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5화
오늘은 신우주 납치 및 감금 혐의로 구속기소된 강미라에 대한 선고공판이 있는 날이다.
나라의 핵심 이슈인 만큼 최종 판결이 이루어지는 이날 법정은 많은 사람들로 북적거렸다. 대부분은 기자들로, 방청석에 앉을 자리는커녕 일어서서 지켜볼 자리도 부족했다.
앞서 열린 결심공판에서는 검사가 강미라에 대해 징역 7년을 구형했다. 하나 이상했던 점은 죄명에 납치와 감금은 있었으나 어째서인지 성폭행은 쏙 빠져있었다.
세 번의 재판을 하는 동안 아예 거론조차 되질않았다. 언론에서는 납치와 감금에 대한 이야기를 위주로 다루었고 성폭행과 관련된 사실은 그저 세간의 추측으로만 치부되었으며 얼마 뒤에는 잊혀져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리지도 않게 되었다.
게다가 강미라에 대한 재판은 전례가 드물 정도로 체포한지 한달만에 신속히 이루어졌다. 그녀는 모든 죄를 순순히 인정했고, 우주는 강미라를 두둔하는 발언을 하며 재판부를 향해 호소했다.
그녀의 처벌을 원치않는다는 것이었다. 그녀에게 구타를 당한적도 없고, 억압 받은적도 없고, 강요를 받은적도 없으며 오히려 자신의 편의를 돌봐주었다고 밝혔었다.
우주와 료코, 소라를 포함해 악어팀 전원이 지켜보는 가운데, 공판시간이 되자 법정 왼편의 문이 열리며 하늘색 수의차림으로 강미라가 들어섰다. 오렌지로 염색된 긴 머리를 하나로 묶고, 료코에 의해 잃은 왼쪽 눈에는 안대를, 잘려나갔던 두 팔은 온전히 붙어있었다.
미라는 재판부를 향해서 90도가 되도록 허리를 굽혔다. 방청석을 향해서도 목례를 하는 등 여유 있는 모습이었다.
이어서 차분한 얼굴로 주위를 둘러보더니 이내 우주를 찾았다.
그를 향해 조용한 미소를 지어보였다.
옆자리에 앉아있던 료코에게는 다른 미소를 지어보였다.
‘료코 씨의 승리군요. 당신에게 잃은 이 왼쪽 눈만은 평생 그대로 놔두겠어요. 그날 일을 꼭 잊지 않도록.’
이어 재판부가 앉아있는 법대를 향해 똑바로 서자 일순간 법정이 고요해졌다.
판사는 준엄한 눈으로 그녀를 내려다 보았다.
“피고인 강미라, 유죄.”
이어서 말했다.
“피해자가 수면제를 먹고 잠든 상태에서, 제대로 반항하지 못하는 피해자를 상대로 납치 및 2주간 감금 행위를 저지른 피고인의 행동은 그 죄질이 불량하다. 다만, 피고인이 평소 앓던 정신병과 피해자 측의 지속적인 요청에 따라 감형에 참작할 만한 사유가 있고, 피고인이 다시는 이런 경솔한 행위를 반복하지 않겠다고 다짐하며 반성하고 있기에 징역 3월을 선고하되, 교도소 대신 정신병원에 수감되어 치료받도록 명령한다.”
딱, 딱, 딱.
판사가 판결봉을 세 번 내려쳤다.
판결이 내려지자 차분한 표정으로 공판을 지켜보던 우주는 만족스러운 웃음을 보였고, 료코는 무표정 했으며, 소라는 썩 달갑지 않은 얼굴을 했다.
그리고 법정 안에서 진을 치고 있던 기자들은 저마다 강미라의 형량이 예상외로 너무 낮은 것이 아닌가 하는 표정을 지었다.
좌우간 법정에서 나온 우주는 몰려온 취재진들과 인터뷰를 했다.
“강미라의 죄에 맞는 합당한 결정이었소.”
그는 이렇게 소감을 밝혔다. 그리고 료코와 소라가 기자들 뒤편으로 차를 타고 떠나는 것을 조용히 지켜본뒤 나중에 그도 자신의 페라리를 타고 겹겹이 쌓인 취재진을 뚫고 법원을 떠났다.
“두 사람 언제 친해진거요?”
차속에서 전화를 하던 우주가 고개를 갸우뚱했다.
