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8화
***
소라가 탄 에쿠스는 한강대교를 지나 한강로를 달리는 중이었다.
운전대를 잡고 있던 창성은 백미러를 힐끗 바라보면서 뒤쪽의 차량을 주시했다.
그러고는 침착하게 입을 열었다.
“본부장님. 아까부터 수상한 차량 두 대가 뒤따라오고 있습니다.”
“뭐라구요?”
조금 전까지 화가 나있던 있던 소라는 놀라 뒤쪽을 바라봤다. 검은색 승용차 두 대가 줄지어 따라오는 중이다.
“뭐죠? 이렇게 티나게?”
소라는 의아했다. 미행치고는 너무 뻔뻔해보였다.
창성이 말했다.
“아무래도 미행으로 끝낼 생각이 아닌것 같습니다.”
“날 납치하려고?”
소라는 짧은순간 곰곰이 생각해보았다. 대체 누가 보낸 자들일까? 신라그룹? 아니면 그 밖의 다른 기업?
어쩌면 신우주의 납치 미수 사건과 관련된 러시아 요원일지도 모른다는 생각도 들었다.
그런 생각이 스치자 소라는 급히 앞을 보고 말했다.
“절 인질로 잡아서 우주 씨를 유인하려는 수작일지도 모릅니다. 밟으세요.”
“알겠습니다.”
창성은 대답하면서 엑셀을 지그시 밟아주었다.
부우웅ㅡ
뒤쪽의 차를 떨치기 위해서 에쿠스가 앞으로 튀어나간다.
그와 동시에 뒤쪽의 차도 속력을 내서 바짝 따라 붙었다.
“눈치 챈것 같군요.”
소라가 고개를 돌려서 뒤쪽을 바라보자, 뒤편의 차에서 조수석에 탄 남자가 권총을 차창밖으로 빼들었다.
“본부장님 숙이십시오!”
탕! 탕!
“꺄악!”
소라가 잽싸게 머리를 감싸며 짧은 비명을 질렀다.
창성은 입술을 질끈 깨물었다. 도심 한복판에서 총격전을 벌일 정도의 배짱이라면 둘중 하나다. 완전히 어리석은 집단이거나, 어딘가 믿는 구석이 있단 소리였다.
왠지 불길했다.
“본부장님, 서둘러 기무팀에 연락을 해주십시오!”
소라는 떨리는 손으로 다급하게 핸드백을 찾았다. 그 안에서 휴대폰을 꺼내 회사에 연락을 취했다.
그 사이 뒤편의 승용차 중에서 한 대가 옆으로 바짝 다가왔다.
“한소라입니다. 얼른 위치 추적...!”
“숙이십시오!”
창성이 급하게 소리치자 마자 옆차의 조수석에 탄 남자가 총을 쐈다.
탕! 탕! 탕!
“까아악!”
방탄 유리여서 그런지 전혀 손상이 없었다.
“꽉 잡으십시오!”
창성은 오른쪽으로 핸들을 확 틀었다. 그대로 옆차를 들이받았다.
텅!
텅!
조수석에 탄 남자가 천장 손잡이를 꽉 움켜쥐는 모습이 보였다.
창성은 멈추지 않고 세 차례 더 들이 받은 뒤 엑셀을 밟아 가속을 했다.
과속, 신호 무시, 중앙선 침범, 한순간 주변 교통이 큰 혼잡을 빚었다.
여기저기서 차량 경적 소리가 울리고 아슬아슬한 상황을 맛본 운전자들은 이미 떠나간 차들을 향해 욕지꺼리를 내뱉었다.
기무팀이 출동한지 1분, 경찰이 출동한지 2분 후.
소라가 탄 에쿠스가 강남 사거리로 들어서는 상황이었다.
돌연 200m 전방에 한 사내가 도로 한중간에 서 있는 모습이 보였다.
주변에는 뒤집힌 차량들과 비명을 지르며 대피하는 시민들이 보였다.
대머리에 중년 남자.
추만택은 파워드 슈트 지하드를 착용하고 서늘한 미소를 짓고 있었다.
지하드의 외관은 이족보행에 신라그룹의 삭스핀과 거의 흡사했다.
“저놈은 대체 누구야!”
추만택의 미소를 보며 소라의 얼굴이 새하얗게 질리고 있었다.
창성은 어금니를 깨물었다.
막다른 길.
