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6화
그는 총알 같은 반사신경을 발휘해 연달아 쏟아졌던 두 발의 빔을 다 피해낸 뒤, 상대와 거리를 좁혔다.
그리고 어느새 상대의 멱살을 움켜잡고 건물 안쪽 벽으로 밀어붙였다.
번개 같은 속도로 빔 라이플을 빼앗은 뒤 조용하게 속삭이듯 귓가에 대고 물었다. 지금 우주의 눈빛은 밤에 보는 야생짐승의 눈빛과 똑같았다. 차갑고 살벌한 그것 말이다.
“네놈들은 대체 누구냐? 어디에서 온거지? 마츠다이라는 어째서 이런 신식 장비와 다수의 병력을 갖고 있을 수가 있는거냐!”
“(사, 살려줘. 살려줘, 살려줘......!)”
말을 보아하니 상대는 일본인이었다.
그래서 다시 물었다.
“(네놈은 대체 어디서 온것이지?)”
“(모, 모른다. 난 몰라. 아무것도 몰라. 난 그저 밀리터리 오타쿠고, 누군가가 인터넷상에서 한국에 오면 재밌는 일이 벌어진다고 사람을 모집하길래 온것 뿐이야. 난 죄가 없어 죄가 없다구. 살려줘. 제발 살려줘....!)”
“(시끄럽다. 아무죄도 없다면서 이곳에 와서 사람을 향해 총질을 해? 이 가당찮은 놈!)”
“(그, 그거야 하다보니까 이렇게 되어버린 걸 나, 난들 어, 어쩌겠어......!)”
그때였다.
순간 작고 붉은점이 나타나더니 남자의 이마 부분을 지나 자신을 겨누었다.
우주는 정조준을 당하기 전 민첩하게 뒤로 공중제비를 돌았다.
지잉!
“크아악!”
빗나간 빔이 조금 전 일본인의 신체를 꿰뚫었다.
“(저쪽으로 숨었어!)”
“(쏴!)”
지잉! 지잉! 지잉!
빔이 연속으로 빗발쳤다.
우주는 가게 냉장고를 방패 삼으며 즉시 입구쪽으로 대응 사격을 가했다.
지잉!
지잉!
항상 다루던 총이다 보니 명중률은 가히 사기적인 수준이다. 입구에 있던 두 사람을 순식간에 제압했다. 제 총이 아니다 보니 평소보다 몇발을 더 쐈지만 말이다.
“필요한게 있을지도 몰라.”
죽은자들의 몸을 뒤져 빔 라이플 외에 쓸만한 물건이 없는지 몸을 수색했다. 빔 라이플 소형 충전기, 광학조준장비, 방풍고글, 방탄헬멧, 피아식별 표시기, 수류탄, 컴뱃 나이프, 방탄조끼, 로프건 등등 군에서 지급해준것보다 월등히 뛰어난 장비들이 쏟아져나왔다.
우주는 군에서 지급해준 장비들을 군복과 군화 빼고 죄다 버리고 주운 것들을 착용했다.
그리고 서둘러 건물을 빠져나와 다시 전장에 참가했다.
밖은 이미 아군 적군 너나할것 없이 한데 뒤섞여 싸우고 있었다. 난전이었다. 적들도 머리가 있는지라 아군의 후방이나 측면쪽으로 돌거나 소수 정예가 건물에 숨어 게릴라 전을 펼치기도 하였고, 이쪽 아군 역시 같은 작전을 쓰다보니 서로가 꼬리를 물고 물리는 그런 형국이 되어 버렸다.
애당초 전차와 포병 화력으로 건물들을 순차적으로 파괴하면서 전진하면 좋겠지만, 전방주둔지에 갇혀있는 셈이나 마찬가지인 군부대와 기연합 측은 보급루트가 막혀있는 상태였기에 가능한 포탄을 아끼는 것이 중요했다.
그렇다보니 지형지물과 자연환경을 이용한 게릴라식 전투에만 의존했다. 건물이나 구조물이 많은 시가전의 특성상 부대의 통제가 곤란하며, 더욱이 무선통신까지 제한받은 상태였다. 소대 규모로 무리를 지어 다니는 아군이 많았고, 적들도 마찬가지였다.
한편, 옆동네에서 소리를 듣고 지원온 적들도 더러 있었다. 그들은 영리하게도 주변 건물 상층으로 올라가 아군을 조준사격 했으며 우주는 그것을 놓치지 않았다.
우주는 쥐도새도 모르게 건물 내부로 들어가 옥상으로 올라갔다.
지잉! 지잉!
바닥에 엎드려 있는 적을 향해 주저없이 총을 쏘았다.
이곳은 전쟁터다. 살인자가 되었다느니 생명의 소중함 따위 생각하다가는 딱 죽기 알맞은 장소였다.
우주는 100여년 전에 느꼈던 기분을 또다시 새록새록 느끼고 있었다.
적을 죽이지 않으면 내가 죽는 상황.
“이런 기분...... 정말로 간만이군.”
