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레지스트 쉴드-155화 (155/285)

155화

이어서 말했다.

“하지만 왠만하면 다른 기업과는 마찰을 일으키고 싶지는 않소. 더는 말썽 일으키지 말고 돌아가시오.”

“그래?”

앞으로 나와있던 사내가 코웃음을 치며 얼굴을 험상궂게 일그러뜨렸다.

“지금 혹시 내뺄 생각에 일부러 성인군자처럼 구는 거야?”

뒤쪽에서 누군가 비아냥거렸다.

“저 새끼 지금 센척하고 있지만 속으로는 분명 쫄렸을거야.”

한 명이 그러자 다른 이들도 한 마디씩 보태기 시작했다.

“말로 어떻게든 빠져나가보려고 꼼수 부리는거지. 낄낄.”

“명색이 대스타란 사람이 저래서야 되겠나. 아주 꼴사나워.”

“잘나가는 연예인 중에도 그런 놈들 꽤 있지않나? 잘난 허우대로 폼만 실컷 잡고 실상은 좆도밥도 안되는 놈들.”

잠자코 듣고만 있던 우주가 입을 열었다.

눈앞에 있던 사내에게 물었다.

“왜 소생을 공격하려는 거요?”

“그거야 뻔하지 않겠어? 니놈이 자꾸 치고 올라오니까 방해하려는거지.”

“순위 다툼 때문이오?”

“맞다.”

우주는 누런이를 빛내며 히죽웃는 사내를 보고는 한숨을 내쉬었다. 시대가 변해도 남 잘되는 꼴을 못보는 속좁은 인간들이 있구나 하는 깊은 한숨.

“그렇다면 그냥 넘어가선 안되겠군.”

그는 고주파 블레이드를 거두었다.

그 모습을 본 코앞의 사내가 물었다.

“왜 도로 넣은거지? 정말로 쫄아서 그래? 불쌍한 표정짓고 가만 있으면 우리가 안때릴까봐?”

우주는 대답하지 않고 사내의 가슴쪽으로 손을 스윽, 한 손을 뻗었다. 그의 행동은 매우 빠르고 너무나 자연스러워서, 사내는 그가 자신의 멱살을 잡았다는 걸 깨닫는데 2초나 걸렸다.

그 뒤로 일어나는 일은 마치 폭풍이 몰아치는듯 했다.

우주는 그의 한 팔을 왼손으로 붙잡더니, 멱살을 쥔 오른손 팔등으로 그의 목을 짓누르며 회전하듯 뒤로 돌았고, 그 앞에 있던 건물 벽으로 사정없이 밀어부쳤다.

쿵!

건물 벽에 균열이가며 사내가 벽에 처박혔다.

거기서 끝났으면 감지덕지했다.

주먹으로 얼굴을 한대 후려치자 사내의 머리를 감싸고 있던 헬멧이 찌그러지며 표면이 함몰됐다. 그 엄청난 충격에 사내는 정신을 못차리겠는지 눈이 뒤집히며 목에 힘이 없었다.

한 대 더 칠까했지만 왠지 죽을 것 같다. 그가 입고 있는 파워드 슈트라도 부술 생각에 헬멧을 잡고 뜯어 버렸다.

바닥에 스프링이나 나사 같은 작은 부품들이 우수수 떨어졌다. 헬멧은 저편으로 휙 던져버렸다.

그와 동시였다.

그제야 정신을 차린 남은 아홉명이 10m 정도 떨어진 우주를 향해 총을 겨냥했다.

“저 새끼가! 야, 죽여!”

아홉명이 재빨리 좌우로 산개하며 우주에게 바로 총질을 해댔다. 귀청이 따가웠다. 콘크리트 벽에 수십발의 총알 구멍이 생기면서 사방에 먼지가 피어올랐다.

총알이 빗발치는 가운데, 우주는 스톰 쉴드 제네틱스에 몸을 감추고 빔 라이플로 응사를 했다. 상대가 총까지 쏘는 이상 이쪽 역시 사정을 봐줄 의리는 없다.

그런데 찰칵, 찰칵.

“......?”

