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레지스트 쉴드-142화 (142/285)

142화

“.......”

우주는 입을 닫았다.

“말하기 싫어요?”

소윤은 그의 표정을 보고는 이내 시선을 내려 개울에 담긴 그의 발을 바라보았다. 개울 가장자리에는 얼음이 얼어있다.

그녀는 살짝 미소를 머금고 말했다.

“지금은 한 겨울이에요. 아무리 호구라 해도 추운건 알겠죠? 살이 얼어붙을 것 같은 차가운 개울물에 그 어느 누가 장시간 발을 담글 수 있죠?”

우주가 속으로 뜨끔하며 소윤의 웃는 얼굴을 돌아보았다.

제법 영리한 계집이란 생각이 들었다.

“난 원래 감각이 무뎌서.”

무뚝뚝하게 뱉은 우주의 말에 소윤이 고개를 저었다.

“핑계란걸 알아요. 제 눈에 당신은 무언가 숨기는게 많아 보여요. 지난번에 몸상태가 빨리 회복되는 것도 그렇고, 남들보다 무척 힘이 센것도 그렇고, 이처럼 추위도 잘견디는 것도 그렇고, 심지어 수십명의 산적떼까지 혼자서 맨몸으로 때려눕힌 것 등 보통 사람이라면 거의 불가능에 가까운 일을 당신은 해내고 있어요. 당신은 대체 누구죠?”

“......”

잠시 침묵이 이어지며 개울이 졸졸졸 흐르는 소리만이 들려왔다.

이때 갑자기 하인을 통솔하는 청지기가 와서 소윤에게 굽신거리며 말을 건넸다.

“아씨, 오늘은 사정이 여의치 않으니 사람을 보내 한양은 다음으로 기약하고, 이만 양주골로 돌아가는게 어떻겠습니까요? 호위도 없고 아씨께서 무척 위험하실것 같습니다요.”

소윤이 미소를 지었다.

“그건 칠복이가 있으니 걱정마세요.”

“아씨, 아무리 그래도 한양에 가면 왜놈 잡배도 많이 돌아다니는데다가 칠복이 하나가지고는 손이 부족하여 왠지 불안해서 그럽니다요.”

“괜찮습니다. 한양에 도착하거든 관가를 찾아가 도움을 바라거나 마츠다이라 님께서 새로 호위를 붙여줄것입니다. 그리고 그 손님이 내일 일본으로 떠나셔야 하기 때문에 오늘 아니면 만날 수가 없답니다. 청지기님은 예정대로 진행해주세요.”

“에구구... 예. 알겠사옵니다, 아씨.”

청지기는 불안한 표정을 지울 수 없었으나 그렇다고 소윤의 고집을 꺾을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일행은 다시 한양을 향해 출발하였다.

도성의 북문인 숙정문에 도착했을땐 하루 해가 지고 있었다.

초저녁 무렵, 마중 나온 일본군의 통솔을 받은 일행은 어느덧 일본식으로 지어진 대저택 앞에 가마를 멈춰 세웠다.

“(어서 오시오! 기다리고 있었스므니다!)”

대문이 열리며 고급스러운 기모노를 입은 일본 남성이 크게 기뻐하며 소윤을 맞이했다. 얍실해보이는 코수염을 기른 중년의 사내였다.

그리고 그 옆에는 하카마를 입은 마츠다이라와 그 바로 뒤에 허리에 칼을 찬 료코도 보였다.

‘찾았다!’

우주의 마음은 불같이 타올랐다. 놓친줄 알았더니 이게 왠걸, 뜻밖의 기회가 찾아온 것이다.

소윤을 맞이하는 마츠다이라의 웃음은 그로 하여금 더욱 살인충동을 느끼게하였다. 당장이라도 뛰쳐나갈듯이 손이 덜덜 떨렸다.

그가 이성의 끈을 놓치기 직전에 소윤은 곧 그들과 함께 저택 안으로 사라졌다. 그녀가 데리고온 우주와 하인들은 일본 병사들이 출입을 금지 시켰다.

한 일본장교가 통역사를 데리고 와서 말했다.

“'네놈들은 여기서 기다리거라 밥은 갖다주겠다' 랍니다.”

“여기 바람도 쌩쌩불고 겁나 추운디 헛간이라도 좋으니 어디 바람막을 곳은 없소?”

하인 하나가 제 몸을 감싸며 불평을 해봤지만 통하지 않았다.

