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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지스트 쉴드-133화 (133/285)

133화

그는 몇차례 화를 실컷 내다가 돌연 부드럽게 말했다.

오랜 경험을 바탕으로 화만 내봤자 좋을게 없다는 것을 그도 무척이나 잘알고 있었다.

“낭자. 우리 이러지 맙시다. 소생은 낭자를 매우 소중하게 생각하오. 그러니까. 이거나 풀고 깊게 이야기나 한번 해봅시다.”

그가 이 상황을 잘 헤쳐나갈 수 있는 돌파구라고는 오직 그녀를 어루고 잘 달래는 길 밖에 없었다.

하지만 미라는 싫은 눈치였다.

“그냥 이 상태로 이야기하는건 어때요? 전 이게 좋은데.”

“......”

우주는 고개를 떨구고 한동안 침묵을 지켰다. 다시 말해봤자 입만 아플것이고, 팔을 늘어뜨린 채 침대로 터벅터벅 다가가 걸터앉았다.

“후우~”

깊은 탄식을 내뱉었다. 맥빠진 얼굴로 천천히 시선을 들었다.

“이런 생활이 즐겁소?”

“태어나서 지금까지 이렇게 즐거워본 적이 없어요.”

“소생과 함께라서?”

“네, 당연하죠. 사랑하는 사람과 같이 사는 것처럼 좋은게 어딨겠어요?”

서로 세 걸음 정도 간격을 두고 짧은 침묵이 흘렀다.

“왜 날 사랑하오? 소생은 여태 낭자에게 해준 것이 아무것도 없는데?”

이 말은 미라의 마음을 건드렸다. 그러나 그녀는 서운해하지 않으며 비교적 차분한 목소리로 조용하게 대답했다.

“없다니요, 많아요. 제게 해준게 너무나 많아서 늘 행복했어요. 그리고 지금은 자기가 절 거부하는게 당연하다고 생각해요. 자기는 이렇게나 멋진데, 저 같이 하찮은 여자는 눈에 차지도 않는게 당연하겠죠. 괜찮아요. 계속 살다보면 언젠가는 결국 절 받아들일테니까.”

우주가 두 차례 고개를 휘저었다.

“이런 생활은 영원하지 못할거요. 제네틱스에서 곧 소생을 구하러 사람을 보낼거란걸 명심하시오. 그땐 미라 낭자가 다칠 수도 있소이다.”

“잘됐네요.”

그녀의 얼굴에는 웃음이 그려졌다.

“이 섬엔 부족한게 많은데 온다면 대환영이에요. 분명 얻을게 많이 있을거에요. 우상님이 좋아하는 바깥 음식도 좀 가져오면 좋겠네요.”

우주가 답답하다는듯이 살짝 미간을 좁혔다.

“한두 명이 오는게 아니오. 게다가 맹수까지 가져올텐데 당신 혼자서 뭘 어쩌겠다는거요. 자칫 죽을 수도 있소이다.”

“그럴 일은 없어요. 네버.”

미라가 자신만만하게 대답했다.

우주가 잠시 멍하니 그녀를 바라보다 물었다.

“...어째서 그리 자신하오?”

“저도 맹수가 있으니까요.”

겨우 그거였냐, 라는 얼굴로.

우주는 한숨을 내쉬며 고개를 뒤로 젓혔다. 천장을 바라보다 다시 그녀를 쳐다봤다.

“충전장비 하나없이 맹수가 계속 가동되리라 보오? 전투개시한지 채 한 시간도 지나지 않아 동력원이 바닥날거외다. 반면에 그들은 지속적인 전투가 가능하니 싸움의 승자는 이미 정해진것과 다름없소.”

그리고 이어서 말했다.

“지금이라도 늦지않았다고 보오. 어여 돌아갑시다. 내 이름 석자를 걸고 미라 낭자를 변호해 주겠소. 절대 감옥에 가지않도록 최선을 다하겠다고 다짐하리다.”

