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레지스트 쉴드-172화 (172/285)

172화

게다가 대한민국 최고의 수라인 신우주가 곁에 있으니 사업의 성공은 불보듯 뻔했다. 말그대로 가망성이 있어보였다. 돈 냄새가 풀풀 풍겼던 것이다.

마침내 두 사람은 오랜 오해와 앙금을 풀고 언제 싸웠냐는 듯이 어깨동무까지 하게되었다. 자세한 사업 계획서를 내일 중으로 보내달라는 말을 했고, 사업 자금이 얼마나 필요한지에 관해서 물어보기까지 했다.

그날 저녁은 평화로웠다. 우주와 료코, 소라와 소민, 네 사람이 함께 하는 식사는 처음 있는 일이었고 내내 화기애애 했다.

***

며칠 후.

소라와 소민이 새 회사를 설립하기 위해서 동분서주하던 때였다. 소라는 호텔 사장직에서 스스로 물러났고, 제네틱스를 완전히 떠났다. 가진 주식도 전부 처분해서 새로운 회사 운영에 필요한 자금으로 보태쓰기로 했다. 개인화기나 특수장비차량을 구매할 생각에 방위산업체와 무기상인들을 만나느라 여념이 없었다.

그간 소민은 10억에서 30억 사이의 연봉을 받는 수라들을 선별해 비밀리에 접촉했다. 그들에게 더 나은 연봉과 각종 근로 혜택을 보장해주겠다며 설득에 만전을 기했다.

또 우주는 우주 나름대로 할 일이 있었다. 3월이 되어 레지스트 쉴드의 휴식 기간이 끝나면서 출근을 하기 시작했고, 수희와 함께 찍는 드라마는 연일 승승장구하고 있었다.

그의 악어팀은 평양을 향해 파죽지세로 나아가고 있었다. 기존 악어팀원이 거의 물갈이 되고 새로운 팀원들과 함께 미덥지 못한 호흡을 맞추고 있었지만, 팀원 개개인의 실력 만큼은 상당해서 중간에 맞딱드린 사탄 두 마리도 어렵지않게 잡아낼 수 있었다.

그리 하여 대망의 4월초.

우주는 드디어 악어팀을 이끌고 평양 시내에 진입했다. 그리고 도시 외곽을 찾아 마츠다이라와 이완구가 묻혀있는 동굴의 입구를 발견해냈다.

몇 달을 고대하던 일의 결실이 마침내 눈앞에 있었다.

암석으로 막힌 동굴입구를 홀로 보고 있던 그가 무전기에 대고 말했다.

“여기는 악어1이다. 목표물을 발견했다. 모두 산을 내려가도록 이상.”

[위치가 어디쯤 됩니까? 혼자 계셔도 괜찮으시겠습니까?]

“신경쓰지 않아도 좋다. 임무를 마친 뒤 곧 합류하겠다.”

맹수를 착용하고 있던 우주는 암석을 하나씩 들어 멀리 내던졌다. 동굴의 입구를 열고 안쪽에 잠들어 있는 마츠다이라와 이완구의 심장에 칼을 꽂으면 그뿐이었다.

그러나 모든 것이 그의 뜻대로 되지 않았다.

우주의 맹수는 줄리엣이 정상 작동 하지 않았고, 어째서인지 암석을 들어옮기던 중에 동력이 나가버리면서 사용을 못하게 되었다.

그는 맹수를 벗고 직접 돌을 옮기기 시작했다.

사실, 악어팀에서 리영애를 제외한 다른 팀원들은 그의 생각을 사전에 알고 있었다.

마츠다이라와 이완구를 죽이려는 생각.

박찬우를 비롯해 팀원들은 그가 원하는대로 하게 놔둘 수 없었다.

지시를 따르는척 하던 팀원들은 은밀히 그가 있는 장소로 몰려와 우주를 궁지에 몰아넣었다.

물론 그 선봉에는 박찬우가 있었다.

“전부 당신이 자초한 일이야아!”

맹수를 착용한 찬우가 동굴 입구를 치우느라 정신이 없었던 우주의 등에 칼을 꽂았다. 처음에는 아무렇지도 않은척 다가와 말을 건네더니 우주의 시선이 다른곳을 보고 있을때 과감하게 등을 찔러버렸다. 고주파 블레이드는 우주의 가슴을 뚫고 밖으로 튀어나왔다. 순식간에 살점이 타들어가고 내장기관까지 녹아버렸다.

