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레지스트 쉴드-187화 (187/285)

187화

콰과광!

수류탄도 덩달아 받아먹은 거머리가 일순간 터지며 상체가 한방에 산산조각이 났다. 살점이 피와 한데 뒤섞여 비처럼 우수수 쏟아져 내렸다.

폭발을 피해 몸을 숨겼던 우주는 옷을 털며 밖으로 걸어나왔다.

“사탄의 반도 못따라오는 녀석 같으니.”

우주의 본업은 몬스터 헌팅이다. 사람이 죽고 피를 튀기는 전쟁이야 진작에 겪어봤고, 압도적인 힘 앞에서 거머리보다 더한 공포도 겪어보았다. 지금은 그냥 놀러 나온것 같았다.

거머리는 상체가 날아가며 하반신만 남아있었다. 바닥에 쓰러진 채 남은 두 다리가 바둥거렸지만 더이상 그 어떤 위협도 되지 못한 수준이었다.

우주는 넋놓고 지켜보던 세 명의 군인들에게 다가갔다.

“이제 걱정하시마십시오. 놈은 죽었습니다.”

우주를 신기하게 쳐다보는 군인들.

바람 앞의 등불, 살얼음을 밟는것 같은 상황 속에서 구사일생으로 살아난 군인들은 너나할것없이 달려와 그를 부둥켜 안고 크게 기뻐했다.

“와! 이등병 주제에 정말 대단한데!”

“몇중대 소속이야? 이름은 뭐고? 니 상관한테 말해줄테니 말해봐!”

“구해줘서 고맙다!”

우주의 군복에 달린 이등병 계급장을 보고 그를 이등병 취급하는 것 같았다.

우주는 딱히 신경쓰지 않았다. 자신의 활약으로 군인들의 사기가 단숨에 회복됐다. 그것만으로도 좋았다.

하지만 자신의 정체는 밝혔다.

“소생, 신우주요.”

그 말을 들은 군인들은 순간 입을 크게 벌리며 당황했다. 그리고 저도 모르게 각자 우주에게서 떨어졌다.

우주가 눈빛에 힘을 주며 먼저 말했다.

“소생도 잘알고 있소. 제네틱스가 죽도록 미울거요. 그리고 제네틱스 소속인 소생을 믿지 못할거요. 그러나 염려마시오. 소생은 절대 제네틱스와 공조하지 않고 그대들을 해할 생각이 없소이다. 소생은 제네틱스와 생각을 달리 하고 있소. 그대들과는 한편이오. 침략자들을 몰아내고 흔들리는 이 나라를 바로잡고자 노력할 것이오. 부디 날 의심치 마시오.”

“하, 하긴. 우리를 위해 거머리도 잡아주셨지.”

“맞아. 제네틱스라면 그런 행동을 할 리가...”

“제, 제가 보기엔 믿어도 될 것 같습니다.”

진중했던 우주의 설득은 통했다.

세 사람은 고개를 끄덕이더니 우주의 말을 믿어주었다.

이후 주변에 정신없이 흩어져 있는 아군들을 하나로 결집시키기 위해서 그들은 일심동체로 움직였다.

“거머리란 것들은 앞으로 내가 전담하겠소! 여러분들은 그저 적병만 신경써주시오!”

“알겠습니다!”

“믿고 맡겨주세요!”

주변에 흩어져 있던 아군 병사들을 차례차례 합류시키다보니 우주의 세력은 금세 불어나 30명 가까이 되었다.

우주가 나서서 거머리를 순식간에 처리하면, 하나로 단결된 병사들이 적군에게 즉각 총격을 가하니 야스쿠니 특공대는 추풍낙엽으로 쓰러지면서 당황을 금치 못하였다.

탕탕! 타다탕!

투투투투투투투투!

“봐주는 것 없다!”

병사들은 손발을 척척 맞추어서 본대와 동떨어진 적들을 하나씩 각개격파해 나아갔다. 적들이 비장의 무기로 삼았던 거머리가 무력해진 이상 그들이 밀리는 것은 어쩌면 당연지사였다.

사거리를 지나치려던 우주는 갑자기 손을 들며 뒤따라오던 병사들을 멈춰 세웠다.

“이쪽으로는 가면 안되오. 지리적 위치를 보아하니 함정을 설치하기에 딱 좋소. 저리로 피해갑시다.”

바로 옆에 하사 계급장을 단 이가 고개를 갸웃하며 물었다.

“저는 아무것도 안보이는데 우주 씨는 어찌 그걸 아십니까?”

“오랜 경험이오. 예전에 하도 당하고 주의하다보니 이제는 감으로라도 알 수 있소.”

“혹시 군에서 복무하신 적이 있으십니까?”

“뭐 비슷한 곳에 있긴 했었소이다.”

“그렇군요... 아무튼 신기하네요. 탐지장치도 없는데 딱 보고 알 수 있다니.”

누가 시키지도 않았는데 우주는 어느새 무리의 리더가 되어있었고, 낮은 지위의 장교들도 그것을 순순히 받아들이고 있었다.

시간이 갈수록, 길을 잃은 기연합의 수라들 또한 우주의 부대에 편입되었고, 세는 점점 늘어나 나중에는 90명 규모의 중대급이 되어있었다.

“탄창이 다 떨어진 병사들에게는 적에게서 빼앗은 빔 라이플을 지급해주겠소! 굳이 말안해도 알아서들 받아가시오! 그리고 부상자는 눈치보지 말고 내게 와서 말하시오! 전투에서 제외시켜 주겠소이다!”

우주는 한 구역에서의 전투가 끝나면 바로 다음 전투 구역으로 이동하여 적의 본진이 있는 방향으로 파죽지세로 밀고 나갔다.

