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9화
“저기 누님.”
“애는 무조건 세 명이상 낳을거다.”
“그러니까 누님.”
“아무리 바빠도 하루에 한번씩은 아이들 하고 꼭 놀아줘야 된다.”
“이보쇼...”
그때였다.
쿠웅!
“으윽!”
지반이 크게 흔들렸다. 현주는 괴로운듯 얼굴을 찡그렸다. 전신에 화상을 입은 그녀에게는 조금의 흔들림도 커다란 고통으로 다가왔다.
우주가 먼 곳을 바라보니 회전을 멈춘 거대 거북이가 고개를 쑥 내밀고 기어다니기 시작했다. 한발 한발 움직일때마다 주변 건물이 흔들리는 등 그 여파가 컸다.
우주는 급히 현주를 바라봤다.
“내 당장 저놈을 쓰러뜨리고 올테니 피해있으시오!”
현주가 통증을 참으면서도 애써 고개를 흔들었다.
“안돼. 넌 지금 슈트만 입고 있잖아. 맨몸으로는 힘들어. 이 누님하고 같이 있자.”
“아니오. 다 방법이 있소이다. 누님은 그냥 보고만 계시오.”
우주는 곧바로 무전기에 대고 말했다.
“올빼미 1로부터 올빼미 5에게. 맹수는?”
올빼미 5는 하나를 호출하는 무전닉네임이었다.
동쪽으로 15km 떨어진 거리에서 MCS 뒷칸에 올라 타 있는 하나가 무전기를 입가에 대고 맹수를 바라봤다.
맹수는 벨트로 꽁꽁 묶여져 주인을 기다리고 있었다.
“사출 준비 완료. 지금 쏘겠습니다!”
하나가 푸른색으로 칠해진 스위치를 눌렀다. 철컹 하고 육중한 쇳소리가 나면서 캐터펄트라 불리는 장비가 맹수를 상공으로 사출시켰다.
***
맹수는 포물선을 그리며 하늘 저편으로 새처럼 날아갔다.
빌딩숲에서 화염을 내뿜고 있는 거대 거북이를 지나 상점 간판이 즐비한 거리에 서 있는 우주의 머리 위 에서 낙하산이 터졌다.
“왔다...!”
우주가 하늘을 올려다 보면서 미소지었다. 함께 쳐다보던 현주가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물었다.
“저게 뭐지?”
“맹수요.”
“와, 제네틱스는 저걸 저렇게 운반하는 거냐?”
“나도 처음 봤소이다.”
“역시 제네틱스는 기술력이 다르군. 우리 회사가 따라가려면 아직 멀었어.”
유유히 하강하던 맹수는 도로에 닿기전 밑면에 에어백을 터뜨렸다. 충격흡수를 하기 위한 완충장치였다.
우주는 맹수에게 다가가 그물망처럼 촘촘히 엮인 벨트를 풀었다.
현수막을 두른 현주가 다가와서 멀뚱멀뚱 지켜본다.
“내가 제네틱스에 있을땐 이런게 없었는데.”
“누님이 맹수가 개발되자마자 떠나서 그렇소. 근데 파워드 슈트야 오성그룹도 있잖소?”
“그거야 맹수를 흉내낸 장비에 불과하지. 맹수야 심혈을 기울여 만든 까닭에 단 세 대에 불과하지만 우리 날개는 공장에서 찍어내듯 생산해낸거 보면 모르겠냐. 내 생각에는 착용하는 맛이 다를것 같다. 저가 승용차와 고급외제승용차의 차이랄까.”
“그러고 보니까 우리 회사에서도 곧 맹수 양산형 버젼을 보급한다는 이야기가 있었소.”
“나도 뉴스에서 봤다. 이름이 맹수 어드벤스인가 그렇지?”
“맞소이다.”
우주는 벨트를 다 풀고나서 맹수의 목덜미에 해당하는 부위의 덮개를 열고 스위치를 눌렀다.
잔뜩 웅크려 있던 맹수가 푸쉬이익 하고 기체를 내뿜으며 사람이 누워서 착용 가능하도록 각 부위의 장갑을 폈다.
