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5화
우주 구출작전이 개시된 이후, 왕건함의 갑판에서 다소 무료한 시간을 보내고 있었던 현아는 앱플패드로 미라의 활약 동영상을 반복해서 돌려보고 있었다.
미라의 전투 스타일을 분석해서 그녀와의 전투에 대비하려는 의도였다.
그리고 주변에는 갑판병들이 열심히 뛰어다니며 분주한 모습을 보이고 있었다.
아울러 헬멧을 벗은 김수희가 옆에서 샥스핀을 착용한 채 단말기를 옆구리에 있는 단자에 꼽고 내장된 프로그램을 점검하는 중이었다.
현아는 앱플패드에서 시선을 놓지않고 불쑥 물었다.
“언니, 신우주 걔 죽었으면 어쩌죠?”
수희는 그녀를 흘끗 쳐다보더니 다시금 단말기에 나열되는 샥스핀의 자가진단 정보를 눈여겨보았다.
“죽다니, 겨우 이런 일로 죽을 사람이 아니야. 예전에 초신성곰을 잡으러 혼자 금강산까지 다녀온 사람인데 설마 이렇게 맥없이 죽을까봐.”
현아가 피식 웃었다.
“그땐 진짜 미친놈이라고 생각했는데, 살아돌아온거 보고 깜짝 놀랐다니까요.”
그렇게 말하면서 앱플패드에서 재생되던 동영상을 껐다.
현아는 수희가 하는 작업을 멍하니 지켜보다가 이윽고 입을 열었다.
“언니, 계약기간이 1년인가 남지 않았어요? 재계약 이야기는 아직 없는 거에요?”
“응. 아직 없네.”
수희는 별로 관심없다는 듯이 대답했다.
그녀는 요즘 신라그룹과의 재계약보다는 이직에 관한 고민이 크다. 이직할만한 마땅한 회사를 비밀리에 수소문하는 중이었다.
“근데 재계약은 하실거에요?”
현아는 수희가 피하고 싶은 주제를 눈치도 없이 계속 캐물었다.
그 모습이 아무런 셈없고 꽤 명랑해보였지만 수희는 속으로 좀 곤란했다.
“어찌할지 나도 잘 모르겠어.”
“하긴 언니도 이제 팀장으로 승진해야 할 짬밥인데 그런 이야기는 일절 나오지도 않고 있구 요즘 회사 돌아가는 사정이 영 마음에 들진 않을거에요. 기존 멤버들을 퇴물 취급하질 않나 대우가 예전만 못하잖아요.”
“뭐...”
“들리는 소문에 의하면 이선주 회장님께서 다른 기업 에이스들을 새로 영입해서 물갈이를 할 것 같다는 이야기까지 나오고 있고, 제가 언니라면 당연히 불만이 생길거에요. 그동안 회사를 키워준게 누군데 이제와서 버리려고 드니까요.”
수희는 묵묵히 듣고만 있었으나 얼굴에는 복잡한 미소 떠올랐다.
그녀는 얼버무리듯 말을 돌렸다.
“잠깐 샥스핀 좀 착용해 볼래? 처음 보는 프로그램이 깔려있네, 예전에는 이런게 없었는데.”
“무슨 프로그램인데요? 잠시만요.”
현아는 의아한 얼굴로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녀는 뒤로 돌아서 자신의 샥스핀이 있는 곳으로 걸어갔다.
샥스핀은 특수 개조된 차량에 실린 채 운반되고 있었으며 착용자가 몸만 뒤로 갖다대면 바로 착용이 가능하도록 지지대에 세워져 있었다.
헬멧을 쓴 현아의 샥스핀에 동력이 들어오며 로봇 OS(운영체제)가 부팅을 하기 시작했다. 부팅시간은 5초가 안걸렸다.
수희가 다가와 물었다.
“너도 라이더스 프로그램이라는게 설치되어있니?”
“라이더스 프로그램이라...”
현아는 디스플레이에 표시되는 정보들을 자세히 눈여겨보았다.
스마트폰을 다루듯 손으로 넘기고, 누르고, 열고 다양한 손짓을 하더니 이내 대답했다.
“앗, 여기 저도 있네요.”
“뭐하는 프로그램인지 알겠어?”
“음... 글쎄요...”
“너도 모르겠어?”
