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레지스트 쉴드-140화 (140/285)

140화

유씨부인의 말을 듣고 우주가 크게 웃었다.

그 웃음은 매우 자신감 넘쳐보였다.

“난 그냥 사내가 아니오. 사내중의 사내, 사내 대장부요!”

우주는 대뜸 옆에 서있던 하인 하나를 머리 위로 번쩍 들어올렸다.

허공에 뜬 하인이 겁에 질린 표정으로 바둥바둥 거렸다.

“뭐, 뭐하는 겐가! 어여 내려주게!”

“잠깐 기다려보시오.”

우주는 그를 왼쪽 어깨에 둘러업더니 이어서 반대쪽에 서 있던 하인을 한 팔로 번쩍 들어올렸다.

“어어어? 이놈보소! 아이구 마님!”

“거 겁먹지들 좀 마시오. 금방 끝나니까.”

우주는 그렇게 말한 뒤, 두 하인을 양어깨에 둘러업고는 앉았다 일어나기를 반복하기 시작하였다.

전혀 힘든 기색없이 번쩍번쩍 열번을 하자 구경하던 사람들이 탄성을 자아내며 박수를 보냈다. 그리고 50번을 넘어서자 놀란 사람들은 이젠 박수도 잊고 입을 쩍 벌리고 감탄하기를 마다하지 않았다.

“세상에... 저런 장사가 있나...!”

유씨부인은 남들보다 더욱 놀랐고, 보는게 흥겨운 나머지 멈추라는 소리도 잊고 그저 넋을 잃고 바라보았다.

우주는 백번을 채우고 나서야 멈췄다.

어지러워서 정신없어 보이는 하인 두 사람을 바닥에 살포시 내려놓았다.

“이만하면 이댁 머슴으로 삼아줄테요?”

“어머니, 저 정도 힘을 가진 사내라면 밥값을 충분히 하고도 남겠습니다!”

“흥.”

소윤이 박수를 치며 매우 기뻐하며 말했고, 유씨부인은 콧방귀를 뀌더니 돌연 몸을 돌려서 안방으로 쑥 들어가버렸다.

안방 문이 쌀쌀맞게 쾅 닫히는 소리에 우주는 어리둥절했다.

그런 그에게 소윤이 활짝 웃는 표정으로 뛰어와 말을 건넸다.

“오늘부터 여기에 머무르셔도 좋습니다. 어머니께서 허락하셨다오.”

“고맙소.”

그날부터 우주는 허씨 가에서 머슴으로 지냈고, 매일 잡일을 하고 지내며 한가로운 나날을 보냈다.

남들에겐 고된 일이 그에게는 대수롭지 않았다. 노비 일이라고 해봐야 힘쓰는 일이 대부분이었고 육체적으로 강인한 그는 그저 하품만 나왔다.

그런 생활이 한달째 지나며 허씨 일가의 자잘한 사정도 알게되고 집안 노비들과도 친분을 쌓게되었다.

아울러 농촌 생활은 평화롭기 그지없었으나 한편으로는 불안한 마음을 떨칠 수는 없었다. 가끔은 몰래 저잣거리로 나가 전국을 돌고도는 보따리 장수들에게 현 시국을 은근 슬쩍 물어보기도 하였으며, 밤에는 남들이 잘때를 이용하여 인기척 없는 곳을 찾아 검술을 연습해보기도 하였다.

검술은 료코를 염두한 것이었다. 그러나 책으로 배운 검술이 어디가겠는가. 이론은 어찌한다쳐도 경험에서 우러나오는 지식 없이는 몇날며칠을 연습해도 초보자 수준을 벗어나기가 힘들었다.

그런 가운데, 날이 갈수록 노비들은 그를 호구라 불렀다.

왜 그가 호구가 되었냐면 우주가 자원해서 그렇다.

너무 두각을 드러내 남들의 주목을 받기보다는 어수룩하고 힘만 센 바보 같은 모습을 내세워 사람들의 관심에서 멀어지려는 철두철미한 의도였다.

누가 으르렁대며 돈을 달라면 가진 돈을 다 뺏기기도 하고, 누가 놀러갈 생각에 일 좀 대신 해달라고 하면 자기 일도 아니면서 해가 지도록 열심히 일했다.

