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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지스트 쉴드-157화 (157/285)

157화

상황이 긴박하게 흘러갔다.

한편으로는 하나에게 무심하게 흘러갔다.

애당초 제네틱스 작전지휘소는 자사 수라의 움직임을 실시간으로 감시 중이었다. 굳이 보고를 안해도 슈트에 내장된 칩으로 그 위치를 파악했다.

따라서 우주와 하나가 같이 있다는 것을 파악하고 있던 소라는 거대 거북이를 선점하기 위해서 새로운 작전 계획을 수립했다.

그 작전이란 이렇다.

[우주 씨는 맹수를 해제 한뒤 하나 씨의 슈퍼바이크를 타고 타겟의 위치로 이동하십시오.]

우주가 고개를 갸웃한다.

“맹수를 벗으란 말이오?”

우주는 맹수를 벗기를 망설였다. 거대 거북이를 맨몸으로 잡으라면 잡아보겠지만 그래도 좋은 장비를 놔두고 간다는 것은 괜히 사서 고생하는 것과 다름없다.

그러나 그것은 기우에 불과했다.

더는 생각할 것도 없이 소라가 이렇게 말했다.

[누구보다 빨리 타겟을 선점하기 위해선 기동력 확보가 필수입니다. 15km나 되는 거리를 맹수를 입고 뛰어갈수도 없는 노릇이고 그렇다고 착용한 상태에서 슈퍼바이크를 탈 수는 없는 노릇이니까요. 맹수는 걱정하지 마세요. 이럴때를 대비해 만반의 대책을 세워뒀습니다.]

“그 대책이란게...?”

[우주 씨가 타겟에 도착하는 시간에 맞춰서 맹수를 하늘로 쏴올릴 계획입니다.]

우주가 무심코 중얼거렸다.

“쏴올린다구...?”

자세히 묻고 싶었지만 1초가 아까운 시간에 수다나 떨 시간이 없다.

알아서 잘해주겠지.

우주가 서둘러 교신을 마치려고 했다.

“아무튼 잘 알았소. 고생해주시오.”

소라가 다급하게 그를 불렀다.

[우, 우주 씨. 잠시만요.]

“왜 그러시오?”

그녀가 나지막이 말했다.

[행운을 빌어요.]

언제나 달고 있던 퉁명스러운 태도는 온데간데 없이 한층 부드러웠고, 그의 안전을 걱정하는 뉘앙스가 섞여 있었다.

우주가 미소짓는다.

“고맙소. 본부장 님을 위해서 꼭 이기리다.”

우주는 무전을 마친 후 인근 도로로 뛰어가서 맹수를 해제할만한 적당한 장소를 찾았다.

그동안 하나는 소라와 교신 중이었다. 그녀는 알게 모르게 약간 불만스러운 표정을 지었으나 오래 달고 있진 않았다.

소라에게서 새로운 지시를 받고 담담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우주는 도로 옆 인도에 누웠다. 맹수를 받아줄만한 거치대가 없기에 누워서 해제하는게 최선이다.

“줄리엣.”

[네, 팀장님.]

목덜미에 있는 작은 덮개를 열고 착용 해제 스위치에 손가락이 올라간다.

“나중에 보자.”

[라져댓. 그런데 팀장님.]

“응?”

[질문이 있습니다.]

“서두르기 바란다.”

[행운을 빌어요가 무슨뜻입니까?]

“친구나 가족, 연인, 지인들에게 일이 잘되기를 바란다는 뜻으로 건네는 인삿말이다.”

[분석했습니다.]

줄리엣이 말했다.

[팀장님, 행운을 빌어요.]

우주가 피식 웃었다.

“너도 행운을 빈다.”

[라져댓.]

스위치를 누르자 푸쉬익 하고 공기 빠지는 소리가 나면서 전신을 조이고 있던 장갑이 느슨해졌다.

우주는 맨몸으로 자리에서 일어났다. 어디선가 슈퍼바이크의 엔진 소리가 들려왔다.

조금 기다리자, 하나가 슈퍼바이크를 타고 건물 사이에서 모습을 드러냈다.

그대로 좌회전을 해서 다가오더니 시동을 켠 채로 우주 앞에서 내렸다.

“맹수는 제게 맡기세요. 무슨 일이 있더라도 늦지않게 꼭 보내드릴게요.”

“어떻게 보낼 생각이오? 직접 착용하고 달려올 생각이오?”

그 말에 하나가 웃음을 머금었다.

“지휘소에서 MCS(Multiple Catapulting System)라고 맹수의 기동성을 보완하기 위해 특수 개발된 차량을 보냈나봐요. 저도 정비공 교육을 받을때 한 번 봤던 차량인데, 맹수를 차량 뒤편에 달린 원통형 장비에 고정 시킨 뒤 대포처럼 쏴 날리는 식이예요. 최대 25km까지 날려 보낼 수 있죠.”

“나중에 눈으로 한 번 보고 싶군.”

“차량이 어마어마하게 커요. 25톤 덤프트럭 하고 외관은 비슷한데 뒤가 더 길달까. 아, 그리고 무기 없으시죠?”