“크윽...!”

한순간 피가 역류하면서 입을 통해 선혈이 뿜어져 나왔다. 자신의 살이 타는 냄새가 코끝에 진동했다. 우주는 믿을 수 없다는 듯이 두 눈을 크게 떴다. 믿는 도끼에 발등찍힌다는 말이 적격이었다.

“바, 박도령...!”

“헉, 헉, 헉!”

찬우는 숨을 가쁘게 몰아쉬었다. 그리고 자신이 찔러놓고도 무척 겁을 집어먹었는지 재빨리 고주파 블레이드를 거두고 뒷걸음질을 쳤다. 우주가 천천히 뒤돌아보자 찬우는 얼이 빠진 얼굴로 그를 바라봤다.

“저, 전! 하고 싶지 않았습니다. 하고 싶지 않았는데!”

얼굴을 심하게 구기며 울상을 지었다.

“다 당신 때문이야!”

“도, 도대체 왜...?”

우주는 전혀 이해가 되질 않았다. 갈피가 잡히지 않아 당황스러웠다. 찬우가 어째서 이런 일을 저질렀을까?

“당신이 하나를 버렸으니까 이랬던거야!”

하나 때문에 이런 일을? 겨우 여자때문에 살인을?

“어, 어리석소...”

우주는 자신의 가슴을 내려다봤다. 뻥뚫린 가슴에서는 피가 콸콸 쏟아져나오고 있었다. 더 이상 생각할 시간조차 남아있지 않았다.

우주는 천천히 뒷걸음질을 치다가 이내 뒷꿈치가 돌에 걸려 뒤로 자빠지면서 계곡 아래로 굴러떨어졌다.

“이 미친 간나새끼가 다 있나!”

리영애가 불쑥 튀어나오더니 멍하니 서 있던 찬우에게 죽일 기세로 달려들었다.

“상관을 죽이다니 내래 이딴건 보도 못했다우!”

“후욱!”

서로 맹수를 입은 채 땅바닥을 뒹굴렀다. 먼지나도록 엎치락뒤치락 하는 상황을 반복했지만, 후에 도착한 악어팀원들의 총질에 의해 영애는 이렇다할 저항도 못하고 막다른 길에서 도망쳐야만했다.

그러나 적들이 사방을 다 막고 있었고, 탈출로가 보이지 않자 그녀는 우주가 사라진 계곡으로 뛰어내렸다.

“끝났다...”

찬우는 무서웠다. 가슴이 쿵쾅쿵쾅 뛰며 손이 떨렸다. 왠지 엄청난 일을 저질러버린것 같았다. 우주의 피로 젖은 두 손을 바라봤다.

‘여기까지 온 이상 이제 돌아갈 수 없어! 더 악랄한 인간이 되는 수 밖에 방법이 없다고!’

하지만 서 있기조차 힘들었다.

찬우는 그 자리에 털썩 주저앉았다.

신세기 프로젝트는 이제 시작이었다.

찬우는 이후 팀원들을 시켜 동굴 입구에 쌓여있던 암석들을 모조리 치웠다. 동굴 안은 지독히도 어두웠다.

“앞을 비춰 보세요.”

손전등을 비추라는 말이 떨어지기가 무섭게 주황색 빛이 앞을 밝혔다. 동굴 벽 군데군데 등잔이 놓여져 있었다. 몇몇이 다가가 불을 밝히자 동굴 안이 대낮처럼 환해졌다.

한기가 서려 있는 널찍한 공간. 퀴퀴한 냄새가 진동하고 넓디 넓은 동굴안에는 수백개의 관이 정갈하게 널려있었다.

찬우는 코를 막으며 그것들을 물끄러미 응시하다가 모두를 돌아보며 말했다.

“신속히 해체 작업을 실시합시다.”

“하!”

악어팀원들이 한 사람씩 달라붙어서 관을 열고 부적을 떼내기 시작했다.

“음, 아...”

봉인이 풀린 일본병사들이 정신을 차리고 사지를 조금씩 꿈틀거렸다.

일제강점기 시대 군복을 차려 입은 그들은 제각각 관에서 일어나 주변을 두리번 거렸다. 몇십년이나 관에 갇혀있었지만, 제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걸어나갈 만큼 아무렇지도 않아보였다. 다만 얼떨떨해 보였을 뿐이다.