미라가 갑자기 얼굴을 찡그리며 소리쳤다.

“감옥! 감옥! 그러지 말아요! 그 감옥에 관한 이야기는 왜 매일 하는거에요? 저도 무서워요! 일이 이렇게된 이상 뭘 해야할지 막막하다구요! 이미 벌어진걸 어떡해요!”

그녀는 더는 듣기 힘들다는듯 고개를 숙이며 입술을 깨물었다.

그 모습을 보자 우주는 안쓰러운 얼굴로 측은한 마음이 들었다.

“감옥이란 말은 더는 안꺼내겠소.”

“또 감옥!”

“미안하오. 실수였소다.”

우주가 헛기침을 하며 입을 닫았다. 속으로 내심 희망이 생겨난 것 같았다. 그녀가 느끼는 절망스러운 감정을 조금만 잘 달래주면 일이 잘풀릴 것 같다는 기대가 들었다.

“걱정마시오. 낭자에게 절대 피해가 가지 않도록 저들에게는 내가 잘, ...어?”

우주는 순간 얼빠진 표정을 지었다.

미라가 푸 하고 바람빠지는 소리를 냈다. 참을 수 없었던지 이내 웃음을 크게 터뜨렸다.

“아하, 아하하하! 제 발연기 어땠어요? 많이 무서워하는 사람처럼 보였나요? 몸을 더 벌벌 떨걸 그랬나요?”

미라는 짓궂게 웃고 있었다.

‘속았던가.’

우주는 떨떠름한 얼굴로 침묵을 지키다가 미간을 찌푸리며 말했다. 조금은 토라진 목소리로 눈빛이 냉랭했다.

“이젠 나도 모르니 알아서 하시오. 낭자가 죽어도 난 절대 상관하지 않겠소. 각오해두는게 좋을거요.”

“걱정 마세요. 제가 다 해결할테니.”

미라가 살며시 한발짝 다가왔다. 여전히 웃음띤 얼굴이었다.

“전 당신을 사랑해요.”

“닥치시오.”

우주는 성이 난 채 시선을 벽으로 돌렸다.

“역겨우니 그딴 말 좀 그만 짓거리시오.”

“우린 하늘이 내려준 인연인걸요.”

“닥치란 말을 두 번 말하게 하지 마시오.”

“절 한번 봐봐요.”

“보기 싫소.”

“이걸 보고나면 마음이 달라지실거에요. 절 무척 마음에 들어하시겠죠.”

“보나마나 또 장난치려고 그러오?”

“전혀 아니에요. 장난보다 더 재밌을걸요?”

“뭐길래?”

우주가 힐끔 그녀를 쳐다보고는 다시 시선을 돌렸다.

미라는 옷을 벗는 중이었다. 바닥에 닿을 듯한 펑퍼짐한 치마가 바닥에 흘러내리고 이어 블라우스를 벗어던졌다.

늘 보아오던 속옷차림.

우주가 싸늘하게 말을 뱉었다.

“그동안 질리도록 실컷봤는데 또 볼게 뭐있겠소. 오늘은 하기 싫소. 할 마음도 안들고. 고추도 안설테니 그만하시오.”

“시작도 안했어요. 다시 봐봐요.”

“귀찮소.”

우주는 한사코 시선을 돌리지 않았다. 한동안 그렇게 시선을 피하고만 있자 미라가 기어이 말했다.

“어쩌죠? 저도 데바가 된것 같아요.”

“뭣이?”

우주의 시선이 저도 모르게 돌아갔다.

검정색 브레지어와 팬티만 입은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그리고 시선은 그녀의 얼굴에서 가슴으로, 가슴에서 둔덕으로, 그리고 둔덕에서 다리로 옮겨졌으나 별다른 특징은 보이지 않았다.

외관상으로는 이렇다할 특징을 찾기가 힘들었다.