저들이 앞뒤를 다 막고 있는 상황에 차를 우회전 해서 골목으로 들어갈 생각이었다.
뒷좌석에서 바쁘게 통화중인 소라에게 급히 소리쳤다.
“충격에 대비하십시오!”
추만택을 피해 핸들을 꺾어 그대로 달아날 생각이었지만 어림없었다.
“어딜 도망갈 생각이징?”
추만택이 오른팔을 앞으로 내밀었다. 팔부분 장갑의 덮개가 자동으로 열리더니 기관포가 고개를 내밀었다.
“이거나 먹어랏!”
추만택의 말이 끝남과 동시에 우회전 하려던 에쿠스를 향해 총구가 불을 내뿜었다.
투다다다다다다다!
터엉!
미처 피할시간조차 없었다. 바퀴가 터진 차는 허공으로 날아오르며 이내 뒤집혀서 떨어졌다.
그리고 몇미터를 미끄러져 나아갔다.
끼기끼기기기긱!
도로 위에 끌리던 차체가 멈춰섰다.
타이어는 헛바퀴를 돌고 일반인이라면 그 자리에서 즉사했을 만큼 차체가 심하게 파손되었다.
하지만 창성과 소라는 조금 전 차가 붕떴을때 재빨리 차문을 열고 빠져나와 도로 바닥을 나뒹굴렀다.
“괜찮으십니까...?”
창성이 한쪽 다리를 절뚝 거리며 소라에게 힘겹게 다가왔다. 그녀는 도로 위에 대자로 누워서 한동안 정신을 못차리고 있었다. 고개를 좌우로 돌리며 고통스러운 신음을 냈다.
“으으......”
탕! 탕! 탕탕!
그 와중에 총격전이 일어나는 중이다.
어느새 도착한 경찰들과 추만택의 부하들이 어지럽게 널부러진 차와 가로수 등을 엄폐물로 삼고 서로를 향해 총을 쏴대고 있었다.
“오호라, 저런 것도 데려왔구만.”
추만택은 빗발치는 총탄에도 개의치 않고, 혼자서 물끄러미 허공을 올려다 보며 입꼬리를 치켜 올렸다.
그곳에는 특수부대원을 태운 헬리콥터가 떠있었다.
“내가 돌아왔음을 알리는 신호탄이당. 잘 봐둬라 낄낄.”
쉬이익!
지하드의 어깨에 달려있던 RPG-7 대전차 로켓포가 불을 내뿜으며 허공을 날아올랐다.
그것은 명중했다.
콰앙!
붉은 화염에 휩싸인 헬리콥터가 빙글빙글 돌면서 도심으로 추락했다.
“으허허허허! 난 그저 버튼만 눌렀을 뿐인데! 알아서 맞추는구만! 아주 좋앙!”
추만택은 실컷 웃은뒤 주변을 둘러보았다.
“한소라 라는 계집년과 쫄따구가 저기 있고, 성가신 경찰들은 저기.”
대충 위치를 파악한 후에 자신의 부하들과 대치 중이던 경찰들을 향해 오른팔을 뻗었다.
그러고는 사정없이 기관포를 퍼부어댔다.
추만택은 성이 안찼는지 엄폐물에 몸을 숨긴 채 자신을 쏘는 경찰들을 향해 RPG-7 대전차 로켓포로 응수하기도 했다.
덕분에 콘크리트 건물이 무너지고 도로 일부가 내려앉는등 이 일대는 삽시간에 전쟁터로 변해버렸다.
“꺄악!”
소라는 얼굴이 하얗게 질린 채 두 손으로 귀를 막고 비명을 꽥꽥 지르고 있었다. 도로 한복판에 몸을 웅크리고 있던 그녀의 귀로 마치 천둥이 치는 것 같은 굉음이 연이어져 들려왔다.
소라가 그러는 한편, 창성은 곁에서 그녀를 지키려 부단히 애쓰고 있었다.
추만택의 부하들이 소라를 잡기 위해 열심히 달려드는 중이었다. 창성은 자신을 향해 내지르는 사내의 팔을 낚아채 반대로 꺾었다.
우직!
“끄아아악!”
한순간 뼈가 부서지는 소리와 함께 그 사내가 비명을 질러댔다. 부러진 뼈로 인해 팔이 덜렁 덜렁 힘없이 잘도 흔들렸다.
창성은 그자의 등을 발로 차서 앞으로 고꾸라뜨렸다.
“이 새끼가!”
