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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지스트 쉴드-148화 (148/285)

148화

그녀가 몸을 움츠리며 급히 뒤로 물러났다.

“성희야, 괜찮나?”

“괘, 괜찮아.”

창석이 실실 웃으며 한 걸음 다가왔다.

“벌써 한 달이 지났잖아. 언제까지 질질 끌 생각인데? 난 한 번 찍은 여자는 안 놓쳐. 여자들 그렇잖아, 나쁜 남자 좋아한다며? 너도 그런 데 흥미 없어? 나 진짜 나쁘게 잘할 수 있는데.”

“내, 남자 친구 있거든?”

“누구야, 그 새끼. 말해 봐. 우리 학원 다니냐?”

창석이 같잖다는 표정을 지었다.

아라는 눈에 힘을 주며 또박또박 말했다.

“너보다 나이도 더 많고 돈도 더 많데이. 니, 내 건들면 그 사람이 가만 놔두지 않을끼다. 각오해라. 진짜다.”

그러자 창석과 그 무리들이 일제히 배꼽을 잡고 비웃었다.

“이년 원조 교제 하고 있었나 보네. 하하하!”

“원래 얌전해 보이는 것들이 더 그렇다더라, 야.”

“거기가 아주 헐었겠네.”

그때였다.

진한 국물이 묻은 떡볶이가 창석과 그 친구들 가슴에 하나씩 안착했다.

툭, 툭, 툭.

“이거 뭐야!”

창석의 왼쪽에 있던 친구가 가슴에 묻은 떡볶이를 손으로 집으며 주변을 둘러보았다.

“이봐, 아저씨! 당신 미쳤어?”

우주는 모자를 다시금 푹 눌러쓰며 그 친구의 머리로 포크를 집어 던졌다.

딱!

“아얏!”

포크 끝에 달린 삼지창이 제대로 두피에 명중했다.

“너 뭐야, 씨발!”

창석이 험상궂은 표정을 지으며 우주를 향해 윽박질렀다.

“너, 제정신 아니지? 이 씨발놈아? 얌전히 떡볶이나 처먹을 것이지 뵈는 게 없어? 요즘 남 일에 괜히 참견하다 뒈지는 거 모르냐? 어?”

창석은 곧바로 뒷주머니에서 잭나이프를 꺼내 들었다.

휙, 휙.

날카로운 칼끝을 들이대며 우주를 위협했다.

아라와 그녀의 단짝인 성희가 상당히 걱정스러운 눈길로 우주를 쳐다봤다.

아라가 말했다.

“아저씨, 괜찮아요. 여긴 저희가 알아서 할 테니까… 어머!”

우주는 그녀의 말에 아랑곳하지 않고, 거침없이 창석의 복부를 가뿐하게 발로 퍽 찬 뒤 도망치기 시작했다.

“저 새끼 튄다!”

“잡아!”

“너 죽었어!”

열 받은 창석은 냅다 친구들과 함께 그를 뒤쫓았다.

마치 오늘 밤 살인이라도 날 것만 같은 분위기.

“어, 어떡해?”

성희가 울 것처럼 아라를 쳐다봤다.

아라가 주머니에서 휴대폰을 꺼내며 대답했다.

“빨리 경찰에 신고하자.”

손이 떨리고 가슴도 떨렸다. 이어서 그녀는 정체불명의 남자가 머물던 자리를 바라봤다. 테이블 위에는 만 원짜리 지폐 한 장이 올려져 있었다.

밖으로 나와 그것을 집은 주인아주머니가 우주가 사라진 방향을 바라보며 안타까운 얼굴로 말했다.

“언제 이런 걸 놓고 간겨. 참 예의 바른 청년이네. 에휴, 아무 일도 없으면 좋으련만.”

날씨가 꽤 춥다.

뺨을 스치는 밤공기가 칼날 같았다. 어둠이 짙은 하늘. 수많은 불빛들로 환한 도심의 거리. 길을 오가던 사람들은 이상한 눈빛으로 우주를 쳐다봤다. 걷지 않고 쫓기듯 뛰고 있으니 당연했다.

그런 그를 때려죽이겠다고. 창석과 그 패거리는 악을 쓰며 뒤쫓아 오고 있었다.

“이 근처가 좋겠군.”

우주는 가로등 하나 없는 까마득한 골목으로 뛰어 들어갔다. 추운데 더운 기분이 들어 목도리와 패딩을 길바닥에 벗어 던졌다.

얼마 안 있어 창석과 그 친구들이 골목길에 들어섰다.

그들을 기다리고 있던 우주는 웃음을 짓고 전투 준비 완료.

잭나이프를 든 창석이 제일 먼저 덤벼들며 소리쳤다.

“이 씨발 새끼!”

“어쩌라구, 씨발 새끼.”

우주는 느긋하게 말을 되받아치며 창석의 턱을 힘껏 후려쳤다. 봐주는 것은 없었다. 사정없이 팼다.