그래서 밖에서 벌벌 떨며 손을 비비고 기다리는데, 얼마 지나지 않아 대문이 열리며 그 집 하녀가 따듯한 국밥 8그릇을 갖고 나왔다. 우주는 받자마자 걸신 걸린듯 한그룻 뚝딱 해치웠다. 그러고는 살살 배를 어루만지며 똥이 마렵다고 말했다.

길바닥에 옹기종기 모여앉아 함께 밥먹던 하인들이 저마다 인상을 쓰며 얼른 가서 누고 오라고 그를 등떠밀었다.

“밥먹는데 더럽게시리! 얼른 갔다와!”

“우욱! 나, 나올것 같아.”

우주는 엉거주춤한 자세로 잠시 걷다가 하인들의 시야에서 사라지자 재빠르게 달리기 시작하였다.

“각오해라 왜놈들!”

이후 어느 집에 걸려있던 패랭이를 머리에 푹 눌러쓰고 우주가 찾아간 곳은 한양 북쪽 춘하관이라는 고급 요정집이었다.

그는 요정집 대문을 지키고 있던 험상 궂은 인상의 장정들을 시켜 주인을 급히 찾았다. 처음에 좀 실랑이가 있었지만, 주먹을 휘두르던 몇놈을 가뿐히 때려눕히고나니 한놈이 안으로 뛰쳐들어가 제 주인을 불러왔다.

대문 밖으로 설렁설렁 걸어나온 요정집 주인.

손님과 술을 마시던 중이었는지 양볼이 벌겋게 상기되어있었다.

우주가 다가가서 패랭이를 슬쩍 들추고 얼굴을 보이자 그가 갑자기 딸꾹질을 하며 크게 놀란 표정을 지어보였다.

“자네였나! 살아 있다고 풍문으로 듣긴했지만 직접봐서 정말로 다행이네!”

요정집 주인의 이름은 오승환이었으며 그와 박필모의 관계는 먼 인척 관계였다.

그는 서둘러 우주를 안으로 들여보냈다.

길을 안내하던중 갑자기 웩웩거렸다.

“우웁!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자네 꼴이 이게 뭔가! 거지보다 더 고약한 냄새가 나는군! 웨엑!”

그가 허리를 숙이고 헛구역질을 하는 동안 우주가 픽 웃었다.

“그건 나도 어찌할 수 없으니 우선 참아보시오. 그나저나 막내한테 편지온게 있소?”

“있다마다. 한통 뿐이랴? 자네가 사라진 뒤로 답장이 없으니 그게 꽤 이상했는지 하루가 멀다하고 매일 세 통씩 보내왔다네. 어제도 그렇게 왔어. 내 살다살다 지 오라버니한테 편지쓰는 여동생 첨봤네. 원래 오라버니와 여동생 간에는 상극이거든. 원수지 원수야.”

그 말에 우주는 흐뭇하게 웃으며 품속에 감춰둔 편지를 꺼냈다.

그 역시 한통이 아니었다. 언제부터 써놨던 것인지 수십통의 편지를 오승환에게 안겨주었다.

“잘 좀 부탁드리오. 그리고 막내가 보낸 편지는 다음에 와서 가져가리다. 지금은 짬이 없소.”

“대체 무슨 일이기에 불쑥 나타나자마자 이리 보채는건가?”

“자세한 사정을 밝히기엔 시간이 촉박하외다. 얼른 그곳으로 갑시다.”

두 사람은 곧바로 기생이 없는 한적한 어느방, 숨겨진 지하로 향했다.

그곳에는 구식총을 비롯해 별의별 군수품 상자가 먼지에 쌓여 있었다. 박필모와 우주가 한창 활약하던때에 일본군에게서 빼앗고 보관하던 것들이었다.

우주는 그곳에서 검은 자객 옷을 입고 복면을 썼다.

또 날카로운 칼을 챙긴 뒤 폭약을 주워담아 보따리에 싸서 등에 멨다.

준비를 마치고 우주가 떠나기 전 오승환이 그의 두 손을 꽉 잡아주었다.

“마츠다이라가 근처에 왔단 말이지. 알겠네. 꼭 살아돌아오게나. 자네 마저 죽으면 이 조선에 희망이 없다네.”

“당연한거 아니오. 그놈 죽이고 꼭 필모형한테 술 한잔 올릴거요.”

다다다닥!

우주는 밤바람을 가르며 내달렸다.

