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1화
우주가 미소를 띠며 고개를 끄덕거렸다.
“으음…….”
미소 짓는 그를 아라가 물끄러미 올려다보았다.
우주는 갑자기 뜨악해져서 정색을 하고 반대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근데 오빠야가 말이 없으니 지가 좀 심심하기도 하네예.”
조금은 시무룩해진 목소리였다.
우주는 눈동자를 좌우로 굴리다 뭐라도 말해야겠다는 충동이 가슴속에서 솟구쳤다.
그는 나직하게 대꾸했다.
“라면, 불겠소. 먹읍시다.”
“어?”
아라의 큰 눈이 순간적으로 더 커졌다.
“드디어 말했데이!”
그녀는 그의 목소리를 듣더니 갑작스레 생기가 돌며 입을 딱 벌린 채 놀라움을 표시했다.
원래 어린 여학생들이 탄성을 내지르거나 잘 웃는 등 습관적으로 호응을 잘해주긴 한다.
“또 말해 봐여, 아무거나!”
하지만 우주는 더 말하지 않았다. 여전히 등을 돌린 채 배시시 웃기만 했다.
그 후 라면을 다 먹고 편의점 밖으로 나왔다.
아라는 학원에 가야 한다면서, 떠나기 전 우주에게 물었다.
“이 근처에 살아예?”
끄덕끄덕.
“그럼 또 볼 수 있을지도 모르겠네예.”
끄덕끄덕.
우주가 고개만 연신 끄덕거릴 뿐 이렇다 할 반응이 없자, 그녀가 입술 빼죽 내밀었다.
“다음에 볼 때는 말을 더 많이 해줬음 마 좋겠구마. 아무튼 지는 가볼게예.”
끄덕끄덕.
아라가 밝게 웃어 보이며 손을 흔들었다.
“오빠요, 나중에 또 봅시더~!”
우주도 미소를 짓고 손을 흔들어 주었다. 그리고 그녀가 도로를 건너 저 멀리 사라질 때까지 제자리에 서서 그 뒷모습을 멍하니 지켜보았다.
그는 잠자코 그대로 서있었다.
평일 오전 10시라 그런지 주변 풍경은 평화롭고 한적하기만 했다. 길을 오가는 사람들도 뜸했다.
우주는 막연히 서서 다음에 갈 장소로 강미라가 있는 정신병원으로 가볼까 하던 참이었다.
그런데 갑자기 헬리콥터 소리가 머리 위에서 들려왔다.
두두두두두두두두!
갑자기 두두두 하면서 엄청나게 큰 소리가 머리 위에서 들려왔다. 가뜩이나 추운데 주변 가로수가 흔들거릴 정도로 매서운 바람이 불어닥쳤다.
하늘을 봤더니 일반 헬리콥터가 떠있었다. 옆면에 Xenetix라고 써진 글자가 한눈에 들어왔다.
그는 뜬금없이 나타난 헬리콥터를 뚫어져라 쳐다봤다.
그 사이 헬리콥터는 점점 고도를 낮추면서 편의점 앞 4차선 도로 위로 착륙하려는것 같았다.
“응?”
주택가에 헬리콥터를 착륙시키다니, 위험한 발상이다. 무리하는게 아닌가 싶어 우주가 급히 좌우를 둘러봤으나 다행히도 오가는 행인이나 차량은 보이질 않았다.
이윽고 헬리콥터는 지상에서 2m 정도의 고도를 유지했는데, 갑작스러운 차량과의 충돌을 피하기 위해서 나름 조심스럽게 지상과 거리를 둔 모양이었다.
보나마나 자신을 찾아온 것이라 생각한 우주는 신속하게 헬기가 떠 있는 도로 중앙으로 걸어나갔다.
동시에 그를 반기는듯 헬리콥터의 옆문이 열렸다. 안쪽에서 갈색 정장차림의 소라가 나타나며 빈정거리는 투로 소리쳤다.
“취미도 유별나네. 할짓 없어서 서민 코스프레나 하고 다니는거에요?”
헬리콥터의 프로펠러가 만들어내는 바람이 세서 그녀의 머리카락이 사방으로 휘날렸다.