그 친구들도 매몰차게 얻어터졌다.

“으…….”

“아…….”

“자, 잘못했어요…….”

창석과 친구들은 바닥을 뒹굴며 신음했다. 우주에게 제발 봐달라고 바지를 붙잡고 빌었다. 하지만 우주의 표정은 차가웠다.

바닥을 기는 그들을 내려다보며 말했다.

“학원에 다니면 공부에나 전념할 것이지 볼썽사납게 뭐 하는 짓들인가. 그리고 너.”

“웁!”

창석의 복부를 걷어찼다. 그리 세게 차진 않았다. 적당히 알아들을 정도로만 찼다.

“친구 집에 불을 지른다고? 네놈이 인간인 게냐?”

“그, 그건… 웁!”

한 대 더 걷어찼다. 아무리 생각해도 괘씸하기 그지없다.

“너 같은 인간은 좀 맞아야겠다. 어차피 훈계고 뭐고, 오늘내일 고쳐질 성격이 아니란 걸 잘 안다. 교도소 가봐야 똑같다. 너희 같은 놈들은 똑같은 수준으로 놀아줘야 좀 통할 게다.”

창석의 머리끄덩이를 붙잡고 거침없이 손을 날려 따귀를 갈겼다. 수차례 때리다 보니 터진 코피로 옷을 적실정도였다.

“불 지를 거냐? 말해 보거라. 불지를 거냐고 묻고 있다.”

“아, 안 지, 안 지릅니, 다. 사, 살려주세요.”

입술까지 터져버린 창석이 반쯤 풀린 눈으로 겨우겨우 말했다.

그 순간이었다. 창석의 패거리 중에 누가 연락한 것인지 창석이 형의 조직원 수십명이 야구 방망이와 횟칼을 들고 골목길을 엄습했다.

“누가 내 동생 건들라고 했어!”

창석이 형이 횟칼을 들고 달려들었다.

우주가 픽 웃었다.

“이참에 아예 뿌리뽑아 주겠다.”

오래걸리지도 않았다. 비좁은 골목길이 꽉 찰정도로 쓰러진 사내들이 많았다.

우주는 그들의 머리를 하나씩 걷어차며 무섭게 말했다.

“너희는 평생 쓰레기다. 한번 쓰레기는 개과천선하지 않아. 100년전도 그랬다. 주먹질 하던 놈들은 나라를 지키기는 커녕 왜놈들에게 빌붙어 백성들 피나 빨아먹고 이득챙기기에 급급하기만했다. 너희가 진정 나라를 지킬 생각이었으면, 한 도시에 머물며 건달짓 안하고 독립군에라도 가입했겠지.”

퍽, 퍽!

그때를 떠올리니 우주는 흥분을 주체 못했다.

“내가 이렇게 패도 니들이 똑같은짓 안할까? 한번 건달은 영원한 쓰레기다. 바르게 살면 10억이라도 갖다주마. 하지만 평생 배운게 건달짓이니 그렇게 못하겠지? 그러니 그냥 처맞거라.

사람은 저마다 제 인생그릇을 타고난다. 작은 그릇을 버리고 큰 그릇으로 다시 굽기엔 네놈들 천성부터가 글러먹었다.

어디 할짓이 없어 백성들의 피를 빨아 먹는 건달짓이나 하고 있는게냐 그게 그리 멋있어 보이든?”

도중에 기절한 이도 있었다. 하지만 그럼에도 우주는 멈추지 않았다. 그가 뱉는 말들은 얼음보다 차가웠다.

우주가 호랑이처럼 무섭게 동네 건달들을 혼내주고 있을 무렵, 신라그룹의 이선주 회장은 신라그룹 로봇연구소에 있었다.

그녀는 그곳에서 기존의 샥스핀보다 한단계 더 업그레이드된 '샥스핀 X2'를 보고 흐뭇해 하는 중이었다. 맹수의 기술을 훔쳐 만들어낸 것이 드디어 결실을 이루었다.

그 옆에 서 있던 남궁철민 박사가 말했다.

“아실거라 생각합니다만, 맹수의 기술을 100% 모방할 수 없었습니다. 촬영된 사진 만으로 첨단 기술을 갖기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더군요. 한 40% 정도 흉내낸 반푼이에 불과합니다."

“샥스핀 엑스 투의 출력은 최대 몇 %까지 가능하죠?”

“1500%입니다.”

“맹수는?”

“평상시 맹수의 최대출력은 1700~2000% 사이라 추정하고 있습니다. 그에 비춰볼때 오버했을시에는 3000% 이상의 힘을 발휘해내겠지요.”

“샥스핀의 오버 출력율은?”

“오버하면 2300%입니다.”

“1500에 2300이라... 아직도 성능면에서 큰 차이가 있네요.”

