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0화
우주는 민첩하게 거대 거북이의 배딱지 위로 뛰어 올라갔다. 한가운데로 뛰어가서 주먹을 쥐고 말했다.
“줄리엣, 출력을 최대로 끌어올리도록.”
<즉시 이행하겠습니다.>
순식간에 최대출력 1800%에 도달했다.
웨어러블 글래스에 표시되는 출력 계기판이 MAX를 가리키자마자, 우주는 그 즉시 주먹을 내려쳤다.
쾅!
“어?”
눈앞에 보이는 광경은 맥이 풀릴 정도로 허무했다.
배딱지는 여전히 건재했다. 이렇다할 손상없이 깨끗했다.
우주는 분한 표정으로 입술을 질끈 깨물었다.
“누님에게 복수해주겠다고 했는데, 총탄도 안통하고 맹수 힘을 최대로 끌어올렸는데도 통하지 않는다면 난 이제 어째야 하나?”
그런 의문이 머리를 스칠때였다.
우주가 재차 의지를 불태우더니 줄리엣을 향해 서슴없이 소리쳤다. 생각하시고 자시고 겨를이 없었다. 거대 거북이는 서서히 몸을 회전하기 시작했다.
“줄리에엣! 맹수를 오버클럭시켜!”
그러나 줄리엣은 뻔한 답변을 늘어놓았다.
<해당 사항에 관해서는 맹수가 반문을 하도록 설계되어 있습니다. 모든 대화 내용은 녹음되며 추후 회사에서 문제를 제기할 수...>
“그딴 소리는 그마아안!”
우주는 즉시 가슴의 덮개를 열고 파워제어플러그를 뽑아 수동으로 오버클럭시켰다.
웨어러블 글래스에 표시되는 계기판을 무참히 뚫고 표시되는 출력율 수치 무려 3000%!
우주는 눈 깜짝할 사이에 전신 화상을 입었고, 그것을 꾹 참아가며 배딱지를 향해 주먹을 과감하게 내리꽂았다.
“으아아아아아!”
쿠웅!
무쇠보다 더 단단한 주먹이 배딱지와 충돌하는 순간, 쩌억, 쩌어억 갈라지는 소리를 내며 강인한 껍질을 순식간에 산산이 조각냈다.
“좋았어!”
하지만 피부가 타들어가는 것을 멈출 수는 없었다. 자신의 살이 익는 냄새가 코끝을 찔러왔다. 하지만 우주는 내친김에 아예 끝을 볼 생각이다.
거대 거북이는 몸을 보호하던 단단한 껍질이 완전히 아작나면서 녹색이 감도는 물렁물렁한 뱃살을 고스란히 드러내놓고 있었다.
그는 고주파 블레이드를 뽑아들었다. 전신이 타오르는 고통속에 눈빛은 점점 이성을 잃어가고 있었고, 그 때문에 지극히 위험할 수도 있었지만 여기까지와서 그만둘 수 없었다.
찌르면 끝이다!
끝!
우주가 두 눈을 부릅뜨며 크게 외쳤다.
“내가, 1등이다아아아아아!”
포악하다 싶을정도로 거침없었다.
고주파 블레이드는 그대로 거대 거북이의 심장을 향해 단호하게 살을 갈랐다.
같은시간 모방송국.
한 아나운서가 무척이나 흥분한 얼굴로 마이크에 대고 소리질렀다.
[신우주우우우우! 드디어 생애처음 드롭존 1위를 차지하는 순간입니다! 이것이야말로 진정 각본 없는 드라마아! 그의 경력에 마침내 드롭존 1등이라는 영광스러운 문구를 새겨넣을 수 있게 되었습니다아아아!]
***
조용한 정오.
거의 시체처럼 깊은 잠에 빠져 있다 깨어났을때에는 주위에 아무도 없었다.
1인 병실인 실내에는 인기척 하나 없었고, 침대 주위로 새하얀 커텐이 드리워져 있어 사방이 막혀 있었다.
실로 오롯한 고요였다.
천장과 주위를 둘러보면 온통 하얀 세상이다. 몽롱하게 시야를 가리는 커텐이 미풍처럼 하늘거렸고. 천장의 벽지는 들판에 있는 봄꽃처럼 산뜻하게 느껴졌다.
그래서 아직도 꿈을 꾸고 있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 숨죽인 적막을 뚫고 문쪽에서 남성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다시 만나서 기쁘군.”
커텐이 둘 사이를 가로 막고 있어 누군지는 알 길이 없었다. 그저 커텐에 비치는 실루엣과 목소리로 보아 20대 남성이라고만 추측할 뿐이었다.