이런.

우주는 총을 내려다 보며 혀를 찼다. 고주파 블레이드와 달리 빔 라이플은 전자기 충격파의 영향을 받아 제대로 작동이 되질 않았다. 그것은 어깨에 달린 다연장 로켓포라든지 다른 무기들도 마찬가지였다. 작동할 생각을 전혀 안했다. 그나마 맹수가 동작하는게 신기할 정도였다.

“1등의 길은 멀고도 험하군...”

우주는 중얼거리며 쓸모없게 된 총을 적들을 향해 집어 던졌다. 그러고 나서 방패를 앞으로 세우고 계속되는 적의 공격을 막아내며 자리를 이동했다. 굳세고 단단한 방패 앞에서 적들의 총알은 BB탄이나 다름없었다. 방패에 부딪힌 수십발의 총알이 팅팅 소리를 내며 맥없이 튕겨져 나갔다.

하염없이 총알만 낭비할 뿐 이렇다할 효과가 없자, 어떤 사내가 답답했는지 휴대용 대전차 유탄발사기를 어깨에 걸치고 욕설을 지껄였다.

“다리는 이제 필요없으니 뒈져버려라!”

그 즉시 쇄액하는 소리가 나면서 미사일이 순식간에 직선으로 날아갔다.

평평한 지면에 노출된 우주를 그대로 덮쳤다.

콰앙!

유탄이 폭발하면서 주변을 풍비박산 내버렸다. 인도의 보도블록이 숱하게 깨지고, 가로수는 유탄의 무수한 철 파편으로 벌집이 됐고, 우주의 뒤쪽 2층 건물은 한쪽 벽면이 크게 무너져 내렸다.

하지만 정작 유탄을 정면으로 맞은 우주는 끄덕 없었다. 몸에 상처 하나 없었고, 방패에 기스조차 안났다. 방패의 표면은 여전히 햇빛을 받아 광이나고 있었다.

투다다다다다다다!

엄청나게 총을 난사한 후 200발 들이 탄창이 순식간에 비워지자 한 사내가 불평을 터뜨려댔다.

“저 방패가 무슨 이지스라도 되냐 씨발!”

이지스란 그리스신화에서 나오는 방패 이름이다. 벼락에 맞아도 부서지지 않는 무적의 방패로 제우스가 그의 딸 아테나에게 선물한 방패.

EMP 탄이 터진지 이제 막 5분 지났다. 앞으로 남은 시간은 길어야 15분. 짧으면 10분. 그 후에는 제네틱스 수라들이 들이닥칠 것이다.

그들은 점점 조바심이들었다.

그때 다른 사내가 계속 총질을 하며 외쳤다.

“나 씨발 저거 뉴스에서 본적 있어! 스톰 쉴드 제네틱스라고 사탄용으로 만든 방패야!”

어떤 사내가 끼어들며 소리쳤다.

“제작할때 사탄의 피부 가죽도 들어갔다더만!”

“됐고! 총알이 아깝다! 날탄이나 쏴버려!”

한국명 날탄. APFSDS탄이라 불리며 최고의 대전차 포탄이다. 대부분의 대전차 포탄은 탄두의 접점이 목표에 닿는 순간 신관을 건드려 폭발을 일으키는데 반해, 이 날탄은 오로지 운동에너지를 이용해서 휘이잉 하고 날아가 전차의 장갑에 뽀옥 하고 쑤셔박히면서 전차에 구멍을 뚫어놓는다.

사실 날탄은 살상용도 보다는 탄두의 끝이 무척이나 날카로운 까닭에 관통력이 좋아서 전차를 기동불능 상태로 만드는 것이 주목적이다.

날탄은 오로지 관통력을 극대화한 탄이기에 일단 장갑을 관통한 다음, 이어서 RPG-7 같은 대전차 무기로 HEAT탄을 쏴 날리는 것이 보통의 전술이다. 참고로 HEAT탄은 목표에 닿는 순간 무수한 철 파편을 뿌리며 폭발하는 대전차 탄이다. 조금 전 발사했던 유탄이 바로 HEAT탄이다.