어찌나 빠른지 그가 지나칠 때마다 길가에 서 있던 계집들 치마가 펄럭였다.

꺅!

이곳저곳에서 맨다리를 모으며 치마를 황급히 손으로 누른다. 그 정도로 빨리 달렸다. 오늘밤 그는 기필코 사생결단을 내겠다는 결기가 있었다.

이윽고 도착한 흉물스러운 대저택.

이 조선땅에 왜놈이 사는 집처럼 꾸민 것이 보는 것만으로도 화가 났다.

우주는 주변을 순찰하던 일본병사를 간단히 제압하고 조용히 담을 뛰어넘었다.

수많은 적이 깔린 곳에 단신으로 뛰어들기는 역시나 힘들거란 예상을 했고, 그는 가져온 폭약을 설치했다. 성냥을 켜서 도화선에 불을 붙이고 곧바로 다른곳으로 뛰어가 또 폭약을 설치한뒤 도화선에 불을 붙였다.

순식간에 이곳저곳에서 펑펑펑!

폭음과 함께 땅이 흔들리면서 저택이 까만 연기에 휩싸였다.

“(대체 무슨 일이냐!)”

밖으로 뛰쳐나온 일본 군인들이 혼란스러워하며 정신없이 이리저리 사방을 헤메고 있을때, 우주는 적을 마주치는 족족 재빨리 칼을 쑤셔넣으며 마츠다이라가 있는 곳으로 점점 나아갔다.

그리고 마침내 마츠다이라와 중년의 일본남성, 소윤이 있는 방으로 들어섰다.

세 사람은 일본풍의 식사를 하고 있었고, 방문 앞에서 철통경계를 하던 료코가 전혀 예상못했을 정도로 우주는 방안의 한쪽 벽을 부수고 뜬금없이 나타났다.

우주는 앉아서 당황하는 마츠다이라를 향해 번쩍 칼을 들었다.

“네이노오옴! 마츠다이라! 하늘이 보고 땅이 알고 있다! 하늘이 두렵지도 않은가! 억울하게 죽은 자들이 땅속에서 울부짖는 소리가 들리지 않느냐! 너희 왜놈들은 사람으로서 넘어선 안될 선을 넘고 있다! 이것이 바로 응보다! 이 칼이 바로 우리 조선인들의 한이다!”

스윽!

우주가 장엄하게 내려친 칼은 이내 마츠다이라의 가슴을 속시원하게 갈랐다.

“커헉!”

우주는 다시금 칼을 빼들어 그의 심장을 깊숙이 찔렀다.

푹!

부릅뜬 마츠다이라의 눈이 우주를 보며 통곡하고 있었다. 분한듯 부들부들 떠는 손으로 그의 멱살을 움켜잡을 것처럼 보였지만 그럴 힘은 없어보였다.

우주는 숨이 턱턱 막혀 힘겨워하는 눈동자를 똑바로 마주하며 당당하게 말했다.

“마땅히 죽어야할 놈이 죽는 것이다.”

촤악!

칼을 뽑아들자 사방에 선혈이 낭자했다.

마츠다이라의 옆에 앉아있던 중년의 일본 남성과 그 앞에 앉아있던 소윤은 비명을 지르며 혼란에 빠졌다.

우주가 나타난 아주 짧은 순간에 마츠다이라는 죽임을 당했다.

나름 서두른다고 서두른 방밖의 료코는 황급히 문을 열어재끼며 안으로 뛰어들었고, 우주와 현란하게 칼을 주고받기 시작하였다.

아니, 서로 칼을 주고받는다기 보다는 우주가 막기에 급급했다. 그는 일방적으로 밀렸다. 역시나 그녀에게 역부족이다.

우주가 차츰 밀리며 뻥뚫렸던 벽을 지나 방밖 복도로 나왔다.

그때였다. 허겁지겁 도착한 일본병사들이 일제히 우주에게 총을 겨누며 재빨리 총탄을 발사했다.

상황이 버겁던 우주는 칼을 버리고 도망칠 정도로 아찔한 순간을 맞이했다.

하지만 결국 추격을 뿌리치고 안전하게 저택을 빠져나갔다.

어둡고 음침한 구석.

밖으로 나온 우주는 최대한 조용히 숨을 헐떡였다. 주변에는 일본 병사들이 그를 찾느라 난리였다. 횃불을 들고 우르르 뛰어다녔다.

“으윽!”

