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레지스트 쉴드-124화 (124/285)

124화

소라가 다시 말했다.

-미라 씨! 임신이라니요? 지금 뭐하는 겁니까! 당장 맹수를 해제하지 않으면 업무명령 위반으로 징계위원회에 회부하겠습니다! 빨리 해제 하세요!

소라의 강압적인 어조에도 미라는 피식 웃었다.

“직접 와서 해보시지.”

-당신, 진짜......!

소라는 헬리캠을 통해 현장을 지켜보면서 미라의 뜻밖의 말과 행동에 경악했다. 믿고 보낸 그녀가 이런식으로 나올줄은 전혀 상상도 못했다.

게다가 숙취로 가뜩이나 힘든 그녀였다. 그 피곤을 못 이겨 스트레스를 받고 심박수가 급격히 빨라졌다. 혈압이 올라갔다는 증거다.

“아아, 저 썅년이...”

“본부장님!”

철푸덕.

소라가 그대로 기절 해버리면서 바닥에 쓰러지려던 것을 옆에 서 있던 작전본부장이 황급히 받아냈다.

“서둘러 의료진을 부르게!”

송도국제도시.

구름에 가려졌던 달이 빼꼼히 고개를 내밀었다.

미라는 맹수의 통신 관제 시스템을 떼어내 발앞에 떨어뜨렸다.

콰직.

밟아서 부숴버렸다.

“이딴건 이제 필요없지. 있어봤자 위치 추적만 당할테니까.”

미라는 혀로 입술을 핥았다. 어떠한 제어도 받지 않고 제멋대로 행동할 수 있다는 기쁨에 심장이 쫄깃해지고 가슴마저 짜릿했다.

“넌 어쩔거야? 계속 날 방해할 심산이야?”

미라는 날카롭게 료코를 응시했다.

료코는 그 기세에 지지않고 묵묵히 칼을 움켜쥐었다.

“(돌아가는 상황을 보아하니 네년이 확실히 나쁜년인게 분명하군.)”

“후후 덤비겠다는 거네. 그럼 어쩔 수 없지.”

“(가만 두지 않겠다!)”

호통과 함께 료코의 질주가 시작되었다.

그 속도는 미라와 거리를 좁히는데, 무려 3초도 채 걸리지 않았다. 그 3초란 시간은 미라의 몸을 두동강 내기에 충분한 시간이었다.

그러나 미라 역시 그리 호락호락하지 않았다. 료코를 향해 총탄을 발포하며 예상이상으로 강력하게 반격해온다.

료코는 눈썹하나 까닥 않고 자신을 향해 날아오는 탄환을 모조리 피했다. 그리고 미라에게 달라붙어서 리드미컬하게 칼을 휘둘러댔다.

하나, 맹수의 장갑은 보통이상이다. 사탄을 이용해 특수 재질로 만들어진 까닭에 단순한 공격으로는 어림도 없었다. 만약 미라가 맹수를 착용하지 않았더라면 료코에게 벌써 다섯 차례나 죽임을 당했을 것이다. 하지만 맹수는 너무나 튼튼했다.

료코는 몇차례 칼질을 더 한 뒤, 무모한 공격이라고 판단했는지 미라와 거리를 벌렸다.

‘아까와 같은 힘이 필요해!’

보호막을 무참히 깨부쉈던 미지의 힘.

지금 이 순간, 맹수를 착용한 미라를 이기려면 그 힘이 필요했다.

료코는 즉시 두 손으로 세키가하라를 쥐고 칼끝을 정면으로 향했다. 눈앞에 있는 강미라의 심장을 향해 비장하게 겨누었다.

보호막을 깨부순 미지의 힘. 아까는 우주를 생각했더니 가슴이 아려오면서 각성했다. 그녀는 그때처럼 할 생각에 머릿속에서 우주를 떠올렸다. 그리고 애절하고 간절한 감정을 억지로 쥐어짜냈다.

‘서방님!’

미라를 향해 겨누어진 칼날에는 곧바로 노르스름한 입자 같은 것들이 차츰 모여들기 시작했다.

