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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지스트 쉴드-120화 (120/285)

120화

송도국제도시. 개발 당시만 해도 도시를 계획한 이들은 외국인들이 투자를 위해 돈 보따리 들고 몰려드며 싱가폴이나 홍콩처럼 동북아 최고의 자유무역도시가 될것이라 예상하고 있었다.

그러나 야심 찼던 계획은 빗나갔고, 외자유치 실패로 인해 27조원이 넘게 들어간 빌딩숲에 사람은 없고, 도시는 낮에도 텅텅 비어 있었다.

때문에 각종 매스컴에서 '유령도시', '죽은 도시' 라 불리우며 이 신도시가 많은 문제점을 야기하던 시기였다.

소라는 언젠가 봤던 신문에서 송도국제도시가 유령도시라 불리웠던 것을 상기한것이다.

소라는 살짝 비웃음을 머금으면서 료코의 얼굴을 빤히 쳐다보았다.

“(절 싫어하는 것 같더니, 막상 도움이 필요하니까 절 찾아오셨네요?)”

“(지금은 사사로운 감정을 꺼낼때가 아니다.)”

하지만 료코 역시 싸늘한 표정으로 맞받아쳤다. 소라를 혐오한다는 것을 숨기지 않고 극명하게 드러내고 있었다.

그와중에 창성은 차를 주차장에 갖다놓지 않고 곧바로 차에서 내렸다. 소라와 마주보고 있는 료코를 지그시 응시하며 자켓 안쪽으로 손을 넣어 슬그머니 권총을 잡았다.

“(거기 너.)”

료코가 즉시 창성을 노려보았다.

“(난 이 계집을 해할 생각이 없느니라. 그러니 내게 무례한 짓은 그만두고 어서 네 주인을 설득해 내 주인님이 계신 위치가 어디인지 찾아보거라.)”

창성은 말없이 그녀를 바라보다, 자켓 안쪽에 넣었던 손을 도로 뺐다.

“(실력이 상당히 뛰어나신 분. 감탄했습니다.)”

소라가 끼어들며 료코를 보고 말했다.

“(당신 말야. 이제 알겠지? 우주 씨에게 있어 누가 더 필요한 존재인지.)”

“(무슨 이야기지?)”

“(봐. 당신 혼자서 아무것도 못하니까 날찾아온거잖아.)”

소라는 마치 2인자를 바라보는 듯한 태도로 여유로운 미소를 흘렸다. 자신의 도움없이는 료코가 아무것도 할 수 없다는 점이 그녀를 우위에 섰다는 기분을 들게 했으며 또 우쭐해지게 만들었다.

그러나 그런 기분은 딱 거기까지.

“(이럴때가 아니지. 제가 좀 자만했군요.)”

소라는 웃으며 료코에게 악수를 청했다.

“(당신과 나는 상극인것 같지만 오늘밤 만큼은 어쩔 수 없겠네요. 우주 씨를 구하기 위해서 오늘 한번만 서로 의기투합 해보도록 하죠. 자.)”

척.

악수하자고 내민 손.

“......”

료코는 손을 바라보기만 할뿐 미동도 하지 않았다. 손을 잡기 싫어하는 눈치였다.

살짝 무안해진 소라는 조금 열이 받긴 했으나 태연하게 입술을 열었다.

“(당신은 제고집만 부리는 사람인가봐요? 전 우주 씨 때문에 일부러 성질까지 죽이고 적과 협력하는건데. 사사로운 감정을 대입할때가 아니라면서요?)”

그 말을 듣고 료코도 오기가 생겼다. 지지 않으려 소라의 손을 맞잡았다.

“(고집 부린 적 없으니 착각하지 말거라. 너만 대범한게 아니야.)”

“(어련하시겠어요.)”

소라는 뜻모를 미소를 지었다.

그녀는 악수를 하고나서 뒤로 돌아섰다. 관자놀이를 손가락으로 짓누르며 말했다.

“갑시다. 따라오세요.”

소라는 보도 위를 또각또각 걸으며 료코를 지하에 있는 기무팀 종합 상황실로 데려갔다.