“대체 무슨 능력이 생겼다는거요?”

하고 시큰둥하게 물어볼때였다.

그녀의 변신은 순식간이었다.

눈 깜짝할새에 전혀 다른 인간이 되어있었다. 초록색 피부에 흡사 파충류를 연상시키는 비늘조직이 있었다.

“당신이 제게 준 선물이에요. 어때요?”

그녀가 혀를 날름거리자, 두 갈래로 갈라진 뱀의 긴 혀가 나왔다가 금세 들어간다.

우주는 놀라운 광경을 보고 그만 나자빠질뻔했다.

“도대체 어쩌다가! 어쩌다 그 지경이 됐소!”

“전 마음에드는데 별로에요?”

“별로고 자시고 사람이 아닌 모습을 하고 있잖소! 어쩌다 그렇게 되었는지 묻고있는 것이오!”

“조금 전 말했듯이 당신이 제게 준 선물이에요.”

“알 수 없는 말은 그만두고 확실히 좀 말하시오!”

“제 생각에는 음... 아마.”

미라는 잇몸을 완전히 드러내며 웃어보였다.

“우상님의 아이를 임신해서 그런것 같아요.”

“그럴 리가!”

혼란스럽다.

미라가 파충류 인간으로 변한것도 기절초풍할 노릇인데 거기에 임신이라니! 어디서부터 질문의 순서를 정해야할지 머릿속이 복잡해져간다.

가능한한 차분히 마음을 가라앉히며 물었다.

“임신을 했는지 어찌 안단 말이오?”

“감이죠.”

“감? 단지 감으로 임신했다고 생각하는거요?”

“이번주가 가임기였으니 확실할거에요.”

“헉.”

우주는 순간 말문이 막혔다.

머릿속에는 그녀와 수없이 섹스했던 순간들이 떠올랐다. 그녀의 질속에 수백번은 사정했을 것이다. 그렇다고 덜컥 임신해버리다니. 어쩌면 안하는게 더 희한할 정도로 당연한 일일지도 몰랐다.

“이, 임신은 해, 했다 칩시다. 근데 데바가 된 것이 임신하고 무슨 상관이란 말이오?”

“아, 그건요.”

미라는 두 발짝 더 다가왔다. 그대로 침대에 걸터 앉으며 우주의 옆에 다소곳이 앉았다.

그러면서 그녀의 어깨가 슬며시 닿았으나 피부에 온기가 없었다. 파충류가 되더니 몸 상태도 마치 냉혈 동물 같았다.

“엊그제 료코 씨도 데바가 되었다고 말해줬잖아요?”

우주가 천천히 고개를 끄덕거렸다.

미라가 입꼬리를 올리며 말을 이었다.

“그녀가 데바가 된 원인이 혹시 우상님 때문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문득 들었어요. 료코 씨가 본래 데바가 아니었는데, 데바가 되었다면서요. 제 생각에 그녀는 임신 중에 데바가 된 것 같았고. 저 역시 당신의 아이를 임신하며 데바가 되었으니 어느 정도 확실하지 않을까요?”

그가 혼란스럽다는 눈빛으로 시선을 떨궜다.

시선은 나무바닥에 고정됐다. 작은 개미들이 줄지어 나무틈으로 들어가는 중이다.

“말도 안되오. 분명히 다른 원인이 있을거요. 임신했다고 해서 데바가 되는건 너무나 허무맹랑한 공상이라오.”

“임신했다고 해서 무조건 데바가 되는게 아니라, 우상님의 아이를 가진 여자만 가능한거에요. 저처럼 선택받은 여자 말이에요.”

“내 고추가 무슨 신의 고추도 아니고...”

미라가 그의 턱을 부드럽게 어루만지며 말했다. 그는 며칠째 수염을 깎지 않아서 털보마냥 덥수룩했다.

“그런 말하지 말아요. 당신의 고추는 이미 신의 고추에요. 고추가 제 몸속을 휘저을땐, 아...!”