“예, 저도 처음보는거네요. 교육받을때 이 라이더스란 프로그램의 사용법은 못들었어요.”
“그럼 갑작스레 설치된 걸 보면 무슨 용도가 있을것 같은데.”
수희는 무전 주파수를 신라그룹 상황실에 맞추었다.
“여기는 늑대1. 들리는가?”
[둥지다, 잘들린다 이상.]
“단어를 하나 송신하겠다. 이것의 정확한 용도를 알려주길 바란다.”
암호화된 코드로 'RIDERS'란 단어를 입력했다.
잠시 뜸을 들인뒤 상황실로부터 무전이 왔다.
[남궁철민 박사와 바로 연락을 취해본 결과, 차후 샥스핀의 버젼업을 위한 단순한 테스트 프로그램이며 크게 신경쓸 필요는 없다는 전갈이다. 그러니 안심하고 작전에만 충실히 전념하길 바라며 건투를 빈다, 이상.]
“이해했다.”
무전을 마친 수희는 왠지 찜찜한 기분을 떨치기가 어려웠다.
솔직히 불가능하리라 생각했던 자신의 의견이 받아들여지며 신우주 구출작전에 신라그룹이 선뜻 참여한것도 그랬다. 기업이 손해보는 일에는 절대 참여 안하는 이선주 회장의 평소 스타일을 생각해보면 놀라운 결정이었다.
거기다 샥스핀까지 동원하겠다니, 기밀에 가까운 샥스핀에 관한 정보가 외부로 샐지도 모르는데 순순히 드러낸다는 점에서 당연 의문이 생길 수 밖에 없었다.
“도대체 왜일까.”
그러다 불현듯 번뜩였다.
“혹시 어쩌면...?”
오직 돌연변이 동식물을 잡기위해 설계된 맹수와 샥스핀이 서로 전투를 벌인다는것은 절대적으로 있을 수 없는 일이다.
그러나 신우주 납치사건으로 인해 그 기회가 열렸다.
신라그룹은 사탄을 쓰러뜨린 맹수를 상대로 직접 승부를 벌임으로서 객관성이 담보된 데이터들을 얻고, 그 결과물들을 면밀하고 체계적으로 분석해 샥스핀의 취약성을 보완할 수 있는 좋은 기회를 얻게 된것이나 마찬가지였다. 맹수의 전투능력부터 시작해서 장갑은 어떤 재질로 만들어졌는지, 샥스핀과의 전투중 맹수가 파손이 된다면 그 손상 부위를 카메라로 집중 포착해 맹수의 내부 설계도까지 추론해서 기술을 훔칠 수도 있는 아주 좋은 기회를 말이다.
‘어쩌면 회사는 이번 작전을 통해서 맹수의 전투데이터를 확보할 생각인지도 몰라.’
하지만 동시에 필요이상으로 쓸데없는 생각을 하고 있다는 기분도 들었다.
'설마 영화 같은 일이 벌어질려고.‘
하면서 그녀는 금세 대수롭지 않게 넘겼다.
최근 그녀가 받아본 영화 시나리오 중에 산업스파이 관련 이야기가 있었다. 그래서 괜스레 공상이 떠오른것 같다고 뺨을 살짝 꼬집으며 배시시 웃었다.
“언니 갑자기 왜 웃어요? 기분 좋은 일이라도 생각났어요?”
현아가 다소 의아해하며 쳐다봤다. 그에 수희는 조금 당황하며 손사레를 쳤다.
“아, 아냐. 아무것도 아니야.”
그때였다.
함내 방송이 갑판에 울려퍼졌다.
[작전 지역 진입까지 앞으로 1km 남았습니다. 투입시각 10분 전입니다. 작전에 참가하는 병력들은 신속히 무장을 마무리 하고 대기하여 주시길 바랍니다.]
방송이 끝나자 수희와 현아는 완벽하게 샥스핀을 착용하며 출진 준비를 끝마쳤고, 그녀들을 비롯해 다른 함선에 타고 있던 21명의 909 특임대 요원들이 제각각 한국형 파워드슈트 ‘연개소문’을 착용하였다.
“아따 살 떨리는구먼유.”
수희와 현아가 타고 있던 왕건함 옆 정몽주함.
잡담으로 시끌벅적했던 배가 작전을 앞두고 쥐 죽은 듯 고요해졌다.
