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레지스트 쉴드-156화 (156/285)

156화

<8권>

현주가 한껏 들떠 있을때 개방된 통신 회선에서 점잖은 헛기침 소리가 들려왔다.

오성그룹 작전지휘소를 총괄하고 있는 특수작전실장 오범석이다. 그는 현주의 말을 듣고 있기가 민망했는지 일부러 기침을 했다.

그 다음 입을 열었다.

[크음. 사냥개 우리로 부터 사냥개 1에게.]

“사냥개1 수신양호다.”

[1분 전 만리포 해수욕장에 호랑이급 돌연변이 생물이 나타났다. 날개1로 자료를 송신해두었으니 확인하는 즉시 출동하길 바란다.]

“이런, 큭큭큭...”

현주가 하얀 이를 드러내며 소리죽여 웃었다. 호랑이급이라면 사냥으로 얻을 수 있는 포인트가 높다.

“선점권은?”

[선점권은 우리가 갖고 있다. 만리포 해수욕장에서 사냥중이던 우리 직원들이 제일 먼저 발견하고 전투에 들어갔다.]

“아하하하!”

현주는 머릿속으로 우주를 떠올리며 크게 웃었다.

이로써 우승 확정이다. 토끼급 돌연변이 생물을 잡았을시 사냥 포인트 1점을 주는데 반해 호랑이급은 무려 20점이나 된다.

“자, 신우주. 어떡할테냐!”

현재 우주와 현주의 점수는 각각 65점과 79점. 그리고 제네틱스와 오성그룹 간의 기업 점수는 각각 213점과 220점이었다.

1위 오성그룹 : 220 임현주 79 / ......

2위 제네틱스 : 213 신우주 65 / ......

공동 3위 신라그룹 : 150 / ......

호랑이급 한 마리만 잡으면 승리를 굳히게 된다. 드롭존이 막바지에 이른 지금 더 볼 것 도 없었다. 토끼급을 잡으려면 이곳저곳 구석구석 샅샅이 뒤져야 할 정도로 그 수가 엄청나게 줄어 있었고 이젠 한 마리 한 마리가 순위에 영향을 줄 정도로 특별해졌다.

그리고 이곳에는 제네틱스와 오성그룹만 있는 것이 아니다. 다른 기업들도 눈에 불을 키고 돌연변이 생물을 찾아 헤맸다. 그런 상황에 사냥 통계 수치 순위는 이제 불변하다고 봐도 좋았고, 그나마 2위 제네틱스가 역전 할 수 있는 유일한 기회인 호랑이급의 선점권 마저 1위인 오성그룹이 가져가 버렸다.

이대로만 별탈없이 간다면 오성그룹 1위, 임현주 1위는 거의 확정적이다.

“우주야 어쩔 수 없구나. 그냥 이렇게 된 바에 이 누님의 1등이나 밀어주고, 축하의 의미로 오늘밤 내 침대로 와서 봉사나 하거라. 우후후!”

거대 거북이가 있는곳까지 5km. 일반인보다 신체 능력이 월등한 수라가 뛰어가면 20분정도면 도착하는 거리다.

현주는 즉시 도로를 따라 남쪽으로 달리기 시작했다. 그러면서 고글의 우측하단을 주시했다. 그녀가 헬멧에 쓰고 있는 고글은 맹수의 웨어러블 글래스와는 같지만 다른, HMD(헤드 마운트 디스플레이)기술이 적용되었으며 오성그룹은 이를 HMD 오성고글이라 불렀다.

좌우지간 디스플레이 우측하단에서 편지 봉투 그림이 연신 깜빡거렸다. 팔등의 덮개를 열고 소형 키보드를 조작하니 눈앞의 편지봉투가 개봉되었다.

이번에 출현한 호랑이급 돌연변이 생물에 관한 정보가 촤르륵 출력됐다.

“크긴 하네.”

현주는 사진을 보고 흥미롭다는 미소를 지었다. 외관이 거북이를 닮았으며 머리에서 꼬리까지의 길이가 무려 17m란다.

정보를 일일이 훑어보며 뛰다보니 거대 거북이가 있는 곳까지 앞으로 3km.

이제 거대 거북이를 육안으로도 식별이 가능해졌다.

무언가 벅차오르는 기분을 느끼면서 펜션이 즐비하고 휑뎅그렁한 도로를 지날때였다.

