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레지스트 쉴드-179화 (179/285)

179화

지연은 무표정한 얼굴로 그리 대답하더니 무릎 위에 가지런히 모은 두 손을 바라보며 시선을 내렸다. 무슨 생각을 하는지 도저히 모를 얼굴이었다.

그녀를 물끄러미 바라보던 소라가 대화를 이어갔다.

“헤라클레스는 어떻게 만들게 된거죠?”

지연이 시선을 들었다.

“회장님께서는 제게 사탄에 대항할 최종병기를 만들고 싶다고 말씀하셨었습니다. 저 또한 거대 로봇을 만들고 싶은 포부가 있었고.”

“그래요. 그래도 지연 씨가 이정도로까지 능력이 있을줄은 몰랐네요.”

“혼자서 만든 것은 아니고 공동 연구였습니다. 미국에서 유학시절, 남궁철민 박사와 함께 대학에서 연구했던 프로젝트를 가져다 쓴것이죠.”

소라는 눈썹을 꿈틀거렸다.

“남궁철민 박사라면 신라그룹의?”

“네. 그 사람입니다. 신라그룹의 로봇공학자로 재직중인.”

“그렇군요.”

“당시 구상했던 헤라클레스는 자동차만한 크기의 무인 로봇이었습니다만, 부품의 소형화 불가능과 기술 부족, 자금란으로 실현이 불가능해 보여 연구를 폐기했었죠.”

“그랬었군요. 제네틱스에서 헤라클레스를 개발중인걸 어째서 제가 알지 못했나요?”

“헤라클레스는 1급 기밀 보다 높은 특급 기밀입니다. 아시다시피 특급 기밀은 해당 부서의 최고 책임자와 회장님만이 알 수 있는 기밀이죠.”

“아하, 그래서 지연 씨와 우리 아버지만이?”

“네.”

“하시도루는요? 하시도루는 아버지의 별장으로 온적이 없었나요?”

“그런 사실까지는 정확히 모릅니다. 저는 회장님만 알고 있다고 생각했기에.”

“아마 하시도루도 알고 있었을거란 생각이 드는군요. 이번 반란을 위해 만든 괴물이니까 아버지만 알고 있었을리 만무했었을테고.”

목소리에 힘이 없다. 깊은 근심. 당혹감. 소라는 헤라클레스의 존재를 우려하는 것이다. 이대로라면 대한민국의 수도 서울이 함락되는 것은 그야말로 시간 문제.

“방법이 아주 없는 것은 아닙니다.”

“......?”

바닥으로 향했던 시선이 지연을 바라봤다.

“무슨 말이죠?”

“저들에게 맹수와 맹수 어드벤스를 빼앗겼긴 했지만, 전부 빼앗긴 것은 아닙니다.”

애당초 맹수는 총 3기가 있었지만, 후에 추가로 개발된 한 기를 포함해 총 네 기가 세상에 존재했고, 한 기는 영애가 평양에 버렸고, 남은 두 기는 찬우가 가져갔다.

“남은게 있었나요?”

“예.”

지연은 말을 이었다.

“남은거라고는 고작 1기에 불과하지만, 가장 성능이 우수한 녀석입니다. 신우주가 착용했던 맹수 001호죠. 이 불리한 상황을 완전히 반전시킬 수는 없겠지만 조금이나마 도움은 될거라 생각합니다.”

“그게 어떻게 해서 저들에게 빼앗기지 않고 남아있죠?”

“신우주가 행방불명되고 나서였습니다. 전 여느때와 같이 맹수 001호를 점검할겸 전방주둔지에서 인천의 연구실로 가져왔었죠.”

“점검이라면 맹수의 A.I 시스템, 줄리엣 때문에?”

지연은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줄리엣은 아직 실험 과정에 있고, 꼼꼼하게 지켜봐야할 어린 아이와도 같으니까요. 그런데 맹수 001호를 점검하는 과정에서 이상한 문제점을 발견했습니다. 인위적으로 고장을 일으킨 흔적이 보였거든요.”

“딱봐도 그들의 짓이었겠군요. 우주 씨를 죽일 생각으로.”

소라의 목소리에는 명백히 화가 깃들어 있었다.

“인위적으로 맹수가 고장난 것을 알고 어떻게 대처했나요? 모르는 척 했나요?"

