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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지스트 쉴드-138화 (138/285)

138화

빔 라이플을 치켜들고 그들을 겨냥했다.

웨어러블 글래스가 그 두 사람을 포착하며 무장상태에 관한 정보를 쭉 나열했다.

“말로해서는 안되겠군.”

그 직후 두 발자국 앞으로 걸어와 숲의 그림자에서 모습을 드러낸 이는 송은혁이었다.

그는 가차없이 먼저 공격을 걸어왔다.

휘리릭!

그의 몸을 휘감고 있던 실크 다섯가닥이 한순간 뻗어져 나오며 10m 앞의 우주를 꽁꽁 옭아맸다. 두 팔과 두 다리, 목을 휘감았다.

“칫, 데바인가...!”

우주는 당황한 기색으로 온몸을 바둥거리며 저항했으나, 그럴수록 사지를 조이는 힘이 더욱 강해졌다. 실크는 보통의 천조각이 아니었다.

송은혁이 노려보며 말했다.

“마지막 경고다. 우리가 하는 말에 얌전히 따라라.”

“그럴순 없소!”

“뭐여, 지금 상황 파악이 안되는겨? 심한꼴 당하기 전에 언능 포기하는게 좋을텐디?”

덩치 큰 사나이, 문상석이 험악한 목소리로 말했다. 송은혁과 달리 그는 연개소문을 착용하고 있었다.

문상석은 이내 터벅터벅 걸어오더니 다섯개의 실크에 의해 몸이 구속된 우주를 붙잡고 한 손으로 들어올렸다.

연개소문에서 끌어낸 힘은 700kg의 맹수를 단번에 들어올렸다. 맹수를 착용한 우주의 발이 거의 1m나 허공에 떠올랐다.

“집어던지기 전에 '아이구 잘못했습니다 형님들' 하고 포기하란 말이여. 언능.”

우주가 힘겹게 대답했다.

“웃기지 마라. 너희 뜻대로 되진 않을 것이다...!”

“뭐시여?”

문상석이 인상을 쓰며 한쪽 눈을 크게 떴다.

동시에 우주가 갑자기 완력을 쓰며 저항했다. 그는 일부러 힘을 안쓰고 있었다.

우주가 멱살을 쥔 문상석의 손을 감싸쥐고 아귀힘을 가했다.

“우어억...!”

맹수 앞에서 한낱 고철덩이에 불과한 연개소문이 어찌 그 힘을 감당해낼 수 있으랴.

우주는 맹수의 출력을 한단계 더 높였다. 손에 힘을 쥐면 쥘수록 문상석의 얼굴이 심하게 일그러졌다.

잡고있던 우주의 멱살을 풀고 그 앞에서 절로 무릎을 꿇었다.

“대, 대위님... 이, 이놈 봐유...! 나 죽네...!”

문상석이 고통을 호소하는 동안 송은혁은 우주의 몸을 휘감았던 실크를 눈 깜짝할 사이에 거둔 채 누군가와 통화중이었다.

“예. 알겠습니다.”

짧은 통화를 마치자 그는 발걸음을 옮겼다.

그대로 우주 앞으로 다가갔다.

문상석은 오만상을 쓰고 괴로워하며 살려달라고 몸부림을 쳤다. 땅바닥에 닿을 듯한 얼굴엔 식은땀이 가득했다.

“대, 대위님! 이놈 안잡고 앞에서 뭐하시는 거유!”

“작전이 중지됐다. 철수하란 지시다.”

문상석이 허겁지겁 고개를 쳐들며 우주를 올려다봤다.

“드, 들었재! 우리 갈테니께 빠, 빨리 이 손 놓으라공!”

우주의 시선은 송은혁에게로 고정된 채 문상석의 손을 풀어주었다.

“휴, 십년 감수했네!”

빨갛게 달아올랐던 문상석의 얼굴이 점점 평온해지며 혈색을 되찾기 시작했다. 그는 한숨을 크게 내쉬더니 아픈 손을 주무르며 후다닥 일어났다.

“정말 이놈은 구냥 냅두고 가는 거유?”

송은혁이 묵묵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신우주에게 말했다.

“강미라를 사살하라는 명령은 철회되었다. 군은 동쪽 해안가에 주둔 중이니 그녀를 생포해서 그곳으로 데려와라.”

송은혁은 그렇게만 말을 남기고 곧바로 문상석과 함께 자리를 떠났다.