소라는 도착하자마 직원들을 한곳에 불러 모으더니 말했다.

“작전 수행을 위해 정부와의 긴밀한 공조가 필요합니다. 우선 이 일을 정부측에 상세히 알리고 협조를 받을 수 있도록 하세요. 사건 당사자가 나라를 대표하는 수라인만큼 무조건적으로 응해줄...”

한편, 신라그룹으로 간 한소민.

그녀는 홀로 화랑팀 종합 상황본부로 쳐들어갔다.

직원들은 불시에 나타난 그녀를 보고 꿍하면서도 그저 회장 딸이라는 이유만으로 나가라는 말도 못하고 서로 눈치만 보고 있었다.

“서울내 일선 경찰서에 전화해서 오늘밤 접수된 사건사고 현황을 전부 보내달라고 요청하세요.”

상황실 당직책임자가 고개를 갸웃하며 그녀에게 되물었다.

“뭐 하시려구요...?”

“신우주와 관련된 사건사고가 있는지 살펴보려는 겁니다.”

“신우주요? 그걸 왜 우리가...”

“자세한 사정은 나중에 설명드릴테니 빨리 움직여주시기 바랍니다.”

“아, 예예...”

당직책임자는 석연치 않았다. 사막여우팀과 관련된 사고를 책임지고 일선에서 물러난 그녀가 느닷없이 나타나 이러는 상황이 그를 불안케 만들었다. 행여나 잘못돼봐라. 오늘밤 책임자인 당직책임자 본인이 모든것을 감수해야만 한다. 더구나 제네틱스의 신우주라니, 소민이 분명 약을 잘못먹고왔다고 생각했다.

그는 몰래 상황실을 빠져나와 이선주의 비서에게 전화를 걸었다.

“화랑팀 종합 상황본부 당직책임자입니다. 늦은 시간에 죄송합니다만, 급히 회장님께 보고드릴 말씀이 있어서 전화드렸습니다. 아 예, 예.”

신라그룹 이선주 회장 자택.

이선주는 잠결에 보고를 받고 서둘러 저택을 빠져나왔다.

그대로 신라그룹으로 향했다.

종합 상황본부에 도착하자마자 문을 박차고 안으로 들어섰다.

“소민아!”

전화를 받고 있던 소민이 흠칫 놀라며 그녀를 쳐다봤다.

“어머니?”

“여기서 뭐하는 거야!”

이선주는 성큼성큼 다가오더니 곧바로 따귀를 후려쳤다.

찰싹!

“정신차려 이 기집애야!”

뺨을 맞은 소민이 순간 휘청거렸다. 왼쪽 귀가 멍한 느낌이 들었고, 욱씬거리는 뺨을 손으로 감싸며 놀란 눈으로 이선주를 쳐다봤다.

이선주는 직원들을 향해 소리쳤다.

“모두 나가세요!”

“네넷!”

갑작스러운 상황에 어쩔줄 몰라하던 직원들이 하던 일을 멈추고 황급히 뛰쳐나갔다.

실내에는 삑, 삑, 삑, 하며 간헐적으로 기계음만 들려왔다.

이선주가 소민을 쏘아보았다.

“집 나갈땐 언제고 갑자기 이게 뭐하는 짓이니?”

“어머니. 저는 우주 씨를...”

“닥쳐!”

소민이 놀라서 몸을 움찔하더니 입을 꾹 다물었다.

“너 제정신이니? 니가 무슨짓을 했는지 알기나 해? 신우주가 어찌됐든 우리가 나설 일이 아니란다! 회사 직원들 데리고 뭐하는짓이니!”

“......”

소민은 그녀 앞에서 껌뻑 기죽었다. 완전히 꼬리내린 강아지였다. 시선은 바닥을 향한 채 빨갛게 달아오른 뺨만 어루만질 뿐이다.

이선주는 그 모습을 보고 애써 화를 가라앉히며 차근차근 말을 했다.

“이게 다 내 탓이다. 널 아비없는 외동딸로 키운 내 탓이야. 사랑을 못받다 보니 성격이 이상해지고 삐뚫어 진거야 분명. 아니, 어쩌면 자매나 남동생이 필요한 건지도 모르지. 넌 어릴때부터 얌전하면서도 가끔 동생을 낳아달라고 울고불고 떼를 썼으니까.”

