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레지스트 쉴드-188화 (188/285)

188화

전 병력의 식사가 끝난 뒤에는 슬슬 이동할 준비를 했다.

군부대와 기연합, 양측을 대표하는 두 지휘관이 앞으로 나와서 진군하라는 말을 하려는데 갑자기 전방에서 무언가가 오는 움직임이 감지되었다.

장갑에 햇빛이 반사되어 쳐다보는 이로 하여금 눈이 부시게 만들었다.

병사들은 일제히 손으로 해를 가리고, 밝게 빛나는 해를 등지고 열을 맞춰 걸어오는 적군의 파워드 슈트 부대를 숨죽여 바라보았다.

“저, 저건...!”

“맹수 어드벤스!”

맹수와 디자인과 성능이 흡사한 양산형 파워드 슈트. 심지어 스톰 쉴드 제네틱스와 비슷한 방패까지 들고 있었다.

사탄을 잡은 제네틱스는 전 세계에서 파워드 슈트 개발의 절대강자였다. 그들이 만들어낸 맹수는 가장 튼튼하고, 가장 성능이 좋으며, 가장 가격도 비쌌다.

현존하는 파워드 슈트 중에 경쟁자가 없다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모, 모두 30기야!”

“지금까지 전력에 없었는데 언제 투입된거지!? 대체 어디서 가져온거야!”

“녀석들은 수도 적고 거머리만 해치우면 될줄 알았는데! 이런 젠장할!”

마츠다이라는 맹수 어드벤스를 총 100기를 가지고 있었다. 그 중 청와대를 공격하는 자신이 30기를 갖고, 박찬우와 이완구가 각 20기, 전방주둔지를 봉쇄하는 임무를 맡은 하시도루에게는 30기를 나눠 줬었다.

“산넘어 산이로군. 마츠다이라 그놈이 저런걸 가지고 있었을줄이야.”

우주는 먼 곳을 바라보며 크게 한숨을 내쉬었다. 그러면서 두 주먹을 꽉쥐며 분한 마음을 감추지 못하였다.

그 순간 떠오른 생각은 몇명이 살 수 있을까였다. 저들이 맹수 어드벤스에 탑재된 무기들을 전부 꺼내놓고 무차별적인 폭격을 가한다면 사상자가 부지기수로 늘어날테고 떠올리기도 싫은 괴멸이란 단어를 써야할지도 모를 일이었다.

병사들 중에 누군가 울분을 토해냈다.

“젠장! 이번에도 후퇴냐! 여기까지가 한계냐고!

“이번만큼은 뚫을줄 알았어! 그런데 저게 뭐야! 이 미친놈들은 대체 언제부터 준비한거야!”

병사들의 사기는 한순간 곤두박질 쳤고, 모두가 저항할 의욕을 잃어버렸다.

그나마 누군가가 오성그룹의 파워드 슈트와 군부대가 가지고 있는 군용 파워드 슈트를 이용해 상대해보자는 의견을 내보기도 했지만, 모두의 허탈한 심정속에 그대로 묵살당해버렸다.

맹수 어드벤스를 착용한 이들은 도로 한복판을 점령한 채 아군 측과 200m 정도의 간격을 두고 더는 접근해오지 않았다.

[아아, 들리십니까?]

개중 하나가 마이크를 오픈해놓고 대화를 시도했다.

[안녕하십니까. 저는 야스쿠니 특공대 기갑중대 소속 박 나까무라 소좌라고 합니다. 살아서 돌아가 가족과 친구를 만나고 싶지 않으신지요? 서로가 마치 하루가 일년처럼 힘들고 고된 하루를 보내고 있는 와중에 긴 말은 하지 않겠습니다.

순순히 투항하거나 이대로 전방주둔지를 향해 돌아가십시오. 무기를 버리고 투항한다면 저희는 두 팔을 벌려 크게 환영할 것이고, 전방주둔지로 얌전히 돌아간다면 그대들의 등에 결코 총을 쏘지 않을 것입니다. 서로 피를 보지 않는 방법을 궁리한 끝에 내놓은 우리의 제안입니다.

두 가지 제안 중 어느쪽을 선택하더라도 당신들이 희생 당하는 일은 절대로 없을 것입니다. 제 명예를 걸고 약속드립니다.

타인의 눈치를 보지 말고 각자가 하고 싶은대로 행동 하십시오. 그게 진리입니다. 타인이 자신의 인생을 책임져주는 것도 아니니까요.]

우주는 잠자코 주위 병사들의 안색을 살폈다. 그들의 눈빛에 큰 동요가 일고 있었다.

‘요망한 소리다. 하지만 제법이군. 쥐도 궁지에 물리면 고양이를 문다고 했었지. 놈들은 어차피 살지도 못할텐데 우리 군이 너 죽고 나죽자는 식으로 나오는 걸 피할 요량이면서도 한편으로는 선한 이미지도 쌓고 전력을 보존하는 일거양득의 기회를 노릴 심산인게야.’