또 같은 처지에 놓인 노비가 모진 심부름을 시켜도 그는 군말없이 심부름을 다녀왔다. 심지어 어떤 심술궂은 젊은 노비는 그를 시켜서 마을 아낙네의 치마를 들추게도 시켰다. 그 때문에 마을 사람들한테 손가락질 받으며 따귀는 예사고 몽둥이로 흠씬 두들겨 맞기도 하였다.

게다가 어쩔땐 노비의 자식들이 그에게 돌을 던지기도 했다. 그럴때는 순순히 맞아주며 헤벌쭉한 웃음을 짓고 머리를 긁적거렸다.

또한 바지에 오줌을 싸보기도 했고, 코를 파서 코딱지를 먹어보기도 했고, 똥을 제대로 안닦고 주변에 똥냄새를 풀풀 풍기며 다니기도 하였다.

더불어 코에는 항상 콧물이, 남과 대화할때는 입가에서 침이 주르룩 흘러내렸다.

거기에 더해서 손톱과 얼굴에 때가 필수로 묻어있었으며, 머리는 길고 덥수룩하여 칙칙하고 더러운 분위기를 항시 내뿜어댔다.

그래서 하녀들이 그를 호구에 바보라고 흉을 보며 일부러 피해다녔다.

우주가 한순간 병신이 됐다는 소문은 유씨부인과 소윤의 귀에도 들어갔으며, 유씨부인은 집안에 망나니를 들여다 놨다며 혀를 끌끌 차댔고, 소윤은 머리를 갸웃했다.

그녀는 때를 보아 우주에게 다가갈 생각이었다. 그러나 제가 봐도 우주는 정말로 병신이 되어 있었다. 누가 때려도 헤헤헤 그저 웃기만 하고, 그가 혼자서 일하는 와중에 소윤이 슬쩍 다가가면 갑자기 방귀를 뿌웅하고 뀌어대는 것이었다.

“어쩌다 저렇게 된것이지? 처음에는 이렇지 않았었는데... 사람을 잘못보았나...”

어느 달 밝은 밤.

촛불이 켜진 소윤의 방.

책을 읽고 앉아있던 소윤은 문득 우주를 떠올렸다.

우주의 첫인상이 워낙 출중하여 호감이 갔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팔푼이 같은 그의 모습에 말을 건네기가 더욱 힘들어졌다.

갑자기 이상한 행동을 하는 그에게 여자의 몸으로 다가가기가 무척이나 두려웠던게다.

그 무렵 그녀는 혼기가 차있었고 그 또래 양반가 여식이 몰래몰래 구해서 읽는 조선시대 여류시인 이매창이 쓴 소설들에 대한 판타지가 있었다. 이매창 소설의 특징은 대략 이렇다.

귀한 양반가의 여식이 신분이 천한 사내에게 강하게 끌린다는게 주된 내용이었다.

그러한 연유로, 소설을 즐겨 읽은 소윤도 때때로 천민과의 낭만적인 사랑을 꿈꾸어 보기도 하였고, 그 대상이 우주였지만, 날이 갈수록 이건 아니었다.

우주에게 무방비로 다가갔다가는 막무가내로 자신을 범할것 같았고, 그의 호구스러운 행동이 입을 타고 전해질수록 가문에 해가 될것 같아 선뜻 나서기가 힘들어져만 갔다.

“그래도 아직 몰라. 그가 전처럼 제정신으로 돌아오길 좀 더 지켜볼수 밖에...”

한편, 우주는 호구 생활이 나름 힘들다면 힘든 일이었지만, 뿌듯함을 느낄때도 있었다. 그가 머무는 고을까지 일본순사가 돌아다녔으며 그들은 부상을 입고 사라진 신우주 자신을 이잡듯이 찾고 있었다.

사람들이 모이는 광장에는 그를 체포하기하기 위한 용모파기(어떠한 사람을 잡기 위하여 그 사람의 용모와 특징을 기록함) 전단이 걸려 있었다.

쌀 50가마에 소 1마리 라는 현상금까지 걸어놓았다.