“설마 아까와 같은 기술을!?”

미라의 얼굴에는 처음으로 당혹감이 깃들었다. 료코가 쓰는 기술의 위력을 직접 목격했던 그녀였다.

저도 모르게 뒤로 두 발짝 물러섰다.

하지만 두렵다고 이렇게 물러나면 어쩌랴.

료코를 쓰러뜨리지 않고서는 이 장소를 떠날 수 없다는 것을 아주 잘 알고 있었다.

그녀는 당장 뾰족한 수를 찾아헤맸다.

“스톰쉴드 제네틱스!”

미라는 재빨리 맹수를 조작해서 등에 부착된 방패를 분리시키고 앞으로 빼들었다.

미라의 만면에는 희색이 감돌기 시작했다.

“사탄이 쓰는 우주펀치까지 막아낸 방패다. 네 데바 기술과 이 방패. 과연 누가 이길까나?”

미라의 여유작작한 태도와 달리 료코의 눈은 진정 무섭다.

“(주절주절 시끄럽다!)”

그녀의 몸을 새파란 빛이 둘러쌌다.

그리고 주저하지 않았다.

곧바로 미라에게 돌진하는 순간, 발생한 엄청난 충격파. 폭풍이 몰아치고 주변의 가로수가 뿌리채 뽑혀 날아갔다.

그러나 아까보다는 어쩐지 기대에 못미치는 위력.

그로인한 잠깐의 고착 상태.

시퍼렇고 날카로운 빛이 방패를 뚫으려 안간힘을 쓰고 있었다.

하지만 뚫리지 않았다. 미라는 용케 버텨내고 있었다.

밝은 빛을 몰아내려 어둠에 둘러 쌓인 그녀는 히죽 웃었다.

“나의 승리다.”

***

밤바람 속에 싸늘한 한기가 느껴져 입술을 한 번 부르르 떨었다.

료코는 단단한 방패를 뚫을 생각에 엄청난 에너지를 쏟아부었지만, 결국 뚫을 수 없었고 끝내 탈진으로 쓰러졌다.

“(어째서......?)”

힘이 부족했을까? 아니면 사용 방법이 미숙해서 일까?

그녀의 현재 몸 상태를 표현하자면 끼니도 거르고 24시간 내내 춤만 춘것 같은 심한 체력 부담을 느꼈다.

“역시 최고다 너.”

미라는 방패의 표면을 어루만지며 흡족한 미소를 지었다.

그리고는 공중에 떠있던 헬리캠 3기를 격추시켜 폭발시켰다.

이내 쓰러진 료코의 곁으로 다가와 그녀를 물끄러미 내려다봤다.

“그러길래 방해하지 마시라니까.”

정신을 잃은 료코는 말그대로 고왔다.

윤기나는 머리카락 하며 단아한 외모까지, 잠든 모습조차도 아름다웠다. 다소곳이 둥근 이마에, 완벽하게 좌우대칭을 이루는 투명한 얼굴에, 갸름한 볼, 곧은 콧날까지 눈을 떼고 싶지 않을 정도로 예뻤다.

때문에 질투가 나고 망가뜨리고 싶은 욕망이 일었다.

짓궂은 미소가 지어졌다.

“얼굴을 흉측하게 만들면 우상님은 반드시 이 계집이 싫어지시겠지.”

지잉.

미라는 보호막 때문에 반쯤 부러진 고주파 블레이드를 뽑아들었다.

흐트러졌던 료코의 몸을 반듯이 눕힌 뒤 칼을 들고 제자리에 앉았다.

그리고 료코의 얼굴을 물끄러미 바라보다 생각을 고쳤다.

“흠... 역시 그만둘까.”

미라의 시선이 이번에는 료코의 아랫배로 향했다.

고주파 블레이드로 아랫배를 덮은 기모노를 일자로 잘랐다.

옷이 잘린 부분을 좌우로 젖히니 앙증맞은 배꼽이 훤히 드러났다.