그러니까 즉, 오성그룹 수라들은 날탄으로 스톰 쉴드 제네틱스를 구멍낸 다음 곧바로 유탄을 발사해 우주에게 해를 입히겠다는 의도였다.

그러나 뜻대로 되지 않았다. 피유웅 날아간 날탄은 스톰 쉴드 제네틱스에 그 어떤 피해도 주지 못했다. 창은 날카롭지 못했고 방패는 너무도 단단했다. 이 시대 최고의 자재와 최첨단 기술력이 집약된 스톰 쉴드 제네틱스를 한낱 일개 기업에 불과한 오성그룹이 제 마음대로 하기란 그 경험과 기술력이 너무도 미천했다.

“어쩌지?”

우주는 꿋꿋하게 자신들의 공격을 방어하는 중이고, 오성그룹 수라들은 서로를 쳐다보며 소곤거렸다.

“이렇게 되면 백병전으로 갈 수 밖에 없다. 어차피 저 새끼 EMP 때문에 총도 못쏠테고 머릿수로 밀어부치면 제까짓게 배기겠냐?”

“암 그렇고 말고. 최첨단 무기로 무장된 그 잘난 미국도 6.25에선 중공군의 인해전술에 밀렸었지.”

“신우주가 아무리 싸움을 잘한다고 해도 9명을 상대로는 못 이길 거야.”

그 와중에 우주는 5층 빌딩으로 쏙 들어가버렸다.

그가 빌딩의 뒷문으로 빠져나갈 것이라 여긴 오성그룹 수라들은 3명을 빌딩 뒤편으로 보내고 남은 6명이 정문으로 진입을 시도했다.

전투용 단검을 손에 쥔 사내들은 조심스레 사방을 경계하며 건물 1층부터 수색하기 시작했다. 환한 대낮, 창문을 통해 햇볕이 사무실 구석구석까지 드나들었다.

하지만 난방이 되지 않는 건물은 추위로 가득 차있었다.

그때였다.

“크윽!”

여섯 명 중 제일 뒤에서 따라오던 사내가 괴로운듯 신음을 토해냈다. 순식간에 복도를 건너 어느새 나타난 신우주가 최소한의 행동만으로 그의 목을 조르며 졸도시켜 버렸다. 시간으로 치면 5초도 걸리지 않았다.

“저깄다!”

“뒤야 뒤!”

우주를 발견한 사내들이 부산스럽게 움직였다.

크기가 큰 파워드 슈트 전용 단검을 들고 그에게 휘둘렀다.

그러나 우주가 팽이처럼 회전하면서 화살보다 빠른 속도로 주먹을 내질렀다.

무엇보다 비좁은 사무실 안에서 여섯 명이 일제히 덤비기란 쉬운일이 아니었다. 차례차례 우주에게 무차별 폭행을 당했다.

그는 차가운 눈빛을 하고 마법사처럼 주문을 외우고 있었다. 머릿속에는 단어 하나 밖에 떠오르지 않았다.

“1등, 1등, 1등...”

이 정도면 거의 집착 수준이다. 드롭존 1등을 향한 그의 의지는 강렬했다. 눈 깜짝할 사이에 여섯명을 때려눕히고 그들이 착용한 파워드 슈트를 전부 때려부쉈다. 헬멧을 벗겨버리고 등과 가슴 부분의 장갑을 뜯어낸뒤 그 안의 장치들을 전부 박살을 냈다.

파워드 슈트의 동력이 끊기면, 착용자는 무게의 압박을 심하게 받는다. 고철덩이가 돼버린 날개는 그 무게만도 1톤에 달했다. 착용자 혼자서 파워드 슈트를 벗기란 여간 쉽지 않았다. 참고로 수라는 500KG의 무게를 견뎌낼 수 있다.

우주는 실내에 있던 오성그룹 수라를 정리하고 난뒤 건물 뒤편으로 향했다. 그곳에서 세 사람을 마저 쓰러뜨리고 허공을 향해 크게 소리를 내질렀다.

“1등은 내 것이다! 1등은 내 거라고! 아무도 안준다!”

