾아 어딘가로 전화했다.

“본부장입니다.”

-넵, 본부장님.

“오늘 파티장에서 붙잡은 가짜 조택우란 사람, 경찰서에 넘겼습니까?”

-아, 그게...

직원은 대답을 주저했다.

소라의 표정이 싸늘해졌다.

“뭐죠?”

-그 자가 저희 경호원 두 명을 쓰러뜨리고 도망갔지 말입니다. 아침에 보실 수 있도록 시말서를 작성해두었...

“지금 뭐하자는 겁니까!”

소라가 버럭 소리를 내질렀다.

“일 똑바로 안할거야!”

이윽고 제네틱스 본사에 차가 도착했다.

료코가 정문에서 기다리고 있었다. 자못 그 위세가 어찌나 대단한지 그녀 주변에 서있던 세 명의 경비원들이 지레 겁을 먹은것 같았다.

창성은 그 앞에 차를 멈춰섰다. 그러나 소라는 도착한것도 모르고 계속 차안에 앉아서 무언가 깊은 생각에서 헤어나오지 못하고 있었다.

똑똑.

료코가 칼손잡이 끝부분으로 뒷좌석 창문을 점잖게 두드렸다. 빨리 나오라는 신호였다.

소라는 그제야 깨닫고서 문을 열고 밖으로 나왔다.

료코를 쳐다봤다. 앙숙을 만난 것처럼 시선은 차가웠지만 해줄말은 했다.

“(그 유령도시라는 게 어딘지 알것 같습니다.)”

“(어디지?)”

“(인천에 있는 송도국제신도시.)”

============================ 작품 후기 ============================

소설 배경이 2010년인데, 소설쓰면서 2013년에 있을법한 사건이나 물건들도 막 가져다 쓰고 있습니다.

근데 송도국제신도시의 분위기는 2011년때를 생각하며 썼습니다. 지금은 아주 살기좋고 호화롭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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