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레지스트 쉴드-180화 (180/285)

180화

<9권>

안양.

완구특공대로 편입된 찬우는 병사들과 함께 육군본부가 있는 대전을 비롯해 남부지방에서 올라오는 군병력들을 저지하며 서울로의 북진을 방해하고 있었다.

그런 와중에 부하에게서 무언가를 찾았다는 보고가 들어왔다.

“(여, 여기! 대장님이 착용한 것과 똑같은 것을 발견했스므니다!)”

찬우가 수풀이 우거진 곳으로 당장 달려가보니 나무가 부러진 곳 사이에 눈에 익숙한 물건이 바닥에 내팽게쳐져있었다.

그 오른쪽 어깨 장갑에는 검은 잉크로 맹수-001 이라는 글씨가 새겨져 있었다.

찬우는 이게 왠 떡이라는 표정으로 웃었다.

‘이건 신우주가 착용하던 맹수가 아닌가!’

그리고 자신이 고장냈던 부위를 찾아보니 완벽하게 수리가 되어있었다.

“아마 전지연 박사가 수리를 해놓은 것일테지. 어쨌든 잘됐다!”

야스쿠니 특공대와 완구 특공대를 합해 자신들이 보유한 맹수는 총 두 기. 북부 전선을 맡고 있는 하시도루가 맹수 2호를, 남부 전선을 맡고 있는 찬우가 맹수 3호를 가지고 있던 상태였다.

“(너희는 이것을 이완구 소장님께 전해드리거라.)”

찬우는 자신의 고조부인 이완구를 떠올리며 병사들을 시켜 맹수 1호를 수거해갔다. 동부 전선을 맡고 있는 이완구는 현재 맹수 어드벤스를 가지고 있었으나 그 성능이 프로토타입인 맹수보다 못한 장비였다.

그렇게 맹수 1호를 실은 5톤 화물차량이 경기도 구리시로 출발했다.

***

마츠다이라와 제네틱스 한규만 회장이 전쟁을 일으키기 전 제일 첫번째로 한 일은 전방주둔지로 출근한 각 기업 수라들의 손과 발을 꽁꽁 묶어놓는 일이었다.

전쟁 당일 전방주둔지로 출근한 수라의 숫자만도 대한민국이 보유한 전체 수라 중 약 60% 가량이었다.

북부 전선을 맡은 하시도루는 최신식 무기와 30기의 맹수 어드벤스를 동원해 전방주둔지 입구를 봉쇄하며 수라들이 정문 밖으로 나오지 못하게 견제 하였다.

국내 탑을 달리던 기업에서 만든 맹수 어드벤스를 상대하는 것은 버겁다. 수라들은 이렇다할 저항도 못하고 졸지에 갇히는 신세가 되고 말았다.

게다가 통신 방해로 인해 외부와 그 어떤 연락도 취할 수 없었다. 처음에는 모두가 한결같이 우왕좌왕했지만 곧 각 기업 대표들이 나서서 국가 위기관리 대응 메뉴얼대로 움직였다.

위기 관리 대응 메뉴얼이란 단순했다.

각 기업이 연합해 군 통제하에 있는 수라 부대가 전쟁기간에만 임시로 창설되는 것이었다. 이는 어디까지나 국가 위기나 전쟁 시에만 발동되는 것으로 나라를 구하는데 기업 또한 한마음으로 뭉치겠다는 것을 의미했다.

이들 부대의 명칭은 '기업 연합 합동 부대' 줄여서 기연합이라고 불리웠다.

전방주둔지.

레지스트 쉴드 입구에 세워진 위병소.

갑작스레 경고음이 울리자 졸고 있던 위병조장이 화들짝 놀라며 잠에서 깨어났다. 20대 중반의 나이에 반들거리는 연녹색 슈트를 입은 그는 허둥지둥대다가 무전기를 떨어뜨리고 말았다. 경계를 서다가 꾸벅꾸벅 졸았다는 사실을 들키기 전에 냉큼 무전기를 주워 들었다.

혹시나 자신을 부르지는 않는지 긴장한 얼굴로 무전기를 귓가에 대고 침을 삼키고 있었다.

다행히도 무전기에서는 아무런 반응이 없다.