갑자기 먼 곳에서 쾅하는 굉음이 들리며 그녀의 시선을 단숨에 잡아 끌었다.

만리포 해수욕장이 있는 방향이다. 그녀는 그쪽을 바라보며 무심코 달리는 것을 멈췄다. 두꺼운 등껍질 속에 사지를 감춘 거대 거북이가 엄청난 속도로 회전하면서 사방에 수십발의 화염구를 뿌려대고 있었다.

사방은 검은 연기가 자욱했으며 이곳저곳에서 폭발음이 들려왔다.

[사냥개1! 사냥개1 들리는가!]

특수작전실장 오범석이 무전기 너머에서 현주를 다급하게 불렀다.

그의 목소리에서 왠지 불길함을 감지한 그녀가 비교적 차분한 목소리로 대답했다.

“듣고 있다.”

[긴급 상황이다. 이 시간부로 '메가 하이드로 포'의 발포를 허가한다. GPS 좌표를 수신하는 즉시 카운트 다운에 들어가도록.]

현주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벌써 메가 좆포를 사용한다구?”

오범석이 목소리에 약간 짜증을 섞어가며 대꾸했다.

[메가 좆포가 아니고 메가하이드로 포다. 그리고 조금 전 거대 거북이의 공격으로 인해 우리 회사 수라들이 부상을 당했고 전원 코마 상태에 빠졌다. 지금 거대 거북이 주변에는 우리 회사 수라가 없다고 해도 무방하다. 우린 선점권을 놓쳤다.]

“뭐?”

일순간 현주의 눈이 커졌다.

놓쳤다고?

말도 안돼!

거기에 더해서 이어지는 말은 더욱 가관이다. 오범석이 다급하게 소리쳤다.

[현재 제네틱스의 신우주가 거대 거북이를 향해 가고 있다는 정보가 들어왔다! 슈퍼바이크를 타고 전속력으로 질주하고 있어서 테클을 걸지도 못하는 상황이라고 해! 그렇게 되면 우리에게 남은 것은 메가하이드로 포밖에 없다! 즉시 장전해!]

***

현주가 메가하이드로 포 발포 권한을 얻기 10분 전.

“헤헤. 대장님이 이러니까 왠지 보통 사람처럼 느껴지고 친근한 기분이 들어서 좋아요. 그동안 너무 멀게만 느껴져서 다가가기 힘든 부분이 있었거든요.”

무안해 하는 우주를 달래줄 생각에 하나가 뒤에 따라다니면서 시무룩한 그를 위로하는 중이었다.

우주는 슬픈얼굴로 제 할일을 하는척, 당장 바쁜 일도 없으면서 괜스레 바쁘게 움직이며 쓰러진 오성그룹 수라들의 장비를 하나씩 뒤적거렸다. 뭐라도 쓸만한 것을 찾고 있는 것처럼.

그러면서 무심코 물었다.

“여긴 어떻게 왔소?”

하나는 그저 생글생글한 미소를 짓고 대답했다. 삼자가 보면 정말로 바보 같은 표정이었다.

“대장님이 이겼으면 해서요. 힘내시라고 도와줄 생각에 왔어요. 헤헤, 저 잘했죠.”

곧바로 이어진 우주의 말이 그녀를 칼로 찔렀다.

“아, 그렇소? 흐음, 굳이 안왔어도 괜찮았는데.”

“그, 그런가요...?”

“소생은 혼자서도 잘하니 걱정마시오. 하나 낭자도 개인 포인트를 쌓아야 할텐데 여기서 이러고 있으면 안되는거 아니오? 얼른 가보시오.”

“아, 아니에요. 전 우주 씨만 도와줘도 충분해요.”

우주가 내뱉는 말 하나하나가 송곳이 되어 심장에 파고들었다.

“에이, 그러다 오해 받소. 또 누가 보면 우리 사귀는 줄 아는거 아니오? 그러면 소생은 괜찮은데 하나 낭자가 크게 억울할 것 같소. 그러니까 얼른 가보시오.”

우주가 차갑디 차가운 말을 아무렇지도 않게 뱉는데는 다 이유가 있었다.

하나가 자신을 좋아한다는 사실쯤이야 알고 있다. 하지만 평소 그의 철학은 이렇다. 같은 직장 내 여성은 절대 건들지 말라는 것이다.