그가 사라지는 모습을 우주는 가만히 지켜보면서 저도 모르게 탄성을 자아냈다.

“세상에 저런 인물이 있었던가. 왠지 대인의 풍모가 느껴지는 사내로다. 일국의 장수로서 손색이 없어보이는군.”

그러고는 표정이 급밝아졌다.

“사살 명령이 취소되었다니 다행이로군!”

그는 서둘러 길을 재촉했다.

“죄는 미워하되 사람은 미워하지 말라고 했다오. 또 뱃속의 아이가 뭔 죄가 있겠소. 미라 낭자, 기다리시오!”

***

쿠콰콰쾅!

수희와 현아가 쏜 숄더 캐논이 맹수 앞에서 폭발했다.

미라는 흙먼지를 뚫고 튀어올라 공중제비를 돌았다. 지근거리에서 맞았음에도 불구하고 거의 손상을 입지 않았다.

찰칵, 찰칵.

숄더 캐논 에너지가 떨어졌다.

수희와 달리 현아는 아직 한 발이 더 남아있었지만, 미라가 육박하는 중이었다.

미라는 두 사람을 향해 뛰어오면서 개틀링포를 사정없이 난사했다.

“약하네! 이게 신라가 자랑하는 샥스핀의 위력인가! 아하하하!”

그녀의 목소리가 섬뜩하게 들려왔다.

수희와 현아는 서로 거리를 벌리면서 총알을 재빠르게 피했다.

각자 이동하면서 근접용 무기를 뽑아들었다.

맹수에게 고주파 블레이드가 있다면 샥스핀에게는 한손 도끼, '기가 엑스'가 있었다. 30cm의 두꺼운 철판도 거뜬히 찢어발길 수 있는 매우 강력한 무기였다.

“현아야! 넌 뒤를 공략해!”

“예써어얼!”

현아가 스프링처럼 튀어올랐다. 한순간 미라의 머리 위를 뛰어넘어 그 뒤를 잡았다.

기가엑스를 크게 휘둘렀다. 그러나 미라가 순발력을 발휘해 옆으로 몸을 굴리며 피해버렸다.

“다람쥐 같은 년!”

현아가 분한 표정을 지어보였다.

그리고 돌연 나타난 미라가 그녀의 옆구리를 들이받았다.

두 사람은 한데 뒤엉키며 쓰러졌고, 미라가 잽싸게 현아의 배위에 올라타서 그녀를 깔고 앉았다.

앞서 맹수의 고주파 블레이드는 부러져 쓰지도 못하고 다연장 로켓포나 개틀링 포의 탄환도 다 떨어졌다.

남은건 육탄전 뿐이었다.

“주먹질이 차라리 낫지. 남을 때리는 것만큼 통쾌한것도 없거든.”

미라는 양손을 깍지낀 채 머리위로 곧게 뻗었다. 그대로 현아의 머리를 후려칠 생각이었다.

“안돼에!”

터엉!

어느새 달려온 수희가 기가엑스로 미라의 등을 내려찍었다.

맹수의 단단한 장갑으로 인해 도끼에 찍힌 자국은 단, 1cm에 불과했지만 뼈가 저릴 정도의 강렬한 충격이 미라의 온몸으로 퍼져나갔다.

“크윽...!”

미라는 입을 꾹 다물며 아픔을 참아냈다. 그때 현아가 그녀를 세게 밀치며 황급히 일어났다. 나가 떨어진 미라가 바닥을 데굴데굴 굴렀다.

얼마 안가 구르는 것을 멈춘 그녀는 일어날 생각을 하지 않았다. 정신을 잃은 것도 아니었다. 그녀의 귓가에는 지금 온화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미라 낭자, 두려워 하지 마시오. 소생이 항상 곁에 있으니 안심해도 좋소이다.’

우주의 목소리는 달콤하고 부드러웠고, 그녀를 향해 밝게 웃어주고 있었다.

“아아, 우상님...!”

미라가 갑자기 힘을 내더니 번쩍 일어났다.

그리고 짐승 같은 눈빛으로 다시 주변을 두리번 거렸다.

우측 30m 앞. 수희가 지친 현아를 부축하는 중이었다. 30분이 넘는 전투시간을 보내며 두 사람은 상당히 지쳐보였다.