게다가 붓그림임에도 지나가는 사람들의 이목을 집중시킬 정도로 그는 용모가 비상했다.

하지만 지금의 우주는, 가까이 다가와 자세히 들여다 본다면 혹시 모르겠지만 완전 병신에 추남이었다. 그를 알아보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그러던 어느날이었다.

그 날도 우주는 평소처럼 집 앞 대문 한 구석에 홀로 쪼그리고 앉아 헬렐레하는 표정으로 넋이 나가 있었다.

그때 저잣거리에 갔다온 하인이 오자마자 그의 뒤통수를 냅다 후려갈기며 물었다.

“야이 호구시키야. 너 칠복이가 아니고 신우주아녀? 좋은말 할때 솔직히 불어라잉?”

우주는 내심 놀랐지만, 곧바로 정색하며 천진난만하게 바보처럼 웃어보였다.

“이히히! 난 신우주다! 신우주! 에헤헤!”

그 앞에서 얼쑤얼쑤 막 춤을 췄다.

하인이 한심하다는 듯 혀를차며 말했다.

“그럼, 그렇지. 됐다. 설마 지가 지보고 도둑놈이라고 하겠어. 아니 가만, 그런데 아무리 봐도 닮았단 말이야.”

하인이 그의 얼굴을 자세히 살펴보려는것처럼 가까이 다가오자 우주는 뜬금없이 자신의 바지를 홱 끌어내렸다.

고추를 세상밖에 훤히 들춰내며 그를 향해 오줌을 시원하게 갈겼다.

쏴아아~

“히히, 시원하다! 시원해!”

콸콸콸!

오줌이 폭폭수처럼 쏟아지며 하인의 바짓가랑이에 줄기차게 묻었다.

하인은 성을 내며 난리법석을 떨었다.

“아이 더러워! 나 참 이 호구새끼 보소! 이 머저리 같은놈이 감히 누구 바지에다가 오줌을 싸!”

퍽!

하인이 발길질을했다.

가슴을 세게 얻어맞은 우주가 고추를 발라당 까고 뒤로 훌러덩 나자빠졌다. 고추에서는 오줌이 계속 새어나오며 제 바지에 묻어버렸다.

“에라이, 퉤!”

하인은 침을 뱉고 집안으로 들어가 버렸다.

우주는 얼빵한 표정을 곧바로 지워버리고 진지한 얼굴로 길게 한숨을 내쉬었다.

“후우, 보고 싶소 형님...”

죽은 박필모에 대한 애잔한 생각을 그때까지 떨쳐버리지 못한 그다.

밥을 먹을때도 박필모가 생각났고, 일을 할때도 박필모가 생각났다.

더구나 병신같이 살아가는 이유도 박필모 때문이었다.

아무리 비참한 현실이라해도 꼭 재기를 해서 그가 꿈꾸던 새 조선을 이룩하기 위해서.

“어머머! 남사스럽게 뭐하는 거니! 당장 올리지 못할까!”

시장을 나갔던 매양이가 다른 하녀와 함께 부랴부랴 눈을 가렸다.

대문 앞에서 맨다리를 쩍벌리고 있던 쩍벌남 우주는 적나라하게 고추를 드러내놓고 있었다.

우주는 순간 아차 싶기도 했지만, 더 바보스럽게 보일만한 절호의 기회였다.

그런 생각이 들자 벌떡 일어나더니 불알을 달랑달랑거리며 매양이쪽으로 신나게 뛰어갔다.

“에헤헤! 매양이 잘갔다왔니? 나 배고픈데 밥 좀 주라! 배가 꼬르륵 꼬르륵 거려!”

매양이는 얼굴이 새빨갛게 물들어서는 뒤를 돌아보며 두 눈을 꼭 감고 말했다.

“고추는 가리고 밥 달라고 해, 이 호구야!”

“알써! 알써! 이히히! 난 매양이가 너무 좋다! 밥 주니까 너~무 좋다!”

우주가 허씨 가에 처음왔을때부터 그를 돌봐주던 매양이었으니, 우주에게 가장 친근한 사람을 꼽으라면 당연히 매양이 밖에 없었다. 그래서인지 그녀 앞에서 온갖 진상짓과 덜떨어진 짓은 더하게 되었다.