그는 황급히 시선을 옮겨 게이트 밖 2km 이내 생명체를 감지하는 모니터를 바라봤다. 3D 모델링 된 입체지도. 한 개의 빨간 점이 산줄기를 타고 빠르게 내려오는 중이었다.

“저거 뭐야?”

어젯밤 레지스트 쉴드로 정찰을 나갔던 인원들이야 조금 전 전원 복귀하였다.

“미복귀인원은 아닐테고. 그런데 사람이라고 치기에는 걸음걸이 너무 빨라. 게다가 저 지역은 험악한 산길이라 차로 이동하는 것도 어려울텐데 어째서 이렇게 빠르게 움직이는 거지? 설마 하늘을 나는 돌연변이 새인가?”

잠깐 고민하던 그는 무전기를 통해 지휘통제실로 보고 했다.

보고를 받은 지휘관은 즉시 병사를 소집해 들판으로 나아가 살펴보라고 지시했다.

거대한 돌연변이 새는 우주와 영애를 언덕에 내려준 뒤 곧바로 하늘로 날아올랐다.

커다란 날개짓이 점차 안보일즈음 두 사람은 널따란 들판을 걷고 있었다. 깜깜한 밤길을 비출 이렇다할 조명장비도 없었지만 두 사람은 아랑곳없이 앞으로 걸어나아갔다. 저 멀리 환하게 불빛이 비치는 전방주둔지가 그들의 유일한 이정표였다.

“대장 동무.”

영애가 부르자 나란히 걷던 우주가 대답없이 돌아보기만했다.

“그 마츠다이라라는 작자 말입네다. 정말로 일제강점기 시대 사람입네까?”

“그렇소. 옛날 사람이외다.”

“그런 인간이 어쩌다 오늘날까지 살게 되었습네까? 저로선 도무지 믿겨지지 않는 일이라요.”

“세상엔 참 신기한 일이 많소. 따지고 보면 수라라 불리는 우리도 그렇잖소. 평범한 인간을 상회하는 능력을 가진 우리의 존재부터가 불가사의한게 아니겠소이까. 어느날 갑자기 500년을 산 사람이 나타난다고 해서 그리 놀랄일은 아니라고 보오.”

“아, 그러기도 합네다.”

영애는 깨달음을 얻었는지 손뼉을 한번 마주쳤다.

“대장 동무는 정말 말을 잘하십네다. 이해가 팍팍 되는기라요. 우리부터가 믿기 힘든 존재들인데 불쑥 마츠다이라 같은 옛날 인간이 나온다한들 어떻습네까? 지금 시대의 세상 이치를 보면 당연할지도 모르갔구만요.”

“그런거요. 지금 세상은.”

우주는 웃었다. 미소가 아니라 씁쓸한 웃음이다. 영애가 신기하게 여기는 마츠다이라의 존재. 실은 자신도 마츠다이라처럼 수십년, 아니 100여년을 건너뛰어온 과거의 인간이다.

영애에게 옆에 있는 자신 역시 과거에서 온 인간이라는 말을 하면 어떤 반응을 보일까? 지금처럼 평범하게 대화할 수 있을까? 자신을 어렵게 생각하지 않을까?

우주가 사색에 빠져 걷는 동안 영애가 또다시 말을 걸어왔다.

“마츠다이라 고아새끼를 막을 수 있겠습네까?”

우주는 일말의 고민도 없이 목소리에 힘을 주어 대답하였다.

“막을 수 있소이다.”

“막을 수 있다면 굳이 이렇게 서둘러야 할 필요가 있습네까?”

“......?”

“대장 동무의 얼굴을 보면 압네다. 무언가 굉장히 쫓기고 있어보입네다. 우리를 보십디오. 벌써 이만큼 걸어왔습네다.”

영애는 발걸음을 멈춰서며 뒤를 돌아보았다. 손으로 먼 곳을 가리켰다. 돌연변이 새가 내려준 장소였다. 그곳에서 부터 걷기 시작하여 고작 몇마디 나누었을뿐인데 벌써 500미터 이상을 걸어온것이다.

“순리대로 하나씩 풀어가면 될텐데 왜 이리 다급하신겁네까? 쫓아가다 가랑이 찢어지갔습네다.”

