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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지스트 쉴드-121화 (121/285)

121화

***

송도국제신도시.

드미트리는 적외선 망원경으로 우주와 거한의 싸움을 흥미진진하게 지켜보고 있었다.

그는 줄곧 입가에 미소를 머금는 중이다.

“{후후, 신우주. 네가 과연 영장류 최강이라 불리는 알렉산더 카일렌마저 꺾을 수 있을까?}”

불쑥 여성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절대 못 이길걸요.}”

드리트리는 망원경에서 눈을 떼고 뒤를 돌아봤다.

그 여성은 다름 아닌 엘레나 슬레사렌코.

곱슬거리는 금발에 인형같이 큰 눈, 그리고 시원스러운 입매와 사각턱. 20대 후반으로 보이는 그녀는 좀 통통하긴 했지만 관능적인 몸매를 지니고 있었다.

광택이 나는 짙은 남색 슈트를 입은 그녀가 다가오더니 비교적 자신감에 찬 어조로 말을 이었다.

“{알렉산더 카일렌. 86년 유럽 레슬링 선수권 우승이후로 은퇴 전까지 13년동안 단 한번도 챔피언 자리를 놓치지 않았던 사내입니다. 게다가 수라로 각성한 뒤, 그를 이기려면 타이탄 고릴라에게 레슬링을 가르치는 것 밖에 방법이 없다는 소리가 나올정도였죠. 제아무리 사탄을 잡은 신우주라 해도 우리 카일렌 앞에서는 어린아이에 불과할겁니다.

}”

그녀는 드미트리의 옆을 바짝 지나치며 들고 있던 적외선 망원경을 눈에 가져다 댔다.

먼곳을 바라보며 절로 입꼬리가 올라갔다.

“{저래서는 불곰을 쓸 필요도 없겠군요.}”

“{그러게 말이야. 상황이 곧 정리될 것 같으니 우린 슬슬 짐이나 챙기자구. 카일렌이 도착하는 즉시 떠날 수 있게.}”

“{배틀필드는 안쳐도 되겠죠?}”

“{물론. 괜히 힘뺄 필요없을 것 같아. 한국 정부는 아직 이 사실을 모를테니까. 그들은 엉뚱하게 도박이나 하는 이반을 계속 감시나 하고 있겠지.}”

드미트리는 검은색 15인승 승합차쪽을 바라봤다. 이번 작전을 위해 특수 개조시킨 차량이었다.

“{샤샤는?}”

엘레나는 계속 망원경으로 먼곳을 주시하고 있었다.

“{코피는 멎었어요. 하지만 아직 피로한 기색이 역력합니다. 아무래도 텔레포트 능력이란게 체력부담이 엄청나거든요.}”

“{두 꼬맹이도 여전히 누워있나?}”

“{네. 그런데 올가는 얌전하게 자는데 비해 이리나가 잠꼬대가 심하더군요. 마치 옛날 기억을 떠올리며 괴로워하는 것 같았습니다.}”

“{알만하군.}”

드미트리는 턱을 집고 무언가를 생각 하더니 이내 말했다.

“{난 잠시 차에 다녀오겠다.}”

“{예, 다녀오십시오.}”

***

쿵!

보도블럭이 으깨지며 우주가 지면에 처박혔다.

하지만 그것으로 끝이 아니었다. 그가 막 몸을 일으키기도 전에 카일렌이 다시 그의 한쪽 다리를 붙잡고 허공으로 띄운 것이다.

그 이후 재차 지면에 처박혔다.

콰앙!

“우워어어어어어!”

카일렌은 두 주먹으로 가슴을 펑펑치며 짐승처럼 맹렬하게 포효했다. 그 소리만으로도 주변의 사물이 날아가거나 덜덜 떨었다.

바닥에 내팽개쳐진 우주는 괴로운 얼굴로 신음을 흘렸다.

“뭐, 뭐이리 쎄단 말이냐... 으윽.”

밤하늘의 별이 보인다.

쓴 웃음도 안나왔다.

카일렌의 무자비한 덩치와 그 엄청난 체구에서 나오는 압도적인 힘은 그의 기술을 그저 재롱으로 만들어버렸다. 심지어 이런 상황에, 저런 친구가 악어팀에 있었으면 참 좋겠다는 한심한 생각이 들정도로 그의 위력은 실로 대단했다.

“하지만......!”

아직 포기하기에는 이르다.

우주는 포기하는 방법을 배우지 못했다. 그가 좌절할때라고는 오직 인간관계에서 비롯된 고통이나 슬픔 때문이지 제 자신의 처지에 낙담하며 눈물 흘리는 그런 인간은 아니었다. 아무리 절망적인 상황이 닥쳐와도, 혼자일때의 그는 최대한 긍정적으로 마음먹고 제 앞가림은 하는 그런 인간이었다.

카일렌은 바닥에 쓰러진 우주의 멱살을 잡아 그를 들어올렸다.

그 순간, 우주는 재빨리 손가락으로 그의 두 눈을 찔렀다.