우주는 그대로 맹수 위에 누운 다음 목덜미의 착용 스위치를 눌렀다.
철컥, 철컥 하면서 다리부터 시작해 허리와 팔과 어깨 등 신체 각 부위를 장갑이 조여왔다.
곧이어 줄리엣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맹수 착용자 확보. 지금부터 신원 확인에 들어갑니다.>
드르륵, 드르륵.
하드 디스크를 읽는것처럼 무언가를 분석하는 소리가났다.
<이름 신우주, 나이...중략...미발기시 고추길이 7cm... 확인 완료.>
줄리엣이 밝은 목소리로 말했다.
<다시 만나서 반갑습니다. 팀장님.>
그에 반해 우주는 왠지 달갑지 않은 목소리로 대답했다.
“줄리엣.”
<네, 말씀하십시오.>
“신원확인할때마다 고추길이는 왜 재는거지?”
<신원 확인에는 여성의 가슴 크기처럼 남성의 고추길이 역시 아주 중요한 단서가 될 수 있습니다. 이는 남성 개개인마다 고추길이가 다 다르기 때문이며, 같은 7cm라고해도 미세한 차이로 7.1cm, 7.11cm, 7.111cm 까지 나눠질 수 있습니다. 또 온도에 따라 줄어들기도 늘어나기도하지만, 고추의 대략적인 크기만으로도 착용자의 신원을 찾는 범위를 대폭 줄일 수가 있습니다.
참고로 신우주 팀장님께서는 소수점 없이 정확하게 7.0cm이시며, 이 확인결과는 다음에 착용할때를 대비하여 제네틱스 로봇 공학연구소의 데이터베이스에 전송되어 보관하고 있습니다.>
“별걸 다 보관하는군.”
맹수를 착용한 우주가 일어날 생각을 않고 계속 누워있자, 현주가 얼굴을 살피며 물었다.
“무슨일 있는거냐? 작동이 잘 안돼?”
“아니오 누님. 이놈이 기계 주제에 말을 하는데 그게 좀 웃겨서 그랬소.”
“뭐야? 기계가 말까지 하다니 영화속에서나 보던 그런 기능까지 있나보군.”
“그렇더이다.”
우주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주먹을 쥐었다 폈다 하며 목을 돌리는 등 몸을 풀었다.
“후우.”
필승을 다짐하며 크게 숨을 내쉬었다.
현주가 등을 툭 치며 말했다.
“잘할 수 있지?”
“염려놓으시오. 이 추운 날씨에 누님을 발가벗겨 놓다니 내 꼭 복수해주리다.”
“크하하하.”
현주가 엄지를 척 치켜 올렸다.
“해내리라 믿는다.”
우주도 따라서 엄지를 올렸다.
“맡겨주시오.”
“그래. 다른 기업이 차지하기 전에 얼른 가보도록 해.”
화상을 입은 현주의 피부가 보기 안쓰럽다. 그녀는 웃고 있지만 일부러 참는 표정이 역력했다. 게다가 드롭존 1위 자리를 내내 지켜가며 우주 자신에게 보이지 않는 의욕을 심어주던 그녀가, 이제는 1위 자리를 가만히 내줘야 하는 처지가 되어버리고 말았으니 그 마음은 화상을 입은 것보다 더욱 쓰라릴 것이었다.
우주는 그녀 앞에서 마냥 웃고 있을 수 만은 없었다. 추위로 인해 차가운 그녀의 두 손을 꼭 잡아준 뒤 따뜻하게 안아줬다.
현주가 의아한 얼굴을 지었다.
“갑자기 뭐하는 거냐. 이 누님이 그렇게 좋으냐? 떨어지기 싫어?”
우주는 대답없이 그저 안타까운 한숨만 작게 내쉬며 그녀를 더욱 크게 끌어 안았다.
당황한 현주가 말을 더듬는다.
“이, 이 자식 너 뭐하는 거냐. 정말 프로포즈라면 거절이야. 내 몰골도 그렇고 지금 고백했다간 무조건 퇴짜다 이 자식.”
“그게 아니오.”