침대에 곧게 누워있던 우주가 가벼운 헛기침으로 목을 가다듬고 차분하게 물었다.
“당신은 누구시오?”
“자네의 후쿠시마 원자력 발전소 사고설을 지지하는 사람쯤으로 해두지.”
안도감이 깃든 중저음의 부드러운 목소리가 실내에 울렸다.
그가 미소를 짓고 있는 것 같다.
“가능한 누워서 대화를 나누었으면 한다네. 자네는 환자이고 불편하게 하고 싶진 않으니까.”
우주는 고개만 돌린 채 커텐에 비친 실루엣을 향해 물었다.
“여긴 무슨 연유로 찾아온거요?”
“그간 자네를 한 번쯤 만나보고 싶었다네. 방송에 나오는 것과 달리 어떻게 지내는지 궁금하기도 했고.”
“소생을 아는분이시오?”
“글쎄... 그걸 말하긴 난 좀 애매한 상황에 있다네. 내가 자네를 안다고 해야할지 아니면 모른다고 해야할지, 내 마음속에서 아직 결론이 나질 않았거든.”
목소리가 너무 젊다. 젊은데도 불구하고 중후한 중년 남성과 대화하는 기분이 들었다. 그의 화법이 심히 괴상하고 참 묘했다.
“혹시 소생이 도와줬으면하는 일이 있어 찾아온게요?”
자신이 워낙 유명인이다 보니 그런 사람 많다. 팬레터를 통해서 빚이 얼마 있고 앞으로 착하게 살테니 빚 좀 갚아달라는 사람들이 많았다.
“안심하게나. 잠시 이야기만 하다 갈걸세.”
남자는 씨익 웃으며 말했다.
“드롭존 1등을 한 소감이 어떠한가?”
“아직 이렇다할 실감은 안난다오. 거대 거북이를 잡자마자 병원에 실려와서 잘모르겠소이다.”
“그렇잖아도 아까 이곳에 기자들이 엄청 많이 왔었다네.”
우주는 드롭존이 끝나자마자 곧장 조직재생공학연구소로 후송돼 입원 치료중이었다.
“문밖에 기자들이 있소?”
“지금은 다 떠났으니 안심해도 좋아. 직원들이 부랴부랴 쫓아내느라 애를 많이 먹더군. 하지만 건물 밖에서 버티고 있을지도 모르네. 그래 몸은 좀 어떠한가?”
우주는 이불속에서 두 손을 꺼내 살펴보았다. 그리고 상체를 일으켜 세우고, 팔도, 어깨도, 가슴도, 이불을 젓혀 다리까지 확인해보았다. 모두 상처 하나 없이 피부가 깨끗했다.
“다 나은것 같소. 하룻밤새에 다 낫다니 허참 신기방기하군.”
남자는 고개를 끄덕였다.
“다행일세. 예전 미라 양의 경우에는 일주일 가량을 입원해야 될 정도로 상태가 심각했지만, 자네는 큰 부상이 아니었던것 같군.”
“미라 낭자를 알으오?”
“안다기보다는 안면만 있지. 일때문에.”
“당신도 수라요?”
“수라이긴 하지.”
“어느 기업이오?”
“글쎄? 그건 중요하지 않아. 내 이야기를 하러 온건 아닐세.”
남자는 그렇게 대답한 후 되물었다.
“자네는 지금 정상에 서 있다고 생각하나?”
우주는 고민하는 듯 하다가 이내 대답했다.
“아직 정상에 서 본적은 없소.”
“포부가 큰 남자군.”
이어서 말했다.
“자네는 지금 정상에 서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네. 유일한 경쟁 상대이던 우연진도 없고, 그 잘나가던 신라그룹도 주력이던 사막여우팀을 잃은뒤 요즘 주춤하고 있지. 게다가 한국 최고의 기업 제네틱스가 자네를 전력으로 밀어주고 있어. 상황이 이런 이상 당분간 자네의 유명세는 계속 이어질것이라고 개인적으로 생각하네.”
남자가 말을 하는동안 우주는 그의 실루엣을 빤히 바라보고만 있었다.
남자는 조금 전 부드러운 분위기와는 다르게 점점 야수와도 같은 욕망을 드러냈다.
“하지만 만약 이 시점에서 새로운 인물이 등장한다면 어쩌겠는가?”
“새로운 인물?”
“예를 들면 이런거지. 차영웅의 시대에 우연진이 불쑥 등장했고, 우연진의 시대에 자네가 불쑥 등장했네. 그리고 자네의 시대에 등장할 또 새로운 얼굴이 있겠지. 자네보다 나이가 어릴수도 있고, 더 멋지고 잘생겼을 수도 있는데다가, 능력도 훨씬 앞설지도 몰라. 그리고 늘 새로운 인물이 등장할때면 기존의 스타는 곧 대중에게 잊혀지고 말아. 자네는 그걸 감당할 수 있겠나?”