“그게 아니에요......”

“아니긴 뭐가 아니야. 아쉽지만 이 어미는 이제 폐경이라 애는 못낳는단다. 그러니 어리광은 그만 부리고 이제 집으로 돌아가자.”

이선주가 그녀의 손을 붙잡고 끌고 나가려고 했다. 하지만 소민이 완강하게 버티며 저항했다.

“싫어요! 집에는 가기 싫어요! 무섭고 끔찍하다구요!”

“뭐?”

이선주가 뒤돌아봤다.

“무서워?”

소민이 두 손으로 그녀의 팔을 붙잡으며 울상지은 얼굴로 호소했다.

“그래요! 무서워요! 그리고 지금의 전 우주 씨가 없으면 아무것도 못한다구요! 빨리 그를 찾아야해요! 이것보라구요. 손도 막 덜덜 떨리잖아요.”

소민이 부들부들 떨리는 한 손을 내밀어보였다. 심각한 정신이상증세를 보이는 딸에게 이선주는 아주 기가 차면서도 놀란 얼굴을 했다.

“너 대체......!”

이선주는 그녀를 찬찬히 살펴보았다. 과연 내 딸이 맞는지 의심이될 정도였다.

소민은 떨리는 두 손을 가슴에 모으며 조용히 중얼거렸다.

“세상이 뭐라고 욕해도 좋아요. 그리고 그들중에 어머니가 포함돼도 괜찮아요. 전 오직 유일하게 절 이해해주는 사람, 우주 씨 하나면 충분하니까요.”

“그 녀석과 어쩌다 이렇게 된거니?”

“절 버린건 어머니에요. 제가 세상이 무서워 불안에 떨었을때도 그 어떤 연락도 없었죠. 그때 전 알았어요. 세상을 사는데 있어 가족친척친구 전부 필요없다는 것을요. 하지만 우주 씨는 절 위해 노력해줬어요. 제 불안 증세를 고쳐주기 위해서 어렸을 적 다닌 초등학교도 같이 가주고, 꽃게도 잡고, 세상과 싸워 이기라며 제가 해달라는 건 뭐든지 다 해줬었죠.”

이선주는 소민이 내뱉는 말한마디 한마디에 황당한나머지 내내 입을 다물지 못하였다.

“그를 사랑하니?”

“사랑이요......?”

소민은 조금 뜸을 들이다 대답했다.

“그건 모르겠어요. 그렇지만 우주 씨와 료코, 그 두사람과 같이 지내면 매일이 즐겁고 지금 이렇게 불안한 제가 아닌 원래의 본모습을 되찾을 수 있었어요.”

“그래? 그렇다니 참 잘됐구나.”

“이해해 주시는거에요?”

소민이 미소를 지으며 눈을 크게 떴다.

그러나 기대와 반대로 이선주의 눈빛에는 냉소적인 느낌이 섞여있었다.

“아니, 이해못해.”

그녀는 휴대폰을 꺼내들더니 그것을 귀에 대며 계속 말했다.

“얘야. 이 어미가 보기에는 그 두 사람이 널 버려놓은것 같구나.”

“아니에요! 아니라구요! 왜 제 마음을 이해못하세요!”

소민이 울부짖듯이 크게 소리치며 대꾸했다.

그러나 이선주는 무심한 표정을 짓고 전화에 대고 말했다.

“들어오세요.”

터엉!

말이 끝나자마자 상황실 철문이 활짝 열리고, 정장을 차려입은 다섯명의 경호원들이 후다닥 뛰어들어왔다.

그들은 냅다 달려와서 소민의 몸을 구속했다.

“이거 놔! 이거 놓으란 말이야!”

소민은 크게 저항하며 구둣발로 그들의 낭심을 차거나 주먹으로 가슴을 때리고 얼굴을 꼬집는등 안간힘을 써댔다.

그러나 결국 힘으로 어쩔수 없자 애처로운 눈빛으로 이선주를 돌아봤다.

“어머니!”