조금있으면 벌어질 결전을 앞두고 저마다 입을 닫고 그저 묵묵히 바다를 바라볼 뿐이다.
몇몇 대원들은 연개소문을 착용하지 않은 송은혁 대위를 신기한듯 바라봤다.
그는 검은색 압박 붕대를 머리부터 발끝까지 전신에 드문드문 휘감고 있었다. 얼핏보면 마치 병자같다.
기이한 광경이지만 그는 데바다. 자신의 몸을 칭칭 감고있는 여러 가닥의 얇은 천조각은 매번 작전을 나갈때마다 가지고 나가는 그의 전용 무기였다. 그는 그것을 실크라고 불렀다.
“우리는 여지껏 실패한 적이 없다.”
송은혁은 자신의 부하들의 무장상태를 둘러보며 나지막하게 말을 이었다.
“강미라는 현장에서 바로 사살하라는 명령이 내려졌다. 발견 즉시 주저말고 방아쇠를 당겨도 좋다.”
“예!”
그러나 송은혁의 말에 몇몇이 당황했다.
대원중 누군가가 짓궂은 표정을 지으며 옆사람의 어깨를 짚고 소리쳤다.
“대위님! 이 새끼 강미라 팬인데요 데려가도 괜찮겄습니까?”
“헛소리 말어 새꺄, 내가 언제.”
“구라치지 말어. 너 지난번에 강미라 사진보고 딸치는거 봤거든?”
대원들 사이에서 낄낄거리는 웃음소리가 터져나왔다.
무거웠던 분위기가 순식간에 어수선해지고 말았다. 송은혁이 관심 없는 눈으로 대원들을 조용히 시켰다. 그는 이어서 냉담하게 말했다.
“대원중에 정말 강미라의 팬이 있다면, 이 자리에서 당장 연개소문을 벗고 작전이 끝날때까지 선실에서 대기해주길 바란다. 이건 충고나 부탁이 아닌, 명령이다. 작전시 불순한 의도가 보이는 대원은 내가 직접 엄벌을 내릴 것이다. 농담이 아니다. 죽음을 각오해 두는게 좋을 것이다.”
이어서 강미라의 사진을 보고 자위행위를 했다고 의심받는 사내가 제발저리듯 말을 더듬으며 소리쳤다.
“저, 전 절대 강미라 팬이 아닙니다! 임무 수행에 문제가 없습니다!”
송은혁이 물끄러미 바라보다 물었다.
“그 말을 믿어도 되겠는가?”
“예! 물론입니다!”
“좋다. 함께 간다. 그리고 다른 사람은 없나? 강미라의 팬이 있다면 이실 직고 이야기하라.”
“없습니다!”
“그래야지. 너희들이 좋아하고 존경할 사람은 아이돌이 아닌 이순신 장군님이면 충분하다. 알겠나?”
“예!”
“좋은 목소리다. 그럼 출격 준비를 마저 끝마치도록.”
***
새벽 3시.
달이 구름에 가려 사방이 칠흑 같이 어두웠다.
서해 2함대사령관 한강해 제독은 무월광을 틈타 야밤에 기습상륙한다는 작전을 세웠다. 그의 구상대로 서애 류성룡함, 왕건함, 정몽주함 등 모든 함선들을 바다 한가운데 일제히 정박시킨 채, 먼저 해병대원들을 태운 IBS고무보트 60여척이 바다에 뛰어들었다.
해병대원들은 차가운 물살을 가르며 천천히 해안으로 접근했다.
이 모든 과정은 군 카메라를 통해 청와대 상황실에도 실시간으로 생중계되는 중이었다.
현장에는 이세종 대통령과 국방부 장관, 한규만 회장과 이선주 회장, 그 밖에 청와대 참모들이 다소 초조한 기색으로 커다란 스크린을 예의주시하며 바라보고 있었다.
애당초 '신우주 구출작전'은 전날 밤 이세종 대통령의 특명이 내려짐과 동시에 시작된 작전이었다.
군은 신속하고 단호하게 움직였다. 군산항에 머물고 있던 함대를 무인도로 출격시키면서 긴장이 고조되었고, 이 과정에서 군 당국이 가장 먼저 신경을 쓴 것은 언론 보도였다.