우주의 옷도 기운차게 펄럭였다. 그가 반쯤 찡그린 눈으로 그녀를 올려다보며 말했다.
“헬기가 도로 위에 낮게 떠있는건 위법일텐데 괜찮겠소? 벌금 물텐데?”
“까짓거 내고 말지. 바빠죽겠는데 가릴새가 어딨어요? 어서 타요!”
우주가 폴짝 뛰어올라서 스키드에 매달렸다. 팔의 힘만으로 기어올라가서 기내로 들어갔다. 바깥과 달리 실내가 따뜻했다.
“차. 패션 진짜. 기가 막힌다. 내가 다 부끄럽네.”
소라는 우주가 입은 옷을 보고 혀를 내둘렀다.
곧 헬기의 문이 닫히고 소음도 반으로 줄어들었다. 이어서 조종사 옆좌석에 타고 있던 유창성이 뒤를 돌아보며 환한 표정으로 악수를 건넸다.
“하이(Hi) 우주 씨.”
“반갑소.”
“밥 먹었어요?”
“조금 전에 먹었소.”
“앞으로 밥 먹을 시간 없을텐데 잘 됐네요.”
“간만에 일인가...”
하는 생각에 몸이 벌써부터 근질거렸다. 의지와 상관없이 두 달 가까이 쉰 그로서는 지금 당장 날뛰고 싶어 미치겠다.
우주는 창성과 악수를 나눈뒤 다시금 제자리에 앉았다.
소라를 마주보았다.
“여깄는지는 어찌 알았소?”
“료코가 말해줬죠.”
애정이라곤 찾아 볼 수 없는 말투로 대답했다. 아울러 고양이가 털을 곤두 세우듯 눈빛도 날카로웠다. 저건 분명 그녀가 어딘가 꿍해 있어서 그렇다고 우주는 단정지었다.
쓰고 있던 모자와 안경, 목도리를 벗어서 옆자리에 놓고 잠바의 지퍼도 내렸다.
그러면서 그가 말했다.
“료코와 둘이 친하게 지내서 다행이오. 빠른 시일 내에 셋이서 같이 밥도 먹고 놀러도 다닙시다.”
“뭐래니. 빨리 벨트나 메요. 누가 한대?”
소라가 퉁명스럽게 말을 내뱉었다. 그녀는 팔짱을 낀 채 다리를 꼬고 앉아서는 우주가 안전벨트를 메는 모습을 불만 가득한 눈초리로 잠자코 바라보고 있다가 입을 열었다.
“전화도 안받고 대체 뭐한거에요? 누구 만났어요?”
“잠깐 바람쐬러 나왔었소.”
“혼자? 차도 없이? 산책도 아니고 이렇게 멀리?”
“뭐... 가끔은.”
우주가 머리를 긁적이며 대수롭지 않게 대꾸했다. 그에 소라가 발끈하며.
“아니 아무리 그래도.”
그녀는 무슨 말인가 하려다, 갑자기 조종석 쪽을 힐끗 보더니 이내 고개를 돌리고 입을 다물었다.
답답한 한숨만을 길게 푹 내쉬었다. 밑에 것들이 보는데서 애정 싸움하긴 창피한듯 싶다.
우주가 검은색 스타킹을 신은 그녀의 무릎을 손으로 툭 건드렸다.
뚱한 표정의 그녀가 반응하며 흘끔 쳐다본다.
우주가 입만 벙긋거리며 열심히 말했다.
“이. 따. 밤. 에. 만. 나. 서. 이. 야. 기. 합. 시. 다.”
“흥.”
그녀는 곧바로 코방귀를 꼈다.
우주는 포기 하지 않았다. 손바닥으로 그녀의 무릎을 감싸고 몇차례 어루만지는가 싶더니 손이 점점 허벅지 안쪽으로 스윽 올라갔다.
“뭐, 뭐하는거에요...?”
예상치도 못한 일에 깜짝 놀라면서, 그녀가 돌처럼 움직이지 못하며 모기보다 작은 소리를 냈다.
“가만 있어 보시오.”
우주는 멈추지 않았다. 정장 치마 속으로 손을 넣고, 스타킹에 감싸진 매끄러운 허벅지를 어루만지며 그녀를 희롱해갔다.