한편, 매양이 옆에 있던 중년의 하녀가 실실 쪼개고 있었다.

“아이구 간만에 좋은 구경 하는구먼. 우리 서방께 아이처럼 보일 정도로 그놈 참 튼실혀.”

그날밤.

뜻밖의 일이 발생했다.

우주의 고추를 보고 감탄한 중년의 하녀가 유씨부인과 소윤의 저녁을 만들며 부엌에서 매양이를 자꾸만 부추긴 것이다.

“난놈이네, 난놈.”

“누구요?”

“누구긴 칠복이지!”

낮에 봤던 우주의 고추를 가늠하듯이 두 손을 벌렸다.

“이만했을겨.”

“아주매도 참. 남사시러웅게 그만허요.”

매양이는 수줍은듯 웃었다.

중년의 하녀는 멈출 생각을 하지 않고, 계속 말했다.

“너도 이제 시집가야지. 칠복이가 멍청하긴 해도 워낙 순진해서 제 부인한테는 잘할겨. 나 봐라. 맨날 신세한탄 하는 서방은 술마시러만 다니고 그것도 부족해서 계집질까지 하고 다니잖여. 진짜 병신은 맨날 술처먹고 마누라 때리거나 밖에서 도박하고 계집질 하느라 헛돈 쓰는 놈들이여. 그러니까 조선 사내치고 칠복이만한 놈도 읎다.

호구라고 놀림은 받지만 그놈처럼 착한놈은 없는겨. 어차피 우리 인생은 노비 인생이고 니가 오십평생 어디가서 잘난놈 만나긋냐? 여자복은 걍 순진한놈 만나서 매라도 안맞고 사는게 다행인겨. 호구같은 칠복이 데려다 밥을 짓든 죽을 끓이든 소리치고 사는게 낫지.”

“하긴.”

매양이는 절로 고개가 끄덕여졌다.

허씨 가의 하루 일과가 끝난 밤.

오늘 밤 매양이는 자신의 방으로 가지 않았다.

왠지 이 시간에도 불이 켜져 있는 우주의 방으로 향했다.

매양이는 문앞에서 수십번 고민하고 서성거리다 불쑥 말을 던졌다.

“칠복이 안자니?”

“안자는뎅?”

어수룩하게 대꾸 해놓고도 우주는 내심 깜짝 놀랐다.

보고 있던 검술책을 이불 밑으로 서둘러 숨겼다.

“나 들어가도 되지?”

“어어, 들어와.”

“그럼 들어간다.”

매양이가 곧바로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왔다.

문앞에 앉은 그녀는 새삼스럽게 헛기침을 하면서 긴장한 표정을 지었다.

오늘은 무언가 분위기가 달라보였다.

당황한 우주는 연신 눈을 깜빡거렸다.

“뭐, 뭐니? 밥 줄겨?”

“밥은 아까 실컷 처묵었잖어. 그거말고 잠깐 얘기 좀 하자. 내 너랑 긴히 할 얘기가 있다.”

“난 어, 없는데?”

“없긴 뭐가 없어. 아무 얘기나 만들면 있지.”

매양이는 갑자기 등잔쪽으로 엎드려 가더니 호 하고 바람을 불며 켜있던 불을 꺼버렸다.

방안이 어두워지고, 그녀는 문을 걸어잠궜다.

우주는 침을 꼴깍 삼켰다.

“매, 매양아, 불은 왜 껐어...?”

“얘길 하려면 불을 꺼야하니까.”

“무슨 얘기길래 불을 꺼?”

“윗 입에서 하는 얘기가 아니라 아랫입으로 하는 얘기거든.”

“아, 아랫입?”

칠흑같은 어둠속에서 매양이가 저돌적으로 안겨왔다.

“대, 대체 왜그래...?”

“내가 하는대로 얌전히 따라오면 되는거야. 안그랬다간 내일 아침밥 안줄테니까 알아서해. 알겠어?”

우주는 약간 겁에 질린 표정으로 고개를 빠르게 끄덕거렸다.

“황소 같기도 하고, 불같기도 하고, 넌 어쩜 그리도 크니?”