하나가 슈퍼바이크 뒷좌석에 매달아 놓은 리어시트백에서 MP7 기관단총과 탄창을 꺼냈다.

“무기는 이거 쓰세요.”

“고맙소.”

우주는 건네받은 MP7의 멜빵끈을 늘려 등에 메고, 탄창은 허리에 달린 카트리지 벨트에 꽂아 넣은 뒤 슈퍼바이크에 훌쩍 올라탔다.

하나를 향해 웃음을 지었다.

“잘 부탁하오. 나도 우리 회사가 이길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소.”

하나는 아직 헤어지기 아쉬운 듯 작은 목소리로 그를 불러세웠다.

“저기... 우주 씨.”

“...?”

그녀는 말을 주저하다 돌연 뜬금없는 이야기를 꺼냈다.

“지난번에 영화보러 가기로 한거 있지 않으셨죠?”

“영화...?”

영화를 보러간다고 한적이 있었든가?

우주가 잠깐 기억을 되짚어 봤지만 갑자기 떠오르진 않았다.

그가 대답을 머뭇거리자 하나가 서운한 눈초리로 재촉하듯이 말했다.

“예전에 악어팀 첫 임무 마치고 나서 회식자리에서 그 있잖아요. 강미라가 우주 씨한테 술먹이려고 할때, 제가 대신 흑기사 해준거 기억안나요? 그때 고맙다며 같이 영화보러 가자고 약속했었는데...”

“아...!”

이제야 생각이 났다.

강미라가 술을 잔뜩 먹이는 바람에 하나가 탈이 났고, 나중에 자신이 그 사실을 알고 너무 미안해서 수락했던 일. 하지만 정작 바쁜 일정에 쫓겨 차일피일 미루다가 흐지부지 되다 못해 기억에서 잊혀졌건만, 그녀는 아직도 새겨놓고 있었나 보다.

앞뒤 잴것도 없이 서둘러 말했다.

“하나 낭자. 조만간 소생이 영화 쏘겠소. 휴가 기간이니까 시간도 많이 남으니 이젠 미루지 않을거요. 이름 석자 걸고 약속하리다.”

그제야 하나의 표정이 밝아진다.

“기다릴게요.”

우주가 웃으며 대답했다.

“이만 가겠소. 맹수 잘부탁하오.”

“맡겨주세요. 우주 씨에게 절대 폐를 끼치지 않도록 최선을 다할게요.”

부아아앙.

우주는 곧바로 출발했다. 시간이 촉박한 까닭에 미련없이 달렸다.

“아 가버렸다...”

하나는 멍하니 서서 우주가 사라져가는 뒷모습을 끊임없이 쫓고 있었다. 그가 있기에 회사에 출근하기가 즐거웠고, 그가 있기에 일이 재밌었다. 그와 함께 있는 시간을 바라고 찬우와 헤어진 뒤 여기까지 찾아왔건만, 같이 있지 못해 크게 아쉬웠다.

“영화는 보지말고 드라이브나 가자고 하고... 드라이브는 서울에서 먼 남이섬이나... 아니면 부산으로 가서... 거기서 밥도 먹고... 집에 오려는데 갑자기 날이 어두워져서 다음날 올라가기로 하고... 어쩔 수 없이 모텔에서...!”

혼자서 행복한 상상의 나래를 펼치고 있을때였다.

빵, 빠앙!

문득 경적 소리가 크게 울려왔다.

하나가 무심코 뒤를 돌아보면, 맹수를 사출시킬 MCS 차량이 도착해 있었다.

운전기사가 고개를 빼꼼히 내밀며 물었다.

“유하나 씨? 아가씨가 하나 씨유?”

“예 맞아요~!”

기분이 좋아진 하나가 차량 뒷칸으로 폴짝폴짝 뛰어가서 맹수를 싣는 작업을 개시했다.

***

10분 후.

거대 거북이로 부터 3km 떨어진 지점.

오성그룹은 잃어버린 선점권을 재확보하기 위해서 노력중이었다.

그들의 성공 여부는 현주가 착용하고 있는 날개에 달려 있었다. 그녀의 날개에는 유일하게 메가 하이드로 포가 탑재되어 있었고, 휴대용 임에도 사정거리가 무려 30km에 달하는 광학병기였다.

“하하하. 드디어 신우주와 결판을 낼때가 왔군!”

[자만하지 마라. 우리가 위치상 유리하다고 해도 상대는 신우주다. 방심하는 순간에 따라 잡힐지도 몰라.]

현주가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이봐, 오 실장. 메가 좆 포를 쏘기 전에 먼저 확인해두고 싶은게 있다. 드롭존에서 우승하면 회사 사람들과 마시기로 했던 그 15년 묵었다는 술. 가져왔겠지?”

[염려 마라. 회사에서 직원을 보내 이미 작전지휘소로 가져다 놨다. 우승 한뒤 한껏 축배를 들자. 모 야구단 처럼 올해도 썩히지 말고.]

“좋았어. 대신 내건 따로 챙겨둬. 한 병은 집에 가져가야 하니까.”

[장식이라도 해놓을 생각인가?]

“아니.”

[그럼?]

============================ 작품 후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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