그동안 서로 앙숙처럼 지내던 료코와 소라가 함께 저녁을 먹으러 간다는 것이었다.
두 여성은 우주도 함께하길 원했으나 그에게는 선약이 있었다.
“밥먹다 싸우지만 마시오.”
-우리가 언제 싸웠다고 그래요?
소라가 샐쭉 토라진 목소리로 시치미를 뚝 뗐다.
우주는 엷은 미소를 띄며 말을 돌렸다.
“료코한테는 걱정말고 재밌게 놀다오라고 전해주시오. 이따 데리러 갈테니 꼭 전화주고.”
그는 전화를 끊고나서 활짝 웃었다. 그동안 골치였던 문제가 저절로 해결되었으니 다행이었다. 특히 여자끼리 싸우면 화해가 쉽지않다는데, 그래서인지 료코와 소라가 무척 대견해보였다.
“이런 깜찍하고 사랑스러운 낭자들 같으니!”
우주의 차는 쾌활하게 도심을 달리며 청와대로 향했다. 강미라의 재판이 끝난 후 이세종 대통령을 찾아뵙기로 약속이 되어있었다.
우주는 이세종 대통령에게 고마워 해야했다. 그의 배려로 신우주 납치사건이 크게 축소되고 몇몇 진실은 은폐될 수 있었다.
대통령과 국정원장이 나서니 그 추진력이 폭발적이었다. 덩달아 강미라가 임신했다는 사실도 간단히 무마되었다.
이는 국내 최고의 정보력을 가진 제네틱스조차 모를 정도로 심해 깊숙이 가라앉았다.
“오, 자네 왔는가. 이리와 앉지.”
이세종 대통령은 우주가 소파에 앉자마자 먼저 차부터 권했다.
김이 모락모락 피어오르는 찻잔을 들어 가볍게 한모금 입에 담았다.
우주가 조용히 찻잔을 내려놓으며 말했다.
“못난 소생을 돌봐 주셔서 감사드리옵나이다. 이제야 걱정을 떨치고 생업에 충실히 임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내가 한게 뭐 있겠나. 난 단지 국익을 위해 노력했을 뿐일세.”
이세종 대통령은 밝고 흐뭇한 표정을 지어보였다.
“그런데 그 아이는 어찌할 생각인가?”
그 아이란 강미라가 임신한 아이다.
우주는 주저않고 대답했다.
“낳을 생각입니다.”
“설마 강제로 갖게된 아이를 책임질 생각인가?”
“몇날며칠을 밤새가며 고민해봤습니다만, 이게 최선이란 생각이 들었습니다. 뱃속의 아이는 죄가 없습니다.”
“뭐 자네 생각이 그렇다면 나도 더 이야기는 하지 않겠네. 그러나 한가지.”
이세종 대통령이 잠시 무언가 생각하는 눈치더니 이내 입술을 열었다.
“자네 여자문제가 너무 복잡하다고 생각하진 않나? 사실 여자문제는 개인의 사생활이고 내가 거기까지 신경쓴다는게 좀 오버하는 감이 있지만 다 자네를 위한 걸세. 동거하는 여성이 있는데다가 제네틱스의 한소라까지 사귀고 있더군. 거기에 강미라까지 합치면, 흐음.”
우주의 눈이 살짝궁 커졌다.
“소인이 동거한다는 사실과 소라 낭자를 만나고 있다는 걸 어찌 아셨습니까?”
이세종 대통령은 금세 옅은 웃음을 띄우고 한 손을 작게 휘저으며 말했다.
“아아, 사찰은 한게 아니니 걱정 놓게나. 지난번 자네 집이 폭발했을때 우연찮게 알게 되었을 뿐이야. 그런데 생각해보게. 요즘시대에 여자관계가 복잡한 사람은 외면받기 쉽상이야. 그 점이 염려되어서 모른척 하려다가 어쩔 수 없이 꺼내봤다네. 이를 바로잡지 않으면 자네의 앞날에 분명 해가 될테니 말일세.”
그러자 우주는 꽤 진지한 표정으로 무겁게 입을 열었다.
“대통령 각하.”
“말해보게나.”