“애당초 장갑의 재질부터 다릅니다. 맹수는 사탄의 가죽을 섞어 만들었는데 반해 샥스핀은 타이탄 고릴라가 한계죠. 우리 회사는 아직 사탄을 잡지 못했으니 말입니다.”

이선주가 천천히 고개를 끄덕이더니 이내 뒤돌아섰다.

“한탄은 나중에 듣도록 하죠. 우리도 곧 사탄을 잡게 될 것입니다. 그동안 박사님은 샥스핀의 성능을 조금이라도 더 높일 수 있도록 분발하여주십시오.”

“그럼 회장님 부탁이 하나 있습니다.”

남궁철민의 말에 이선주가 뒤돌아본다.

“어떤 부탁이죠?”

“샥스핀의 성능을 더욱 높일 수 있는 방법이 하나 있긴 합니다.”

“말해보세요.”

“일전에 주운 소형 사탄의 사체를 사용할 수 있도록 허락해주십시오.”

“소형 사탄의 사체?”

이선주는 우주가 고릴라 팀에 소속해있을 당시 잡았던 소형사탄의 사체를 떠올렸다.

“그건 형태를 알아볼 수 없을 정도로 갈기갈기 찢겨있지 않았었나요?”

“그래도 쓸만한 부분이 좀 있습니다.”

“좋습니다. 쓸수 있으면 써보도록 하세요.”

“감사합니다. 그리고 부탁이 하나 더 있습니다만.”

이선주는 잠시 그를 빤히 바라봤다.

“부탁이 많군요.”

“죄송합니다. 그런데 저... 제네틱스가 보유한 수라 중에 맹수 정비 교육을 받은 수라를 우리 회사로 영입해주시면 좋을 것 같습니다. 한 사람이라도 좋습니다.”

“흐음...”

이선주는 벽쪽으로 시선을 돌리며 무언가를 생각하는듯 했다.

맹수의 기술력은 제네틱스의 극비다. 그런 만큼 정비사들 역시 최고의 대우를 받는다. 아울러 철저히 보안 교육을 받고, 계약서 상으로도 회사의 노예처럼 묶어두었을 것이 뻔하기에 그들을 빼내오기란 여간 쉽지가 않았다.

“가능하다면야 좋겠지만.”

“사진 촬영만으로는 부족한게 사실입니다. 육안으로 파악하기 힘든 맹수의 구조를 명확하게 알아내려면, 직접 뜯어본 경험이 있는 자가 우리에게 필요합니다.”

“음...”

이선주가 눈을 마주치며 말했다.

“검토해보겠습니다.”

“감사합니다.”

긴 머리를 하나로 묶고 안경을 낀 남궁철민 박사가 꾸벅 고개를 숙였다.

이후 복도로 나온 이선주는 문득 뒤돌아보았다.

뒤따라오던 수행원 중 한 사람에게 말을 건넸다. 깔끔한 양복을 차려 입은 중년의 남성이었다.

“김전무. 김전무가 아마, 전에 제네틱스에서 일했던가요?”

“예, 그렇습니다 회장님.”

“잘됐네요. 그쪽 인맥을 총동원해서 제네틱스 악어팀에서 정비조를 맡고 있는 수라들의 명단을 구해다 주십시오. 가능하겠죠?”

“맡겨만 주십시오. 절대 실망시켜드리지 않겠습니다.”

“김전무의 실력을 한 번 믿어 보겠습니다. 그럼 바쁠텐데 먼저 가보도록 하세요.”

“예, 회장님. 앞서 뛰어가더라도 무례를 용서하여주십시오.”

“좋습니다.”

이선주가 웃으며 고개를 끄덕거렸다.

그러자 김전무가 헐레벌떡 분주하게 복도를 뛰어나갔다.

잠시 그 뒷모습을 바라보던 이선주가 곧 발걸음을 옮기려했다. 그러나 뒤에 서 있던 남자 비서 하나가 휴대폰을 들고 조심스레 옆으로 다가왔다.

그가 송화기 부분을 손으로 막고 낮게 말했다.

“회장님. 김수희입니다. 어떡할까요?”

이선주가 잠시 무언가를 생각하듯 눈동자를 굴리다 이내 말했다.

“바꿔주세요.”

“여깄습니다.”

비서가 두 손으로 공손히 건네준 휴대폰을 귀에 가져갔다.

그러면서 발걸음을 옮겼다. 뒤에 있던 수행원들이 우르르 뒤따르기 시작했다.

“이선주입니다.”

-회장님, 김수희입니다.

“네 알고 있습니다. 현아 씨와 함께 병원에서 퇴원했다고 들었습니다. 이제 몸은 괜찮나요?”

-예, 괜찮습니다.

수화기 너머의 음성은 차가운감이있었다.

마찬가지로 이선주 또한 건조하고 메마른 목소리가 절로 나왔다.

“그래서 전화는 왜 하신거죠?”

잠시 정적이 이어진 후, 김수희에게서 나직하게 말했다.

-신라그룹을 고소하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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