동시에 옥상 아래에서는 여러사람이 동시다발적으로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고 있었다.
그 소리는 총성 보다도 컸다.
“(거머리가 투입되었다! 더 힘을 내라!)”
“후, 후퇴하라! 거머리가 나타났다!”
야스쿠니 특공대와 군부대, 양측의 반응은 극과 극이었다.
한쪽은 크게 기뻐했고 다른 한쪽은 절망에 빠진듯 좌절했다.
그러나 우주는 승리하는 방법을 누구보다도 더 잘알고 있었다.
“저 거머리라는 것을 쓰러뜨린다면......!”
전황을 뒤집는 것이 가능했다.
아군의 사기만 올라간다면 한 사람이 세 사람 이상을 상대하는 것이 결코 어렵지만은 않은 일이된다.
우주는 옥상 위에서 주변 건물들을 빠르게 훑었다.
도로, 주택가, 상가, 모든 것이 컴컴한 연기에 뒤덮여 있었다. 그 틈을 비집고 군복을 입은 아군 병사 네 명이 어렴풋이 보였다. 그들은 멍하니 그저 피어오르는 연기 속을 응시하고 있었다.
“저, 저깄다!”
“나, 나왔어!”
연기속에서 거머리가 나왔다.
신장 2m의 괴물.
옷이라고는 아무것도 걸치지 않은 거머리는 혈색이 시커멓게 죽어있었고, 몸 전체에는 핏줄이 퍼렇게 날 서 있었다.
게다가 목은 45도 정도 기울어져있었고, 거대한 어깨에 제멋대로 흔들리는 팔의 근육이 무시무시했다.
“그르르르르르... 그르르르.......”
거머리는 기괴한 소리를 입밖으로 내며 걸어나왔다.
흉측한 외모는 그렇다치고 걷는 모양도 뭔가 상태가 안좋아보였다. 마치 마네킹이 삐거덕 삐거덕 거리며 걷는것처럼 보였다.
“쏴, 쏴쏴!”
“뒈져버려!”
“이거나 먹어랏!”
긴장한 병사들이 미친듯이 총을 갈겨댔다.
우주도 위에서 사격을 가했지만 어림도 없었다.
거머리는 별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피부가 들쭉날쭉 찢어지고 구멍이 나는데도 비명조차 지르지 않았고 심지어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도 모르는 듯이 그저 꿋꿋하게 병사들을 향해 비틀비틀 걸어나갔다.
“으아아아! 여, 역시 피합시다! 도망가는게 좋겠어요!”
“기, 기다려!”
“왜, 왜 그러세요 김병장님! 이러다 죽겠어요!”
“뛰, 뛰었다간 우리 전부 죽을지도 몰라. 뛰, 뛰면 개처럼 뒤쫓아온다는 소리를 들었어. 저놈도 뛰어온다구!”
“저렇게 느리게 걷고 있는데 뛰다니요? 저거 보면 모르십니까? 영화속 좀비라구요! 좀비! 좀비는 느리게 걷지 뛰지는 못해요!”
“시끄러워! 내가 어떻게 알어! 난 그냥 저놈이 사람보다 더 빠르다고 듣기만 했단 말이야 빌어먹을!”
“그럼 어째야 합니까? 어떻게 하실거예요!”
“일단 소리 좀 낮춰.”
김병장은 느릿느릿 비틀비틀 걸어오는 거머리를 보며 침을 꼴깍 삼켰다.
“처, 천천히... 뒤로 후퇴할 수 밖에.”
겁을 집어먹은 병사들은 이도저도 못하고 그저 한발짝씩 뒤로 물러났다. 어찌나 긴장했는지 들고있는 소총의 떨림이 그대로 보일 정도였다.
불행하게도 다리가 긴 거머리의 걷는 속도가 더 빨랐다.
점점 간격이 좁혀지자, 조금 전 김병장과 말을 주고받았던 상병이 뒤로 휙 돌더니 혼자서 힘껏 도망치기 시작했다.
“이러다 다 뒤질라구!”
김병장이 뒤를 돌아보며 고함을 질렀다.
“뛰지 말라니까!”
“죽게 생겼는데 안뛰게 생겼습니까!”
상병은 가지고 있던 소총과 군장도 내던지고 죽어라 내달렸다.
김병장을 포함해 다른 군인 두 명은 앞으로 생길 일을 직감했는지 몸이 위축되어서 동작이 굳어있었다. 벌벌떠는 눈초리로 거머리가 있는 방향을 쳐다봤다.
“그르르르......?”
거머리는 잠시 고개를 갸웃하더니 이내 상체를 숙여 두 팔을 땅에 짚었다.
그대로 네 발로 엎드리더니 날쌘 짐승처럼 쏜살같이 튀어나갔다.
거머리는 김병장과 전우들을 지나쳐 도망치던 상병을 순식간에 따라잡았다.
“으아아악! 오, 오지마! 오지마아아아!”
녀석은 달리던 상병의 허리를 잽싸게 입으로 낚아채더니 바닥을 데굴데굴 굴렀다.