“아까도 말했듯이 한 여성을 지켜내기 위해서요. 마츠다이라는 분명 그녀를 잊지않고 제일 먼저 찾아갈것이외다. 늦지않게 도착해야 할텐데 큰일이오.”

“대장 동무가 말하는 그 여성이, 대장 동무에게 그리도 소중한 사람입네까?”

우주는 조금의 주저함도 없이 대답했다.

“소중하오.”

“소중하단... 말이디요...”

영애는 잠시 생각하다가 입을 다물었다. 무언가를 고민하는 눈치였다.

‘대장 동무 주변에 계집이 있으면 앞으로 임무 수행이 어려워질지도 몰라! 그러기 전에 죽도록 내버려두는게 훨씬 편할지도!’

질문을 꼬박꼬박 하면서 말이 많던 영애가 한동안 입을 꾹 닫고 있자 그것을 의아하게 여긴 우주가 물었다.

“무슨 고민이라도 하고 있소? 혹시나 힘들면 여기서 쉬다와도 좋소. 소생이 먼저 가서 이리로 사람을 보내리다.”

“아, 아닙네다. 그게 아니라.”

우주를 따라 걷던 영애가 갑자기 뒤에서 그의 손을 붙잡았다.

우주가 조금 흠칫하며 걸음을 멈추고 그녀를 돌아봤다.

“왜 손을 잡는거요?”

“잡으면 안되는 겁네까?”

영애가 똘망똘망한 눈으로 마주본다.

“그렇게 물으면 할말이 없지서도... 좀 당황스럽구려.”

“지금 그냥 대장 동무의 손을 잡고 싶었습네다. 마음이 심란해서요.”

“긴장을 해서 그런것 같소. 곧 벗어날 수 있을터이니 안심하고 서두릅시다. 소생이 옆에 있는 한 아무일도 없을게요, 그럼.”

우주가 손을 떼려하자 영애는 힘을 더 꽉주면서 놓지 않으려했다.

우주는 난처한 표정을 지었다.

“낭자, 우리는 연인 사이도 아니고...”

영애가 말을 잘랐다.

“가만보네까 우리 대장 동무는 지금 기운이 너무 넘치시는겁네다. 기운이 너무 넘치셔서 사리분별을 못하는 것 같아 내래 심히 걱정되지 뭡니까?”

“그게 무슨소리요. 난 정신이 멀쩡하오만?”

“틀렸습네다. 대장 동무는 지금 혈기가 왕성하여 천천히 생각해서 할일을 급히 서두르고 있습네다.

무작정 일을 벌였다간 목숨이 날아갈지도 모르는 판국에 계집 하나 살리겠다고 너무 무리하시는 것 같습네다. 이런저런 임무 사례를 통틀어봐도 그러시다간 큰일납네다.

이 상황을 더욱 합리적으로 볼 수 있도록 마음을 진정시킬겸 저랑 어디가서 좀 쉬어가시디요.”

“쉬다가라니 여기에 쉬다갈 곳이 어디있단 말이오?”

“이것보십디요. 그러면서 아깐 저보고 먼저 갈테니 쉬다오라고 하셨잖습니까? 대장 동무는 지금 기운이 넘쳐 사리분별이 어려우신겁네다.”

“그거야 정 힘들면 쉬다오라는 거지, 나는 쉬고 싶은 생각이 없으니까...”

우주의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영애가 우주의 팔을 두 손으로 붙잡고 구석으로 억지로 끌고 가려고 했다.

“기운이 넘치면 주제를 모르거 설칠때가 많습네다. 그러니 내래 안되갔시요. 대장 동무 기운 좀 빼고 보낼 생각입네다. 따라오십디요! 이리갑세다!”

그러나 우주에게 힘으로 안되었다.

“소생은 쉬다 갈 생각이 없소!”

“계집이 난데없이 굴면 눈치 껏 오시디요! 좀!”

우주가 완강히 버티며 저항하자 그녀는 힘쓰던것을 멈추더니 뜬금없이 그의 고추를 꽉 움켜쥐었다.

“허억! 지, 지금 뭐하는 거요! 당장 놓으시오!”