그녀는 그와 섹스하던 순간을 떠올리며 눈을 감고 탄성을 자아냈다.

아랫배가 달아오르려는 것을 못참겠는지 긴 혀를 날름거리며 그의 뺨을 핥았다.

우주는 완전히 자포자기 듯한 인상을 지울 수 없었다.

돌아가는 상황을 이성적으로 생각하노라면, 갈수록 꼬이고, 꼬여만 가는것 같았다.

‘이젠 어째야 하는거냐... 정말로 그녀가 임신했다면, 의도치 않게 생긴 그 아이도 내 아이가 되는 것인가......’

고개를 옆으로 돌려서 그녀의 두 눈을 똑바로 마주봤다.

“저 예뻐졌죠?”

미라가 최대한 다정하게 자신을 보는 것 같았지만, 눈동자를 마주보려니 오싹했다. 흰자가 있을 공간이 노란 빛을 띄고 있고, 동공의 모양이 길쭉하게 변해있었다. 마치 뱀의 눈처럼 차갑고, 싸늘하게 느껴졌다.

우주는 침을 한번 꿀꺽 삼킨 뒤 되도록 침착하게 말을 건넸다.

“데바라면 능력이 뭐요? 변신이 다요?”

“으음, 글쎄요? 그건 아직 모르겠어요. 자세히 알기에는 변신 시간이 너무 짧거든요.”

때마침 그녀의 변신이 풀리면서 보통의 사람으로 되돌아왔다. 그 과정도 순식간이었다. 번졌던 먹물이 등으로 빨려들어가듯 파충류를 닮은 피부조직이 한순간 사라졌다.

곁에있던 우주로서는 그나마 다행이었다. 사람이된 미라를 보는 것이 마음 편히 대화 하기에 훨씬 수월했다.

적어도 징그럽지는 않으니까 말이다.

“이것도 나름 고민해봤는데, 임신한지 얼마 안 되서 그런것 같아요. 임신 기간이 한달, 두달 넘어갈수록 변신시간도 길어지겠죠.”

“하아...”

우주는 한숨이 절로 나왔다. 그녀가 데바라는건 둘째치고 임신했다는 소리에 그저 앞이 깜깜했다.

료코에게는 뭐라고 해야하나, 또 한소라는 이 사실을 어떻게 받아들일지 막막했다.

무엇보다 아무런 애정없는 관계에서 태어난 아이의 미래도 걱정이 되었다. 아버지 노릇은 해주겠지만 지어미가 감옥에 갔다는 사실을 알면 그것도 또...

“하아...”

두 번째 한숨이 절로 나왔다.

가족애를 중시하는 그로서는 차마 못볼 일이다.

답답한 눈길로 미라를 바라봤다. 그녀가 밝게 웃으며 무언가를 말하는듯 입술을 움직였지만 지금 이 순간 그의 귀에 하나도 들리지 않는다.

그는 그저 그녀의 얼굴을 뚫어지라 쳐다봤다.

‘대체 이 가시나를 어찌해야 될꼬... 하아...’

세 번째 한숨이 절로 나왔다.

군산의 한 해안마을.

어느 어부집 마당에 검은 정장차림의 사내들이 몰려와 있었다.

“오, 오십억을 준다길래 어쩔수 없었습니다. 자식들 대학도 보내야 하고 비, 빚도 2억이나 돼서 힘든 상황에 그만... 제발 한 번만 봐주십쇼 형사님들, 아흐흑!”

눈물을 삼키며 힘없이 고개를 떨구는 할아버지.

마당에 주저앉은 할머니가 할아버지의 바짓가랑이를 붙들고 곡소리를 해댔다.

“에구우, 이 냥반아...! 어쩌자구 실어다준겨! 아이구우! 그냥 고기나 잡으러 갈것이지 내가 아주 못살아! 못살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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