우주가 그녀의 귓가에 대고 나지막이 말했다.
“내가 떠나면 누님이 추울까봐 그러오.”
우주는 그렇게만 말하고 주저없이 떠났다.
그는 거대 거북이를 향해 힘껏 달려 나아갔다.
뒤에 홀로 남겨진 현주는 멍하니 우주의 뒷모습을 바라봤다. 그 눈동자에는 아쉬운 기색이 역력했다.
“처음부터 1위를 할 사람은 따로 정해져 있었던가... 난 고작 2위 정도의 실력만 가졌던거야.”
현주는 뒤로 돌아서 도로를 따라 걸었다.
바람이 세게 불었고, 추위를 피해 어디 건물로 들어가기 보다는 눈에 띄는 곳으로 가야만 했다.
마지막으로 그녀는 뒤를 돌아보았다. 우주가 사라진 거리를 잠시 바라보더니 히죽 웃으며 말했다.
“근데 저 자식. 의외로 로맨틱한데? 둔한 사내인줄로만 알았더니.”
얼마 지나지 않아 오성그룹에서 보낸 구조차량을 만날 수 있었다.
현주는 차에 탑승하며 주변에서 모습을 감추었다.
***
우주가 도착할때까지 이렇다할 상대가 없었던 거대 거북이는 고삐 풀린 망아지처럼 이곳저곳 건물을 부수고 다녔다.
녀석이 있는 곳에 다다르자 파충류의 눈동자가 우주를 내려다 보았다.
<팀장님. 거대 거북이에 대한 선점권을 제네틱스가 인정받았습니다.>
“나도 안다.”
동시에 경고음.
거대 거북이가 우주를 향해 화염을 내뿜었다.
화르륵!
우주는 방패를 사용해서 가뿐하게 불꽃을 막아내고, 이어 오른팔 덮개를 열어 개틀링포로 반격을 가했다.
투다다다다다! 투다다다다다!
위협을 느낀 거대 거북이는 눈을 질끈 감고 등껍질에 몸을 숨겼다.
팅팅팅팅팅!
우주가 난사한 총알이 거대 거북이의 등껍질에 맞고 화려한 불꽃을 튀겼다. 워낙 튼튼한 등껍질을 가졌기에 공격이 통하지 않았다.
<목표의 피해량 미미.>
“줄리엣, 저 등껍질은 무엇으로 이루어진 것이지?”
<성분 분석 불가능. 다만, 일반 거북이의 등껍질은 외골격인지 내골격인지 학자들 사이에서 의견이 분분하나 최근 한 연구결과에 따르면 갈비뼈에서 유래했다는 설이 있습니다.>
“좌우간 저게 뼈란 말이군!”
우주는 사격을 멈추었다.
개틀링포는 효과가 없고, 그렇다면 빔 라이플이라도 써볼까 싶었지만, 그것은 오성그룹 수라들에게 태클을 당했을때 고장이 난줄 알고 길에 버리고 왔다.
“목표를 향해 다연장 로켓포 발사.”
<속히 이행하겠습니다.>
맹수가 어깨에 달린 다연장 로켓포를 발사했다.
우주는 미련없이 가진 미사일을 전부 토해냈다. 거대 거북이를 향해 날아간 여러발의 미사일이 정확히 명중하며 강력한 폭발음이 귀를 때렸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결말이 나지 않았다.
<목표의 피해량 미미.>
줄리엣이 이어서 말했다.
<등껍질 안에서 고열이 감지되었습니다.>
등껍질 속으로 모습을 감춘 거대 거북이는 회전을 하기 시작했다. 속도가 점점 빨라지더니 사방에 끝도없이 불덩이를 뿌려댔다.
콰쾅!
쿠쿠쿠쿵!
“이러다 남아나는 건물이 없겠군!”
우주는 혀를 차며 방패에 몸을 숨겼다.
공격이 끝날때를 기다리는 동안 웨어러블글래스에 표시된 각종 정보들을 눈여겨보았다.