“여기에 쌓인걸 빼주겠단 소립네다! 잠깐이면 되는데 그것도 못하십네까?”

“지금 이런 상황에 대뜸 그게 무슨 소리요! 사리분별을 못하는건 낭자 같구려! 얼른 놓으란 말이오!”

“모든 동물은 스트레스와 불안감이 심해지면 종족 유지본능이 발휘되어 성욕이 증가한다고 합네다. 대장 동무도 그만 자존심을 굽히시고 자연의 섭리를 따라가시디요!”

“무슨 말을 하는건지 모르겠소이다!”

“내래 한마디로 대장 동무가 불안정 해보여 정신차리도록 봉사해주겠단 소린데, 황송하다고는 못할 망정 다 큰 처녀를 계속 부끄럽게 하실생각입네까?”

우주는 기가막혔다.

“내가 해달라고 한것도 아니고, 괜찮으니 어서 그만 놓으시오!”

하지만 영애는 고추를 놓지 않고 그를 향한 구애를 이어나갔다.

“발정난 처녀를 눈앞에 두고 그렇게 호구처럼 가만있디만 말고 여기 가슴도 만져보시디요. 여기, 여기말입네다.”

영애는 고추를 꽉 움켜잡은 채 다른 손으로 우주의 손목을 붙잡더니 자신의 젖가슴쪽으로 가져가 강제로 비비도록 했다.

그러나 우주의 표정이 영 신통치 않자 영애가 물었다.

“안 꼴리십네까?”

“꼴리긴 뭘 꼴리오! 어째서 그러는가는 모르겠소만 적당히 하고 이만 갑시다!”

“잠깐이면 된다 하는데 왜 이리 고집을 피우십네까? 어서 바지부터 벗으시라요. 내래 입으로 시원하게 빼주겠습네다.”

“그, 그만!”

온힘을 다해 우주의 슈트를 벗기려는 영애.

그것을 막으려는 우주와 한데 뒤엉켜 바닥을 뒹굴렀다.

“그, 그만!”

“힘 좀 빼보시라요! 뭔놈의 사내가 이리도 힘이 쎕네까?”

넘어진 와중에도 영애는 멈추지 않았다. 우주를 강간하려고 작정을 했는지 무서운 기세로 달려들었다.

그럼에도 우주가 끝까지 저항을 하자 이내 지쳐 풀숲에 털썩 눕더니 숨을 씩씩거리며 짜증을 냈다.

“제 자존심도 좀 생각해주지 않겄습네까? 계집이 먼저 짐승처럼 달려드는것도 힘든겁네다! 거 좀 사내면 사내답게 적당히 저항하고 사랑과 정열을 저에게 쏟으시라요!”

우주가 무릎을 털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지금 이럴 상황이 아니오. 정 소생과의 교합을 원한다면 다른 좋은날을 골라 말하시오. 오늘은 이게 아니란 말이오.”

영애가 콧방귀를 뀌었다.

“하이구. 내처럼 곱고 예쁜 계집을 남조선에서 본적이 있습네까?”

“없긴하오.”

“그럼 이리도 예쁜 계집을 눈앞에 두고 지금 상황이고 뭐고 다른데 신경쓸 겨를이 어디 있다는 겁네까! 속살도 하얗고 부드러우니 어디 한번 품어보시디오! 공짜로 대주는것만도 영광인줄 알란 말입네다!”

“허허, 그 처자 참. 안된다니까!”

두 사람이 말로 옥신각신 실랑이를 벌이는 가운데, 한 무리의 사람들이 쥐도새도 모르게 그들을 향해 조용히 접근해왔다.

“동작 그만!”

문득 허공에서 목소리가 들려왔다.

바짓가랑이를 붙잡고 놔주지 않던 영애를 설득하는데 열중이던 우주가 무심코 뒤를 돌아보았다.

형형색색의 슈트를 입은 무리들이 어느새 자신들을 포위한 채 총을 겨누고 있었다.

그 중 한 사람이 이를 갈며 소리쳤다.

“이 반란자 새끼들아! 여기서 뭐하고 있었어!”

그들은 우주와 영애가 입은 제네틱스 슈트를 보고 맹렬한 적대심을 드러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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