그것은 100여년 전 박필모에게서 전수받은 뜻 깊은 가르침이었고, 우주도 직접 체험하면서 터득한 진리였다. 더구나 하나는 자신의 직속 부하나 마찬가지였다. 그렇다면 더더욱 건들여서는 안되었다.

“죽어 이 개새끼야!”

쓰러뜨린 줄로만 알았던 오성그룹 수라가 난데없이 벌떡 일어서더니 한 쪽에 차고 있던 단검을 높이 쳐들었다.

하나를 바라보며 대화하고 있던 우주는 갑작스레 등뒤에서 난 소리를 듣고 무심결에 뒤를 쳐다봤다.

“꺄악!”

하나는 두 손을 입에 갖다대며 소스라치게 놀랐다.

우주가 죽을지도 모르는 순간이었다.

맹수가 갑자기 저절로 작동했다.

<줄리엣, 착용자 보호 시스템 발동.>

이어서 퍼엉!

다시 살아나다시피한 줄리엣이 자동으로 어깨에 메달린 총구를 움직이며 초 고밀도의 공기 압축탄을 발사했다.

우주를 위협했던 오성그룹 수라는 찍 소리도 못하고 저멀리 날아가 버렸다.

“휴...”

한숨을 돌린 우주가 줄리엣을 불렀다.

“고장난줄 알았다.”

<고장이라기 보단 불시에 생긴 강한 전자기장으로 인해서 잠시 작동 불능 상태였습니다.>

“그럼 이젠 괜찮은 거냐?”

<이 주변에 머물던 전자기장은 거의 사라졌습니다. 그러므로 저는 이제 괜찮습니다.“

우주가 미소를 지었다.

이후 줄리엣은 맹수의 상태를 점검 하겠다며 제 나름대로 바쁜듯 했다.

우주는 아까 하던 대화를 하나와 계속 이어나갔다.

“아무튼 같이 다니는 것보다 따로 다니는 게 더 좋은것 같소.”

“왜요? 혼자다니는 것보다 같이 다니는게 더 안심되지 않나요?”

“그렇지 않소."”

우주는 상사가 부하직원을 건드는 순간 그를 시기하는 자들로부터 각종 더러운 소문이 퍼질 것이라 예상했으며, 그가 이끄는 집단 내에서도 무척이나 좋지 않은 영향을 끼친다고 생각했다.

그렇기 때문에 확실히 선을 긋기 위해서라도 하나와 어느 정도 거리를 둘 필요가 있었다.

“소생은 이만 가볼테니 하나 낭자는 좀 더 여길 살펴보시오. 눈에 보이지 않지만 어쩌면 돌연변이 생물이 남아있을지도 모르오.”

하나의 표정은 썩 좋지 못했다.

내성적인 그녀는 그의 눈치를 살피다가도 작은 목소리로 조심스럽게 대꾸했다.

“저 대장님하고 같이 가고 싶은데요...”

“미안하오.”

“저는 대장님 하고 떨어지기 싫은데요...”

하나는 눈을 제대로 마주치진 못했지만 힐끔힐끔 올려다 보는 눈동자에서 자신의 소망을 꼭 이루고 말겠다는 당돌함도 엿보였다.

우주가 두 손 두 발 다 들었다는 표정을 지었다.

“그래요. 같이 갑시다.”

“정말이죠?”

“정말이외다.”

그녀가 이렇게까지 적극적으로 나오니 우주도 어쩔 수 없다. 이쯤되면 그녀에게 너무 미안해지기도 하고 그녀가 악어팀원이니까 '관리' 라고 해야할지, 무조건 등을 돌리기보다는 어쨌든 신경을 써야만했다. 계속 거절만하다가는 오히려 서로가 어색해지기만 할것 같았다.

“하이파이브 하며 화이팅 합시다.”

“화이팅!”

짝!

기왕 이렇게 된거 하나와 새롭게 의욕을 다질때였다.

갑자기 무전기에서 소라의 다급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둥지로 부터 올빼미1에게!]

“올빼미1 수신 양호.”

[GPS 좌표를 찍어줄테니 그곳으로 서둘러 가주길 바랍니다.]

“무슨 일이오?”

[호랑이급 돌연변이 생물이 나타났어요. 그 녀석만 잡으면 오성그룹을 제치는건 일도 아닙니다. 우리 회사가 1등할 수 있어요. 우주 씨도 임현주를 제칠 수 있구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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