매양이는 낮에 본 우주의 고추를 떠올리며 서둘러 그의 바지를 풀어헤쳤다.

이어 그녀의 손길은 그의 가랑이 사이로 거침없이 파고들더니 우뚝솟은 남근을 꽉 움켜쥐었다.

“헛.”

우주가 놀라 까무라칠정도였다.

하지만 그럼에도 바보연기는 지속되어야만했다.

“우리 씨름하는 거야?”

“하자. 일단 누으렴.”

우주는 긴장한 얼굴로 똑바로 누웠다.

매양이는 우주의 배위로 올라타서는 제 스스로 저고리를 풀어 내렸다.

오동토동한 하얀 젖가슴이 우주의 눈앞에서 아른거렸다.

그녀는 허리를 굽히며 우주의 얼굴에 젖가슴을 짓뭉겠다.

“허업! 매, 매양...!”

상황이 심각해진 것을 깨달은 우주는 도중에 바보 연기를 그만 멈출까도 싶었지만, 여태껏 공들인 일을 고작 계집 때문에 망칠 수는 없었다.

이렇게 된 바에 갈때까지 가보기로 하였다.

“난 호구야, 매양아!”

젖가슴에 파묻혀 힘겹게 내뱉은 그의 말에, 매양이는 이제 막 헐떡이기 시작하는 호흡을 애써 진정시키며 대꾸했다.

“아니까 조용히 혀라. 그리고 나도 이제 나이가 찼으니 시집가야 되지 않긋냐. 내 니한테 평생 잘할텡게 오늘밤 사내 맛 좀 진득하게 뵈여주봐라.”

"......!"

구멍 뚫린 창호지를 통해 안으로 새어 들어온 달빛이 유난히 밝다.

올해로 스물네살 매양이는 알몸인 채 가랑이를 벌리고 이불 위에 살포시 드러누웠다.

우주가 침을 꼴깍 삼키며 그녀의 배위로 서서히 올라갔다.

그 직후 무섭도록 단단해진 남근이 그녀의 하복부를 꿰뚫었다.

“아아...!”

매양이는 저도 모르게 뜨거운 신음을 흘렸고, 그녀의 짜릿한 희열은 밤새도록 지속되었다.

다음날.

“아......”

우주는 그저 멍했다.

전보다 힘차게 넋이 빠져 더욱 병신 같았다.

여성의 음부를 실물로 감상한 것은 어젯밤이 난생 처음이었다.

그때의 기억이 머릿속에 깊숙이 파고들어 하루종일 잊혀지질 않았다.

외로웠던 마음을 포근하게 달래주듯 부드럽게 감싸주던 매양이의 꽃잎. 그 촉촉한 느낌을 잊지 못해 밥도 제대로 넘기질 못하던 때였다.

그날 오후.

마츠다이라가 난데없이 수십명의 일본군을 이끌고 나타나 허씨 가를 찾아왔다.

짐승 같은 눈빛을 이글거리는 쿠로가네 료코까지 대동하고 말이다.

호구처럼 마당을 쓸던 우주는, 유씨부인이 마츠다이라를 반갑게 맞이하는 광경을 조용히 지켜보며 이를 뿌득 갈았다.

‘내 진정 멀다고만 느껴졌으나 오늘이 바로 하늘이 점찍어준 날인가 보구나! 네이년놈들! 기필코 용서치 않겠다!’

이후, 마츠다이라는 후한 점심 대접을 받으며 한시간여를 머물다 드디어 떠날 채비를 했다.

“아이고, 조심히 가십시오. 정말 고맙습니다.”

대문 앞까지 그를 배웅하는 유씨부인의 얼굴에는 웃음이 만연해 있었다.

우주는 어째서 마츠다이라가 허씨 가에 모습을 드러냈는지 의문이 들긴 하였으나 굳이 알필요는 없었다.

죽이면 그뿐.

그는 부엌에 들어가 식칼을 훔쳐 품속에 감췄다.

“(자, 출발이다!)”

마츠다이라가 료코를 포함해 총칼로 무장한 군인들과 함께 길을 떠나자, 우주는 허씨 가의 담벼락을 훌쩍 뛰어넘어 그들을 뒤쫓았다.

‘기필코!’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