우주는 길 바닥에 고꾸라지며 고통에 괴로운듯 얼굴을 심하게 찡그렸다.

“젠장...!”

총알 세 발이 그의 등에 박혀버렸다. 상의를 벗고 옷을 길게 찢어 상처난 등에 둘둘 휘감았다. 무작정 새는 피를 막기 위해 대충이라도 응급처치를 해야했다.

그 뒤, 우주는 복면을 벗고 미리 가져왔던 하인 복장으로 갈아입었다.

아픔을 꾹 참으며 가마가 있는 대문 쪽으로 덤덤하게 걸어갔다. 저택 앞은 마치 전쟁이라도 터진 것처럼 정신 없었다. 일본 병사들이 눈을 부랴리며 그를 찾고 있었다.

“뭔 똥을 그리 오래싸?”

“계집질 하다온건 아니여?”

가마 근처에 있던 하인들이 우주를 보자마자 저마다 한마디씩 던졌다.

화장실 간답시고 30분을 넘도록 오질 않았으니 다들 그가 똥을 싸러갔다기보다는 한양 구경하며 농땡이를 치다왔다고 생각했다.

그에 우주는 애써 통증을 참아가며 헬렐레 웃어보였다.

“똥이 안나오는걸 어째.”

“심각한 변비인가 보네.”

하인들은 대수롭지 않다는 표정으로 우주에게 말하고 다들 저택의 대문을 쳐다보았다. 상황이 이런데 아씨가 언제 나올지 걱정하는 눈치였다.

그들을 통솔하는 청지기가 마지못해 대문 앞을 지키고 있던 일본 병사들에게 다가갔다.

“우리 아씨는 어디계십니까? 우리 아씨 좀 밖으로 내보내 주시오! 아씨! 아씨!”

그가 대문 앞에서 안절부절못하며 안을 향해 소리를 치자 병사들에게 곧 제지를 당하고 그 앞에서 쫓겨났다.

청지기는 투덜투덜대며 제자리로 돌아왔다.

하인들 속에 섞인 우주는 얌전히 고개를 숙인 채 아픔을 참아내는데 여념이 없었다.

그 시각.

소윤과 한 방에 있던 중년의 일본 남성은 사람을 시켜 그녀를 숙소까지 안전하게 데려다주도록 명령했다.

마츠다이라가 죽은 이상 그가 나서서 뒤처리를 해야하느라 바빴다.

저택을 나온 소윤은 급히 가마에 올랐다.

일본 군인의 호위를 받으며 곧바로 가마가 출발했다.

양주골을 떠나 지금까지 그랬듯 가마 앞은 우주 혼자 들었고 뒤에는 두 명의 하인이 밑에 붙은 가마채를 하나씩 잡고 이동했다.

얼마나 달렸을까.

문득 뒤쪽에서 가마채를 붙잡고 따라오던 하인이 우주를 향해 조용히 말했다.

“어이, 칠복아. 앞이 좀 씩 기울어지는 것 같다. 힘든겨?”

그때 가마에 타고 있던 소윤도 무언가 이상하다는 것을 느꼈다. 그렇잖아도 가마가 앞쪽으로 너무 기운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가마 앞쪽에 달린 창문을 열고 우주의 뒷모습을 바라봤다.

그는 뒷목에 식은땀을 뻘뻘흘리며 숨을 헐떡이고 있었다. 덥수룩한 머리는 온통 다 젖었다.

‘이상하다, 낮에 올때는 안그랬는데...’

그녀는 고개를 갸웃하면서도 그 즉시 다른 하인을 시켜 앞쪽을 거들게 했다.

그렇게 한참을 달려 마침내 소윤이 머물 숙소에 도착했다.

숙소는 손탁호텔이었다. 손탁호텔은 1902년 세워진 한국 최초의 서양식 호텔이었으며 2층짜리 건물이었다.

소윤은 가마에 내리면서도 우주에게서 시선을 뗄수 없었다.

그를 곁눈질로 바라보던 와중에 문득 불그스름한 그의 등짝이 눈에 들어왔다. 등에서 흐른 피가 옷에 스며든 것이다.

‘혹시 피야? 그러고 보니 아까 그자가...’

방으로 침입했던 복면의 자객이 어째서인지 칠복이의 목소리를 꽤 닮아있었다.

아까부터 계속 그것에 의문을 품고 있던 그녀였다.

