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레지스트 쉴드-161화 (161/285)

161화

주변을 기웃거려봤지만, 그를 찾을 수가 없었다.

우주는 멍하니 자신의 병실로 돌아갔다. 그는 지난날 기억을 되짚었다. 그러고 보니 그렇다. 지난 7월말쯤이었던것 같다. 그때 이 조직재생공학연구소의 홍보부장 박준이라는 사람이 어린 차영웅을 보여준적이 있었다.

“부작용이 있어서 오래걸릴 것처럼 얘기하더니 결국 복제됐단 말인가...”

목소리가 젊었던 이유도 이제야 이해가 되는 것 같다.

‘하지만 영웅 형님이 왜 날 피하는거지? 어째서? 그리고 왜 적대심을 드러내는 것일까? 게다가 사탄을 잡는다니? 대체 소속 기업이 어디길래?’

머릿속이 혼란스러웠다.

당장 이곳의 홍보부장 박준을 찾아서 이것저것 캐물어야 겠다는 생각이 든 찰나였다.

병실을 나서자마자 문앞 복도에서 료코와 마주쳤다. 옆에 소라까지 있었다.

“(서방님! 벌써 돌아다니시면 어쩌시옵니까!)”

기모노를 입은 료코가 걱정 가득한 안색으로 그를 끌어다 조심스레 침대 위에 눕혔다. 그러고는 가져온 우주의 속옷들을 서랍 속에 꼭꼭 챙겨넣고 주방으로 가서 죽을 끓이기 시작했다.

소라가 팔짱을 끼며 그를 내려다 보았다.

“어디가려고 했어요? 바람 쐬러?”

“소라 낭자.”

우주가 어두운 얼굴로 말했다.

“영웅 형님이 살아있는것 같소이다.”

“차영웅 말이예요?”

“그렇소. 복제된것 같소.”

“복제되다니, 설마.”

소라가 새끼손가락으로 눈썹을 긁으며 말했다.

“복제 기술이 존재한다고는 들었지만, 부작용도 많고 아직 상용화는 안됐어요. 어디서 들었어요? 누가 차영웅을 봤다고 그래요?”

“들은게 아니라 조금 전 까지 이곳에 있었소. 정말이외다. 내 고추를 걸고 맹세한다오.”

우주는 자신의 말을 믿어달라는 듯이, 예전에 박준과 있었던 일을 비롯해서 조금 전에 일어났던 상황까지 전부 털어놓았다.

“세상에...! 그런일이 있었다니!”

우주의 말을 다 듣고난 소라가 진심으로 믿는 눈치였다.

누워있는 우주의 이마를 쓰다듬으며 말했다.

“허세일 뿐이니 아무 걱정 하지마세요. 제가 알기로 우리나라는 생명윤리 및 안전에 관한 법률이 있어요. 기업이 함부로 복제인간을 고용했다간 큰코 다친단 얘기죠. 이 말은 즉 복제된 차영웅은 평생 백수로 지내야한단 소리죠.”

“그런게 있었소?”

“그럼요.”

주방에 있던 료코가 은색 쟁반에 죽을 들고왔다.

“(서방님. 식사시간이옵니다.)"

우주는 침대 위에서 상체를 일으켜 세웠다. 료코가 침대에 달린 식탁을 펴고 의자를 가까이 끌어다 앉는다.

소라가 왠지 꺼림칙한 얼굴로 말했다.

“전 잠시 전화 좀 할게요. 아무래도 미심쩍은 부분이 있네요. 사람을 시켜서 차영웅에 대해서 조사를 해봐야 겠어요. 그리고 여기 조직재생공학연구소도.”

우주가 고개를 끄덕였다.

“부탁하오.”

“(자, 호~ 소녀가 식혀드리겠사옵니다. 호~)”

료코가 죽을 뜬 수저에다가 호호 입김을 불었다.

소라는 창가로 가서 휴대폰을 귀에 대더니 말했다.

“맞다. 료코 씨 다이어트 좀 시키세요. 대체 배가 왜 저 모양이예요? 딱 봐도 살찐거 보이죠? 전에는 옷맵시가 좀 나더니만 지금은 뚱뚱해져서 사람이 너무 둔해 보여요.”

우주의 시선이 료코의 아랫배로 향했다. 손을 내밀어 볼록 튀어나온 아랫배를 사랑스럽게 어루만졌다.

“지금 보니 그렇긴 하오. 언제 이렇게 살쪘을까...”

우주와 료코는 묵묵히 시선을 주고 받았다. 두 사람은 한마음이 되어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

소라가 모르는 사이 료코는 임신 4개월째에 접어들고 있었다.