적들의 속을 알면서도 마땅히 이 상황을 타개할 방법이 없었다. 섣불리 맞서자고 외쳤다가는 병사들의 반발심만 부추기거나 운이 좋아 병사들이 자신의 생각에 동조한다치더라도 전투에서 이길 수가 없다. 그저 손놓고 구경하는 수밖에 따로 할 일이 없었다.

‘안타깝구나......’

판단은 병사들 개개인에게 맡기고 우주는 가만히 지켜보면서 혀만 끌끌 차고 있을때였다.

그런데 갑자기 하늘에서, 작열하는 햇빛 아래에 시커먼 그림자가 공중에서 아른거렸다.

“뭐지......?”

그것은 10층 건물 옥상에서 뛰어내리며 도로 위에 쿠웅 하는 육중한 소리를 내며 착지했다. 어찌나 무거운지 아스팔트가 갈라지며 지반이 내려앉았다.

군부대와 야스쿠니 특공대를 사이에 두고 나타난 그것은 잠깐의 시간동안 주변을 두리번 거렸다. 헬멧에 달린 카메라로 누군가를 찾는듯 싶었다.

“맹수!”

그것의 정체를 확인한 우주는 저도모르게 소리를 내질렀다.

그러자 맹수 001호는 우주의 음성을 놓치지 않고 포착, 마치 반갑다는 듯이 즉시 육중한 발걸음을 옮겼다.

<작전명 '주인 찾는 강아지' 수행 완료. 현 시간부로 도난범의 구속을 해지합니다.>

우주는 이곳이 전쟁터라는 사실을 한순간 잊은 채 멍하니 맹수를 쳐다보았다.

눈앞에서 천천히 다가오는 맹수. 적들도 뜬금없이 나타난 맹수에 어리둥절했는지 이도저도 못하고 가만히 지켜보고만 있을 뿐이었다.

우주는 병사들을 뚫고 부대 맨 앞으로 나아가 맹수를 맞이했다.

“도대체 어떻게 여기에...?”

<반갑습니다 대장님.>

맹수의 A.I 프로그램인 줄리엣의 목소리가 외부 스피커를 통해 흘러나왔다. 기계음이라 딱딱하면서도 딱딱하다는 느낌은 전혀 들지 않았다. 반가운 이를 보고 웃는 법도 알고 있는것 같았다. 목소리가 밝았다.

“착용자는 누구지?”

<도난범을 잡았습니다. 처리를 부탁드립니다.>

“도난범?”

맹수의 장갑이 일제히 열리며 안에서 한 사내가 힘없이 떨어졌다.

우주는 주저앉은 사내를 보자마자 눈이 휘둥그레졌다.

“이완구?”

“뜨아!”

장시간 맹수에 갇혀 있던 이완구는 머리가 다 젖고 온몸에 구슬땀을 흘리고 있었다.

그는 바짝 겁에 질린 채 몸을 부들부들 떨며 안절부절하지 못하였다. 졸지에 사자 앞에서 꼼짝 못하는 먹잇감 신세가 되어버린 것이다.

“시, 신우주! 사, 살아 있었다니!”

그는 오줌을 지렸다. 바짓가랑이에 뜨거운 물이 흘렀다. 자신을 향한 우주의 증오를 너무나 잘알기에 그의 얼굴을 보자마자 사신을 보는 것 같았고 크나큰 공포와 두려움이 앞섰다. 살아생전 우주를 눈앞에서 마주하게될줄은 꿈에도 몰랐을 것이다.

“배, 백년만인가? 바, 반가워......!”

목소리를 덜덜 떨면서 억지로 웃어보였다. 얼굴 근육이 말을 듣지 않아 인상을 쓰는 것처럼 보였다.

우주는 그 얼굴을 향해 차갑게 쏘아붙였다.

“댁은 반가운가 몰라도 소생은 그 면상을 보니 짜증이 나오만.”

“아하하, 하하... 그, 그럴리가 있나. 그, 그런데 말야. 나도 봉인에서 깨어난지 얼마 안되서 여기 왜 왔는가 잘모르겠어. 어째서 자네가 여기에 있는거지? 그리고 또 총들고 서 있는 이 사람들은 다 뭐야? 왜, 왠지 무섭구만 그래. 난 이제 개과천선했다구. 정말이야. 일본놈들은 아주 질색이란 말이야. 그러니 자네가 이 사람들한테 말 좀 잘해줘. 응? 필요한 정보가 있으면 다 말할테니까 부탁일세.”

“썩을놈, 친한척은.”

우주의 표정은 그야말로 송곳보다 날카로웠다. 이완구를 향해 무심히 내려다보는 눈빛은 이완구의 심장을 파고드는 것 같았다.

“이, 이보게. 보, 보는 내가 다 수, 숨 막힐 정도구만. 나도 자네가 하고 싶은 말이야 전부 알아듣고 있으니 행여나 오해하지 말게. 지난날 내 잘못을 크게 후회하고 반성하고 있다니까? 재판장에만 세워주면 내가 저지른 범죄 행위들을 전부 실토하고 죄, 죄값을 충분히 치룰 생각이네. 정말이야. 제발 믿어주게.”