“전 멸문된 가문을 다시 재건하기 위해서 가능한 많은 여인들을 아내로 맞이하고 싶습니다. 이제는 없어진 강원도 무적 신씨 가문이 단기간에 부흥하려면 그 방법 밖에 없다는 생각이들고, 많은 아내와 아이를 감당할 수 있는 재산이 제게 있는한 이 꿈을 단념하고 싶지는 않습니다.”
거침없이 말하는 모습에서 당당한 패기가 넘쳤다.
그래서인지 이세종 대통령은 황당한 나머지 말을 못하고 약간 기가 찬 표정으로 우주를 바라봤다. 여기가 일부다처제를 유지하는 중동의 어느국가도 아니고 일부일처제를 법으로 규정하고 있는 대한민국이니까 말이다.
“자네도 알고 있을테지만 우리 사회의 혼인이라 함은 일부일처제를 전제로 한다네. 일부다처제는 법으로 허용이 안돼.”
“그건 염려마십시오. 조만간 법이 바뀌거나 사람들의 인식이 변화하게 될것입니다.”
“변한다고?”
이세종 대통령이 의아한 얼굴을 했다.
“어째서 그리 자신하지? 혹시 법이 바뀌길 기다리자는 것인가? 그렇다면 일부다처제에 관한 법안을 발의할 국회의원은 전무하네. 여성들이 일부다처제를 원할리도 없거니와 선거에서 여성표가 제일 중요한데 자네의 생각을 동조해줄 국회의원은 절대 없지.”
우주는 살짝 고개를 저었다.
“가능성이 없는 것도 아닙니다. 수개월이내에 후쿠시마 원자력 발전소가 붕괴되면 그때부터 전세계에 사탄이 출몰하게 될것입니다. 그리되면 각 국가는 어쩔 수 없이 군사력을 증강해야하고 군인의 숫자도 늘릴테지요.”
“또 그 이야기인가. 나도 자네가 주장하는 것을 방송에서 몇 번 본적이 있네만, 그 말이 진정 사실이라해도 별로 믿고 싶은 마음은 없네. 방사능이 전세계 바다로 퍼진다니, 완전 지구 종말 수준이 아닌가. 정말 끔찍한 상상이라네.”
“상상이 아닙니다. 곧 다가올 현실입니다.”
우주가 워낙 진지한 눈빛이라 이세종 대통령이 받아주지 않을 수 없다.
“허허, 이 친구 참.”
대충 고개를 끄덕이고는 우주의 말에 귀를 기울였다.
“계속 이야기를 해보게나. 일부다처제가 어떻게 이루어질 수 있다는 거지? 후쿠시마 원자력 발전소의 폭발과 어떤 연관이 있다는겐가.”
“간단합니다. 군인 태반이 남성인 이상 사탄과의 전투로 인해 남성인구가 차츰 줄어들것이라 사료됩니다. 그렇게 되면 여성인구가 느는 것은 당연하겠지요. 아울러 그것이 심해질수록 한 남성당 두 명 또는 세 명의 여성을 부양하는 문화가 민간에서 먼저 암암리에 발생하리라 믿어 의심치 않습니다.”
“호오... 듣고 보니 그렇기도 하겠군. 그리고?”
“소인이 이렇게 확신하는 이유는 과거 조선 시대를 보면 압니다. 임진왜란, 병자호란 등 잦은 전쟁으로 인해 우리나라의 남성 인구가 크게 줄어들은 적이 있었습니다.
그로인해 본부인이 있음에도 애딸린 과부를 첩으로 삼고 사는 천민도 더러 있었지요. 게다가 제 식구 먹여살릴 능력만 있으면 가능하니 양반들은 말할것도 없었습니다. 본처를 두고 저마다 여러명의 첩을 두었던 사례가 전국방방곡곡 수없이 많았습니다.
”
우주는 차를 한모금 마신뒤 말을 이었다.
“또한 소인이 찾아본 최근 사례에 의하면, 러시아는 제2차 세계 대전 중 2700만명에 달하는 국민이 목숨을 잃었던 적이 있습니다. 그 중 남성 사망자 수가 대부분을 차지하였기 때문에 당시 러시아 여인들은 남성 인구가 너무 적어 배우자를 찾아 결혼을 하기가 어려웠다고 합니다. 그리고 그 시절 생긴 여초현상이 오늘날까지 이어져 현재 러시아에는 미혼여성만 1천만명에 이른다고 하지요. 그로인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