“그, 그만하라구요.”
소라는 안절부절못하며 당황한 기색이 역력했다. 허벅지 안쪽이 미세하게 떨리고 있었다. 그러나 그녀의 가랑이 사이는 체온으로 인해 참 따뜻하고 포근했다. 나가기 싫었다.
우주가 검지 손가락을 입술에 가져다 댔다.
“쉿.”
우주의 입가에 웃음이 감돌았다. 긴장과 짜릿한 희열이 공존하니 즐거웠다.
소라는 얼굴을 부끄러움으로 붉게 물들이며, 그의 기대에 어긋나지 않는 반응을 보여주었다.
그리고 그때였다. 누군가와 무전 중이던 창성이 아래 도심지를 내려다보며 말했다.
“본부장님. 수라 전원이 작전지역에 도착했다고 합니다.”
소라가 새빨개진 얼굴로 허둥대더니, 헛기침을 해서 목소리를 가다듬고는 애써 침착한 목소리로 대답했다.
“그, 그래요. 작전지휘소의 통제를 받고 임무를 수행하라고 전해주세요.”
“알겠습니다.”
말을 마친 소라는 갑자기 입을 막고 숨을 헉 들이마셨다.
허벅지를 만지던 우주의 손이 더 깊숙이 들어가면서, 부드러운 곡선이 그려진 그녀의 둔덕을 살포시 눌렀기 때문이다. 그녀는 의자에 바싹 등을 붙이며 도망갔지만 우주는 그만두지 않았다. 둔덕을 지나 더 밑으로 내려가더니 스타킹과 팬티에 덮여있는 꽃잎을 슬슬 문지르기 시작했다.
“하윽!”
소라가 조금 큰 소리로 신음을 터뜨리고는 엉덩이를 비틀면서 다리를 꼬았다. 꽃잎을 자극하는 것만큼은 참기 힘든 것 같았다. 적당히 하라는 듯이 우주의 어깨를 손으로 툭 쳤다.
“알았소. 그만하지.”
하지만 우주는 말뿐이었다. 이번에는 더 적극적으로 그녀의 꽃잎을 세게 짓누르더니 손끝에 힘을 주며 빙글빙글 돌렸다.
“안, 안돼...!”
소라는 순간 다 포기하고 주저 않고 싶은 충동이 일어났다. 주저 앉아서 흥분을 만끽하고 싶었다.
그리고 어느 틈엔가 우주가 바짝 옆으로 다가와 앉아 있었다. 다른 손으로는 젖가슴까지 움켜쥐고 부드럽게 주물렀다. 그가 그녀의 귓가에 입술을 대며 속삭이듯 말했다.
“계속 화낼테요?”
소라는 소리나지 않게 간신히 신음을 참으면서 머리를 흔들었다.
우주가 다시 물었다.
“정말?”
소라가 재빨리 고개를 끄덕였다.
우주가 흡족하게 웃어보였다.
“좋소.”
그리고 덧붙였다.
“하지만 주사를 좀 놔야겠소. 화를 못내는 예방주사를.”
우주가 치마에서 손을 빼자마자 그녀의 목을 끌어안고 키스를 퍼부었다.
소라가 어떤 표정을 짓고 있는지는 알 수 없었다. 그러나 뜨겁게 달아오른 그녀의 숨결이 모든 것을 말해주고 있었다.
키스는 짧았지만 강렬했다. 말 안듣는 고양이를 순종적으로 만들기에는 충분한 시간이었다.
“그래서 어쩐 일이오? 헬기까지 동원하고 날 찾아오고.”
키스를 하고 난뒤 우주는 마치 아무일도 없었던 것 마냥 제자리로 돌아가서 소라를 마주보고 앉아 있었다.
참으로 능청스러웠다.
그러나 소라는 아직 흥분이 가시지 않은듯 말을 더듬으며 힘겹게 대답했다.
“오, 오전 9시에 충청남도 태안군에서 드롭존이 발생했습니다.”
“뭣이, 드롭존이?”
지금까지 즐거웠던 기분이 싹 가실 정도로 우주가 갑자기 정색을 했다.