그리고 도중에 아군의 지휘관인 대대장이 속한 본대와 마주쳤다. 2개 중대 병력을 가진 그들은 거머리 세 마리를 상대로 고전을 면치 못하고 있었다.

대대장은 중대 규모의 병력을 끌고 합류한 우주를 보고 화색이 돌았다.

“병사들에게 얼굴을 밝히기로 한건가?”

대대장은 상관의 지시를 받아 우주가 병력으로 참여한다는 사실을 진즉에 알고 있었다.

“전우가 죽는 모습을 가만히 보고만 있을순 없었소. 소생이 할 수 있는 일이라면 후회없이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어 어쩔 수가 없었소이다.”

“그래. 잘생각했다. 그런데 이번 작전은 여기까지가 한계인것 같아. 저놈들이 거머리를 앞세우고 뒤에서 마구잡이로 총질을 해대니 이거 뭐 앞으로 나갈 수도 없고 뒤에서 쩔쩔매기만 할뿐이군. 수라들의 도움을 받아 거머리를 상대하는 것만으로도 벅차.”

“거머리라면 걱정마시오. 소생에게 맡기시오.”

“뭔가 방법이라도 있는가?”

“보통 사람의 능력으로는 거머리를 상대하기가 어렵소. 치타보다 날쌔고 호랑이보다 용감해야 한다오. 그리고 그런 자를 찾는다면 바로 소생이오. 이 소생이 박살내 주겠소.”

우주는 호언장담을 하고나서 곧바로 병사들과 함께 거머리를 잡으러 나갔다.

한 수라가 들고 있던 장도를 건네받은 그는 적 선봉에 선 거머리들을 향해 그야말로 유성처럼 날아들었다.

두 개골을 한 칼에 쪼개버렸다.

우주의 활약 아래 야스쿠니 특공대는 크게 당황하며 짚단 넘어가듯 속수무책으로 당하다가 마침내 거미 새끼처럼 흩어져 달아나 버렸다.

야스쿠니 특공대의 강렬한 저항으로 교착상태에 빠질뻔한 전투가 손쉽게 끝나자 대대장과 병사들의 환호성이 터졌다.

“자네는 가히 인간을 뛰어넘었다고 해도 틀린 말이 아니구만! 정말로 대단해! 기연합 수라 스무명이 달려들어야 겨우 잡는걸 혼자서 해내다니!"

우주는 겸손하게 고개를 숙이며 대대장에게 답했다.

“오늘 같은 날을 대비해 수련을 게을리 하지 않은 덕분이오. 마지막까지 우리 모두가 살아서 돌아갈 수 있도록 더 열심히 힘내리다.”

새벽에 시작되었던 전투가 오전을 지나 정오가 되었다.

몇 차례 치열했던 전투를 뒤로하고 이제 적의 본진만을 남겨놓고 있었다.

이후 신호탄을 보고 달려온 기연합의 본대가 합류했고, 기연합 측의 대표와 군 지휘관들은 서로 머리를 맞대고 작전을 수립하는데 한창이었다.

그 자리에서 우주는 한걸음 물러나 뒤에서 가만히 지켜볼 뿐이었다. 그가 해야할 역할은 그들을 돕는 것이지 나서서 부대를 지휘하고 간섭하는 건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는 어차피 서울로 가는 길만 뚫으면 이들을 버리고 떠나야 했다. 전방주둔지에 남아서 향후대책을 논의한다거나 뒷처리를 하는등 무언가를 신경 쓸 겨를이 없었다.

한마디로 깊게 관여안하고 외부인 수준에서 머무를 생각이었다.

좌우간 간부들이 회의를 하는 와중에 병사들은 짬을 내어 식사시간을 가졌다.

그들은 미리 준비해온 전투 식량으로 허겁지겁 요기를 때웠다.

“우주 씨는 반란에 참여 안했나봐요? 다행이네요. 정말 잘하셨어요. 반란에 가담하는것부터가 미친생각이죠.”

“이번 일은 제네틱스 직원 모두가 벌인 일이 아니외다. 소수가 벌인일이 와전되어 제네틱스 직원 전체가 욕을 먹고 있는게요.”

각 기업의 수라들은 우주를 볼때마다 제네틱스와의 관계에 대해 물어왔고 그는 그때마다 사정을 설명해야만 했다.

그리고 신라그룹이나 오성그룹 수라가 보일때는 되려 그들에게 다가가 지인들의 소식을 묻기도 했다.

“이보시오 신라그룹 양반. 수희 낭자와 현아 낭자를 전방주둔지에서 봤었소이까?”

“아니요. 못봤습니다.”

“출근을 안했던게요?”

“아, 출근이라면, 그 두 사람은 신라그룹을 관둔지 한달쯤 지났습니다. 아직 공식 발표가 나진 않았지만 아는 사람은 다 알아요. 그러니 출근했을리가 만무하죠.”

우주도 사실 아는 소식이다. 김수희는 자신이 곧 세울 회사로 들어오기로 한수민과 이야기가 다 되어있었고, 현아는 당분간 무적(無籍)으로 지낸다고 알고 있었다.

그럼에도 혹시나해서 물어본 것이다.

이번에는 오성그룹 수라를 찾았다.

“잠깐 기다려보시오 오성그룹 양반. 전방주둔지에서 현주 누님 본적 있소이까?”

“현주 누님이라면, 임현주 씨요?”

“그렇소.”

“그 분이라면 테러가 일어나던날 비번이었어요. 아마 지금쯤 오성그룹 본사로 출근해서 활약하고 계실겁니다. 빨리 여길 뚫어야 현주 씨 엉덩이를 보러 갈텐데 이것 참 아쉽군요.”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