경쟁 기업의 비겁한 수작질 때문에 괜스레 시간을 낭비한 것 같아서 상당히 분했고, 주변에 아무도 없을 거라는 생각에 거의 실성한 사람처럼 1등에 대한 갈망을 실컷 토해냈다.

“우아아아아아아아! 1등 내꺼어어어!”

후련했다. 그리고 통쾌했다.

“감히 날 막으려하다니! 웃기지 마라! ”

우주가 미친것 같지만 사람들은 보통 혼자 있을때 이런거 잘한다. 남들이 보면 정신 나갔다고 생각할 수 있지만, 그러는 남들도 혼자 있을때만큼은 주변 눈치 안보고 부끄러운짓을 곧잘 한다.

“1등 내꺼어어어어어!”

“저... 대장님?”

배고픈 돼지처럼 허공을 향해 울부짖던 우주는 순간 깜짝 놀랐다.

이 장소에 혼자 있다고 생각했는데 갑자기 귀에 익숙한 목소리가 들려왔기 때문이다. 한순간 온몸의 털이 곤두서며 얼굴이 새빨게 졌다. 오른쪽으로 시선을 돌리며 밑을 내려봤다.

“혜, 혜진 낭자...?”

뜬금없이 혜진이 서 있었다. 그것도 굉장히 놀란 표정을 짓고, 기도하는 자세 마냥 가슴 앞에 두 손을 깍지끼고 있었다.

“저기... 스트레스가 많이 쌓이셨으면 가끔은 이런것도 좋다고 생각해요. 헤헤...”

그녀는 말과는 달리 이런 우주의 모습이 상당히 낯설은듯 눈을 연신 깜빡거리며 말을 더듬었다.

“그, 그렇소. 스, 스트레스는 이런 식으로 풀어줘야 제맛이니...”

우주는 부끄러운 모습을 보인것 같아 무안해졌다. 쥐 구멍에라도 숨고 싶었다.

***

“사내 주제에 이게 다냐!”

우주가 있는 장소에서 15km 떨어진 지점에 현주가 있었다. 그녀는 사냥을 하던 와중에 갑자기 태클을 당했고, 제네틱스에서 보낸 수라들을 상대하는 중이었다.

“네놈도 사내라면 힘 좀 써보거라!”

남자처럼 씩씩한 음성으로 제네틱스 수라들을 하나씩 혼내주고 있었다.

“넌 내가 제네틱스에 있을때 커피도 뽑아줬는데 감히 누님한테 이러는 거냐!”

“위, 위에서 시키는데 어쩝니까! 게다가 이제 같은 기업도 아니고!”

그녀에게 호되게 당한 남성이 벌벌떨며 외쳤다.

현주가 큭큭 웃고는 쓰러진 그의 복부를 향해 주먹을 내다 꽂았다. 그는 일순간 눈이 커지더니 그대로 꼴까닥 기절해버렸다.

현주의 입가에는 옅은 미소가 떠올랐다.

“후후, 이런 의리 없는놈 같으니.”

거무스름한 연기가 솟아오르고 황폐해진 거리, 주변에는 제네틱스 수라들이 널브러져있었다.

현주는 몸을 일으켜 세우며 손을 털었다.

“지구상에서 날 정복할 남자는 진정 우주 밖에 없단 말인가. 이것 참 실망이 크군.”

그녀는 이미 한 차례 우주에게 정복 당했다.

그리고 그 이후로 강한 남성을 만날 수 없었다고 푸념했다. 그녀가 생각하는 강한 남성상이란 말그대로 강한 남자였다.

쓰러진 사내들을 둘러보며 싱겁다는 눈초리로 말했다.

“이러니 내가 우주를 찾지. 우후후.”

그러고는 다시 주변을 둘러보며 허공을 향해 소리쳤다.

“아직 몇놈이 지켜보고 있는 거 다 안다! 너희는 얌전히 보내줄테니 가서 신우주에게 이 말을 전하거라! 현재 1등인 날 이겨보라고! 이번 드롭존은 나 임현주 대 신우주의 대결이라고! 아하하하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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