정장 사내들에게 끌려나가는 딸에게 이선주는 냉정한 시선을 보냈다.

“이야기는 집에 가서 하도록 하자꾸나.”

“집엔 가기 싫어요!”

소민의 머리에 피가 몰리고 눈가에는 눈물이 번졌다.

목구멍으로 뭔가 시큼한게 올라왔다. 연약한 그녀가 지치도록 힘을 쓰다보니 가벼운 구토가 올라왔다.

“우웩!”

토사물을 사내들의 정장에 내뿜었다.

당황한 사내들이 주춤거렸다.

소민은 입술을 닦아내면서 정적 가득한 집으로 돌아간다는 건 지옥이 따로없다고 생각했다.

그녀는 힘없이 중얼거렸다.

“안돼. 절대... 그럴 수 없어.”

갑자기 허공에 대고 소리쳤다.

“언제까지 보고만 있을거야! 서민주!”

서민주. 늘 소민을 따라다니며 곁에 머물렀던 여성 수행원의 본명이다. 그리고 이선주에게 매일 같이 소민의 행적을 보고하던 인물이 바로 그녀였다.

소민의 외침과 동시에 쾅 소리가 나며 상황실 내부 한쪽 벽이 와르르 무너졌다. 머리를 질끈 묶고 말끔한 정장차림의 서민주가 콘크리트 벽을 부수며 등장했다.

이선주가 그녀를 보며 소리쳤다.

“지금 뭐하자는 겁니까! 정신이 있는거에요?”

서민주는 차분한 어조로 대답했다.

“따님을 데려가겠습니다.”

“멍청한 것!”

이선주는 인상을 쓰며 정장 사내들을 돌아봤다.

“저년도 잡으세요!”

“넷!”

호령이 떨어지자마자 사내들은 일제히 서민주에게 달려들었다. 하지만 강철같이 강인한 체력과 뛰어난 무술 실력을 가진 그녀였다.

내찌르는 주먹과 휘두르는 발끝에는 그 어떤 주저함도 엿보이질 않았다.

퍼억! 퍽! 퍼버벅!

다섯 명의 경호원이 눈 깜짝할 새에 쓰러졌다.

장내가 잠잠해지자 서민주는 냉큼 소민에게 달려가 그녀를 부축해주었다.

꽤나 지친 기색의 소민은 의미심장한 눈빛으로 이선주를 바라보았다.

“어머니. 전 오늘부로 당신에게서 독립하겠습니다.”

“날 떠난다고 해서 행복할 것 같니? 어림없어. 네 앞날은 가시밭길이 될 것이야.”

“집 나오면 다들 고생한다고들 하지만, 고생없이는 행복도 없을 겁니다.”

그 말을 마지막으로 소민은 떠났다.

홀로 남겨진 이선주는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아니. 더는 하지 않았다.

“징그럽도록 날 닮았구나. 네 뜻이 정그렇다면 이쯤에서 나도 포기하겠다. 하지만 다음에 다시 만났을때, 그때 네가 과연 어떤 자리에 있을지 이 두 눈으로 똑똑히 지켜보겠다.”

신라그룹 지하 주차장.

서민주는 소민을 부축해가며 조심스레 뒷좌석에 태웠다.

그러고는 운전석에 몸을 실었다.

차문을 닫고 나서 룸미러를 통해 물었다.

“앞으로 어쩌실 계획이십니까? 또 신우주 집에 들어가실 생각이십니까?”

소민이 침흘린 입술을 닦으며 천천히 대답했다.

“응, 그럴려구.”

덧붙였다.

“내일 회사에다가 사직서를 내도록 해. 앞으로는 내 회사에서 고용해줄테니까.”

“...? 본부장님의 회사라니요?”

민주가 어리둥절해하며 뒷좌석을 바라보자, 소민이 기운없어 졸린 눈으로 나직하게 대답했다.

“나... 회사 차릴거야, 신우주랑.”

============================ 작품 후기 ============================

차기작은 게임물과 좀비물 중에 골랐는데 좀비물 현재는 머릿속에 구상을 쑤셔넣고 있는데 내년 1월에나 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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