전날 밤 국방부 출입기자들에게 작전계획을 포함해 동원된 인력과 함선들을 비교적 소상히 알리며 기자들의 협조를 구했고, 관련 보도를 작전이 종료될 때까지 유예해줄 것을 요청했다. 작전상황이 보도돼 그 내용이 유포될 경우, 신우주의 안전과 생명이 위태로워질 수 있다는 점을 특히 강조하면서 기자들을 설득했다.
그 결과 작전은 비밀리에 진행될 수 있었다.
시계는 어느덧 03시 20분을 가리키고 있었다.
바다는 잔잔했고, 해병대원들은 귀신처럼 조용히 해안가에 상륙했다. 이후 6명씩 재빠르게 전투대형을 이루며 각 조끼리의 간격을 넓게 벌렸다. 섬의 한 구역을 넓게 포위하고 조여들어가는 전술로, 그들은 사주경계를 한 채 숲을 향해 진격했다.
언제 어디서 마주칠지도 모를 부비트랩에 항시 대비해가며 해병대원들의 이동속도는 빠르고 정확했다. 중간에 기둥이 부러진 나무나 큰 바위를 발견할땐 각별히 주의를 하며 지나치기도 했다.
“발자국 발견.”
숲을 전진하던 해병대원중 하나가 서애 류성룡함의 작전 통제실로 보고를 해왔다.
잠시 뒤 그는 땅에 찍힌 발자국을 스캔해서 통제실로 전송했다.
그것을 토대로 한 병사가 컴퓨터에 입력된 신우주와 강미라, 두 사람의 발사이즈와 비교를 하더니 곧바로 한강해 제독에게 알려왔다.
“강미라의 발자국과 동일한 것으로 판명되었습니다!”
한강해 제독은 오랜 시간 계속된 침묵을 깨고 나지막이 입술을 열었다.
“현 시간부로 탐색에서 구조로 작전을 전환하겠다. 전 함대에 이를 즉각 알리고 전 병력을 섬에 투입하라 전하도록.”
“옛!”
그 직후 해병대 병력의 증원이 이루어지고, 제네틱스 수라들과 맹수 2기, 신라그룹 수라들과 샥스핀 2기, 909특임대의 연개소문 20기가 차례차례 섬을 밟기 시작하였다.
그리고 마침내 숲에서 오두막을 발견했다는 보고가 잇따라 들어왔다.
해병대원의 철모에 부착된 카메라를 통해 외딴곳에 홀로 지어져 있는 오두막이 통제실 스크린에 비춰졌다.
판자로 막힌 창문과 문 틈에서는 노오란 불빛이 새어나오고 있었다.
해병대원들은 멀찌감치 서서 명령을 기다렸고, 한강해 제독은 이내 오두막 안으로의 진입을 승인했다.
“작전 개시다.”
18명의 해병대원들은 모기보다 작은 소리로 서로 손가락질을 해가며 작전을 세웠다.
세 팀으로 나눠서 각각 돌입반, 저격반, 감시반을 담당했다.
비밀스러운 브리핑이 끝나자 돌입반을 맡은 여섯 명의 해병대원들은 최대한 몸을 수그린 채 슬금슬금 오두막쪽으로 다가갔다.
조용히 벽에 달라붙어 귀를 기울이다가 갈라진 나무 틈 사이로 무선내시경카메라를 조심스레 넣어 내부를 살펴보았다.
거실로 보이는 넓은 방안에는 촛불이 하나 켜져있고, 그 중앙에 테이프로 입막음을 당한 한 남성이 무릎을 꿇고 고개를 숙이고 있었다. 두 손이 뒤로 향한 채 수갑으로 묶여 있었으며 천으로 눈도 가려져 있었다.
그가 입고있는 흰 셔츠와 정장바지는 군데군데 흙이 묻고 찢어져, 거지처럼 몰골이 초라해보였다.
해병대원들이 짐작하기에 그는 아마 신우주로 예상되었다.
그런데 강미라는 실내 어디에도 보이지 않았다. 방이 하나 더 있긴 했지만 창문 사이로 자세히 살펴본 결과 그 안에는 아무도 없었다.
“저 체격으로 봐선...”
그 시각 청와대 작전상황본부에서 스크린을 주시하고 있던 이선주가 문득 그렇게 입술을 열었다.
여성은 눈썰미가 좋다. 그녀는 거의 확신하듯 소감을 밝혔다.
“신우주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