“생각할 시간도 없었습니다. 회장님께서 보낸 일본인들이 연구실 문을 급하게 두들겼거든요. '맹수를 가지러 왔다' 라고 고함치면서 문을 열라고 난리더군요.”

듣고 있던 소라는 조소를 날렸다.

“어리석네요. 저같으면 직접적으로 말을 안하고 당신에게 잠시 볼일이 있어 왔다고 했을텐데.”

“그게 좋았을지도 모르죠. 좌우간 그 말을 듣는 순간, 맹수에 장착된 줄리엣을 보호하기 위해 전 손을 써야만 했습니다. 귀중한 연구데이터를 잃을 수는 없었거든요. 그래서 나중에 꼭 되찾자라는 심정으로 그 길로 맹수를 사출시켰습니다.”

소라는 고개를 갸웃했다.

“연구실에서? 어떻게? 연구실에는 맹수를 사출시키는 장치인 캐터펄트가 설치되어 있지 않았을텐데요? 설치할 수 있을리도 없고.”

“설명이 짧았군요. 당시 전 문을 열어줬었습니다. 안열어줬으면 문을 부수고 들어왔을테니까요. 그리고 그들의 요구에 순순히 따르는척 하며 캐터펄트에 맹수를 옮기고 나서 언제든지 사출이 가능하도록 준비시켜놨었죠. 물론 캐터펄트를 원격으로 조종할 수 있는 리모콘을 주머니에 감춘채 말이죠.”

“아아.”

그제야 이해가 된다는 양 소라는 고개를 끄덕였다.

“양평의 별장엔 왜 가게 된거예요?”

“그들에게 맹수를 빼앗기고 나서 회장님에게 곧바로 연락이 왔습니다. 헤라클레스를 구동시킬테니 와서 도와달라고 하시더군요. 야스쿠니 특공대라든지 제네틱스의 반란 같은 그 어떠한 설명도 없이 말이죠.”

그녀는 이어 말했다.

“갑자기 헤라클레스의 구동이라니, 게다가 맹수까지 강제적으로 압수당한 마당에 왠지 속고 있다는 기분이 들었습니다. 그리고 일본인들의 호위를 받으며 회장님이 계신 양평의 별장으로 이동하는 도중에 인터넷에 올라온 기사를 통해 이번일의 내막을 자세히 알게 되었죠. 이 안경으로.”

지연은 상의주머니에 꽂혀있던 안경을 꺼내서 보여주었다.

소라가 물끄러미 바라보다 물었다.

“인터넷 서핑이 가능한 웨어러블글래스인가요?”

“네.”

“그 안경으로 모든 정황을 파악했고, 그 다음엔?”

“완성된 헤라클레스를 멈추기엔 이미 늦었고, 회장님께서 절 별장으로 부른 이유는 사실 제게 반란에 가담해달라며 종용하기 위한것이었습니다.”

“거부했겠군요.”

“한국인 부모님 슬하에서 태어났기에 생김새만 한국인이지 전 미국 국적을 가진 미국인입니다. 한국과 일본, 두 나라 간의 싸움에 왜 제가 껴야 하는지 이유를 모르겠더군요. 껴야할 명분도 없는데.”

“헤라클레스와 맹수의 개발자라서 그랬겠죠. 아무튼 그래서 그 뒤로 맹수를 원격으로 사출시키고 독방에 갇히신 건가요?”

소라의 물음에 지연은 살며시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다면 맹수는 지금 어디에 있죠? 어디로 날려보냈습니까?”

“그건 모릅니다.”

“예...?”

소라는 어이없는 눈길로 그녀를 바라보았다.

“왜 몰라요?”

“저들에게 붙잡히기 직전, 캐터펄트를 원격으로 급하게 사출시키느라 착륙 좌표를 제대로 설정하지 못했습니다. 손까지 떨렸거든요.”

소라는 낙심한 얼굴로 지연이 한 말을 되뇌이며 입으로 중얼거렸다.

“손까지, 떨렸다라......”

이후 소라는 지연을 설득해서 자신들을 도와달라고 부탁했다.

그에 지연은 혼쾌히 수락했다. 맹수 001호에 장착된 줄리엣 시스템이 소중했는지 그녀는 별다른 요구는 하지 않고 비상대책본부에 머무르기로 약속했다.

“절 따라오세요. 좀 구경시켜드리겠습니다.”