***

우주가 입원해 있을 무렵, 신라그룹 이선주 회장은 청와대를 찾아 이세종 대통령을 만나고 있었다.

그녀가 청와대를 방문한 이유는 간단했다. 생명윤리 및 안전에 관한 법률을 일부 개정하기 위해서 대통령의 힘을 빌릴 생각이었다.

그동안 신라그룹은 인간복제행위를 금지하는 조항을 삭제하기 위해서 여당과 야당을 가리지 않고 다수의 국회의원을 매수하는 등 그룹의 사활을 걸고 총력을 기울이고 있었으며, 마지막으로 대통령의 동의를 구한 뒤 국회 과반수 의석을 차지하고 있는 여당을 움직이기만 하면 개정안 통과는 시간문제였다.

여비서가 내온 차를 마시는 동안 이선주와 이세종 대통령 사이에는 OO 이씨 종친회에 관한 소식 등 가벼운 이야기가 오갔다. 이선주는 남남같은 먼 친척이지만 같은 일가라는 이유로 한때 이세종 대통령의 당선을 도와준 전력이 있다.

차를 마신지 얼마 후, 이세종 대통령이 찻잔을 내려놓자 이선주는 기다렸다는 듯이 본론을 꺼냈다. 복제된 차영웅과 이태평에 관한 이야기와 그들과 신라그룹과의 관계, 마지막으로 생명윤리 및 안전에 관한 법률 개정의 필요성을 역설했다.

사실 조직재생공학연구소의 법과 인륜을 어기는 행위에 관해서는 진즉에 이세종 대통령도 보고를 받고 다 아는 사실이었다.

따지고 보면 그간 대통령이 묵인을 해왔기에 복제된 차영웅과 이태평이 세상에 나올 수 있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그들의 아버지나 마찬가지였다.

본래 이세종 대통령은 취임 전부터 21세기를 주도할 산업으로 문화컨텐츠 산업도 아니고 정보통신 산업도 아니고 관광 산업도 아닌 줄기세포와 유전자 산업을 꼽고 있었다.

그리고 취임 후에는 전세계가 '줄기세포는 생명윤리에 어긋난다'며 고개를 가로저을때, 레지스트 쉴드가 등장한 이때야말로 도전해야할 시기라며 줄기세포와 유전자 산업에서 유리한 고지를 선점하고자 연구진들에게 물심양면 지원을 아끼지 않았었다.

그는 대한민국이 미래의 주역이 되길 바랐다. 중국과 일본에 껴서 이리저리 치이는 작은 나라가 아닌 21세기를 이끌어나가는 선진 국가말이다. 늘 서방 국가나 일본에게 한 발 뒤쳐져 그들의 기술을 모방하거나 배워야 하는 그런 조국을 더는 두고 볼 수가 없었다.

물론, 이러한 정책을 공개적으로 화제 삼을 수는 없었다. 종교단체를 포함해 국제단체, 또 같은 산업을 육성하고자하는 열강들의 시선을 피해야 했고, 그로 인해 극비로 다루며 암암리에 연구를 진행시킬 수 밖에 없었다.

그러다 마침내 신체 재생연구가 성공하고 이를 바탕으로 조직재생공학연구소가 본격적으로 사업을 추진하게되면서부터 대한민국 상위 5% 사람들이 자연스레 알게되었고, 더 나아가 전세계 각 나라의 사회지도층에게도 은밀히 알려지게 되었다.

특히 각 나라의 사회지도층. 그들 대부분은 이를 공개적으로 비난하기는 커녕 오히려 비밀 고객이 되었다. 한국이 보유한 항노화 기술만으로도 그들의 입을 닫게하기에 충분했으며, 이 당시까지만 해도 복제 기술이 완성되지 않았기 때문에 인간의 존엄성과 관련해서 특별히 문제 삼을 것도 없었다.

그렇게 시간이 흐를수록 세계 최초로 신체 재생 기술을 이룩해낸 한국에 대한 관심은 점점 늘어만 갔고, 이제는 재생 기술에 이어 복제 기술까지 보유했다는 의혹이 각국 인사들 사이에서 공공연한 비밀로 떠돌고 있는게 현재의 상황이었다.

복제 기술은 거의 완성됐다.

이세종 대통령은 그의 임기가 끝나기 전, 완성된 복제 기술을 전세계에 널리 공언해야할때였다. 자신의 업적을 후임 대통령에게 넘겨줄 수는 없기 때문에.

그 시기와 지금 이선주의 생각이 맞물려 있었다.

신라그룹을 이용해 복제 인간의 가치와 효용성을 실험해보는 것도 나쁘지 않을것 같았다. 게다가 이들이 잘만 해준다면 복제인간에 관한 규제가 전세계적으로 완화될 것이고, 그때야 비로소 줄기세포와 유전자 산업 시장이 본격적으로 빛을 발하며 기술력으로 앞서 있는 대한민국이 외화를 긁어모을 것이 불보듯 뻔했다.