그런 생각이 들자 소윤은 슬며시 그에게 다가갔다.

“어디 아픈가요?”

“아, 아, 아프지 않소.”

목소리를 떠는 것이 겨우 참고있는 것처럼 보였다. 식은땀을 뻘뻘 흘리고 안색이 창백한 것이 그가 무척 힘들어 한다는게 훤히 보였다.

그녀는 하인들을 돌아보았다.

“가마를 가져다 놓고 푹 쉬도록 하세요. 이제 부를 일은 없을겁니다. 숙소는 저기 계신 분이 알려주실것입니다.”

소윤은 일본 군인을 통솔하던 장교를 가리켰다.

“옛!”

그녀의 말에 하인들은 내심 히죽거렸다. 한양에 온김에 몰래 숙소를 빠져나가서 한밤중에 유흥가에 가겠다는 생각 밖에 없었다.

소윤은 한 명있던 하녀에게도 말했다.

“너도 쉬도록해. 여기까지 와서 시중 들것 없다. 나도 곧바로 잘거야.”

“예, 아씨.”

이어서 우주를 쳐다봤다.

“칠복이는 아직 할일이 더 남아있다. 이것 좀 들고 나를 따라 오너라.”

그녀의 개인물품을 담은 상자를 가리켰다.

우주는 힘없이 대답했다.

“예...”

하인들은 일제히 귀찮은짓 안해도 된다며 안걸린것이 다행히라 여겼다.

그 직후 하인들은 일본 병사의 안내를 받아 노비들이 머무는 초라한 숙소로 향했고, 우주는 그녀의 뒤를 따라 자연스럽게 호텔 안으로 들어갔다.

소윤을 호위하며 따라온 일본 군인들은 알아서 퍼지며 호텔 주위를 철통같이 경계하기 시작하였다.

무사히 호텔 안으로 들어온 우주는 1층에 있는 소윤의 방으로 발을 들여놓았다.

그리고 방문이 닫히자 마자 문을 잠그고 그녀가 말했다.

“옷 벗으세요.”

우주는 그녀의 말을 전혀 듣지 못 했다.

“으윽...!”

그는 제대로 서 있기도 힘이 들었다. 허리를 곧게 펴기도 힘든듯 한 손을 등에 갖다대고 무릎을 꿇었다.

극심한 통증에 자신이 지금 어디에 와 있는지조차 신경쓸 겨를이 없었다. 신경쓰고 싶지도 않았다.

그저 엉겨붙은 수염 사이로 하얀 이를 드러내며 큭큭거렸다.

“형님... 난 이제 이대로 죽어도 여한이 없소. 이 동생이 드디어 마츠다이라를 죽였다오. 하늘에서 보고 있는 게요?”

그 말을 듣고 소윤은 오늘밤 마츠다이라를 암살한 복면의 사내가 바로 칠복이었음을 깨달았다.

“형님을 죽인 그 계집도 꼭 죽이고 싶었지만, 상대가 안되는걸 어찌하오. 그리 칼질 잘하고 힘도 센 계집이 천하에 있을줄 내 몰랐소. 나중에 형님이 대신 죽여주시오. 이 못난 동생은 이제 그럴 힘도 없소이다. 인제 형님 따라갈때가 됐는가 보오. 크큭큭...”

우주는 봄바람이 포근히 불어 오는 광경을 보는 것처럼 눈동자가 반쯤 풀려 있었다.

그는 이어 붉은 카펫이 깔린 바닥에 엎드려 누웠다. 거기가 마치 내 무덤이라는 것 같았다.

“하아...”

소윤은 그가 잠들려는 행동을 보이자 곧 초조한 빛을 나타냈다.

“이대로 주무시면 큰일납니다!”

그는 얼굴을 바닥에 처박고 졸린 목소리로 대답했다.

“신경쓰지 마시오...”

“상황이 이런데 신경을 쓰지 말라니요. 어떻게 신경을 안씁니까?”

“그럼 뭔데...”

“뭐가 뭐에요?”

“나랑 무슨 상관이기에 그리 날뛰시오...”

“물론, 상관이야 없죠. 하지만 지난번에 제가 당신의 목숨을 살렸습니다. 저를 봐서라도 이리 쉽게 죽어서는 아니되지요.”

우주는 눈이 반쯤 풀렸으면서도 재밌다는듯 웃었다. 마치 취한 사람같았다.

“내 이름이 뭔지 아시오?”

“신칠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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