“크윽!”

“컥!”

“아악!”

갑자기 뜻밖의 상황이 발생했다. 깨어난 일본군인들은 하나 같이 목을 붙잡고 구토를 했다. 그러다 하나씩 픽픽 쓰러지더니 몸을 부들부들 떨며 그 자리에서 즉사해버렸다.

레지스트 쉴드는 방사능으로 오염된 지역이다. 수라라면 인체에 아무런 해가되지 않았겠지만 일반인이라면 달랐다. 수십년만에 깨어난 일본 군인들은 초고농도 방사능에 피폭되면서 채 30분도 안되어 대다수 사망하고 말았다.

이는 찬우도 진작에 예상한 일이었다. 정부의 감시를 피해 전방주둔지로 2백여명의 일본군인들을 모두 데려가는 일은 불가능에 가까운 일이었고(전방주둔지에는 각 기업의 수라가 상당히 많다), 그나마 수라로 각성한 이들만 데려가서 후일을 도모하는 것이 신세기 프로젝트를 순조롭게 이끌어나가기에는 안정적이라는 판단이 있었다. 더구나 방사능복을 입었다 하더라도 한사람당 버틸 수 있는 시간은 20여분 남짓이다.

전원 생존할 수 있으리란 보장이 없었다.

그럴바에는 버릴 자들은 진즉에 버리고 오자는게 하시도루와 찬우의 계획이었다. 어차피 일반인의 능력으로 전방주둔지에 있는 수라들을 상대하기는 버겁다.

그래서 살아남은 자라고는 오직 수십년 전 수라로 각성했던 일본군인 20여명과 마츠다이라와 이완구 뿐이었다.

“(하늘을 보는게 오래간만이군.)”

하오리와 하카마를 입은 마츠다이라는 동굴 밖으로 나와 맑은 공기를 한껏 들이마셨다. 한손에는 일본도를 쥐고 새로운 세상을 원없이 바라봤다.

“(봉인을 풀 수 있는 날이 빨리 오기를 오매불망 기다렸습니다.)”

찬우는 정중히 고개를 숙이면서 그 앞에 무릎을 꿇었다.

마츠다이라는 말없이 찬우를 물끄러미 내려다 보았다.

그러다 말했다.

“(쿠로가네 소좌는 어디에 있지? 함께 안왔는가?)”

“(그 계집은 마츠다이라님을 배신했습니다.)”

“(배신?)”

마츠다이라는 믿기지 않는다는 듯이 고개를 갸웃거리며 되묻자, 찬우는 시선을 바닥으로 하고 재차 대답했다.

“(일찍이 신우주의 아이를 임신중입니다.)”

마츠다이라는 그를 지그시 내려다보다가 이내 기가막힌다는 듯이 크게 웃음을 터뜨렸다.

“(나약한 계집 같으니라고.)”

“(여기 공기 참 텁텁하구만.)”

그때 프로이센식 제복 차림의 이완구가 옷에 묻은 먼지를 털며 동굴 안쪽에서 걸어나왔다.

머리를 숙이고 있던 찬우는 슬쩍 고개를 들어 그를 쳐다봤다.

키는 150cm에 얍실한 콧수염과 비굴하게 생긴 얼굴로 돌아다니는 꼬락서니를 보자니 찬우는 제 고조부이면서도 은근히 반감이 들었다. 눈쌀이 찌푸려졌다.

그러나 예를 다하여 그에게 머리를 숙였다.

“몸은 괜찮으십니까? 고조부님.”

이완구는 눈을 깜박이면서 찬우를 바라보았다. 자신과 닮은 구석이 있는지 살펴보는 듯 뜸을 들이더니 말했다.

“고조부? 네가 내 현손(玄孫)이란 말이냐?”

“네.”

찬우의 명쾌한 대답에 이완구는 껄껄웃어보였다. 나라를 팔아치웠음에도 대가 끊기지 않고 이어지고 있음에 매우 기뻐했다.

“이게 바로 현실이지! 내가 시대의 흐름을 보는 안목이 뛰어나다는 증거라구. 암!”

이완구의 웃음은 끊이지 않았다.

그 후 세 사람은 평양을 떠나 전방주둔지로 향했다.