우주는 잠시 뜸을 들이다 대답했다.
“그런걸 생각하기엔 이른것 같소.”
“아직 이르다고 생각했을때 갑자기 닥쳐올걸세. 모든일이 그렇지. 미처 준비할 새도 없이 정신없이 당한다는 말이 맞아. 사람들은 하루아침에 등을 돌리고 자넨 어느새 한물간 인물이 되고 말지. CF도 줄어들고, 영화, 드라마 섭외도 줄어들고, 무엇보다 회사에서 받는 연봉이 이젠 상승하지 않고 갈수록 내려가는 것만 보게 될걸세. 그리고 자네도 곧 그렇게 될거야.”
우주는 남자의 실루엣을 물끄러미 바라보며 살며시 미간을 좁혔다.
“갑자기 왜 이런 이야기를 하는 거요?”
“사실이니까 하는 소릴세. 자네가 알아줬으면 해서.”
“왜 내가 알길 바라는 거요?”
“질투심일까?”
“질투심?”
“자네를 라이벌로 보는 자의 질투심. 게다가 자네가 잘나갈수록 왠지 따라잡기 힘들것 같다는 초조함도 들었을테지. 난 지금 아무것도 못하는 중이니까.”
“......?”
우주는 이해할 수 없어 고개를 갸웃했다.
“혹시 그 새로운 인물이란게 바로 당신이요? 당신이 날 끌어내리겠다고 지금 선전포고 하는거요?”
남자는 작게 웃음을 터뜨렸다.
“진정하게나. 내 말이 심했다면 이해해 주게. 요즘 너무 갇혀 있었더니 나도 모르게 그만 스트레스가 쌓인것 같아. 그 때문에 자주 신경과민 증상을 보이곤 하지. 말을 잘 거르지 못하고 무분별하게 내뱉었던것 같아. 내 실수일세.”
우주는 잠자코 듣고 있다가 물었다.
“스트레스 받을 일이 뭐가 있소?”
“그게 말이지...”
남자가 문득 손목시계를 들여다 보는듯 했다. 그리고 말했다.
“준비는 다 됐는데, 활동할 무대가 없어서 말야. 그걸 기다리는게 참 고역이고 따분한 일이더군.”
“무대라면 레지스트 쉴드 말이오?”
“맞다네. 거기에 드롭존까지 포함해서.”
“무대에 오를 수만 있다면 날 누를수 있다고 생각하는거요? 어떻게 그리 자신하시오?”
“자네를 누르지 못하면 난 죽어야 하거든. 왜냐면 가치가 없으니까 말일세. 그래서 악착같이 달려들 생각이야.”
우주가 눈썹을 꿈틀거렸다.
“죽다니 무슨 말이오...?”
“자네의 질문이 점점 많아지는군. 내가 너무 수수께끼 같은 말만 하나?”
철컥.
돌연 문을 여는 소리가 들려왔다. 커텐에 비친 실루엣으로 보아 남자가 병실을 나갈 생각인것 같았다.
“우린 사탄을 잡을 계획이야. 그에 관한 준비는 다 끝났지. 부디 기대해 주게. 사탄은 이제 더이상 제네틱스의 전유물이 아니야.”
“당신은 대체 누구요?”
“이야기는 여기까지 하지. 자네를 만나기 위해 아리따운 여성들이 찾아온것 같군.”
“잠깐만 기다리시오. 당신이 누군지만 말하고 가시오!”
남자가 나가려던걸 멈추었다.
그는 떠나기 전 마지막으로 말했다.
“그 날 감자탕은 참 맛있었지. 우주 군. 언제 죽을지 모르는 자신을 위해서 마음을 달래줄 무언가는 찾아냈나?”
순간, 우주는 굳었다. 언젠가 들었던 적이 있는 말. 눈동자를 좌우로 굴리며 잊고 있었던 기억을 머릿속에서 끄집어냈다.
‘생명을 담보로 하는 우리의 직업 특성상, 자네도 마음을 달래줄 무언가를 찾아보는 게 좋을 것일세. 우리 일은 맨정신으로 버티기에는 힘든 일이 잔뜩이니까.’
우주는 즉시 이불을 젓히며 소리쳤다.
“차영웅!”
침대에서 뛰쳐나와 새하얀 커텐을 젓히고 서둘러 문밖으로 달려나갔다.
그러나 남자는 이미 사라지고 없었다. 텅빈 복도는 쥐 죽은듯 고요했다. 발걸음 소리조차 들려오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