이선주의 간청에 대해서 이세종 대통령은 긍정적이었다. 답은 이미 나온거나 마찬가지였다.

그러나 쉽게 받아줄 수는 없었다.

여당이 생명윤리 및 안전에 관한 법률의 개정안을 발의하는 순간 국내 종교단체의 반발은 당연했다. 선거때마다 그들의 투표율은 상당하다.

이선주의 말을 들어주는 즉시 표를 버리는 것과 다름없었다. 그는 애당초 복제 기술이 성공적이었다는 결과만을 발표하되, 기술을 실용화하기 위해서 법을 개정하는 것 등의 논의는 후임 대통령에게 과제로서 남겨둘 참이었다.

“음... 어떨까.”

이세종 대통령은 일부러 뜨뜻미지근한 표정을 짓고, 턱을 어루만지며 잠시 고민하는 척을 했다.

“이봐 이회장. 아직은 복제기술이 부작용도 있을 수 있고 좀 위험하지 않겠나?”

그의 왼편에 놓인 소파에 앉아 있던 이선주가 미소를 머금고 대답했다.

“그 점에 관해서는 염려놓으셔도 됩니다. 현재의 차영웅은 총 21번의 복제를 거쳐 완성된 인물이고, 지금까진 무결점에 가깝습니다. 그리고 일주일에 한 번씩 정기적으로 몸상태를 점검하고 있으며, 만약 부작용이 발견될 시에는 즉시 폐기처분할 생각입니다.”

“폐기처분이라... 이런 시대에 살고있는게지 우리는.”

자신이 추진하고 이룩한 결과였지만, 정작 마주대하고 보니 양심의 가책이 느껴졌다. 하지만 무슨일이든 처음이 힘들다. 이 또한 익숙해질 것이라 생각하며 그녀에게 말했다.

“그래. 부작용을 제때에 발견할 수만 있다면 폐기처분하기가 쉽겠지. 그런데 그건 신체적 결함에만 해당될테고 정신적 부작용은 어떻게 찾아낼 생각인가. 비정상인 인격을 갖게 되었는데 정상인처럼 행동한다면? 그것을 차영웅 본인이 살기위해서 숨긴다면 어쩌겠는가? 그가 미쳐서 총을 들고 거리로 나가면 큰일이야. 무고한 시민들이 크게 다칠테니까. 만일 그런 일이 발생하면 그땐 자네와 나도 끝이란걸 명심해야할걸세."

“그 점은...”

언뜻 이선주가 말을 주저하는 것 같았다. 그러다 눈에 힘을 주고 이내 대답했다.

“차영웅과 이태평은 매일 오전마다 정신과 전문의에게 상담을 받고 있습니다. 하지만 그것으로는 부족할 것 같다는 전문가의 의견에 따라 그들의 심리적안정을 도모하기 위해 각자 여성을 소개시켜줄 생각입니다.”

“여성을 소개시켜준다니 신이 나겠군. 하지만 복제인간과 사겨줄 여성들이 있을까?”

“돈 받고 몸을 파는 직업여성들을 소개해줄 계획입니다. 그리고 여성들에 대한 대우는 회사 정직원으로 고용해서 일정 기간 심리학과 관련된 교육도 병행할 예정입다.”

이세종 대통령이 픽 웃었다.

“그건 소개시켜주는게 아니라 그저 복제인간의 성욕을 해결해줄 생각에 전담 여성을 붙여주겠다는 말로 들리는군.”

“실상은 그렇습니다.”

이세종 대통령이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여성단체가 알면 큰일날게야. 회사 밖으로 소문이 안나도록 조심해.”

“조심하라면, 개정안이 통과되도록 도와주시겠다는 말씀이십니까?”

이선주의 물음에 이세종 대통령이 길게 한숨을 내쉬며 깍지를 꼈다.

“글쎄... 좀 고민을 해봐야할듯 싶어. 나야 기꺼이 자네를 도와주고 싶지만, 잃는게 크고 모험을 해야될것 같아서 말이야.”

그 말에 이선주의 표정이 이내 어두워졌다. 하지만 그 말속에는 이선주에게 바라는 기대가 있었다. 해줄테니 무언가를 내놔봐라 하는 묵시적인 요구다.

당연히 이선주가 모를 리는 없었고, 그녀는 더 여우 같아서 어려울 것 같다는 얼굴을 일부러 지어보이는 것이었다.

이세종 대통령이 그녀를 흘끔 보더니, 지나가는 이야기를 꺼내듯이 불쑥 입을 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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