히죽히죽, 미라의 입꼬리가 치켜올라갔다.

“진득진득 귀찮아 죽겠네. 둘 다 한꺼번에 죽여주마.”

미라는 맹수의 가슴 덮개를 열더니 파워제어플러그를 주저없이 뽑아버렸다. 두 개의 호스가 흰 연기를 내뿜으며 맹수의 출력이 단숨에 오버상태가 되었다.

무려 3500% OVERPOWER!

지난번 그녀는 900% 상태에서 사탄의 한쪽 발을 들어올렸었다. 아주 잠깐이지만 말이다.

하나, 미라의 충만한 의욕과 달리 맹수의 오버모드 상태는 오래가지 않았다.

웨어러블 글래스에 표시된 계기판을 뚫고 나갈 정도로 꽉 찼던 게이지가 순식간에 바닥까지 떨어졌다.

“어라...?”

오버모드에는 엄청난 동력을 필요로 한다. 그런데 미라는 그나마 남아있던 동력원의 잔량을 깜빡 잊고 있었던것이다.

맹수의 동력이 꺼지며 엄청난 무게가 그녀의 어깨를 짓눌렀다.

“크윽!”

버티기조차 버거웠다.

그녀가 할 수 있는 일이라고는 서둘러 비상동력원을 작동시키는 일이었다. 그러면 최대 30분동안 동작이 가능해진다. 그러나 활동이 대단히 제약되며, 오로지 걷기와 뛰기 밖에 할것이 없었다.

일찍이 그녀가 은행에서 찾은 150억 중 100억은 맹수의 충전장비를 사는데 들였던 돈이다. 맹수의 충전을 위해서는 지금 당장 오두막 지하실로 가야만했다.

“빌어먹을! 하필이면 이런때에!”

한편, 미라가 맹수와 씨름하고 있을때, 마주대하고 있던 수희와 현아 역시 난리가 났다. 그때까지 잘만 동작하던 샥스핀이 갑자기 말을 듣지 않았다. 모든 정보를 표시해주는 디스플레이 창에는 '라이더스 프로그램 가동중'이라는 문구가 연신 깜빡거렸다.

“언니, 이게 뭐에요!?”

당황한 현아가 어찌할 바를 몰라했다. 사지가 제 말을 듣지 않았다. 하다못해 고개조차 돌릴 수 없었다. 그녀와 같은 상황에 빠진 수희마저 분개하며 외쳤다.

“분명 테스트 프로그램이라고 했는데! 우리가 속은거야!”

“네? 속다니요?”

치직!

“까악!”

“어맛!”

순간 뒷목이 따끔 거리며 수희와 현아가 동시에 정신을 잃었다.

그렇게 주인을 기절시킨 샥스핀은 제 스스로 움직였다. 마치 무인 로봇 같았다.

정면에는 이젠 무력하다면 무력한 미라가 홀로 서 있었다.

샥스핀 2기는 소지하고 있던 모든 무기를 일제히 꺼내들고, 그대로 강미라를 향해 정조준했다.

퍼버버벙!

일말의 주저함도 없이 남아있던 탄환을 전부 쏟아부었다. 맹렬한 폭음은 한순간이었고, 강미라는 심한 화상을 입으며 뒤로 튕겨져 나갔다.

샥스핀의 디스플레이창은 바빴다.

숄더 캐논: 탄환부족으로 실험 불가리볼버 기관포: 피해 입히지 못함

체인건: 피해 입히지 못함

소형 스메르쉬: 피해 입히지 못함지금부터 장갑 내부 촬영 실시지금부터 장갑 내부 촬영 실시지금부터 장갑 내부 촬영 실시

샥스핀 2기는 착용한 주인의 발을 사용해 쓰러진 강미라에게 다가갔다. 강미라는 폭발 충격을 못이긴 나머지 정신이 혼미했다. 그녀가 신음을 흘리는 동안 샥스핀이 그녀의 사지를 뒤집어가며 맹수의 구석구석을 찍어댔다.

외부 장갑 사진을 다 찍고 나서는 샥스핀의 손가락 끝에서 전동 드라이버를 비롯해 각종 전동 공구가 튀어 나왔다.

드르륵, 드르륵.

위이이잉!

촤아아아앙!

2기의 샥스핀은 제각각 강미라의 왼쪽 어깨와 복부에 달라붙어서 맹수의 장갑을 뜯어내고 고스란히 내부를 촬영했다.