그러고는 위로 올라타 몸으로 짓누른 채 어깨를 입안 가득 물어 뜯었다. 우드득 소리가 나면서 군복과 함께 살점이 한웅큼 뜯겨나가자 허연 뼈가 드러났다.
“아악! 살려줘! 김병장님! 살려줘어어어!”
상병이 발버둥치며 살려달라는 비명을 연거푸 내질렀다.
하지만 잔인한 광경 앞에서 그 누구도 움직일 생각조차 못했다.
거머리는 상병을 눕혀놓고 배를 찢어 내장을 손으로 파내며 마구 뜯어먹었다.
“제, 제기랄......!”
눈앞에서 자신의 동료가 산 채로 잡아먹히는 광경을 보니 오줌을 지릴 정도였다. 참혹한 광경에 머릿속은 새하얗게 공백이 되고 셋 중 누구 하나 무엇을 해야겠다는 생각조차 가질 수가 없었다. 기절 안한 것만도 다행이엇다.
김병장은 용기를 내어 옆에 있던 일병의 팔을 잡고 흔들었다.
“니, 니들 저, 정신차려...! 정신차리라구!”
일병이 창백한 얼굴로 그를 쳐다봤다.
“어, 어쩌시렵니까?”
“어쩌긴, 지, 지금이야. 얼른 반대쪽으로 튀자.”
거머리가 정신없이 식사를 하고 있을때, 세 사람은 거머리의 반대쪽으로 천천히, 아주 천천히 발걸음을 옮기기 시작했다.
그러나 탈출은 어림도 없었다.
거머리가 먹어치우는 속도가 더 빨랐고, 녀석은 이내 그들을 돌아봣다.
“그르르르...... 그르르......”
자리에서 일어섰다.
그러고는 입가에 묻은 피를 뚝뚝 떨어뜨리며 이쪽을 향해 비틀비틀 걸어오기 시작했다.
“어, 엄마. 제발...!”
“지원군이라도 오면 좋을텐데...!”
“군에 입대하는게 아니었는데 제길, 제길, 제길!”
세 사람은 절망했다. 시시각각 다가오는 죽음의 공포 앞에 무릎 꿇는가 싶었다.
하지만 때마침 들려오는 구원의 목소리!
“기다려보시오! 내가 잡아주겠소이다!”
쨍그랑!
돌연 옆 건물 3층 창문이 와장창 깨지며 누군가가 뛰어내렸다.
바닥을 데굴데굴 구르던 그는 번개처럼 일어나 거머리를 향해 빔 라이플을 마구 쏴댔다.
지잉, 지잉!
“저 사람은 누구지?”
“우, 우리 군복을 입은 걸 보니 아군인것 같습니다.”
“그건 나도 알암마. 뭘믿고 겁없이 달려들 수가 있냐고 묻는거야!”
“그, 글쎄요?”
세 명의 군인은 바짝 긴장된 얼굴로 눈앞의 사내를 멍하니 응시했다.
빔 라이플을 쏴봤지만 역시 통하지 않는다.
우주는 몇차례 쏘고나서 소용없다는 것을 깨닫자 빔 라이플을 집어던지고 거머리를 향해 앞으로 달려나갔다.
“하아압!”
돌려차기. 허무할 정도로 이렇다할 타격을 주지 못했다.
거머리는 통증에 관해서는 완전히 면역을 가진 것 같았다. 백날 총을 쏘고 주먹으로 때려봤자 아픔을 느끼지 못하니 소용이 없는 것이다.
“이런 괘씸한 녀석! 내 주먹이 물주먹이라 이거냐! 화가 돋는 구나!”
날카로운 손톱을 가진 거머리가 손톱날을 세우며 크게 팔을 휘둘렀다.
우주는 허리를 바짝 숙이면서 공격을 가뿐히 피했다.
거머리의 공격속도는 보통의 인간이 피하기 어려울 정도로 날쌔고 가공할 위력을 갖고 있었다.
그러나 우주 앞에서는 무용지물!
인간 대표가 나왔으면 거머리 대표가 나와서 싸워야할것 아닌가!
“예끼 이놈! 어디 하찮은 괴물 따위가 감히 인간을 잡아먹으려 하느냐!”
거머리의 공격을 민첩하게 피한 우주는 조금 전 거머리에게 잡혀먹었던 상병의 시체가 있는 곳으로 달려가 그나마 남아있던 살점을 한주먹 뜯어냈다.
“이거나 처먹어라!”
우주는 자신을 쫓아 쏜살같이 달려오던 거머리를 향해 살점을 가볍게 내던졌다. 그것은 포물선을 그리듯 날아갔다.
그러자 녀석은 달리던것을 멈추고 그대로 받아 먹으려 입을 쩌억 벌렸다. 그야말로 무식했다.
거머리의 주둥이를 크게 벌려지자 우주는 잽싸게 가슴에 매달려 있던 수류탄을 하나 집어들었다.
수류탄의 안전핀을 뽑고 거머리의 입속으로 냅다 집어 던졌다.
“식탐만 부리는 것들의 최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