미라는 헬멧을 벗고 상체를 엎드렸다.

배꼽 위로 입술을 가져갔다.

할짝.

혀로 가볍게 배꼽을 핥았다.

“음... 달콤하네.”

한번으로는 부족했는지 배고픈 사람 마냥 게걸스럽게 여러 차례 핥으며 배꼽속에 뜨거운 침을 잔뜩 칠했다.

이어서 아랫배를 살짝 깨물고는 잘근잘근 약하게 씹어주기도 했다.

미라는 거기서 그치지 않고 한쪽 귀를 료코의 아랫배에 갖다댔다. 따뜻한 체온이 귀를 감쌌다.

무언가를 느끼고 싶은지 귀를 대고 한참을 가만히 있었다.

그런 뒤 서서히 고개를 들었다.

평온하게 눈을 감은 료코를 바라보며 배시시 웃었다.

“모든걸 잊고 우상님의 아기나 잘 키우도록 해. 넌 그 덕분에 살았으니까.”

그렇게 말을 하고는 천천히 제자리에서 일어났다.

료코를 지나쳐 우주가 잠들어 있는 차로 다가갔다.

미라는 차안에 곤히 잠들어있던 우주를 사랑스러운 눈빛으로 바라봤다.

“우리 이제 에덴동산으로 가요. 둘만의 지상낙원으로.”

미라는 그렇게 우주를 안고서 어둠속으로 사라져갔다.

***

우주가 사라진 기간 동안 많은 일이 일어났다.

무엇보다 송도국제도시에서 체포된 알렉산더 카일렌을 포함해 파괴된 불곰의 잔해.

러시아로서는 빼도박도 못할 확실한 증거를 남겨놓고 말았다.

이에 한국 정부는 국제법 위반이라고 공식적인 항의를 하며 러시아에게 해명을 요구했다.

먼저 외교부 대변인 성명을 통해, "러시아가 신우주를 납치하려했다"고 공식발표했다. 그리고 김문성 유엔 주재 한국 대사는 "양국 간 친분이 깊어지던 시기에 이런 불미스러운 일이 발생한 사실에 대해 분노를 금치 못하고 있다"며 유엔 안보리 회의에서 성토했다. 그는 특히 불곰의 잔해를 직접 들고 나와서 "러시아가 반인륜적인 범죄를 저지르려고 했다는데 의심의 여지가 없다"며 러시아에 대한 제재에 동참할 것을 공개적으로 요청했다.

이에 대해 러시아 정부는 "일개 기업이 임의로 계획한 것" 이라고 해명하는 한편, 정부가 직접 주도했다는 납치 의혹에 대해 강하게 반발했다.

“내 그렇게 나올줄 알았지. 누가 속을 줄 아는가? 무슨 일이 있더라도 사과는 받아야겠다네. 끝까지 안하겠다면 양국 간 채무변제마저 번복해야겠어!”

이세종 대통령은 즉시 푸틴 총리를 만나야겠다며 러시아 정부에 비공식적인 대화를 제안했다.

그러나 가족 여행을 떠났다는 푸틴 총리 대신 보리스 대통령이 전화를 받으며 이세종 대통령에게 사과의 뜻을 전했다.

하지만 그 사과란 것이 유체이탈 화법이었다.

“{양국 간 교류가 활성화 되고 신뢰가 깊어지는 시점에 이런 일이 발생하여 심히 안타깝게 생각합니다. 우리 러시아에서는 한국과의 외교관계를 여전히 중요시 하고 있습니다.

미스터 신을 납치하려했던 해당 기업에 관해서는 정부가 직접 나서서 확실히 철퇴를 가하도록 할테니 이제 그만 노여움을 푸시고 양국간 화합에 힘을 쓰도록 합시다.}”

러시아는 그 즉시 '알로샤 소냐' 라는 기업을 범죄 집단으로 지목하며 철저히 파괴했다. 회장은 감옥에 보냈고, 해당 기업은 해체시켜버렸다. 이는 한국 언론을 통해서 국내에도 널리 알려지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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