흔히 애완용으로 기르는 리버쿠터와 비슷한 외관의 거대 거북이. 녀석은 호랑이급이 아닌 코끼리급에 준하는 돌연변이 생물로 봐도 좋다는 견해가 나왔다. 참고로 코끼리급이라면 사탄이 있다.
또한 등껍질 속으로 들어가서, 완벽하게 몸을 보호할 수 있다는 점이 보통의 거북이와 전혀 달랐다. 일반 거북이는 몸을 움츠릴 수는 있지만 신체구조상 등껍질 속으로 들어갈 수가 없다.
그리고 러시아에서 한 번 잡힌 적이 있으며, 당시 천명에 가까운 사상자가 나왔고, 육상공격용 통상탄두를 장착한 지대지 미사일을 발사해 해안 마을 한곳을 통째로 날려 버리고 나서야 잡을 수가 있었단다.
그로 인해 거대 거북이의 사체는 흔적도 찾아볼 수 없었으며, 등껍질의 성분이라든지 육질의 효능조차 세간에 알려진 것이 하나 없다고 한다.
“음...”
거대 거북이에 관한 정보를 찾아보며 그렇게 고민만 하고 있을때쯤이었다.
우주에게 한가지 생각이 번뜩 떠올랐다.
“줄리엣.”
<네, 팀장님.>
“맹수에게서 해제할 수 있는건 전부 떼어내도록한다. 정상 작동이 가능한 범위에서 무게를 최대한 가볍게 하도록.”
<장비 도난을 방지하기 위해서 해당 지시에 관해서는 맹수가 반문을 하도록 설계되어 있습니다. 모든 대화 내용은 녹음되며 추후 회사에서 문제를 제기할 수 있습니다. 어째서 입니까?>
“맹수의 무게를 최대한 가볍게 한뒤 거대 거북이를 들어올리겠다.”
<뒤집어서 어쩌실 생각입니까?>
“등껍질을 깨부술 생각이다.”
<승인되었습니다. 지금 즉시 모든 장비를 해제하겠습니다.>
지잉 하는 소리가 나며 무기의 잠금장치가 일제히 풀렸다.
툭, 툭, 쿠웅, 퉁, 툭!
장갑의 모든 덮개가 열리며 바닥에 각종 무기와 탄창이 떨어지기 시작했다. 어깨에 매달려 있던 다연장 로켓포가 떨어져 나가고, 양팔에 수납되어 있던 개틀링포가 떨어져 나가고, 허벅지에 붙어 있는 전투 단검을 포함해 방패를 매달수 있게 해주는 보조장치까지 등에서 떨어져 나갔다.
<작업을 완료하였습니다.>
우주는 몸을 움직여보았다. 전보다 훨씬 가뿐하게 움직여지고 심지어 가죽 슈트만 달랑 걸친 것 같은 쾌활한 기분까지 느꼈다. 만약 맹수를 입고 100m를 질주한다면 10초 안팎으로 테이프를 끊을 수 있을 것 같았다.
물론 과장이다. 하지만 그 만큼 가벼워졌다는 뜻이다.
“최고군.”
우주는 흡족한 미소를 지었다.
이윽고 거대 거북이의 화염 공격이 멈추고 이어 등껍질의 회전도 끝이나자, 우주는 스톰 쉴드 제네틱스를 버리고 잽싸게 튀어나갔다.
“거북이는 뒤집어야 제맛이지!”
우주는 그렇게 외치면서 거대 거북이의 측면으로 가서 달라붙었다. 두 손으로 등껍질을 붙잡았다. 그대로 힘껏 들어올리려고 했다.
“끄으응!”
<출력율 상승합니다. 200%, 500%, 700%...>
“넘어가라, 넘어가라... 끄으응!”
출력율이 900%를 지나자 거대 거북이가 약간 들리기 시작하였다. 그리고 곧 1200%를 넘어섰고, 1500%에 도달하자 거대 거북이의 육중한 몸집이 훌러덩 넘어가버렸다.
쿠웅!
“끼르륵! 끼르르륵!”
뒤집힌 거대 거북이가 짧은 팔다리를 휘저으며 발버둥을 쳤다. 살려고 악을 쓰는 모습에 동정을 느낄 시간도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