“크악!”

카일렌은 곧바로 우주의 멱살을 풀면서 두 손으로 제 눈을 감쌌다.

“어떠냐 이놈!”

그 틈을 타 우주는 도망을 치기 시작했다.

달리다 보니 뚜껑이 열린 맨홀이 보였다. 그는 무심코 그곳을 껑충 뛰어넘었다. 그러면서 뒤를 돌아보았다. 카일렌이 굉장히 열받은 듯한 표정을 짓고 미친듯이 고함을 치면서 영화속 헐크처럼 무지막지하게 뒤쫓아오고 있었다.

“우오오오오오!”

그러나 참 다행스럽게도, 카일렌의 다리 하나가 맨홀 구멍에 빠지며 그가 앞으로 자빠졌다.

맨홀 아래로 아주 빠져버렸으면 좋았으련만, 덩치가 워낙 커서 그런지 겨우 굵직한 다리 하나 뿐이었다.

‘기회다!’

우주는 그의 머리통을 후려칠 생각으로 도로 달려가서 발차기를 하려했지만 곧 그 생각을 접고 다시 뒤돌아 냅다 뛰기 시작했다.

카일렌이 가소롭다는 듯이 웃으며 일어서고 있었기 때문이다.

“{너, 죽인다.}”

카일렌은 길가에 보이는 것들은 전부 집어던졌다. 표지판이고 전봇대고 가로수고 뭐고 할 것 없이 우주를 향해 보이는대로 다 던졌다.

우주는 그 족족 재빨리 피해내며 앞으로 내달렸다.

“방법이 없을까? 방법이!”

사실 그는 도망치는게 아니다. 사람 하나 없는 고층 빌딩 숲을 뛰어다니며 뾰족한 수단을 찾고 있었다.

카일렌은 정말로 대단한 사나이였다. 특히 맷집이 장난 아니다.

우주가 그 어떤 공격을 해도 충격을 전혀 받지 않고 멀쩡히 서있었다. 공격자 입장에서 그런 모습을 보게되면 온몸에 힘이 풀리며 좌절이 따로 없었다.

마치 다윗과 골리앗, 인간대 킹콩의 대결 같았다.

“주변에 무기가 될만한게 있으면 좋으련만!”

강철같은 신체를 가진 그를 쓰러뜨리기 위해서는 총이나 칼 같은 날카로운 무기가 필요했다. 그러나 여기는 텅텅 빈 도시의 한복판, 그 어느곳을 찾아봐도 그런게 나올리가 없었다.

“정 없다면 어쩔 수 없지!”

우주는 60층 높이의 빌딩을 맨손으로 기어올랐다. 꼭대기가 돔 형태로 지어진 고층 빌딩이었다. 거기서 떨어뜨릴 생각이었다.

그 외에는 딱히 다른 방법이 떠오르지 않았다.

10층 높이를 기어올랐을때, 카일렌이 뒤쫓아 오르기 시작했다. 차분히 기어오르는 우주와는 달리, 그는 맞은편 빌딩으로 멀찌감치 뛰었다가 다시 이쪽으로 뛰는 등, 두 빌딩 사이를 지그재그로 펄쩍펄쩍 뛰어오르며 우주를 무섭도록 맹추격했다.

그 기세가 가히 놀라웁다.

“허참. 참으로 신기방기한 재주를 가진 자로군.”

우주는 안타깝게 혀를 차면서, 주저없이 빌딩 13층의 유리창을 주먹으로 깨부쉈다.

그러고는 실내로 몸을 날렸다. 사무용 책상 사이를 데굴데굴.

곧바로 일어나 복도로 뛰쳐나갔다.

그리고 뒤쪽에서 와장창! 하며 유리벽이 깨지는 소리가 들려왔다.

카일렌이 뒤쫓아오는 소리였다.

“아이구 무섭다 저놈시키.”

우주는 정말로 심장이 철렁했는지 도망치는 속도가 더욱 빨라졌다.

후다닥 엘리베이터를 찾아 그 안으로 뛰어들어가 최상층을 눌렀다.

엘리베이터가 작동하며 위로 올라갔다. 그와 동시에 카일렌이 닫힌 엘리베이터 문을 힘으로 힘껏 열어재꼈다.

고개를 들어 위를 보니 우주가 탄 엘리베이터가 위로 올라가는 중이다.

“크흐.”

카일렌은 회심의 미소를 짓고 펄쩍 뛰어올랐다. 엘레베이터 아랫부분에 거미처럼 달라붙었다.

쾅! 쾅!

엘리베이터 안에 갇힌 우주는 침을 꼴깍 삼켰다. 엘리베이터는 계속 오르는 중이고 그의 시선은 바닥에 고정되어 있었다.

밑에 달라붙은 카일렌이 주먹으로 내칠때마다 엘리베이터가 요동쳤다. 금속 재질의 엘리베이터 바닥은 울퉁불퉁, 마치 고무처럼 이곳저곳이 튀어올랐다.