그에 호응하듯이 마주보고 있던 소라가 여태 달아오른 흥분을 억지로 삼키고, 진지한 눈빛으로 그를 바라봤다.
“예. 드롭존입니다.”
드롭존이라면 우주는 할말이 참 많다. 지난 8월 발생한 드롭존에서 갑작스러운 테러로 인해서 아쉽게 1등을 놓친 뼈아픈 기억이 있기 때문이다.
우주가 우연진과의 순위 다툼을 벌였던 지난 기억을 머릿속에 떠올리고 있을때, 소라가 눈에 힘을 주며 말했다.
“테러에 대해서는 염려놓으세요. 그래서 제가 따라가는 겁니다. 우주 씨가 오직 사냥에만 전념할 수 있도록 따로 테러대책반을 만들었으니 기대해주세요. 이번만큼은 절대 실망시켜드리지 않을테니까요.”
잠깐의 애무와 질척한 키스 한 방으로 소라는 온순한 양이 되었다.
우주에게 사근사근 말하며 그의 두 손을 꼭 잡아주었다.
이어서 그녀는 기내 한쪽 구석을 손으로 가리켰다.
“이번에 전지연 박사가 새로 개발한 '맹수 V2 SE(맹수 Version2 Second Edition)' 입니다. 혁신적인 인공지능이 탑재되어 있으니 우주 씨의 임무 수행에 큰 도움을 줄거에요.”
우주가 시선을 돌렸다. 거치대에 걸려있는 파워드 슈트를 바라봤다. 기존의 맹수보다 크기가 더 줄어들고 날렵해진 기분이 들었다.
“전보다 출력도 강하오?”
“전지연 박사가 말하길, 출력율은 기존 2000%에서 1800%로 떨어졌다고 합니다. 대신 무게가 더 가벼워지고 기동성이 증가되었다고 하더군요.”
우주는 곧바로 맹수를 착용했다. 확실히 전보다 가벼운 맹수였다. 그리고 놀라웠던 점은, 동력이 공급되며 녀석이 말을 했다. 그것도 여성의 목소리로.
<맹수 착용자 확보. 지금부터 신원 확인에 들어갑니다.>
뚜르르, 뚜르르.
기계 돌아가는 소리가 났다. 무언가를 빠르게 분석하고, 결과를 도출하는듯 했다.
우주는 얼떨떨한 기분이 들었다. 기계가 말을 하니 그저 신기했다.
얼마지나지 않아 맹수는 또다시 말을 했다.
<이름 신우주, 나이 20세, 키 000cm, 체중 72kg, 체지방률 3%, 미발기시 고추길이 7cm...>
맹수는 빠른 시간에 신우주의 신체적 특징을 전부 산출해냈다. 그런 뒤 활짝 웃는 것처럼 밝은 목소리로 말하였다.
<신우주 팀장님 안녕하십니까? 저는 줄리엣이라고 합니다.>
"그래 줄리엣. 난 신우주다."
<만나뵙게되어 영광입니다. 명령을.>
"명령?"
우주는 잠시 생각하다 금세 말했다.
"일단 대기"
<대기하겠습니다.>
소라를 쳐다봤다. 그녀는 애정이 듬뿍 담긴 눈으로 그를 향해 미소짓고 있었다.
그녀가 달콤한 푸딩처럼 부드럽게 말했다.
“어때요? 이번엔 1등 할 수 있겠어요?”
우주는 고개를 끄덕였다.
“걱정마시오.”
엄지를 치켜올렸다.
그로부터 30분이 지나 태안 상공에 도착했다.
지상에서 2km 떨어진 상공. 드롭존이 발생한지 2시간이 지났고, 그가 제일 늦었다.
대한민국 내 모든 기업의 수라가 태안군에 투입되어 열심히 사냥중인 가운데, 우주는 낙하산을 메고 헬리콥터에서 거침없이 뛰어내렸다.
그리고 헬리캠으로 그를 포착한 한 방송국의 아나운서가 들뜬 목소리로 크게 외쳤다.
“오오, 여러분 속보입니다! 신우주! 그가 드디어 드롭존에 참전했습니다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