촬영된 사진들은 신라그룹 로봇연구소로 실시간으로 전송되었다.

현장은 군 측의 카메라로부터 사각지대였다. 애당초 맹수와 샥스핀의 전투 장소부터가 병력이 투입된 해안가에서 정반대쪽으로 완전히 동떨어져 있었다.

나중에 헬기를 타고 료코가 도착했을때는 샥스핀의 동력은 꺼져 있었고, 맹수도 온전한 모양새를 갖추고 있었다.

***

길다란 칼날에 왼쪽 눈을 찔린 미라의 목을 타고 새빨갛게 붉은 피가 흘러내렸다.

“그때 널 살려두는게 아니었는데, 큭큭.”

목소리는 종잡을 수 없었다. 아쉬워하는것 같기도, 차갑기도, 기뻐하는 듯도 싶었다.

마치 감정이 망가진 것 같았다.

5분 전.

미라는 정신을 차렸다.

주변을 둘러보니 2기의 샥스핀은 어째서인지 작동을 멈추고 쓰러져 있었다.

그녀는 이내 무거운 맹수를 벗어던지고 일어섰다.

그러자 곧바로 엄습하는 불길한 기운. 때마침 현장에 도착한 료코와 마주쳤다.

‘제길.’

미라는 속으로 혀를 찼다. 가장 힘든 순간에 가장 강한 적을 만나버렸으니까 말이다.

한동안 서로를 지그시 응시하며 긴 침묵이 이어졌지만, 긴장의 밀도는 두 배로 고조되는 순간이었다.

료코의 옷차림은 그때와 변함 없었다. 기모노에 구시대 머리, 그리고 장검. 너무나 한결 같아서 미라는 절로 웃음이 나올뻔했다.

“뱃속의 아기랑 함께 죽으러 왔어?”

그 말이 시작이었다.

“이 부타야로가!(돼지 같은 년이!)”

분을 참지 못하고 먼저 공격에 나선 것은 료코였다.

예상외로 우직하다는 생각마저 드는 일직선 찌르기.

아무런 무기도, 준비도 없이 서 있는 미라를 향한 저돌적인 돌격.

그것이면 충분했다.

미라는 자포자기 한듯이 칼날을 순순히 받아들였다.

“네 앞에서 이런 상태로 도망가봤자 소용없겠지. 그러니 비굴하게 죽음을 당할바에야.”

“신데시마에!(죽어버려!)”

료코의 패기 넘치는 포효.

주변 나뭇잎이 우수수 떨어졌다.

첫 공격으로 미라의 왼팔이 싹둑 잘렸다.

두 번째 공격으로 미라의 오른팔이 싹둑 잘렸다.

상대를 일격에 죽이지 않고 고통스럽게 죽이는건 료코가 100년 전 부리던 칼솜씨라 할 수 있었다. 그녀의 순탄치 않은 인생이 칼질에도 묻어난것이다. 이에 신우주도 한 번 당했었다.

푹!

세 번째 공격으로 미라는 왼쪽 눈을 잃었다.

세키가하라의 칼끝이 그녀의 왼쪽 눈을 비집고 들어와 살며시 돌아갔다.

그 고통은 이루 말할 수 없었다. 정신을 잃을 정도로 아찔했다.

하지만 마지막 순간을 신우주와 함께하지 못한 미라의 울분이 더 악랄하다 싶을 정도로 강렬했다.

“크큭. 흔히들 싸움에 진 개가 짖는다고 생각하겠지.”

미라는 격렬한 고통을 참아가며 애써 미소를 지어보였다. 잘린 두 팔에서 흘러내리는 피로 바닥이 흥건했다.

“뭐, 짖는다고 생각해도 좋아. 지금 이 순간 내가 말하고 싶은건, 나 또한 그 분의 아이를 임신했다는거야. 기분이 어때?”

“쿠치바시 다마레!(입 닥치거라!)”

사실 한국어를 잘 모르는 료코는 그녀가 무슨 말을 하는지 잘 알지 못했다. 대충 띄엄띄엄 알 수 있었고, 그저 화가 난 상태이기에 서슴없이 칼을 휘두르느라 바빴다.

이번에는 미라의 심장이었다.

료코는 그녀의 눈에 박혀있던 칼을 뽑아 심장이 자리한 왼쪽 가슴을 정확히 겨누었다.