곧바로 다음 사내가 발을 휘둘렀다.
척!
창성은 가볍게 피하며 그의 발을 붙잡더니 또다시 무릎관절을 반대로 꺾어 다리를 부러뜨렸다.
콰직!
“으어어억!”
다리가 부러진 사내의 두 눈이 하얗게 뒤집어졌다. 고통에 정신을 잃은것인지 단말마의 비명을 지른 채 그대로 기절해버렸다.
창성은 냅다 그를 집어던졌다.
그 뒤 그를 둘러싸고 있던 자들에게 누구든 와보라며 손가락을 까닥거렸다. 추만택의 부하들은 그의 상당한 실력에 다소 얼떨떨한 얼굴들이었다. 고민하는 표정으로 자기들끼리 얼굴을 마주보았다.
“저거 어쩌지? 그냥 확 쏴버릴까?”
“어허, 그람 안된당께? 만약을 대비해서라도 인질은 하나라도 더 남겨놓으라는 대표님 지시가 있었잖냐. 나중에 제네틱스에게 몸값을 요구할 수 있을지도 모르고 말이지.”
“그라믄 니놈이 한 번 잡아봐라! 옛다!”
한 사내가 대뜸 자신과 대화하던 사내를 앞으로 밀어버렸다.
그러자 곧바로 밀린 사내의 턱을 향해 창성의 강력한 발차기가 터져 나오면서 그는 입안이 피투성이가 되어서 나뒹굴었다.
“상대해줄테니 누구든 와라.”
창성의 눈빛은 얼음보다 차갑게 변해있었다. 그것은 등뒤에 있는 소라를 지키기 위해서라기 보다는 자신의 경호원 경력에 결코 오점을 남기지 않게 하기 위해서 발악하는 것처럼 보였다.
이 순간 그는 한 마리의 짐승이었다.
그의 입에서 들개가 이를 가는 것 같은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다음에 오는 녀석은 아예 눈과 심장을 뽑아내 주겠다. 정말로 죽을 작정을 한 놈만 덤벼라.”
틀린 말은 아니었다. 고도로 훈련된 수라는 사람의 피부를 맨손으로 찢고 심장을 움켜쥘 수 있을 정도의 힘과 기술이 있었다.
“허걱!”
으르릉 대는 창성의 경고에 SFMK 멤버들이 전원 놀라며 몸을 움찔했다.
그들은 일반인이다.
SFMK란 단체가 애당초 수라를 증오하는 보통 인간들이 뭉친 집단이다보니 개중에 수라가 섞여있을리 만무했다.
“저, 저거 어쩌지...?”
“그, 그냥 쏘는게 낫겠다. 대표님께는 오발났다고 보고하지 뭐.”
서로 당황하는 눈빛으로 자기들끼리 어수선하게 속닥거리더니 이내 창성을 향해 일제히 총구를 겨누었다.
“주, 죽여버려!”
라고 누군가 발포명령을 내린 찰나였다.
때마침 주변 정리를 끝낸 추만택의 목소리가 가까이서 들려왔다.
“멈춰 이 새끼들앙!”
지하드를 착용한 추만택이 요란한 엔진소리를 내며 다가왔다. 가동시간이 좀 지난 지하드는 발열량도 심하고 심지어 거무튀튀한 연기까지났다.
“이 시키들이 시키는 대로는 안하공!”
추만택은 창성을 향해 총구를 겨누던 SFMK멤버들을 하나씩 나무라며 저멀리 휙휙 내던져 버렸다.
“우와아아아 잘못했습니다아아!”
허공을 날아가던 SFMK멤버들은 저마다 비명을 내지르며 사라졌다.
“말을 안듣는 것들은 필요없당.”
추만택이 손을 털면서 투덜거렸다. 그는 남은 SFMK 멤버를 보며 계속 투덜거렸다.
“내가 니들 믿고 뭘하겠엉? 앙?”
그는 창성을 손으로 가리키며 벌벌 떠는 부하들에게 말했다.
“저놈 하나면 얼만줄 알아? 최소 30억은 받아낼 수 있다궁. 니들은 운영자금이 어디서 꽁으로 나오는줄 알아? 한소라도 걍 넘겨줘야 할 판에 이런 머저리들 같으니!”
그리고 추만택은 게이였다.
한 부하에게만은 다정하게 말하며 그의 뺨을 쓰다듬었다.
“넌 떨 필요없어. 오늘밤에도 잘부탁행 알았지이?”