그는 바닥을 찢고 안으로 들어올 생각이었다.

“지구상에 이런 괴이한 자가 있다니 세상은 정말로 넓도다!”

그리고 때마침 우주에게 좋은 수가 떠올랐다.

그는 즉시 엘리베이터 천장에 달라붙어 힘으로 뚜껑을 열었다.

엘리베이터 천장의 경우는 사람들이 엘리베이터 안에 갇혔을 때, 119대원들이 비상시 이용하는 구조 통로였다. 그 만큼 밑바닥처럼 애쓸 필요가 전혀 없었다.

하염없이 위로 오르는 엘리베이터는 이제 막 40층을 지났다.

우주는 엘리베이터 밖으로 빠져나와서 윗쪽에서 사정없이 기계를 때려부쉈다. 엘리베이터의 주동력원은 윗쪽에 달려있다. 상승과속 방지 장치라든지, 도르래, 제어반, 조속기 등등 엘리베이터의 심장부를 전부 때려부쉈다.

그러니 엘리베이터가 추락하지 않겠는가.

우주는 추락시기에 맞춰 민첩하게 몸을 날렸다. 엘리베이터가 지나다니는 세로 통로, 온갖 케이블로 이루어진 벽에 달라붙었다.

“잘가거라.”

우주는 밑을 내려봤다.

슈우우우웅.

엘리베이터는 밑에 달라붙은 카일렌과 함께 끝없이 추락하고 있었다.

***

퍼엉! 퍼버벙!

지하 5층으로 떨어진 엘리베이터가 단숨에 폭발하면서 엄청난 굉음이 지축을 흔들었다.

빌딩 지하에서부터 사납고 세찬 화염이 솟구쳐 오르며 건물을 지탱하는 골격만 빼고 주변 사물을 모조리 날려버리고 불태웠다.

“{그동안 카일렌이 몸이 많이 쑤셨었나봐. 제대로 한바탕 날뛰어 주는군.}”

“{애당초 우리와 스케일이 다른 사내니까요.}”

드미트리와 엘레나는 그 광경을 멀리서 관망하고 있었다.

그들은 한결같이 카일렌의 승리라 자신하고 있었고, 드디어 신우주를 잡았다며 본국으로 돌아갈 생각에 기쁜 표정을 감추지 못하였다.

그러나 그러한 미소도 잠시였다. 아주 잠시.

두 사람 다 입가의 미소가 사라지며 표정이 굳어가고 있었다.

빌딩을 제일 먼저 걸어나온 것은 다름 아닌 신우주!

그가 폭풍 같은 화염이 솟구치는 빌딩을 등지고 멀쩡히 걸어나오고 있었다.

“{이럴수가!}”

엘레나는 눈을 동그랗게 뜨며 입을 다물지 못하였다.

그것은 드미트리도 마찬가지였다.

얼마나 어이없으면 그는 순간 멍한표정을 지었다.

“{카, 카일렌이 당했다고...?}”

“{믿을 수 없어!}”

엘레나는 경악했다. 그리고 그 즉시 망원경에서 눈을 떼고 드미트리를 쳐다봤다. 그는 다음 작전을 지령할 생각도 못하고 여전히 우주를 바라보며 넋이 나가 있었다.

“{소령님.}”

“{저 신우주란 자는 대체 어디서 튀어나온 것일까. 타이탄 고릴라와 일대일로 싸워도 이길 수 있는 것일까......”

“{소령님!}”

“{어? 그래 뭔가 엘레나 중사.}”

“{속히 배틀필드를 전개하겠습니다!}”

“{할 수 없군. 서둘러라.}”

드미트리가 허락을 함과 동시에 그녀는 하늘 높이 한 팔을 쭉 뻗었다.

순간, 그녀의 두 눈동자가 하얗게 빛을 발하고 허공을 향해 펼쳐진 손바닥에서는 검은 연기가 스르륵 새어나갔다.

그리고 그것은 점점 커져 반경 5km 지역을 검은 반구 안에 가둬버렸다.

배틀필드. 외부의 그 어떤 자극도 통하지 않고 누구도 들어올 수 없으며 누구도 빠져나갈 수가 없다.

이것은 엘레나 고유의 데바 기술이었으며, 이 기술을 발동하는 동안 그녀는 그 무엇도 할 수 없다는 패널티가 있었다. 발동 시킨 지점에서 오로지 하늘 위로 손을 쭉 뻗은 채 온힘을 쏟아부으며 고정된 자세를 유지해야만 했다.

좌우지간 엘레나가 배틀필드를 발동시켰다는 것은 러시아로서는 그만큼 급하다는 뜻이었다.

따라서 최후의 보루.

러시아가 자체 개발한 파워드 슈트.

드미트리는 황급히 불곰 12대를 출격시켰다.

그리고 같은 시각. 한국 정부의 지원 아래 맹수를 착용한 강미라와 함께 료코가 수송기를 타고 인천 상공을 날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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