마츠다이라와 이완구를 포함해 일본군인 20여명은 돌연변이 생물의 사체에 몸을 숨기고 전방주둔지에 잠입했다.

그리고 이로 인해 제네틱스는 두 가지 문제를 안게 되었다. 하나는 신우주의 죽음을 세상에 공표해야 한다는 것과, 둘째는 정부측 요원인 리영애의 사망 사실을 어떤식으로 둘러대느냐가 관건이었다.

하지만 둘 다 큰 문제는 되지 못하였다. 마츠다이라가 부활하는 날이 바로 신세기 프로젝트의 본격적인 신호탄이었다. 그들은 이날을 위해 맹수의 양산형 파워드 슈트인 '맹수 어드벤스‘ 100벌을 마련해 놓고 있었다.

마츠다이라가 서울 땅을 밟은 당일날 밤이었다. 마츠다이라와 만나게된 하시도루는 계획을 착착 진행시켰다.

하시도루가 수개월에 걸쳐 일본에서 데려온 300여명의 극우 폭도들을 향해 마츠다이라는 야스쿠니 특공대라 명명하고, 병사 개개인에게 각종 무기와 탄약을 지급했으며 개중에서 뛰어난 자들에게는 맹수 어드벤스를 입게 했다.

같은날 저녁. 제네틱스의 한규만 회장은 수도방위사령관 및 특전사령관을 포함해 서울에 주둔하는 군 수뇌부들을 초대해놓고 초호화 연회를 벌이고 있었다. 이는 일시적으로나마 군부대의 발을 묶어두기 위한 음모였다. 게다가 국방부 장관의 자택으로 맹수 어드벤스를 착용한 소수 병력을 보내 그 신변을 구속했다.

이후, 완전 무장을 한 야스쿠니 특공대가 청와대를 불시에 습격하자, 당황한 정부는 즉각 909 특임대 요원들을 출동시켰다. 주고 받는 치열한 접전속에 짧지만 긴 대치 상태가 이루어졌으나 전세는 점점 사탄을 소재로 만든 파워드 슈트를 착용한 야스쿠니 특공대에게 기울어져만 가고 있었다.

다음날 제네틱스가 대한민국 정부에 반기를 들었다는 소식이 일파만파로 퍼지자, 동시에 소라의 친언니인 소영은 망연자실했다. 그녀가 본래 알고 있던 계획은 마츠다이라를 평양에서 깨우는것이지 회사가 직접 나서서 대한민국 정부와 대립각을 세우는 반정부군 세력이 될줄은 몰랐기 때문이다.

***

서울에서 테러가 일어나기 전.

찬우에게 칼을 맞은 우주가 정신을 잃고 계곡으로 떨어졌을 무렵이었다.

그로부터 두 시간이 흘렀다.

가슴에 구멍이 난 채로 자갈밭에 누워있던 우주.

땅속에서 수백마리의 애벌레들이 기어나와 우주의 손상된 내장기관을 수복시키고 새로운 피부조직을 만들어냈다. 그 신비한 과정이 이루어지는 동안 우주는 한동안 어지럼증을 가라앉히기 위해 가만히 누워 가쁜 숨을 내쉬었다.

머지않아 차츰 정신이 수습되자 그는 눈을 떴다.

“깨어났어?”

============================ 작품 후기 ============================

제가 다른 작품 연재를 시작했습니다.

하지만 그건 신작이 아니고 예전에 12년 3월에 썼던 구작입니다.

지금도 실력이 미천하지만 그건 초창기 작품이라서 더 괴랄한 부분이 많아 그동안 습작으로 돌려놨었는데, 분량도 100화 이상 나오고 썩혀서 뭐하나 하는 생각에 다시 올리기 시작했습니다. 이 레지스트 쉴드 생각하고 보셨다간 큰일납니다...ㅋㅋ당시 연재하다가 중단된 작품인 까닭에 아직 결말을 짓지 못했습니다만, 그때 쓴 분량 내에서 적당히 손보고 완결을 지을 생각입니다.

그리고 유하나...

하나 양은 슬슬 짜증이 나기 시작하실 겁니다.

그래서 조만간...!!

더는 짜증날 필요없이 바로 2화나 3화 뒤에!!

요즘 글을 빨리 쓰는 비법을 점점 터득하는 중입니다.

묘사줄이고 대충대충 넘겨버리면 빨리 써지더군요 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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