곱상하게 생긴 사내는 고개를 바쁘게 끄덕거렸다.
추만택은 흡족하게 웃으며 고개를 돌렸다.
그는 창성의 뒤에서 벌벌 떨고 있는 소라를 힐끔 본뒤에 창성을 똑바로 쳐다봤다.
“수라 새끼들은 하나 같이 더러운 존재당. 그건 너도 마찬가지야.”
추만택의 목소리는 싸늘하게 식어있었다.
그는 왼쪽 팔을 내밀었다.
장갑의 덮개가 열리며 총구가 튀어나왔다.
창성은 순간 위기를 느끼고 몸이 튕겨지듯 앞으로 나아갔다.
추만택을 향해 재빨리 발차기를 날렸다.
하나, 소용없었다.
추만택의 팔에서 뾱, 뾱, 뾱!
순서대로 세 발의 마취탄이 날아가더니, 단숨에 유창성의 목 주변에 깔끔하게 꽂혔다.
“이런...!”
창성은 씁쓸한 외마디와 함께 기운을 잃고 힘없이 쓰러졌다.
털썩!
추만택이 그를 내려다보며 킥킥 거렸다.
“코끼리 잡는 마취제보다 더하면 더했지 덜하진 않을거당. 낼까정 푹 자라공.”
그의 시선은 천천히 소라에게로 향했다.
도로에 주저 앉은 채 떨고 있는 그녀.
왼쪽 발목에서 피를 흘리는 것을 보아하니 복숭아 뼈 부근을 다친것 같았다.
“크크, 쌤통이다. 니들처럼 돈 많은 갑부년놈들은 험한 꼴을 당해봐야행.”
그 말에 떨리던 소라의 눈빛이 중심을 잡았다. 마치 철천지 원수 보듯 추만택을 쏘아보았다.
“다, 당신들은 누굽니까?”
추만택이 피식 웃었다.
“날 모르다니 한심하당.”
“당신이 누군지 내가 어떻게 압니까. 알고 싶지도 않고 대체 뭐 때문에 날 건드는거죠? 미쳤습니까? 난 제네틱스 회장의 딸입니다. 자칫 잘못했다간 당신들 목숨이 남아나질 않을테니까 각오하세요. 우리 아버지가 당신들을 죄다 소탕할겁니다. 꼭 약속하죠.”
추만택을 노려보는 그녀.
“호오, 그러다 눈에서 레이저 나가겠당. 아무튼 이래서 부잣집 계집들과는 상종하기가 시렁. 너무 당당하거든. 계집은 자고로 말이징. 성질이 순해야 남자한테 인기가 있단당. 너처럼 기가 세고 지랄맞으면 남자 다 도망가.”
추만택은 지하드에 달린 웨어러블 글래스로 소라에 관한 정보를 파악했다. 그녀의 신변에 관한 여러 정보가 노출되는 가운데 유난히 눈에 띄는 단어가 있었다.
그것은 바로 '수라'
추만택은 실소를 터뜨리며 고개를 저었다.
그는 수라를 경멸한다.
“음, 이대로 보내면 안되겠는뎅. 널 원하시는 중동님이 온전히 보내라 했지만 도저히 안되겠당. 내가 좀 손보고 보내야겠엉.”
수라니까 적당히 패고 보내도 멀쩡할 것이다.
정신을 바짝 차리게 해줘야 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가 입꼬리를 올리며 드러난 누런 치아가 번뜩였다.
“여자는 자고로 북어패듯 삼일에 한 번씩은 패줘야 나긋나긋하다는 말이 있징.”
“꺼, 꺼져 씨발놈아!”
소라는 두 팔로 제몸을 감싸며 두려움에 떨었다.
이 순간 다리에 힘을 줄 수 있으면 허겁지겁 도망이라도 칠텐데 다쳐서 그러질 못하였다.
추만택이 한 발 내딛었다.
“다, 다가오지마!”
“얼굴은 놔둘테니 걱정마랑. 낄낄.”
추만택이 미소짓고 다가올수록 소라는 뒤로 손을 집고 조금씩 물러났다.
그녀는 오만가지 생각이 다 들었다. 그중에서도 특히, 이 상황에 신우주가 나타나길 간절히 바랐다.
안될걸 알면서도 울상을 지으며 속으로 크게 외쳤다.
‘우주 씨 어디에 있어요? 제발 날 구해줘요! 부디 날 구해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