“결국은 살려 달란 말이냐?”

“뭐, 뭐 비슷하긴 하지. 그런데 난 그저 내 지난날 행위에 대해서 엄중한 법의 심판을 받고 싶어서 그래. 솔직히 말해서 내가 여기서 쉽게 목숨을 잃는것 보다 법정에 서는게 자네한테도 더 좋을게 아닌가?”

“글쎄? 좋은 이유를 모르겠군.”

이완구는 침을 꼴깍 삼켰다.

“안, 안좋아?”

“네놈이 숨쉬고 있는걸 계속 보고 싶지 않아서 말이다.”

스르릉!

우주는 허리에 차고 있던 칼을 뽑아 하늘을 향해 번쩍 치켜들었다. 당황한 이완구가 바들바들 떨며 그의 다리를 붙잡았다.

“이, 이거 왜이러는겐가! 주먹보다 대화가 먼저라지 않나! 어쩌면 오해가 쌓여 있을지도 모르고 일단 이야기는 해봐야지! 사, 살려줘!”

그와중에 먼 곳에서 현장을 바라보던 야스쿠니 특공대.

본인을 박 나까무라라고 밝혔던 자가 서둘러 경고음을 울렸다.

위이이이이잉! 위이이잉!

소리가 점점 줄어들고 그가 말했다.

[경고합니다. 즉각 이완구 소장님을 풀어주십시오. 그를 살해했다간 여기 있는 맹수 어드벤스 30기가 절대로 좌시하지 않을것입니다.

가지고 있는 총탄을 모두 퍼부어 이 일대를 쑥밭으로 만드는 것과 동시에 당신들을 모조리 사살할것입니다. 상황을 악화시키지 마십시오. 우리는 평화를 원합니다.

다시 한번 말합니다. 우리는 평화를 원합니다. 이완구 소장님을 온전히 이쪽으로 보내십시오.]

야스쿠니 특공대의 경고에 아군 측이 꽤 흔들리는 것 같았다. 우주의 뒤쪽에서 사람들이 웅성웅성 거렸다. 대부분이 이완구를 얌전히 보내주자는 의견. 그것이 겁먹은 병사들 사이에서 돌고 돌아 우주를 향한 거대한 원성이 되기 전, 우주는 작게 코웃음을 치고는 한쪽 입꼬리를 치켜올렸다.

번쩍 들어올린 칼을 더욱 힘껏 틀어쥐고 소리쳤다.

“이놈을 잡으려 고생했던 순간들을 생각하면 절대로 순순히 놔줄 수가 없지.”

맹수가 거저 떠먹여준 밥. 조국의 평화를 가로막았던 인물. 평소 이완구를 조국의 불구대천 철천지 원수라고 생각했던 우주가 당연히 이 기회를 놓칠리 없었다.

“각오해라!”

우주는 한순간 눈을 치켜뜨자 이완구는 마치 저승사자를 본 것 같은 기분에 몸을 움찔거렸다.

“히익!”

“법정에 세워달라고? 법정은 개뿔! 이게 바로 심판이다!”

“사, 살려줘! 으아아악!”

싹뚝!

우주는 가차없이 이완구의 목을 베었고, 그의 목은 어깨에 툭 부딪히더니 아래로 굴러 떨어졌다.

우주는 피묻은 칼을 하늘 높이 척 치켜들었다.

“제 몸 하나 살겠다고 나라와 수많은 백성을 팔아넘긴 자! 뿌린대로 거두었다! 자, 하늘에서 보고 있는가? 나의 옛동지들아!”

설마 죽이겠어? 하면서 잠자코 지켜보고 있던 야스쿠니 특공대는 크게 당황했다.

그들이 기가 막혀 주춤하는 사이 우주는 냅다 칼을 집어 던지고 날렵하게 맹수를 향해 뛰어들었다.

맹수의 장갑이 재빠르게 그의 전신을 뒤덮으며 반갑게 맞이했다.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팀장님.>

“인사는 됐다! 서둘러 사격 준비!”

우주는 맹수의 착용을 완료한 직후 자리에서 일어나며 뒤돌아섰다.

동시에 줄리엣이 적의 발사 동작을 포착해냈다.

<좌측에 셋, 중앙 둘 입니다.>

“발포!”

<발포합니다.>

맹수의 왼쪽 어깨에 달린 네모난 박스. 위아래 각각 네 개씩 달린 구멍에서 다연발 로켓포 다섯 발이 힘차게 불을 내뿜고 날아갔다.

쉬이익!

퍼버펑!

적들이 쏜 미사일과 한치의 오차도 없이 허공에서 충돌하며 폭발했다.

민첩한 대응으로 아군의 피해를 무사히 막았다.

그 다음.

“부스터, 최대출력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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