소라는 대화를 마친 후 지연과 함께 방을 나섰다.

북적이는 사람들이 눈에 들어왔다.

150평 규모의 중형 마트를 통째로 빌려 사용하는 비상 대책 본부.

널따란 공간은 매우 복잡하고 어지러웠다.

각종 식료품과 생필품이 놓인 선반들을 한쪽 구석으로 모두 치워놓고, 중앙에 여러개의 테이블을 가져다놓아 상황실과 작전실, 회의실로 쓰는가하면 칸막이만 쳐놓고 수면실, 치료실, 군수품 창고로도 구역을 나누어 사용하고 있었다.

“지저분하죠? 저도 쫓기고 있는 처지라 여기라도 만족하며 쓰고 있습니다.”

소라의 말에 지연은 주변을 둘러보더니 물었다.

“밖으로 내보낼만한 가용병력은 없나요?”

“비상 대책 본부를 지키기 위해 편제상 분류해놓은 병력이야 있지만 아무것도 모르는 자들의 손에 총을 쥐어준것 뿐입니다. 그렇다보니 실상 가용병력은 단 한 명뿐이죠. 지연 씨를 구출해줬던 강미라 말입니다.”

“혼자서 작전을 수행하기에는 버거워 보이는 군요.”

소라가 미소를 지었다.

“그건 걱정마세요. 적진 한가운데에서도 당신을 구해온 사람입니다. 혼자서 일당백의 역할을 하죠.”

주변을 둘러보는 지연의 시선은 극히 진지했다.

“가용할 수 있는 병사는 한명 뿐인데, 사람들이 불필요하게 많은건 아닌가요?”

“불필요하다니요. 여기 있는 사람들은 전원 제네틱스인입니다. 국가 반란자들이란 누명을 벗기위해 지방에서 올라온 사람들도 있죠. 이들은 현재 자신들의 인맥을 총동원해 진실을 밝히는데 총력을 다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저쪽 보이시나요?”

소라는 20대 가량의 PC 앞에 앉아있는 무리를 가르켰다.

“댓글 부대입니다. 인터넷에 제네틱스 전직원들은 대역죄인이라는 기사가 뜰때마다 그것은 친일성향의 소수일뿐이라는 댓글을 달거나 각종 커뮤니티에 혈혈단신으로 처들어가 이번 사태의 진실을 알리는 글을 남기고도 있지요.”

지연은 계속해서 소라를 따라다녔다. 소라가 사람들에게서 각종 정보를 수집하고 작전 계획을 수립하는 동안 그녀는 묵묵히 소라가 하는 일을 지켜보기만 했다. 도중에 신라그룹의 전 경영운영본부장이었던 한소민과 마주치기도 했다.

소민은 소라에게 다가가 누군가를 찾았다고 말을 해주었다. 그에 소라의 귀가 솔깃했다. 웃으며 고개를 끄덕인 후 지연과 다시 발걸음을 옮겼다.

소라를 따라 커텐이 처진 구역에 도착하자 소라가 지연에게 말했다.

“맹수의 위치를 파악하는 동안 이 안에서 쉬고 계세요. 찾으면 사람을 보내겠습니다.”

소라가 커텐을 휙 열어 재끼자 좁다란 그 안에 두 명의 여성이 있었다.

료코와 미라였다.

소라가 상냥한 목소리로 말을 건넸다.

“(료코 씨 몸은 좀 괜찮나요?)”

접이식 침대에 누워있던 료코가 화난 얼굴로 미라를 가르키며 소리를 쳤다.

“(이 계집 좀 데려가거라! 옆에서 종알종알 시끄럽게 구는 것이 방해가 돼서 쉬지를 못하겠다!)”

“좋으면 좋다고 그러지 왜이리 속을 감추실까. 후후, 겉으로 강한척 굴더니 실은 부끄럼쟁이인가?”

“(허튼 소리하지 말거라 이년!)”

“자자, 두 분 적당히 하시고, 미라 씨는 제가 데려가겠습니다. 료코 씨는 그동안 푹 쉬세요.”

그러자 미라가 앉아있던 자리에서 일어나며 소라를 보고 환한 미소를 지었다.

“녀석을 찾았나 보죠?”

“네, 찾았습니다.”

“무료하던 차에 잘됐네요. 어디죠?”

============================ 작품 후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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