그대로 힘껏 내지르려던 찰나.

돌연 귀에 익숙한 목소리가 밤하늘에 울려왔다.

“그만둬 료코!”

료코는 순간 깜짝 놀라며 칼을 머뭇거렸다. 그리고 옆을 돌아보았다.

숲속에서 다급하게 뛰쳐나온 한 사내가 그녀의 허리를 부둥켜 끌어안으며 바닥을 몇차례나 데굴데굴 뒹굴었다.

이어 구르는 것을 멈추고, 료코는 자신의 배위에 올라탄 사내의 얼굴을 보고 소스라치게 놀라버렸다.

“(넌 누구냐!)”

피부가 지저분하고 털이 덥수룩하게 난것이 언뜻 외간 남자인줄 알았다. 그래서 순간 밀치고 죽일뻔했다.

하지만 곧바로 이어진 목소리가 그녀를 안심시켰다.

“(나야 나! 신우주!)”

“(서, 서방님?)”

“(내 얼굴을 자세히 봐!)”

우주는 덮수룩한 머리를 넘겨서 자신의 이목구비를 또렷이 보여주었다.

료코는 눈을 깜빡 거리다 이내 기쁨에 가득찬 표정을 지었다.

‘어쩜 이리도 고생을 많이 하셨을까! 2주전 깔끔했던 이미지는 온데간데 없어지고 얼마나 고생하셨으면 이렇게 야위고 더러워지신 것일까!’

우주의 몰골은 그야말로 원시인 같았다.

“(서방님께서 그간 마음 고생, 몸 고생이 무척 심하셨었나봅니다! 흐흑!)”

료코는 금세 울먹이면서 아울러 화가 솟구쳤다.

가슴속이 부글부글 끓어올랐다.

“(소녀. 저 년을 가만두지 않겠습니다! 이 망할년이!)”

료코가 몸부림을 치며 자신의 몸을 누르고 있는 우주에게서 빠져나오려고 했다.

우주가 두 팔에 힘을 주며 그녀를 끌어안았다.

“(기다려라 료코! 미라 낭자를 죽여선 안돼!)”

“(어째서이옵니까? 저 계집은 서방님을 욕보이게 만들었사옵니다!)”

“(일단 들어봐! 저 낭자는 내 아이를 가졌어!)”

“(뭐라구요...?)”

료코는 순간 넋이 나간 표정을 지었다.

“(저 계집이 서방님의 아이를 잉태하였단 말이옵니까?)”

“(그래. 아마도.)”

그러는 한편, 같은 공간.

홀로 서 있던 강미라. 그녀가 그토록 바라던 염원은 마치 유리가 산산조각이 나듯 깨져버리고 그 잔해들이 낙엽처럼 우수수 흩어져 내렸다.

“우상님, 저는 이렇게 떠납니다. 어쩌면 우상님께는 잘되었을지도 모르겠네요.”

그녀는 슬픈 눈으로 허공을 바라보았다.

그나마 남은 오른쪽 눈에서 하염없이 눈물이 흘러내렸다.

“저만의 일방적인 사랑이었으니까요.”

두 팔이 잘린 고통과 한쪽 눈을 잃은 아픔은 신우주가 곁에 있다는 사실조차 느끼지 못하게 만들었다.

그녀는 계속 밤하늘을 바라보고 흐느끼며 말했다.

“제가 느낀 당신의 인상은 힘차고 거침없었어요. 속을 들여다 볼 순 없지만 그 느낌만으로도 알 수 있었죠. 나와 성격이 너무나 다른 사람, 처음 봤을때부터 왠지 호감이 갔어요. 저를 자석같이 끌어당겼답니다.

사실 저는 나약한 사람이에요. 남이 한 말에 쉽게 상처받고, 쉽게 무너지고, 살기 위해서 독특한 행동을 하고 좀 더 솔직했을뿐, 겉으로는 강한척 하면서도 알고보면 빈털터리였던 저. 어느날 그런 저의 위로가 되어줬던건 우상님, 당신이었습니다. 당신은 저를 이해해줄 것만 같았거든요. 고마웠어요. 결국엔 이렇게 되었지만 말이죠...“

털썩.

마지막으로 하고 싶은 말은 많았지만 다 하진 못했다.

출혈이 심했던 미라는 힘없이 쓰러지며 깊은 나락에 빠져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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